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벳 언더그라운드
음악 그룹, 록 밴드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14:20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1960년대 뉴욕에서 결성된 익스페리멘탈 록 밴드입니다. 루 리드 존 케일 스털링 모리슨 모린 터커가 주축이었으며 앤디 워홀이 프로듀싱한 바나나 앨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로 유명합니다. 비록 상업적 성공은 부족했지만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으로 펑크 록 뉴 웨이브 얼터너티브 록 등 수많은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199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롤링 스톤지 선정 역대 최고의 아티스트 19위에 오르는 등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그룹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1964
[밴드 결성 및 이름 변경]
뉴욕 시라큐즈 대학을 졸업한 루 리드와 존 케일이 '프리머티브스'라는 그룹을 결성했습니다.
이후 스털링 모리슨과 앵거스 맥라이즈가 합류했고, 미국 언론인 마이클 리의 책 제목을 본따 '벨벳 언더그라운드'로 팀 이름을 바꿨습니다.
봉고 연주자 앵거스 맥라이즈는 리허설 불참 등의 문제로 팀의 신뢰를 잃고 모린 터커로 교체됩니다.
1966
[앤디 워홀과의 운명적 만남]
궁핍했던 밴드는 뉴욕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 활동 중 현대 미술가 앤디 워홀을 만났습니다.
워홀은 그들의 음악에 주목하여 매니저를 자처했고, 자신의 멀티미디어 쇼 ‘익스플로딩 플라스틱 인에비터블’의 음악을 맡겼습니다.
워홀의 권유로 독일 모델 니코가 데뷔 음반 녹음에 합류합니다.
1967
[파격적 데뷔 앨범 발매]
앤디 워홀의 후원으로 단 하루 만에 녹음된 첫 앨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가 탄생합니다.
하지만 대중에게 낯선 음악과 거친 녹음 상태로 상업적 외면을 받았고, 같은 해 말 워홀은 밴드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이에 루 리드는 새로운 매니저 스티브 세스닉을 찾아가 더 상업적인 방향을 모색했고, 이는 존 케일과의 갈등을 초래했습니다.
1968
[니코 없는 2집 발매]
니코를 제외시킨 채 전위적인 두 번째 앨범 《White Light/White Heat》를 출시했습니다.
이 앨범에는 영국의 글램 록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가 리메이크하여 유명해진 동명 타이틀곡 등이 수록되었습니다.
[존 케일 탈퇴와 더그 율 합류]
루 리드와의 음악적 견해차로 존 케일이 팀을 탈퇴합니다.
그의 빈자리는 더그 율이 채우며 베이스, 오르간, 보컬을 담당하게 됩니다.
1969
[극단성 버린 3집 공개]
셀프 타이틀 3집 앨범 《The Velvet Underground》을 발표했습니다.
존 케일의 부재와 LA 녹음 스튜디오로 가는 길에 장비를 도난당한 경험이 더해져, 이전 앨범들에 비해 비교적 편안하고 극단적인 면이 줄어든 사운드를 선보였습니다.
1970
[루 리드 떠난 4집 발매]
4집 음반 《Loaded》가 발매되었지만, 이 앨범 발매 직전 루 리드가 팀을 탈퇴했습니다.
이후 밴드는 더그 율이 주축이 되어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1973
[마지막 앨범 'Squeeze' 발매]
더그 율이 이끌던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인 《Squeeze》가 발매되었습니다.
이 앨범은 밴드의 초기 사운드와는 큰 차이를 보이며, 밴드 해체를 앞두고 발매된 앨범으로 기록됩니다.
1990
[첫 번째 재결성]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핵심 멤버들이 다시 모여 일시적으로 재결성되었습니다.
이는 팬들에게 큰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짧지만 의미 있는 활동을 펼쳤습니다.
1992
1996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그들의 역사적 중요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밴드는 이 해에도 일시적으로 재결성되어 무대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