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축구 선수, 스포츠인, 공격수, 주장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4- 23:53:52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축구의 신이라 불리는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 등 세계적인 명문 클럽에서 수많은 우승을 경험했다. 역대 최고 이적료를 세우고 발롱도르를 5회 수상하는 등 끊임없이 기록을 경신하며 축구 역사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 축구 황제 탄생
- 스포르팅 입단
- 스포르팅 1군 데뷔
- 맨유 이적, 역대 최고액 경신
- 월드컵 논란, 이적 요청
- 국대 주장 완장
- 잉글랜드 개인상 4관왕
- 첫 챔스 우승과 득점왕
- 첫 발롱도르 수상
- 레알 마드리드 이적
- 아들 크리스티아누 주니어 출생
- 라리가 40골 대기록
- 통산 300호 클럽골
- 두 번째 FIFA 발롱도르
- 라 데시마와 UCL 기록
- 페이스북 1억 팔로워
- 세 번째 FIFA 발롱도르
- 라리가 5골 대폭발
- 레알 마드리드 역대 최다 득점
- 통산 500호골 달성
- 포브스 최고 수입 스포츠인
- 유로 2016 우승
- 쌍둥이 에바, 마테오 출생
- 엘 클라시코 퇴장 및 징계
- 딸 알라나 마르티나 출생
- 월드컵 스페인전 해트트릭
- 유벤투스 이적
- 팀 K리그 '노쇼' 논란
- 맨유 전격 복귀
- 맨유와의 계약 해지
- 알나스르 이적
- A매치 역대 최다 득점
1985
[축구 황제 탄생]
포르투갈 마데이라 제도 푼샬에서 태어났다.
그의 중간 이름 '호날두'는 부친이 가장 좋아했던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형과 누나들과 방을 같이 썼다고 회고했다. 유년 시절 아마추어 구단 안도리냐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14세에 학업을 중단하고 축구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1년 후 빠른맥으로 진단되어 축구를 중단할 위기에 처했지만, 성공적인 수술 후 며칠 만에 훈련에 복귀했다.
1997
리스본 인근 알코셰트로 이주해 구단의 다른 유소년팀 선수들과 합류했으며, 구단의 U-16, U-17, U-18, 리저브, 그리고 1군 경기를 단일 시즌에 뛴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2002
[스포르팅 1군 데뷔]
스포르팅 리스본 1군 데뷔전인 모레이렌스 FC와의 프리메이라리가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며 팀의 3대0 승리를 이끌었다.
2003
[맨유 이적, 역대 최고액 경신]
스포르팅 리스본과의 경기에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눈길을 사로잡아, 당시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청소년 최고 이적료인 £12.24M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등번호 7번을 받으며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잉글랜드에서의 성장에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회고했다.
2004
[맨유, FA컵 우승]
밀월 FC와의 FA컵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넣어 팀의 3대0 승리를 도왔고, 맨유에서의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06
[월드컵 논란, 이적 요청]
2006 FIFA 월드컵 8강전에서 팀 동료 웨인 루니의 퇴장 사건에 연루되며 이적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논란의 중심에 섰다.
비록 루니 퇴장 조치는 주심의 판단이었다는 FIFA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 언론은 호날두가 루니의 퇴장을 유도했다고 비판했고, 이로 인해 프리미어리그에서 야유를 받기도 했다.
2007
[국대 주장 완장]
22번째 생일을 하루 앞두고 브라질과의 친선전에서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주장 완장을 처음으로 달았다.
[잉글랜드 개인상 4관왕]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PFA 올해의 선수, PFA 팬 선정 올해의 선수, PFA 올해의 신인 선수상, 그리고 축구 기자 협회 올해의 선수상을 모두 석권하며 최초로 4관왕을 달성했다.
2008
[첫 챔스 우승과 득점왕]
맨유 소속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기록, 승부차기 끝에 첼시를 꺾고 우승하며 득점왕에도 올랐다.
이 시즌 총 42골을 기록하며 잉글랜드 무대 최다 득점을 경신하고 프리미어리그 골든 슈, 유러피언 골든 슈를 획득했다.
2009
8만 명 이상의 팬이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운집하여 그의 입단식을 지켜봤다. 이는 25년 전 디에고 마라도나의 나폴리 환영식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2010
아이의 모친 신원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2011
[라리가 40골 대기록]
라리가 단일 시즌 최초로 40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올랐고, 두 개의 다른 리그에서 유러피언 골든 슈를 수상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두 번째 유러피언 골든 슈를 획득하며 라리가 최고 득점자에게 수여하는 피치치 트로피도 거머쥐었다.
2013
2014
[두 번째 FIFA 발롱도르]
2013년 59경기 69골로 개인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세운 공로로 두 번째 FIFA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이 업적으로 대중은 그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라 데시마와 UCL 기록]
레알 마드리드의 숙원이었던 10번째 UEFA 챔피언스리그(라 데시마) 우승을 이끌며, 단일 시즌 역대 최다인 17골을 기록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결승전에서 페널티킥으로 쐐기골을 기록하며 두 개의 다른 구단 소속으로 두 번의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득점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페이스북 1억 팔로워]
페이스북 팔로워 1억 명을 돌파하며 스포츠인 최초이자 샤키라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이 기록을 달성했다.
2015
[세 번째 FIFA 발롱도르]
요한 크라위프, 미셸 플라티니, 마르코 판 바스턴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 번째 FIFA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라리가 5골 대폭발]
그라나다와의 라리가 경기에서 개인 커리어 최초로 한 경기 5골을 폭발시키며 팀의 9대1 대승을 이끌었다.
[레알 마드리드 역대 최다 득점]
에스파뇰전 5골을 추가하며 라울의 기록을 넘어 레알 마드리드의 라리가 역대 최다 득점자로 등극했다.
[통산 500호골 달성]
말뫼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2골을 추가하여 클럽 및 국가대표팀 경기를 통틀어 개인 통산 500골의 금자탑을 쌓았다.
2016
[포브스 최고 수입 스포츠인]
포브스지 선정 세계 최고 수입 스포츠인 명단에서 2015-16 시즌 급여와 협찬 금액을 합쳐 $88M을 벌어들여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유로 2016 우승]
주장으로서 UEFA 유로 2016 결승전에서 프랑스를 꺾고 포르투갈의 첫 주요 국제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17
[엘 클라시코 퇴장 및 징계]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엘 클라시코 1차전에서 교체 출전해 결승골을 넣었으나, 과도한 골 세레머니와 시뮬레이션 액션으로 경고 누적 퇴장을 당하고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 사건은 축구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으며, 그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18
[월드컵 스페인전 해트트릭]
2018 FIFA 월드컵 조별리그 스페인과의 1차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월드컵 역사상 스페인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이 경기에서 A매치 통산 84골을 기록, 푸스카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역대 A매치 득점 2위에 올랐다.
이적 당시 레알 마드리드 회장 플로렌티노 페레스와의 연봉 인상 문제 및 지네딘 지단 감독의 사퇴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2019
[팀 K리그 '노쇼' 논란]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팀 K리그와의 친선경기에서 계약상 명시된 의무 출전 조항(45분 이상)을 어기고 출전하지 않아 '노쇼' 논란을 일으켰다.
무성의한 태도와 사인회 불참 등으로 한국 축구팬과 일반인들의 큰 비난을 받았으며, 애칭이 '우리형'에서 '느그형', '날강두'로 바뀌는 등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었다.
2021
프리미어리그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복귀전에서 복귀 골을 터뜨리며 신고식을 치렀다.
2022
2023
[아랍 클럽 챔피언스컵 우승]
알나스르 소속으로 아랍 클럽 챔피언스컵에서 우승하며 사우디 무대에서 첫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A매치 역대 최다 득점]
리히텐슈타인과의 UEFA 유로 2024 예선전에서 A매치 통산 128번째 득점을 기록하며 전 세계 축구 선수 중 A매치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