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튼 존

팝 록 음악가, 작곡가, 사회운동가, 문화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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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9- 02: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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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튼 존
팝 록 음악가, 작곡가, 사회운동가, 문화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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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맨’ 엘튼 존은 팝 록 음악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작곡의 대가입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수많은 차트 기록을 세웠습니다. ‘라이온 킹’ OST 등 영화 및 뮤지컬 음악 작곡가로서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함께 성소수자 인권 운동 등 사회 활동에도 헌신하며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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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레지널드 드와이트 탄생]

잉글랜드 런던 근교 피너 마을에서 레지널드 케네스 드와이트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1950

[피아노 재능 발현]

3살에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으며, 어머니는 그가 에밀 발퇴펠의 ‘스케이트 왈츠’를 외워서 연주하는 것을 듣고 놀랐다.

5살 때부터 정식으로 피아노 교습을 받았다.

1958

[왕립음악원 입학]

영국 왕립음악원(RAM) 주니어 코스에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하며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1962

[블루솔로지 결성 및 활동]

친구들과 결성했던 '콜벳스'가 해산한 후, 의붓아버지의 도움으로 노스우드 힐스 선술집의 주말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같은 해 리듬 앤 블루스 밴드 '블루솔로지'를 결성해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65

[블루솔로지 첫 싱글 발매]

소속 밴드 블루솔로지의 첫 싱글 'Come Back Baby'를 발매하며 음악 활동의 폭을 넓혔다.

1967

[버니 토핀과의 운명적 만남]

리버티 레코드의 A&R 매니저가 낸 구인 광고에 응해 작사가 버니 토핀을 만났다.

이것은 '엘튼 존/버니 토핀' 이름의 첫 곡 'Scarecrow'로 이어졌고, 두 사람의 역사적인 작사·작곡 협업이 시작되었다.

1967년 12월, 블루솔로지를 탈퇴하며 '엘튼 딘'과 '롱 존 볼드리'의 이름에서 따온 '엘튼 존'이라는 예명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딕 제임스 레코드 계약]

버니 토핀과 함께 딕 제임스 레코드에 계약하며 수많은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계약 초기에는 다른 가수들에게 줄 대중적인 곡들을 작업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968

[솔로 데뷔 싱글 발매]

솔로 데뷔 싱글 'I've Been Loving You'를 발매하며 새로운 음악적 여정을 시작했다.

이후 'Lady Samantha', 'It's Me That You Need' 등 싱글을 잇달아 선보였다.

1969

[첫 정규 앨범 'Empty Sky' 발매]

첫 정규 음반 'Empty Sky'를 발매했다.

초기에는 상업적으로 실패했으나, 1975년 미국과 캐나다에서 재발매된 후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70

[2집 'Elton John'과 'Your Song']

2집 'Elton John'을 발매하며 상업적 성공과 함께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특히 'Your Song'은 빌보드 핫 100 8위, 영국 싱글 차트 7위를 기록하며 전 세계적인 히트곡이 되었다.

[역사적인 미국 데뷔 공연]

캘리포니아주 웨스트할리우드의 트루버도어 클럽에서 첫 미국 공연을 진행하여 뜨거운 반응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이는 그가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72

[법적 개명 ‘엘튼 존’]

'레지널드 케네스 드와이트'에서 '엘튼 허큘리스 존'으로 법적 개명 절차를 완료하며, 예명을 공식적인 이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Honky Château' 빌보드 1위]

5집 'Honky Château'를 발매하며 미국 빌보드 200 차트에서 5주간 1위를 기록, 그의 첫 미국 1위 음반이 되었다.

수록곡 'Rocket Man'은 영국에서 2위를 기록하며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973

[로켓 레코드 컴퍼니 설립]

자신의 히트곡 'Rocket Man'의 이름을 따서 '로켓 레코드 컴퍼니'를 설립했다.

이 레이블을 통해 닐 세다카, 키키 디 등 다양한 가수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Crocodile Rock' 빌보드 1위]

6집 'Don't Shoot Me I'm Only the Piano Player'를 발매하며 영국에서 첫 1위 음반이 되었다.

싱글 'Crocodile Rock'은 미국에서 1위를 기록한 첫 번째 곡이 되며 그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명반 'Goodbye Yellow Brick Road' 발매]

7집 'Goodbye Yellow Brick Road'를 발매하여 빌보드 200과 영국 음반 차트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다.

이 음반은 전 세계적으로 3천만 장 이상 판매되었고, '롤링 스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반 500장' 목록 91위에 오르는 등 음악적 위업을 달성했다.

1974

[역대급 베스트 앨범 출시]

컴필레이션 음반 'Greatest Hits'를 발매했다.

이 앨범은 미국에서 11주 동안 1위를 기록하고 전 세계적으로 2천 4백만 장 이상 판매되어, 엘튼 존의 음반 중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다.

1975

[빌보드 최초 데뷔 1위 기록]

9집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를 발매하며 미국 빌보드 200 차트에서 역사상 최초로 데뷔 1위에 오른 음반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총 7주간 1위를 기록하며 그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이 음반은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의 무명 시절을 다룬 자전적 음반이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

대중음악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올렸다.

[다저 스타디움 역사적 공연]

다저 스타디움에서 2회 공연을 진행했다.

10만 명 이상의 관중이 참석한 이 공연은 그의 화려한 전성기를 상징하는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되었다.

1976

['Don't Go Breaking My Heart' 세계적 히트]

키키 디와 듀엣으로 부른 'Don't Go Breaking My Heart'를 싱글로 발매하여 빌보드 핫 100, 영국 싱글 차트 등 전 세계적으로 1위를 기록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곡은 엘튼 존의 첫 영국 싱글 차트 1위곡이 되었다.

[롤링 스톤지 인터뷰에서 커밍아웃]

롤링 스톤지 인터뷰에서 양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혔으며, 이후 1992년 같은 잡지 인터뷰에서 동성애자로 재차 커밍아웃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1979

[최초의 소련/이스라엘 공연]

서방국가 록 스타로서는 최초로 이스라엘과 소련 시절 러시아에서 순회공연을 진행하며 역사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1980

[센트럴 파크 대규모 공연]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진행된 공연에 40만 명 이상의 관중이 참석하여 그의 변함없는 인기를 증명했다.

1985

['That's What Friends Are For' 히트]

디온 워릭, 스티비 원더, 글래디스 나이트와 함께 부른 'That's What Friends Are For'가 빌보드 핫 100에서 4주 동안 1위를 기록했다.

이 곡으로 얻은 수익은 에이즈 연구 기금인 amfAR에 전액 기부되었다.

1987

[성대 수술 및 휴식기]

성대결절 증상으로 인해 호주 시드니에서 성대 수술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1987년 모든 공연을 취소하고 휴식기에 들어갔다.

['더 선' 타블로이드 고소]

영국의 타블로이드지 '더 선'이 날조된 기사로 자신을 공격하자 고소했다.

1988년 10월에는 100만 파운드 정도의 피해보상금을 받으며 승소했다.

1989

['Sleeping with the Past' 영국 1위]

23집 'Sleeping with the Past'를 발매하며 영국 음반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이 앨범은 1974년 'Caribou' 이후 15년 만의 영국 1위 정규 음반이자, 백만 장 이상 판매된 그의 가장 많이 팔린 영국 정규 음반이 되었다.

1990

[알코올 및 마약 재활 치료]

십수 년간 이어지던 알코올 및 마약 중독으로 인해 시카고의 병원에 입원하여 6주간 재활 치료를 받았다.

1991

[조지 마이클과의 협연 대성공]

조지 마이클과의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라이브 음원이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핫 100, 영국 싱글 차트 등 다수의 국가에서 1위에 오르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92

[작곡가 명예의 전당 입성]

오랜 작사 파트너 버니 토핀과 함께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여 그의 작곡 능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The One' 앨범 세계적 성공]

24집 'The One'을 발매하여 영국 음반 차트 2위, 빌보드 200 8위, 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 음반 차트 1위 등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1975년 'Captain Fantastic' 이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정규 음반이 되었다.

1994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입성]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단독으로 입성하여 록 음악계에서의 그의 독보적인 영향력을 인정받았다.

['라이온 킹' OST 대성공]

작사가 팀 라이스와 함께 작업한 영화 '라이온 킹' 사운드트랙이 전 세계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은 아카데미상, 그래미 어워드, 골든 글로브상 등 주요 시상식에서 올해의 주제가상을 휩쓸었다.

1995

[폴라음악상 수상]

스웨덴 왕립음악원이 수여하는 권위 있는 상인 폴라음악상을 수상하며 그의 음악적 업적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1996

[대영제국 훈장 3등급(CBE) 수훈]

영국 정부로부터 대영제국 훈장 3등급(CBE)을 수훈하며 국가적 영예를 얻었다.

1997

[다이애나 추모곡 'Candle in the Wind 1997']

절친했던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장례식에서 'Candle in the Wind'를 개사하여 직접 불렀다.

이 곡은 전 세계적으로 3천 3백만 장 이상 판매되어 빙 크로스비의 'White Christmas'에 이은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싱글이 되었다.

1997년 9월 13일 싱글로 발매된 이 곡은 영국 역사상 가장 빠르게 발매된 싱글이자 가장 많이 팔린 싱글, 그리고 미국 빌보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자 다이아몬드를 기록한 첫 번째 싱글이 되는 등 수많은 세계최초, 최대 기록을 세웠다. 수익금 전액은 다이애나 스펜서 기념재단에 기부되었다.

1998

[기사작위(Knight Bachelor) 수여]

음악과 자선활동에 대한 공헌이 인정되어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받으며 'Sir' 칭호를 얻었다.

1999

[그래미 레전드상 수상]

그래미 레전드상(Grammy Legend Award)을 수상하며 그래미 어워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2000

[뮤지컬 '아이다' 토니상 수상]

팀 라이스와 함께 작업한 뮤지컬 '아이다'가 토니상을 수상하며 뮤지컬 음악 작곡가로서도 인정받았다.

2002

[왕립음악원 명예 음악박사학위]

모교 왕립음악원(RAM)에서 명예 음악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는 왕립음악원 역사상 최초로 명예 박사학위가 수여된 사례 중 하나이다.

2004

[케네디 센터 평생공로상]

미국 존 F.

케네디 센터 주관 공연예술 평생공로상(Kennedy Center Honors)을 수상하며 미국에서도 그의 음악적 위업을 기렸다.

[첫 한국 단독 내한 공연]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첫 내한공연을 성황리에 개최하여 한국 팬들과 만났다.

2006

[디즈니 레전즈 선정]

영화 및 뮤지컬 음악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월트 디즈니 컴퍼니로부터 디즈니 레전즈에 선정되었다.

2009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토니상 석권]

그가 음악을 맡은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토니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뮤지컬 상을 비롯한 10개 부문의 상을 석권하며 작품성을 입증했다.

2010

[리언 러셀 협업 앨범 'The Union']

신인 시절 우상이었던 리언 러셀과 합작한 31집 'The Union'을 발매했다.

빌보드 200 3위, 록 음반 차트 2위를 기록했으며, '롤링 스톤'은 이 앨범을 '2010년 최고의 음반 30' 목록에서 3위로 꼽았다.

[첫째 아들 재커리 탄생]

배우자 데이비드 퍼니시와 대리모를 통해 첫째 아들 재커리 잭슨 리번 퍼시니존을 얻었다.

2012

['라이온 킹' 브로드웨이 최고 흥행작 등극]

그의 영화음악을 기초로 한 뮤지컬 '라이온 킹'이 총 8억 5천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려 '오페라의 유령'을 꺾고 역대 브로드웨이 최고 흥행작으로 올라서는 대기록을 세웠다.

[런던 올림픽 주제곡 선정]

퍼나우가 그의 1970년대 곡들을 리믹스한 'Good Morning to the Night'이 2012년 런던 올림픽 주제곡으로 선정되었다.

이 곡이 수록된 음반은 영국 음반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두 번째 한국 내한 공연]

'Rocket Man' 싱글 발매 40주년 기념 투어의 일환으로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두 번째 내한 공연을 가졌다.

2013

[둘째 아들 일라이저 탄생]

배우자 데이비드 퍼니시와 대리모를 통해 둘째 아들 일라이저 조지프 대니얼 퍼니시존을 얻었다.

[야마하 원격 디스클라비어 공연]

야마하 125주년 기념공연에서 'Rocket Man' 등을 연주하며 피아노의 건반과 페달 움직임이 원격 디스클라비어 피아노를 통해 전 세계 각지에 실시간으로 재현되는 신기술을 선보였다.

2015

[세 번째 한국 내한 공연]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 UNDERSTAGE에서 세 번째 내한공연을 진행했다.

2020

[컴패니언 오브 아너 서훈]

예술, 과학, 의학, 정부 등 분야에서 긴 시간 지속적으로 주요한 공헌을 한 인물에게 수여되는 '컴패니언 오브 아너' 서훈자로 지명되었다.

대중음악계에서는 베라 린, 폴 매카트니에 이은 세 번째 서훈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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