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컴퓨터 네트워크, 통신 프로토콜, 정보 교환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11:30
인터넷은 전 세계를 잇는 거대 컴퓨터 네트워크로 TCP/IP 기반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시스템입니다. 군사용 연구에서 출발해 민간에 확산되며 정보의 바다로 불렸습니다. 월드 와이드 웹 초고속 인터넷 보급으로 우리 삶과 경제에 혁신을 가져왔으며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인터넷 강국으로 성장했습니다.
1960
[인터넷의 기원]
인터넷은 1960~70년대 미국 국방부의 고등 연구국(ARPA)에서 군사적 목적의 네트워크 연구로 시작되었습니다.
핵전쟁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통신을 위해 패킷 교환 방식이 개발되며 현재 인터넷의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1969
[ARPANET 첫 연결]
미국 UCLA와 SRI 연구소 간에 두 개의 노드가 최초로 상호 연결되었습니다.
이로써 현대 인터넷의 시초인 ARPANET(아파넷)이 탄생했으며, 이는 핵전쟁 상황에서도 통신이 가능한 견고한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한 연구의 결실이었습니다.
1982
[대한민국 인터넷 시작]
전길남 박사가 주도하여 서울대학교와 한국전자기술연구소(현 ETRI) 사이에 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 연결에 성공한 나라가 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1983
[ARPANET 민간 전환]
미국 국방성은 군사용 네트워크 '밀넷(MILNET)'을 분리하고, '아파넷(ARPANET)'을 민간용으로 전환했습니다.
이로써 인터넷은 연구기관을 넘어 다양한 목적으로 확장될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TCP/IP 공식 도입]
ARPANET이 기존의 NCP 패킷 송출을 중단하고 TCP/IP 기반의 네트워크로 완전히 전환되었습니다.
이는 현재와 같은 인터넷 네트워크의 중요한 기점이 되었으며, 인터넷이 고유명사로 자리 잡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합니다.
1986
[NSFnet 구축]
미국과학재단(NSF)이 5곳의 슈퍼컴퓨터 센터를 연결하여 'NSFnet'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후에 아파넷을 흡수 통합하며 대학, 연구소, 정부기관, 기업 등 세계 모든 곳을 연결하는 국제 통신망으로 발전하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989
[월드 와이드 웹 등장]
그래픽 환경이 대폭 개선되고 '월드 와이드 웹(WWW)'이 등장하면서 네트워크 기술은 한 단계 진일보했습니다.
이는 기존의 교육·공공 목적 네트워크에 상업적 서비스와 다양한 이용자층을 끌어들이며 인터넷의 양적, 질적 성장을 폭발적으로 이끌었습니다.
1993
[모자이크 브라우저 출시]
인터넷의 상업적 이용이 허용되고, 편리한 웹 브라우저 '모자이크(Mosaic)'가 출시되면서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동시에 대한민국에서도 인터넷 접속 서비스가 실시되며 국내 인터넷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습니다.
1994
[야후 검색 서비스 등장]
대표적인 검색 서비스인 '야후'가 등장하며 인터넷 사용자들은 방대한 정보를 보다 쉽게 탐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정보 접근성을 크게 향상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8
[한국 초고속 인터넷 개시]
대한민국에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과감한 투자로 불과 4년 만에 가입자 1천만 명을 돌파하는 등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으며, 대한민국이 인터넷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1999
[한국 포털사이트 붐 시작]
초고속 인터넷 보급과 함께 야후, 다음, 네이버 등 다양한 포털사이트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며 '포털사이트 붐'이 일어났습니다.
기존 PC통신 업체들도 포털 시장에 진출하며 2000년대 초반까지 활발한 경쟁이 이어졌습니다.
2002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 5억 돌파]
전 세계 인터넷 이용자 수가 5억 4천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인구 100명당 인터넷 이용자가 51명으로, 세계 5위 수준을 기록하며 높은 인터넷 보급률과 활용도를 자랑했습니다.
2003
[한국 포털 시장 재편]
대한민국 포털사이트 점유율 1위였던 다음이 네이버에 추월당하며 포털 시장의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1,500만 명 가입자를 보유했던 프리챌이 유료화를 선언하며 이용자들이 싸이월드로 대거 이동 후 파산하는 사건이 발생, 시장 재편을 가속화했습니다.
2005
[싸이월드 전성기]
2000년대 중반, 네이트와 싸이월드의 급부상으로 대한민국 인터넷 시장은 큰 변화를 맞았습니다.
디지털 카메라 보급과 함께 사진, 동영상 게시 문화가 확산되며 싸이월드의 미니홈피 서비스가 4천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2009
[한국 인터넷 속도 세계 1위]
2009년 기준, 대한민국의 인터넷 다운로드 전송 속도가 20.97 Mb/초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한국이 글로벌 인터넷 인프라 강국임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2010
[스마트폰 시대 개막]
2010년대에 들어서며 스마트폰의 보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는 인터넷이 모바일 문화와 결합하는 새로운 시장 형태로 진화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기존 PC 기반 서비스들이 모바일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며 시장에서 도태되기 시작했습니다.
2011
[한국 모바일 SNS 변화]
스마트폰 대중화가 시작된 2011년부터 기존의 싸이월드와 네이트 등 한국 모바일 서비스들이 외국계 모바일 SNS인 트위터에게 점유율을 뺏기며 시장에서 도태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급변하는 모바일 환경에 대한 대비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2013
[한국 인터넷 평균 속도 1위]
2013년 1분기 기준, 대한민국의 인터넷 평균 연결 속도가 14.2 Mb/초로 세계 1위를 기록했습니다.
세계 평균 연결 속도 3.1Mbps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로, 한국이 지속적으로 인터넷 강국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2022
[한국 모바일 포털 중심화]
2022년 현재, 대한민국의 PC 포털사이트는 모바일 시장에 밀려 대중성을 잃고 있습니다.
모바일 시장에 최적화된 구글과 네이버 등만이 대중적으로 사용되며, 한국 인터넷 서비스의 중심축이 완전히 모바일로 이동했음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