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조던
농구 선수, 사업가, 스포츠 행정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07- 11:53:42
•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1980~90년대 NBA 세계화를 이끈 주역입니다. • 시카고 불스에서 두 번의 3연패를 달성하며 농구 황제의 지위를 굳건히 했습니다. • 탁월한 공격과 수비 강한 승부욕과 정신력을 겸비한 만능 플레이어였습니다. • 은퇴 후 야구 선수 워싱턴 위저즈 경영자 겸 선수 그리고 성공적인 사업가이자 스포츠 행정가로 변신하며 다채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 그의 존재는 에어 조던 브랜드를 통해 나이키를 세계 최고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시켰으며 농구라는 스포츠 자체의 위상을 끌어올렸습니다.
1963
마이클 제프리 조던은 1963년 2월 17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그는 형 래리 조던의 절반만큼만 농구를 잘하고 싶어 형의 등번호 45번의 절반인 23번을 자신의 등번호로 선택했다고 한다.
1981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입학 및 대학 농구 활약]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 입학하여 1학년 때 NCAA 결승전에서 '더 샷'을 성공시키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이후 전미 최고 대학 선수로 선정되는 등 대학 농구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마이클 조던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채플힐 문화지리학과에 입학했다. 1학년 때 NCAA 결승전에서 조지타운 호야스와 맞붙어, 조던의 첫 번째 '더 샷'으로 승부를 가르며 팀을 우승시켰다. 이후 2, 3학년 때 연속으로 전미 최고 대학 선수로 선발되었다.
1984
[NBA 데뷔 및 올림픽 금메달]
1라운드 3번째로 시카고 불스에 지명되어 프로 데뷔 첫 해 신인왕을 차지하며 NBA 코트를 강타했다. 같은 해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984년 1라운드 3번째로 시카고 불스에 지명된 마이클 조던은 데뷔 첫 해 프로 데뷔 경기에서 저조한 야투율을 보였으나, 이후 완벽하게 적응하여 시즌 평균 28.7점이라는 엄청난 득점력을 선보이며 NBA 신인왕을 차지했다. 또한,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985
[부상 극복과 전설적인 플레이오프 활약]
발목 부상으로 슬럼프를 겪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보스턴 셀틱스를 상대로 63득점을 올리는 등 신들린 활약을 펼쳐 래리 버드로부터 '신이 조던의 모습으로 변장하였다'는 극찬을 받았다.
1985년 발목 부상으로 22경기 출전에 그치는 슬럼프에 빠졌지만,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당대 최강인 보스턴 셀틱스와 맞붙은 시카고 불스는 객관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조던의 대활약으로 선전했다. 이 시리즈에서 보스턴의 전설 래리 버드는 자신의 팀을 상대로 63득점을 올리는 등 신들린 듯한 활약을 펼친 조던에 대해 '신이 조던의 모습으로 변장하였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1987
[득점왕 연속 차지 및 시카고 불스 전력 강화]
1987년부터 득점왕을 차지하며 80년대 내내 막을 수 없는 득점포를 선보였다. 스카티 피펜, 호레이스 그랜트 합류와 트라이앵글 오펜스 완성으로 불스는 무적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1987년부터 득점왕을 차지하기 시작한 조던은 80년대 내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득점포를 선보였으나, 유능한 동료 선수의 부재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이후 시카고 불스는 찰스 오클리를 내보내고 스카티 피펜, 호레이스 그랜트를 받아들였으며, 전략 코치 텍스 윈터의 트라이앵글 오펜스가 완성되며 90년대 무적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91
[시카고 불스 첫 NBA 챔피언십 우승]
NBA 결승전에서 매직 존슨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꺾고 시카고 불스 역사상 최초로 NBA 왕좌에 오르며, 조던은 첫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
1991년 NBA 결승전에서 80년대를 주름잡던 매직 존슨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꺾고 팀 역사상 최초로 왕좌에 오르며, 조던은 NBA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
1992
[NBA 2연패 및 드림팀으로 올림픽 금메달]
클라이드 드렉슬러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꺾고 NBA 2연패를 달성했으며, 드림팀의 일원으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1992년 클라이드 드렉슬러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꺾고 NBA 2연패를 달성했다. 또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드림팀'의 일원으로서 세계 농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1993
[NBA 최초의 3연패 달성]
찰스 바클리의 피닉스 선스를 꺾고 NBA 최초의 3연패 우승을 차지하며 불스의 무적 시대를 열었다.
1993년 찰스 바클리, 케빈 존슨의 피닉스 선스를 꺾고 NBA 3연패 우승을 차지하며, 불스는 매직 존슨의 레이커스 이후 최초로 3연패를 달성한 팀이 되었다.
[아버지 사망과 충격적인 농구 은퇴]
아버지 제임스 조던의 비극적인 사망 이후, 마이클 조던은 충격적인 농구 은퇴를 선언하고 야구 선수로의 전향을 발표했다.
3연패의 기쁨도 잠시, 조던의 아버지(제임스 조던)가 10대 강도에게 살해당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조던은 곧 농구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1994
[야구 선수로의 전향]
농구 은퇴 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계약하고 마이너리그 야구 선수로 활동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농구 은퇴를 선언한 조던은 1994년 4월 1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계약한 후 마이너리그에서 뛰게 되었다.
1995
[농구 코트로의 복귀]
야구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다시 농구 코트로 돌아와 시카고 불스의 위력을 재건하는 데 기여하며 복귀를 알렸다.
1995년 봄, 마이클 조던은 야구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다시 농구 코트로 돌아오게 되지만 당시 동부지구에서 불스의 위력은 많이 약해져 있었다.
1996
[NBA 역사상 최고 승률 기록과 우승]
95-96 시즌 72승 10패라는 NBA 역대 최고 정규시즌 승률을 기록하며 숀 켐프의 시애틀 수퍼소닉스를 꺾고 우승했다. 조던은 시즌 MVP, 올스타전 MVP, 파이널 MVP를 모두 석권하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시카고 불스는 95-96 시즌 87.8%의 엄청난 승률로 리그 역대 최고 기록인 72승을 달성했다. (82경기 체제에서 70승 이상을 기록한 유일한 팀이었으나, 15-16시즌 골든스테이트가 73승 9패로 기록을 깼다.) 당해 팀은 리그의 모든 상을 휩쓸었으며, 조던은 시즌 MVP, 올스타전 MVP, 파이널 MVP 등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고 평균 30.4득점으로 득점왕에 올랐다. 이 시즌에 숀 켐프와 게리 페이턴의 시애틀 수퍼소닉스를 꺾고 우승했다.
1997
[유타 재즈를 꺾고 NBA 챔피언십 우승]
칼 말론, 존 스탁턴 콤비의 유타 재즈를 꺾고 다시 한번 NBA 챔피언십을 차지하며 시카고 불스의 강력함을 과시했다.
1997년 칼 말론, 존 스탁턴 콤비의 유타 재즈를 꺾고 두 번째 3연패 중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1998
[두 번째 NBA 3연패 달성 및 2차 은퇴]
유타 재즈를 상대로 다시 우승하며 두 번째 3연패를 달성한 후, 마이클 조던은 농구 코트에서 두 번째 은퇴를 선언했다.
1998년 다시 칼 말론, 존 스탁턴 콤비의 유타 재즈를 꺾고 두 번째 3연패를 달성했다. 이 위대한 업적 이후 조던은 다시 은퇴를 선언했다.
2000
[워싱턴 위저즈로 깜짝 복귀]
2000년 자신이 구단 경영에 참여하던 워싱턴 위저즈의 선수로 복귀를 선언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두 번째 3연패 후 조던은 다시 은퇴를 선언하였지만, 2000년 또 다시 복귀를 선언하며 자신이 구단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던 워싱턴 위저즈에 선수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에는 매스컴과 구단주의 압박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03
[농구 코트에서의 최종 은퇴]
2003년 워싱턴 위저즈에서 최종 은퇴를 발표했지만, 40세의 나이에도 평균 20득점 이상을 기록하는 등 '농구 황제'의 위엄을 보여주었다.
2000년대 조던은 득점력을 줄이고 어린 선수들을 독려하는 역할을 했지만 팀은 생각만큼 정비되지 못하고, 조던은 2003년 마지막 은퇴를 발표하게 된다. 복귀한 2시즌 동안 비록 전성기에 미치지는 못하였으나 40살의 나이에도 젊고 빠른 선수들을 상대로 평균 20득점을 퍼붓고, 최고령 50+득점(38세 315일, 51득점), 40세의 나이로 43득점을 기록하는 등 믿기 힘든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역시 '농구의 황제'임을 입증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