제프 벡

음악가, 기타리스트, 록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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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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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음악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야드버즈 출신으로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와 함께 3대 기타리스트로 불림. 독특하고 실험적인 사운드로 블루스 록 재즈 퓨전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음악적 경계를 허물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함. 그래미상 5회 수상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등 수많은 업적을 남기며 기타 신으로 불리며 전 세계 음악 팬들에게 깊은 영감을 준 진정한 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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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

[록 기타리스트의 탄생]

영국 런던에서 '제프리 아놀드 벡'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그는 훗날 록 음악의 역사를 새로 쓸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의 운명을 타고났다.

제프리 아놀드 벡은 1944년 6월 24일 영국 왈링톤 데메인 로드 206번지에서 아버지 아놀드 벡과 어머니 에델 벡 사이에서 태어났다.

1950

[운명의 기타를 만나다]

6살 때 라디오에서 처음 들은 레스 폴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에 강렬한 인상을 받고 "내가 그걸 할 거야"라고 말하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벡에게 처음 강한 인상을 남긴 일렉트릭 기타 연주자는 레스 폴이었다. 벡이 처음으로 일렉트릭 기타를 라디오로 들은 것이 6살 때로 레스 폴의 연주였다. 그는 어머니에게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어머니가 일렉트릭 기타라고 말해주자 벡은 "내가 그걸 할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1954

[최초의 수제 기타 제작]

십대 시절, 기타를 빌려 치는 것을 넘어, 직접 시가 상자와 울타리용 나무, 모형비행기 콘트롤 라인으로 몸통과 넥을 만드는 등 독특하고 기발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기타를 만들어 연주했다.

십대 시절에는 기타를 빌려서 치거나 직접 만들어 보려고도 했는데 몸통은 여송연 상자들을 붙여서 나사로 조이고 거친 울타리용 나무와 모형비행기 콘트롤 라인으로 넥을 만든 다음 프렛은 그려넣었다. 두 번째로 시도할 때에는 넥의 길이를 베이스 기타에 맞춰서 했다고 한다.

1962

[첫 녹음, 음악 여정의 시작]

윔블던 미술대학 재학 중 스크리밍 로드 서츠 앤 더 새비지스와 함께 'Dracula's Daughter'와 'Come Back Baby'를 녹음하며 음악 경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윔블던 미술대학을 다니던 중 제프 벡은 여러 밴드들과 연주했는데 그 중에는 1962년도에 오리올 레코드에서

1963

[다양한 밴드 활동]

롤링 스톤즈의 스튜어트를 통해 R&B를 접하고 나이트쉬프트, 럼블스, 트라이던츠 등 여러 밴드에서 리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음악적 스타일을 다듬어갔다.

1963년 롤링 스톤즈의 스튜어트를 통해 알앤비를 접하게 된 이후 그는 나이트쉬프트(Nightshift)라는 밴드를 조직하여 옥스포트가에 위치한 100 클럽에서 연주하며 피카딜리 레이블을 통해 싱글 와 를 발매했다. 이후 크로이돈의 밴드인 럼블스(Rumbles)에 합류하여 1963년 잠시 동안 리드 기타리스트로 진 빈센트와 버드 홀리의 곡들을 연주하며 여러 기타 스타일을 잘 따라하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치스윅 지역의 트라이던츠(Tridents)라는 밴드에 들어갔다. "이들은 지미 리드의 곡들 같은 완전 알앤비 음악들을 했기에 나에게는 적격이었다. 우리는 이런 곡들을 더 강력한 록으로 만들었다. 여전히 12마디 블루스였지만 우리는 열광했다"고 벡은 말한다. 1964년 팔로폰 음반사에서 나온 피츠 앤드 스타츠(Fitz and Startz)의 싱글 와 에 세션 기타리스트로 참여하기도 했다.

1965

[야드버즈 합류, 전설의 시작]

동료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의 추천으로 에릭 클랩튼의 후임으로 야드버즈에 합류, 본격적인 록 기타리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며 'Over Under Sideways Down' 앨범과 'Beck's Bolero' 같은 역사적인 연주곡을 남겼다.

이 시기 야드버즈는 대부분의 톱 40 히트곡을 냈다.

1965년 3월, 제프 벡은 동료 세션 기타리스트였던 지미 페이지의 추천으로 야드버즈(Yardbirds) 밴드에 에릭 클랩튼의 후임으로 영입되면서 본격적인 기타리스트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먼저는 페이지에게 섭외가 왔었다). 벡이 있는 20개월 동안 야드버즈는 대부분의 톱 40에 들어간 곡들을 녹음했고 1966년에 발매된 한 장의 앨범 (미국에서는 란 이름으로 발매)을 냈다. 그리고 같은 해 벡은 라는 연주곡을 녹음했다. 야드버즈 멤버들 대신에 지미 페이지가 12줄 리듬 기타를, 드럼은 키스 문, 베이스는 존 폴 존스, 피아노에 니키 홉킨스가 함께 했다.

1966

[기타 영웅들의 조우]

지미 페이지가 야드버즈에 합류하며 제프 벡과 함께 '트윈 리드 기타' 체제를 구축했다.

이들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영화 '욕망(Blow-up)'에서 폭발적인 연주를 선보이며 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6월에 지미 페이지가 야드버즈에 처음에는 베이스로 합류했다가 이후 세컨드 리드 기타가 된다. 당시 이중 리드 기타 라인업은 1966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 <욕망(Blow-up)>에서 과 을 연주하는 장면에 나오기도 한다.

1967

[야드버즈 탈퇴와 솔로 활동]

투어 중 문제와 완벽주의, 불같은 성격으로 인해 야드버즈에서 탈퇴한 후, 팝 제작자 미키 모스트와 함께 'Hi Ho Silver Lining', 'Tallyman' 두 개의 솔로 싱글을 녹음하며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제프 벡은 미국 투어 중에 지속적으로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문제가 있었고 더불어 완벽주의로 인해 주위를 힘들게 했고 또 불같은 성격 때문에 밴드에서 해고되었다. 1967년 야드버즈 탈퇴 후 벡은 팝 제작자인 미키 모스트와 함께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두 개의 솔로 싱글 과 을 녹음했다.

[제프 벡 그룹 결성]

로드 스튜어트(보컬), 로니 우드(베이스), 닉키 홉킨스(피아노) 등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과 함께 '제프 벡 그룹'을 결성했다.

이들은 하드록의 음악적 기준을 제시하며 두 장의 앨범을 통해 상업적, 비평적 성공을 거두었다.

1967년 야드버즈 탈퇴 후 로드 스튜어트를 보컬로 영입, 대망의 '제프 벡 그룹'(The Jeff Beck Group)을 결성한다. 제프 벡 그룹은 이들 외에 베이스에 로니 우드, 피아노에 닉키 홉킨스, 드럼에 앤슬리 던바로 구성되었다(드럼은 이후 믹키 왈러로 교체되었다).

1968

[하드록의 새 지평을 열다]

제프 벡 그룹의 데뷔 앨범 'Truth'가 발매되었다.

레드 제플린의 데뷔 앨범보다 5개월 먼저 나와 하드록 사운드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빌보드 차트 15위까지 오르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제프 벡 그룹은 콜롬비아 레코드사(미국은 에픽 레코드)를 통해 두 개의 앨범, 《Truth》(1968년 8월)와《Beck-Ola》(1969년 7월)를 발매했다. 《Truth》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데뷔 앨범이 나오기 5개월 전에 출시되었는데 머디 워터스가 처음 녹음하고 레드 제플린 데뷔 앨범에도 비슷한 편곡으로 리메이크 된 가 들어있었고 판매 성적도 괜찮아서 빌보드 차트 15위까지 올랐다.

1969

[두 번째 명반 탄생]

제프 벡 그룹의 두 번째 앨범 'Beck-Ola'가 발매되었다.

비록 전작보다는 판매량이 낮았지만, 이 앨범 역시 하드록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고 음악적 깊이를 더하며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Beck-Ola》 앨범에서는 드러머가 믹키 왈러에서 토니 뉴만으로 교체되었고 선전하기는 했으나 전 앨범에 비해서는 판매와 평가에 있어 좀 떨어지만 이 두 앨범은 하드록의 음악적 기준이 되었고 미국과 영국에서 음악적 평가와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1971

[제프 벡 그룹 제2기 활동]

1971년 '로프 & 레디', 1972년 '제프 백 그룹' 앨범을 연이어 발매하며 '제2기 제프 벡 그룹'으로서 더욱 성숙하고 다채로운 음악적 스펙트럼을 선보였다.

제2기 제프 벡 그룹은 1971년 '로프 & 레디'와 '제프 백 그룹'란 타이틀의 음반을 발매했다.

1973

[전설적인 트리오 결성]

베이시스트 팀 보거트, 드러머 카마인 어피스와 함께 '벡, 보거트 & 어피스' 트리오를 결성하여 동명 앨범을 선보였다.

이들의 협연은 당대 록 음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어 1973년에는 베이시스트 팀 보거트와 드러머 카마인 어피스와 트리오를 결성, '벡, 보거트 & 어피스'란 앨범도 선보였다.

1985

[첫 그래미, 록 연주곡상 수상]

앨범 '플래시' 수록곡 '이스케이프'로 생애 첫 그래미 어워즈 '최우수 록 연주곡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기타 거장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제프 벡은 1985년 앨범 '플래시' 수록곡 '이스케이프'로 그래미어워즈에서 최우수 록 연주곡상을 수상했다.

1989

[그래미 록 연주곡상 연속 수상]

1989년 '테리 보지오와 토니 하이마스와 함께하는 제프 벡의 기타 숍' 앨범, 2001년 '유 해드 잇 커밍!' 앨범에 수록된 '더티 마인드'로 각각 2번째와 3번째 그래미 어워즈 '최우수 록 연주곡상'을 수상하며 독보적인 연주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1989년 '테리 보지오와 토니 하이마스와 함께하는 제프 벡의 기타 숍'과 2001년 '유 해드 잇 커밍!'에 수록된 '더티 마인드'로 각각 2번째와 3번째 그래미어워즈 최우수 록 연주곡상을 탔다.

2004

[네 번째 그래미 수상]

앨범 '제프'에 담긴 '플랜 비'로 4번째 그래미상을 수상하며 그의 끊임없는 음악적 탐구와 혁신적인 연주가 지속적으로 인정받았다.

2004년 여름, 제프 벡은 앨범 '제프'에 담긴 '플랜 비'로 4번째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2009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200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같은 해 4월 4일 정식으로 등재되며 록 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을 인정받았다.

벡은 200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대상자 명단에 올랐으며, 같은해 4월 4일에 열린 헌액식에서 정식으로 등재되었다. 지치지 않는 도전정신과 환경에 굴하지 않는 실험정신으로 수도자로까지 불린 제프 벡은 2009년 4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다.

2023

[전설, 영원한 안식에 들다]

2023년 1월 10일, 78세의 나이로 세균성 수막염으로 사망하며 전 세계 음악 팬들에게 깊은 슬픔을 안겼다.

그의 음악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벡은 2023년 1월 10일 78세의 나이로 리버홀 근처의 병원에서 세균성 수막염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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