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피격 사건

군사 사건, 해상 사건, 남북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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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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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사건, 해상 사건, 남북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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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6일 대한민국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사건입니다. 합동조사단은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결론냈으며 이로 인해 46명의 장병이 희생되어 해군 창설 이래 가장 큰 인명 피해로 기록됩니다. 남북 관계에 깊은 긴장을 불러온 이 사건은 국내외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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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승조원 부상 보고]

오후 9시 12분경, 천안함 승조원이 부상 사실을 해안 통신병에게 알렸습니다.

이 기록은 러시아 보고서에 언급되었으나, 국방부는 이를 사적인 통화로 해명하며 초기 상황에 대한 여러 해석을 낳았습니다.

[천안함 침수 보고]

오후 9시 15분, 해양경찰이 천안함으로부터 "배에 물이 샌다"는 급박한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후 천안함은 평소 경비 기동 속도보다 3.5배 빠른 18노트로 이동하는 등 긴박한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군 최초 상황보고]

오후 9시 15분,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가 해군작전사령부에 천안함 침몰 상황을 최초로 보고했습니다.

초기 보고 내용은 '침수로 인한 좌초 추정'이었으며, 당시에는 어뢰 공격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백령도 폭음 감지]

오후 9시 16분, 백령도에 위치한 방공33진지에서 큰 폭음이 감지되었습니다.

이는 천안함 침몰 직전 외부 충격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초기 단서였습니다.

[천안함 침몰 발생]

오후 9시 22분, 대한민국 해군 2함대 소속 1,200톤급 초계함 '천안함'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두 동강 나 침몰했습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으로 40명의 장병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되는 큰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해군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사건 발생 직후 승조원 104명 중 58명은 구조되었으나, 나머지 46명은 실종되었습니다. 이후 실종자 수색 및 선체 인양 과정에서 40명이 사망자로 확인되었고, 6명은 끝내 실종자로 남았습니다.

[해상 구조 시작]

오후 9시 56분, 해군 고속정 3척이 침몰 현장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인명 구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추가 병력이 투입되며 긴급 구조 작업에 속도를 냈습니다.

[생존자 58명 구조 완료]

오후 11시 13분, 천안함 탑승 승조원 104명 중 58명이 침몰 함정에서 이함하여 무사히 구조되었습니다.

이는 사고 발생 후 약 2시간 만에 이루어진 초기 구조 활동의 최종 결과였습니다.

[해경 '갑호' 비상령]

오후 11시 30분, 해양경찰청은 천안함 침몰 사고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본청과 인천지방경찰청에 최고 수준의 비상령인 '갑호비상령'을 발령하여 전사적인 대응 태세를 갖췄습니다.

[정부 비상대응 발령]

정운찬 국무총리는 천안함 사고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을 위해 행정안전부를 통해 전 행정기관에 당직 근무를 강화하고 모든 공직자가 유선 대기하도록 하는 비상대비 체계를 발령했습니다.

[함미 공기 주입 시작]

침몰한 천안함의 함미 인양을 위한 첫 단계로, 함미에 공기를 주입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선체를 안정화하고 인양을 준비하는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한주호 준위 순직]

천안함 실종자 수색 작업 중이던 해군 UDT 대원 한주호 준위가 의식을 잃고 순직했습니다.

그의 숭고한 희생은 국민들에게 깊은 슬픔과 감동을 주며, 그의 헌신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금양98호 침몰]

천안함 실종자 수색을 돕던 민간 저인망어선 금양98호가 서해 대청도 인근 해상에서 조난 신호를 보낸 뒤 침몰했습니다.

이 사고로 탑승 선원 9명 중 2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되는 또 다른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금양98호는 캄보디아 선적 화물선 '타이요호'와의 충돌로 침몰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실종된 선원들은 후에 의사자로 인정되었습니다.

[첫 실종자 시신 발견]

천안함 침몰 8일 만에, 함내 식당에서 남기훈 원사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실종자 수색 중 최초로 확인된 희생자였으며, 가족과 국민의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김태석 상사 시신 발견]

천안함 함미 절단면에서 김태석 상사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수색이 진행될수록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졌습니다.

[민군합동조사단 출범]

천안함 침몰 원인 규명을 위한 민간인과 군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군 합동조사단'이 공식적으로 출범했습니다.

이들은 투명하고 과학적인 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천안함 함미 인양 시작]

침몰 17일 만에 천안함의 함미가 마침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사고 원인 규명과 실종자 수색에 결정적인 단서가 될 선체 인양 작업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습니다.

[함미 인양 및 시신 수습]

천안함 함미가 침몰 20일 만에 성공적으로 인양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방일민 하사, 서대호 하사, 이상준 하사 등 36구의 희생자 시신이 수습되었습니다.

이는 사고 수습의 중요한 진전이었습니다.

[박보람 하사 시신 발견]

오후 9시 20분, 천안함 연돌(굴뚝) 안에서 박보람 하사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실종자 수색은 마지막 한 명까지 이어졌습니다.

[천안함 함수 인양]

침몰 29일 만에 천안함의 함수가 인양되었습니다.

함수 인양은 실종자 수색을 마무리하고 사고 원인 규명에 필요한 최종적인 선체 수습을 의미했습니다.

오전 10시 54분, 함수 자이로실에서 박성균 하사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46용사 영결식]

천안함 침몰로 희생된 46명의 해군 장병을 기리는 영결식이 엄수되었습니다.

이들은 1계급 특진과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되었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영원히 기억될 '46용사'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영결식에는 약 2,800여 명이 참석하여 희생 장병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렸습니다.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도 묵념으로 애도에 동참했습니다.

[北 어뢰 공격 공식 발표]

민군 합동조사단은 천안함 침몰의 최종 원인을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공식 발표했습니다.

조사단은 선체 변형, 수중 폭발 흔적, 그리고 침몰 해역에서 수거된 북한제 어뢰 파편 '1번' 표기 등을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조사단은 북한의 소형 잠수함정에서 발사된 250kg급 감응어뢰 'CHT-02D'에 의해 천안함이 피격되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발표는 국내외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대북 담화]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사건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며, 북한의 무력 도발 시 엄중하게 대처하고 남북 교역을 전면 단절하겠다는 강력한 대북 조치를 선언했습니다.

[러시아 조사팀 방한]

러시아 전문가팀이 천안함 침몰 원인 조사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여 선박 잔해와 어뢰 파편 등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이들은 조사 과정에서 어뢰의 온전한 상태와 '1번' 표기 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UN 안보리 의장 성명 채택]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천안함 침몰에 대한 의장 성명을 채택했습니다.

성명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공격을 규탄했으나, 북한의 반론을 함께 병기하여 공격 주체를 명확히 특정하지 않았습니다.

[최종 보고서 발간]

국방부는 천안함 피격 사건의 모든 조사 결과를 담은 최종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공식적인 사건 기록으로 남으며, 합동조사단의 북한 어뢰 공격 결론을 재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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