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치 보이스
음악 그룹, 밴드, 록, 팝, 서프 음악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14:04
1961년 결성된 미국의 전설적인 밴드. 경쾌한 서프 음악을 대중화시키며 미국 젊은이 문화를 대표함. 혁신적인 앨범 《Pet Sounds》로 1960년대 음악계에 큰 영향. 198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 팝 음악 차트 1위를 차지한 최초의 라이브 음반 발매. Good Vibrations는 당시 최고 제작비와 가장 복잡한 팝 프로덕션으로 기록.
- 그룹 결성
- 데뷔 싱글 〈Surfin〉 발매
- 캔딕스 레코드와 계약
- 첫 공식 공연
- 싱글 〈Surfin' Safari〉 히트
- 캐피틀 레코드와 7년 계약
- 데뷔 앨범 《Surfin Safari》 발매
- 《Surfin' U.S.A.》 발매 및 서프 음악 전국 유행
- 브리티시 인베이전 시작
- 싱글 〈I Get Around〉 빌보드 1위 달성
- 앨범 《All Summer Long》 발매
- 라이브 앨범 최초 1위
- 크리스마스 앨범 발매
- 브라이언 윌슨 공황 발작
- 앨범 《The Beach Boys Today!》 공개
- 브라이언 윌슨 투어 중단 선언
- 앨범 《Summer Days》 발표 및 싱글 히트
- 브루스 존스턴 멤버 합류
- 싱글 〈California Girls〉 빌보드 1위 달성
- 앨범 《Pet Sounds》 제작
- 'Good Vibrations' 빌보드 1위 및 혁신적 제작
- 앨범 《Smile》 녹음 시작
- 앨범 《Pet Sounds》 발매
1961
[그룹 결성]
미국 캘리포니아 호손에서 브라이언, 데니스, 칼 윌슨 삼형제와 사촌 마이크 러브, 친구 앨 자딘이 모여 '더 펜들톤즈'를 결성했다.
데니스 윌슨의 제안으로 서핑을 테마로 한 곡을 만들기로 했다.
최초 그룹명은 '더 펜들톤즈(The Pendletones)'였으나, 이후 '비치 보이스'로 변경되었다. 브라이언 윌슨은 피아노와 베이스를 담당하며 주요 작곡가였고, 칼 윌슨과 앨 자딘은 기타, 데니스 윌슨은 드럼, 마이크 러브는 리드 싱어 겸 색소폰을 맡았다.
[첫 데모곡 녹음]
밴드는 킨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3일간의 연습 끝에 서핑 테마의 오리지널 곡 〈Surfin〉과 〈Surfin Safari〉의 데모 버전을 12번의 테이크 끝에 녹음했다.
데이비드 마크스는 당시 학교에 있어 녹음에 참여하지 못했다.
[데뷔 싱글 〈Surfin〉 발매]
캔딕스 레이블을 통해 첫 싱글 〈Surfin〉이 로스앤젤레스의 영향력 있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발표되었고, 곧이어 캘리포니아 일대에서 큰 인기를 얻어 차트 75위에 올랐다.
1961년 마지막 주에 〈Surfin〉은 4만 장을 팔아치웠다.
[캔딕스 레코드와 계약]
머리 윌슨이 녹음된 노래를 캔딕스 레코드의 허브 뉴먼에게 선보인 후, 레코드사와 정식으로 계약했다.
이 과정에서 밴드의 이름이 '비치 보이스'로 변경되었다.
밴드는 자신들의 첫 싱글을 박스에서 꺼냈을 때 이름이 바뀐 것에 충격을 받았다. 모건은 서핑 아이덴티티에 맞춰 10대에게 즉시 와닿을 이름으로 변경했다고 해명했으나, 당시 프로듀서 루스 레간은 그가 이미 '비치 보이스'를 염두에 두었다고 증언했다.
[첫 공식 공연]
비치 보이스는 롱 비치 리치 발렌스 메모리얼 댄스에서 열린 이카 & 티나 터너 콘서트의 오프닝 공연을 맡으며 첫 공식 무대를 가졌다.
이때 밴드는 인근 서퍼들이 선호하는 진한 울 자켓을 입고 나왔으며, 이후 트레이드마크가 된 줄무늬 셔츠와 흰 바지는 나중에 입기 시작했다.
1962
[싱글 〈Surfin' Safari〉 히트]
두 번째 싱글 〈Surfin' Safari〉(B면은 〈409〉)가 발매되어 빌보드 차트 9위에 오르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빌보드지는 이 싱글에 대해 '강한 히트 잠재력이 엿보인다'고 평하며 전국적으로 홍보했다.
[캐피틀 레코드와 7년 계약]
닷 레코드와 리버티 레코드에서 거절당한 후, 비치 보이스는 캐피틀 레코드 경영자 닉 베넷의 주도로 7년짜리 계약을 체결했다.
닉 베넷은 6월 녹음한 데모 세션을 '틴에이지 골드'로 여겼다.
[데뷔 앨범 《Surfin Safari》 발매]
비치 보이스의 첫 음반 《Surfin Safari》가 출시되어 미국 빌보드 차트 32위에 올랐다.
이 앨범은 캘리포니아 소년들의 생활상을 담아냈다.
1963
[《Surfin' U.S.A.》 녹음 시작]
데뷔 앨범 발매 3개월 후, 비치 보이스는 두 번째 앨범 《Surfin' U.S.A.》 녹음을 시작하며 브라이언 윌슨이 본격적으로 작곡가이자 편곡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이 앨범에는 당시 혁신적인 기법이던 브라이언의 보컬 더블트래킹이 적용되었다.
[첫 미국 중서부 투어 및 앨 자딘 재합류]
비치 보이스의 첫 미국 중서부 투어가 시작되었으며, 브라이언의 요청으로 앨 자딘이 다시 밴드에 합류했다.
브라이언은 녹음과 작곡에 전념하기 위해 투어에 불참했다.
[《Surfin' U.S.A.》 발매 및 서프 음악 전국 유행]
《Surfin' U.S.A.》가 출시되어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오르며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 앨범을 통해 비치 보이스는 전국적인 주목을 받으며 서프 음악을 전국적으로 유행시켰다.
['Surf City' 빌보드 1위]
브라이언 윌슨이 잔 앤 딘을 위해 써준 〈Surf City〉가 출시되자마자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이 곡이 비치 보이스의 첫 차트 1위 곡이 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한 아버지 머리 윌슨은 화를 냈다.
[앨범 《Surfer Girl》 발매]
브라이언 윌슨이 녹음과 작곡에 전념한 결과물 중 하나인 앨범 《Surfer Girl》이 발매되었다.
[앨범 《Little Deuce Coupe》 발매]
브라이언 윌슨의 작곡/제작 전념 결과물 중 하나인 앨범 《Little Deuce Coupe》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비치 보이스의 6인조 구성이 참여한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투어 중 데이비드 마크스가 매니저 머리 윌슨과의 불협화음으로 밴드를 탈퇴했고, 브라이언은 어쩔 수 없이 투어에 재합류했다. 작곡가 프랭크 자파는 이 앨범의 화성진행을 '중요한 한 걸음'이라 극찬했다.
[크리스마스 싱글 히트]
크리스마스 주제의 싱글 〈Little Saint Nick〉이 발매되어 미국 빌보드 크리스마스 차트에서 3위까지 오르며 큰 인기를 끌었다.
1964
[브리티시 인베이전 시작]
비치 보이스는 호주 투어를 마치고 돌아와 비틀즈의 《에드 설리번 쇼》 출연으로 시작된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목격했다.
이로 인해 캐피틀 레코드의 지원이 감소하며 위기감을 느꼈다.
[앨범 《Shut Down Vol 2》 발매]
캐피틀 레코드의 요청으로 《Shut Down Volume 2》가 급하게 완성되어 발매되었다.
음반의 싱글컷된 〈Fun, Fun, Fun〉은 큰 히트를 쳤다.
이 앨범은 우울한 곡인 〈The Warmth of the Sun〉과 발전된 제작 스타일의 〈Don't Worry Baby〉가 특징이다.
[마지막 서프 음악 작곡 및 〈I Get Around〉 녹음]
브라이언 윌슨이 마지막 서프 음악을 작곡하고, 이후 큰 히트를 친 싱글 〈I Get Around〉를 녹음했다.
[싱글 〈I Get Around〉 빌보드 1위 달성]
발매된 싱글 〈I Get Around〉는 곧장 차트 1위에 오르며, 비치 보이스가 동시대 영국 팝 그룹들과 경쟁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크리스마스 앨범 녹음]
브라이언 윌슨은 포 프레시맨의 편곡가 딕 레이놀즈와 41인조 스튜디오 오케스트라와 함께 《The Beach Boys' Christmas Album》을 녹음했다.
[앨범 《All Summer Long》 발매]
《All Summer Long》이 발매되어 빌보드 200 차트에서 4위까지 올랐다.
이 앨범은 비치 보이스가 상업성을 위해 구축한 서프 음악과 카 음악의 종지부를 찍는 작품이 되었다.
전작과 달리 실로폰과 피콜로가 도입되어 이국적인 질감이 두드러졌다. 이후의 앨범들은 다른 스타일과 가사를 취하게 된다.
[라이브 앨범 최초 1위]
히트곡과 커버곡을 담은 라이브 앨범 《Beach Boys Concert》가 발매되어 차트 정상에서 4주 동안 1위를 차지했다.
이는 팝 음악 차트에 라이브 앨범이 정상에 오른 최초의 사례다.
[크리스마스 앨범 발매]
오리지널 곡과 고전 크리스마스 곡이 수록된 《The Beach Boys' Christmas Album》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록 역사상 가장 훌륭한 홀리데이 앨범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싱글컷된 〈The Man With All The Toy〉는 빌보드 크리스마스 차트 6위까지 올랐다.
[브라이언 윌슨 공황 발작]
작곡과 프로듀싱 전담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던 브라이언 윌슨은 《신디그!》 공연 후 로스앤젤레스에서 휴스턴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공황 발작을 일으켰다.
1965
[앨범 《The Beach Boys Today!》 공개]
투어를 그만둔 브라이언 윌슨이 스튜디오에 전념하여 대약진을 보여준 앨범 《The Beach Boys Today!》를 공개했다.
이 앨범은 응집력있는 음악적 표현으로 음반 시대의 전조를 보여주었다.
음반은 노래와 발라드로 나뉜 모음곡 형태였으며, 비치 보이스가 음반 아티스트로 발돋움하고 가사의 성숙도를 가져온 계기가 되었다.
1964년 말부터 1965년 4월까지 글렌 캠벨이 브라이언 대신 콘서트에 참여했다.
[앨범 《Summer Days》 발표 및 싱글 히트]
비치 보이스가 《Summer Days (And Summer Nights!!)》 앨범을 발표했다.
앨범에 수록된 〈Help Me, Rhonda〉는 1965년 봄 비틀즈의 〈Ticket to Ride〉를 제치고 두 번째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브루스 존스턴 멤버 합류]
브루스 존스턴이 비치 보이스의 정식 멤버로 합류하여 콘서트와 〈California Girls〉 보컬 세션에 기여하기 시작했다.
브루스 존스턴은 글렌 캠벨을 대체할 사람을 찾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아예 정식 멤버가 되었다.
[싱글 〈California Girls〉 빌보드 1위 달성]
앨범에 수록된 〈California Girls〉가 미국에서 세 번째 차트 1위 곡을 만들어냈고, 그들의 가장 실험적인 싱글로 여겨지는 〈The Little Girl I Once Knew〉는 20위 내에 진입했다.
[앨범 《Beach Boys' Party!》 발표]
캐피틀 레코드의 요청으로 브라이언 윌슨이 1950년대 록과 R&B를 어쿠스틱으로 커버한 스튜디오 라이브 앨범 《Beach Boys' Party!》를 발표했다.
비틀즈 커버곡 세 곡과 밥 딜런의 곡, 그리고 초기 히트곡 재녹음 버전도 포함되었다.
[싱글 〈Barbara Ann〉 예상 밖의 히트]
밴드의 개입 없이 캐피틀 측에서 발표한 싱글 〈Barbara Ann〉이 예상외로 차트 2위까지 오르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곡은 본래 더 리젠트의 곡이었으나, 비치 보이스의 히트곡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1966
[앨범 《Pet Sounds》 제작]
비치 보이스는 파격적인 악기와 층층이 쌓아올린 보컬 하모니를 도입하여 브라이언 윌슨의 제작 및 작곡 기법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 앨범 《Pet Sounds》를 제작했다.
재즈, 고전, 팝, 엑조티카, 아방가르드 등 혁신적인 음악적 파노라마와 자전거 벨, 호루라기, 은식기, 아코디언, 개 짖는 소리 등 독특한 악기 편성을 혼합했다. 브라이언의 솔로 앨범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Good Vibrations' 빌보드 1위 및 혁신적 제작]
브라이언 윌슨이 '포켓 심포니'라 묘사한 싱글 〈Good Vibrations〉가 미영 모두에서 1위를 차지하며 당시 비치 보이스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다.
이 곡은 당시 최고 제작비가 들고 가장 복잡한 팝 프로덕션 중 하나였다.
이 곡의 세션은 몇 달간 연장되었고, 최소 네 군데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어 제작비만 5만~7만 5천 달러에 달했다. 전자 테레민 사용 등 혁신적인 사운드로 대중의 취향을 확장하고 1960년대 반문화의 앤섬으로 차용되었다.
[앨범 《Smile》 녹음 시작]
브라이언 윌슨과 작사가 반 다이크 파크스가 협력하여 《Pet Sounds》를 뛰어넘을 야심으로 다음 앨범 《Smile》을 제작하는 도전을 감행했다.
녹음에는 1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되었다.
이 앨범은 찬팅, 카우보이 노래, 인도와 하와이 음악, 재즈, 음시, 클래식 요소, 카툰 사운드 효과, 구체 음악, 요들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담았다.
[앨범 《Pet Sounds》 발매]
《Pet Sounds》 앨범이 발매되어 미국에서 10위, 영국에서 2위까지 올랐다.
이 앨범은 영국에서 비치 보이스가 1966년 최고 판매량을 기록하며 비틀즈를 제치는 데 기여했다.
미국에서는 캐피틀의 미온한 홍보로 윌슨이 바란 히트작이 되지는 못했으며, 판매량도 이전 앨범에 비해 감소했다.
[베스트 앨범 발표]
캐피틀 레코드는 브라이언 윌슨의 심기를 건드리며 《Pet Sounds》의 부진한 미국 성적을 이유로 《Best of The Beach Boys》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RIAA에 의해 즉시 골드 판매 인증을 받았다.
[《Smile》 '신이 될 틴에이지 심포니' 언급]
브라이언 윌슨은 인터뷰에서 다음 앨범 《Smile》을 '신이 될 틴에이지 심포니'라고 자신감 있게 언급하며, 더욱 야심 찬 프로젝트를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