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후

음악 그룹, 록 밴드, 하드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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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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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그룹, 록 밴드, 하드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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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 결성된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입니다. - 강렬한 음악과 함께 무대 위 악기를 부수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 록 오페라라는 장르를 개척하며 음악적 지평을 넓혔고 수많은 명반과 히트곡을 탄생시켰습니다. - 멤버들의 죽음과 해체 재결합을 반복하며 파란만장한 역사를 이어왔으나 록 음악사에 영원히 기억될 위대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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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

[록의 전설, 탄생!]

로저 돌트리, 피트 타운젠드, 존 엔트위슬, 키스 문 등 네 명의 전설적인 뮤지션들이 모여 '더 후'를 결성했습니다.

이들은 결성 직후부터 록 음악계에 돌풍을 예고하며 전 세계를 사로잡을 위대한 여정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더 후는 로저 돌트리(보컬), 피트 타운젠드(기타), 존 엔트위슬(베이스), 키스 문(드럼)으로 구성된 초기 멤버로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결성은 1960년대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핵심 주자이자, 이후 록 음악의 흐름을 바꿀 혁명적인 시작을 의미했습니다. 특히, 무대 위에서 악기를 부수는 파격적인 쇼맨십은 이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으며, 이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선구자적인 행위로 평가받습니다.

1965

[데뷔 앨범의 폭발]

더 후가 강렬한 데뷔 앨범 《My Generation》을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록 음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으며 밴드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는 강력한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특히 동명의 타이틀곡은 젊은 세대의 대변하는 상징적인 노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67

[미국 정복 시작]

싱글 〈I Can See for Miles〉가 미국 차트 톱 10에 진입하며 더 후의 미국 진출이 본격적으로 가속화되었습니다.

이 곡의 성공은 더 후가 단순히 영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록 밴드로 도약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69

[록 오페라의 탄생]

록 역사상 가장 중요한 명반 중 하나이자, '록 오페라'라는 장르를 개척한 획기적인 앨범 《Tommy》를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단순한 음악을 넘어 스토리텔링과 음악이 결합된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더 후의 음악적 지평을 한 차원 높였습니다.

1970

[최고의 라이브 앨범]

라이브 앨범의 교과서이자 록 역사상 최고의 라이브 앨범 중 하나로 손꼽히는 《Live at Leeds》를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더 후의 폭발적인 라이브 에너지를 생생하게 담아내며, 전 세계 팬들에게 이들의 무대 장악력을 각인시켰습니다.

1971

[명반의 연속]

또 하나의 걸작 앨범 《Who's Next》를 발매하며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이 앨범은 ,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배출하며 더 후의 전성기를 더욱 빛냈습니다.

1973

[또 다른 록 오페라]

두 번째 록 오페라 앨범 《Quadrophenia》를 발표하며 다시 한번 음악적 역량을 과시했습니다.

이 앨범은 섬세한 서사와 웅장한 사운드로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며 더 후의 예술적 깊이를 보여주었습니다.

1978

[비극과 유작]

밴드의 핵심 멤버이자 드러머인 키스 문이 약물 과다 복용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참여 앨범이 된 《Who Are You》가 같은 해에 발매되며 팬들에게 큰 슬픔과 함께 그의 유산을 되새기게 했습니다.

키스 문의 사망은 더 후에게 큰 충격과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의 독특하고 폭발적인 드러밍 스타일은 더 후 사운드의 핵심이었으며, 그의 부재는 밴드의 음악적 방향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후 밴드는 케니 존스를 새로운 드러머로 영입하여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81

[새로운 시작]

키스 문 사망 후 새로운 드러머 케니 존스를 영입하고, 앨범 《Face Dances》를 발표하며 재정비된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이는 더 후의 새로운 챕터를 알리는 작품이었으나, 이전 앨범들과는 다른 평가를 받았습니다.

1982

[잠정 활동 중단]

정규 앨범 《It's Hard》를 마지막으로 발표하며 공식 해체 전의 마지막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 앨범은 더 후의 잠정적인 활동 중단을 예고하는 작품이었습니다.

1983

[전설의 해체]

더 후는 공식적인 해체를 선언하며 오랜 활동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은 여전히 수많은 팬들에게 기억되며 록의 전설로 남아있습니다.

1985

[라이브 에이드 재회]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역사적인 자선 공연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 올라 감동적인 재결합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이는 더 후의 건재함과 영향력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보여준 상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1989

[25주년 대장정]

밴드 결성 25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투어를 진행하며 전 세계 팬들과 다시 만났습니다.

이 투어를 통해 더 후는 변함없는 에너지와 라이브 실력을 과시하며 건재함을 입증했습니다.

1996

[쿼드로피니아 투어]

명반 《Quadrophenia》의 리바이벌 투어를 진행하며 팬들에게 과거의 명곡들을 다시 한번 생생하게 선사했습니다.

이 투어는 1997년까지 이어지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2000

[새로운 앨범 시동]

살아있던 초기 멤버 로저 돌트리, 피트 타운젠드, 존 엔트위슬이 새로운 앨범을 위해 재결합을 시도하며 팬들의 뜨거운 기대를 모았습니다.

2002

[또 다른 이별]

베이시스트 존 엔트위슬이 세상을 떠나면서, 진행 중이던 새 앨범 작업이 지연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밴드는 또 한 명의 핵심 멤버를 잃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2006

[끝나지 않는 선율]

피트 타운젠드와 로저 돌트리가 '더 후'라는 이름으로 앨범 《Endless Wire》를 발표하며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이는 밴드의 끈질긴 음악 여정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2010

[슈퍼볼 무대 장악]

전 세계 스포츠 팬들의 이목이 집중된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압도적인 무대를 선보이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습니다.

수많은 관객 앞에서 록의 전설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2012

[올림픽 피날레 장식]

런던에서 개최된 하계 올림픽 폐막식 무대에 올라 감동적인 공연으로 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또 한 번 자신들의 위상을 증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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