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핫 칠리 페퍼스

록 밴드, 얼터너티브 록, 훵크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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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2- 02:4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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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핫 칠리 페퍼스
록 밴드, 얼터너티브 록, 훵크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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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 로스앤젤레스에서 결성된 세계적인 록 밴드 • 얼터너티브 록 훵크 록 헤비메탈 사이키델릭 록을 넘나드는 독특한 음악 스타일 • 앤서니 키디스 플리 채드 스미스 존 프루시안테를 중심으로 전 세계적 성공을 거둠 • 멤버 교체와 약물 문제 등 부침 속에서도 Blood Sugar Sex Magik Californication 등 히트 앨범 발표 • 2012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 혁신적인 음악과 열정적인 라이브로 대중적 흥미를 끊임없이 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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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레드 핫 칠리 페퍼스 결성]

앤서니 키디스, 플리 등 젊은이 넷이 로스앤젤레스에서 밴드를 결성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첫 공연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레드 핫 칠리 페퍼스'라는 이름을 얻고 EMI와 계약하며 음악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1984

[데뷔 앨범 발매]

첫 앨범 'The Red Hot Chili Peppers'를 내놓았지만, 프로듀서와의 갈등 속에 아쉽게도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64일간 60회의 강행군 투어를 통해 무대 위에서 밴드만의 에너지를 불태우며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1985

[Freaky Styley 발매]

조지 클린턴의 프로듀싱 아래 훵크와 알앤비를 결합한 두 번째 앨범 'Freaky Styley'를 선보였습니다.

전작보다도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며 차트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밴드만의 독특한 음악적 색깔을 더욱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7

[첫 빌보드 차트 진입]

세 번째 앨범 'The Uplift Mofo Party Plan'이 마침내 빌보드 200 차트 148위에 진입하며 밴드 최초로 차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원년 멤버들이 다시 뭉쳐 뿜어낸 시너지가 밴드의 잠재력을 증명한 순간이었습니다.

1988

[존 & 채드 합류]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밴드의 운명을 바꿀 두 명의 구세주가 나타났습니다.

펠리그로의 소개로 기타리스트 존 프루시안테가, 그리고 이후 드러머 채드 스미스가 전격 합류하며, 앤서니, 플리, 존, 채드의 '골든 라인업'이 비로소 완성되었습니다.

[멤버 슬로백 사망 및 탈퇴]

밴드에 드리운 비극적인 그림자.

기타리스트 힐렐 슬로백이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상심한 드러머 잭 아이언스마저 밴드를 떠나면서, 레치리는 큰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1989

[Mother's Milk 발매]

새로운 라인업으로 첫 앨범 'Mother's Milk'를 내놓았습니다.

프로듀서와의 불화에도 불구하고 빌보드 52위에 오르며 밴드 최초의 골드 레코드를 달성했습니다.

스티비 원더의 'Higher Ground' 커버곡은 밴드의 시그니처가 되었습니다.

1990

[워너 브로스 계약]

밴드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레이블을 EMI에서 워너 브로스 레코드로 옮겼습니다.

이 결정은 밴드의 음악적 변화와 함께 전설적인 프로듀서 릭 루빈을 만나게 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91

[세계적 히트 앨범 발매]

릭 루빈과 함께 제작한 5집 'Blood Sugar Sex Magik'이 발매되자마자 전 세계를 강타했습니다.

무려 1200만 장 이상 팔리며 밴드를 글로벌 슈퍼스타로 만들었고, 'Give It Away', 'Under the Bridge' 등 명곡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Give It Away'는 그래미 어워드까지 거머쥐며 밴드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1992

[프루시안테 돌연 탈퇴]

밴드의 성공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을까요.

기타리스트 존 프루시안테가 일본 투어 중 갑작스럽게 밴드를 떠나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의 이탈은 밴드에게 큰 공백을 남겼고, 존은 이후 심각한 약물 중독에 빠지게 됩니다.

1993

[데이브 나바로 합류]

존 프루시안테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제인스 어딕션 출신의 기타리스트 데이브 나바로가 밴드에 합류했습니다.

그의 개성 강한 헤비메탈, 프로그레시브 록 스타일은 밴드의 음악에 신선한 변화를 불어넣었습니다.

1995

[One Hot Minute 발매]

데이브 나바로와 함께 유일한 앨범 'One Hot Minute'을 발매했습니다.

어둡고 슬픈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지만, 500만 장 이상 판매되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My Friends' 등의 히트곡을 탄생시키며 밴드의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1998

[나바로 탈퇴]

데이브 나바로가 창조적인 견해 차이로 인해 밴드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양측 합의에 의한 결정이었지만, 앤서니 키디스는 당시 나바로의 약물 문제도 언급하며 밴드 내부의 갈등을 짐작하게 했습니다.

[프루시안테 극적 재합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약물 중독을 이겨내고 재활에 성공한 존 프루시안테가 플리의 간곡한 설득으로 밴드에 전격 재합류했습니다.

앤서니 키디스는 이 순간을 '마법이 다시 일어나는 진짜 거래'라고 표현하며 밴드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습니다.

1999

[Californication 메가 히트]

존 프루시안테 재합류 후 발매된 7집 'Californication'은 밴드의 최고 명반으로 등극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무려 1500만 장 이상 팔려나갔고, 'Scar Tissue', 'Otherside', 'Californication' 등 전설적인 히트곡들을 탄생시키며 다시 한번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우드스탁 99 공연 소동]

우드스탁 99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레치리.

공연 중 지미 헨드릭스 커버곡 'Fire'를 연주했는데, 예상치 못한 소동과 방화 사건으로 이어져 진압대가 개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강렬한 에너지만큼이나 화제성이 폭발했던 공연으로 기억됩니다.

2000

[그래미 락 음악상 수상]

'Californication' 앨범의 명곡 'Scar Tissue'가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락 음악상'을 수상했습니다.

밴드의 음악적 깊이와 대중적 인기를 동시에 인정받으며 레치리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밴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02

[By the Way 앨범 성공]

8집 앨범 'By the Way'를 발매했습니다.

첫 주에만 70만 장 이상 판매되며 빌보드 차트 2위에 올랐습니다.

이전의 거친 펑크 록에서 벗어나 'By the Way', 'Can't Stop' 등 멜로디컬한 발라드와 서정적인 사운드를 강조하며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혔습니다.

2004

[하이드 파크 역사적 공연]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 25만 명이라는 엄청난 관중 앞에서 역사적인 공연을 펼쳤습니다.

이 공연은 비틀즈의 기록을 뛰어넘는 단일 공연 최고 수익(1710만 달러)을 기록하며 밴드의 막강한 티켓 파워를 입증했습니다.

라이브 앨범 'Live in Hyde Park'으로도 발매되어 그 감동을 전했습니다.

2006

[그래미 휩쓴 Stadium Arcadium]

릭 루빈 프로듀싱의 더블 앨범 'Stadium Arcadium'을 발매했습니다.

발매 첫 주 전 세계적으로 110만 장 이상 판매되는 대기록을 세웠고, 미국 차트 1위를 비롯해 25개국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밴드의 최전성기를 알렸습니다.

'Dani California' 등 히트곡으로 가득한 명반입니다.

2007

[6개 그래미 석권]

'Stadium Arcadium'이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고의 락 앨범', '최고의 락 음악(Dani California)' 등 무려 6개 부문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밴드의 압도적인 음악성과 대중적 영향력을 증명하며 그들의 전설적인 위상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습니다.

2009

[프루시안테 두 번째 탈퇴]

밴드의 상징과도 같았던 기타리스트 존 프루시안테가 또다시 밴드를 떠났습니다.

음악적 방향성에 대한 깊은 고민과 개인적인 음악 활동에 집중하기 위한 결정으로 알려졌으며, 팬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2010

[조쉬 클링호퍼 영입]

존 프루시안테의 후임으로 그의 절친한 동료이자 유능한 뮤지션인 조쉬 클링호퍼가 새로운 기타리스트로 영입되었습니다.

조쉬는 RHCP 투어에 백킹 기타 등으로 참여하며 밴드와 이미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습니다.

2011

[I'm With You 발매]

조쉬 클링호퍼가 참여한 첫 앨범 'I'm With You'를 발매했습니다.

릭 루빈이 프로듀싱했으나, 조쉬의 개성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아 팬들 사이에서는 평가가 엇갈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년이 된 멤버들의 건재함을 알리는 작품이었습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확정]

전 세계 음악계의 최고 명예 중 하나인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2012년 헌액이 확정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비스티 보이즈, 건즈 앤 로지스 등 전설적인 밴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들의 위대한 업적을 인정받았습니다.

2016

[지산 락 페스티벌 내한]

'The Getaway' 투어의 일환으로 한국 지산 락 페스티벌에서 내한 공연을 가졌습니다.

플리의 부상으로 앨범 발매가 연기되기도 했지만, 덕분에 앨범의 완성도를 더욱 높일 수 있었다는 후문입니다.

[The Getaway 발매]

조쉬 클링호퍼와 함께한 두 번째 앨범 'The Getaway'를 발매했습니다.

이번에는 릭 루빈 대신 새로운 프로듀서와 작업하여 조쉬의 기타 스타일이 더욱 돋보였고, 'Sick Love', 'Dark Necessities' 등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2019

[프루시안테 세 번째 재합류]

플리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10년간 함께했던 조쉬 클링호퍼와의 아름다운 작별을 알리고, 전 세계 팬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존 프루시안테의 세 번째 밴드 재합류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밴드의 역사는 또 한 번 드라마틱한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2022

[Return of the Dream Canteen 발매]

같은 해 'Return of the Dream Canteen'을 연이어 발매하며 팬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Unlimited Love' 앨범 작업 시 함께 녹음했던 곡들로 구성되어, 밴드의 창작열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엿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Unlimited Love 발매]

존 프루시안테의 전격 재합류 후 첫 앨범 'Unlimited Love'를 발매하며 다시 릭 루빈과 호흡을 맞췄습니다.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밴드의 사운드를 선보이며 팬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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