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국제 관계, 정치, 국민투표, 사회 운동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11:27
영국(Britain)과 탈퇴(exit)의 합성어인 브렉시트는 영국이 유럽 연합을 떠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1975년 유럽 경제 공동체(EEC) 잔류를 결정한 첫 국민투표와 달리 2016년 실시된 두 번째 국민투표에서는 51.9%의 찬성으로 탈퇴가 결정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 유례없는 결정은 2020년 1월 31일 영국의 유럽 연합 공식 탈퇴로 이어지며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 및 정치 질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는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 블록 중 하나를 떠난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1975
[영국 EEC 잔류 국민투표]
영국은 유럽 경제 공동체(EEC) 잔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당시 주요 정당과 언론은 모두 잔류를 지지했지만, 노동당 내부는 분열 양상을 보였습니다.
내각 연대 책임까지 중단하고 장관들이 자유롭게 찬반 캠페인을 벌일 정도였습니다.
투표 결과, 셰틀랜드 제도와 아우터헤브리디스를 제외한 영국 전역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EEC 잔류가 결정되었습니다.
잔류 찬성 67.2%, 반대 32.8%로 영국은 EEC 회원국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1983
[노동당 EEC 탈퇴 공약]
영국 총선에서 야당인 노동당은 유럽 경제 공동체(EEC) 탈퇴를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에 크게 패배하면서, 노동당은 당론을 EEC 탈퇴에서 잔류로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이는 이후 영국의 유럽 통합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0
[영국 독립당 성장]
유럽회의주의적 정당인 영국 독립당(UKIP)이 결성되었습니다.
UKIP는 유럽 의회 선거에서 꾸준히 성장하여, 2014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는 27.5%의 득표율로 영국 내 제1당으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는 1910년 이후 노동당이나 보수당보다 더 많은 득표율을 기록한 첫 전국 선거라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기록입니다.
UKIP의 성장은 브렉시트 국민투표 요구의 주요 동력이 되었습니다.
1993
[EEC, EU로 전환]
마스트리흐트 조약의 결과로 유럽 경제 공동체(EEC)는 유럽 연합(EU)으로 공식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순수 경제 공동체로 시작된 EEC가 정치 기구로 발전하면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으로, 유럽 통합의 중요한 진전을 의미합니다.
이 변화는 이후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 논의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1994
[국민투표당 창당]
제임스 골드스미스에 의해 '국민투표당'이 창당되었습니다.
이 당은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를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1997년 총선에 참가하여 2.6%의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의석을 얻지는 못하고 재정난으로 해산되었습니다.
이는 유럽회의주의가 본격적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중요한 흐름 중 하나였습니다.
2013
[캐머런 총리 국민투표 공약]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총리는 2015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집권할 경우, 유럽연합과의 재교섭 후 2017년 말까지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전격 발표했습니다.
이는 국민투표 요구를 거부하던 기존 입장에서 선회한 것으로, 브렉시트 현실화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2015
[UKIP 총선 첫 의석 확보]
영국 총선에서 영국 독립당(UKIP)은 12.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지역구에서 처음으로 의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UKIP의 정치적 영향력이 실제 의회 진출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이 사건은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요구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2016
[브렉시트 국민투표일 확정]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영국 하원에서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2016년 6월 23일에 열릴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그는 리스본 조약 제50조에 따른 법적 검토를 시작했다고 밝히며, 국민투표에서 탈퇴가 결정되면 즉시 2년간의 탈퇴 협상이 시작될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이는 브렉시트가 단순한 논의를 넘어 실질적인 절차에 돌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영국 EU 탈퇴 국민투표 확정]
영국은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개표 결과 찬성 51.9%, 반대 48.1%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확정되었습니다.
1975년 유럽 경제 공동체(EEC) 잔류 결정 이후 41년 만에 영국이 유럽 통합의 길에서 벗어나는 역사적인 결정으로, 전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스코틀랜드와 런던 등은 잔류를 지지했지만,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탈퇴가 우세하여 전체 결과를 뒤집었습니다.
[브렉시트 전담 부서 설립]
테리사 메이 당시 영국 총리에 의해 '영국 유럽 연합 탈퇴부'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이 부서는 다가올 유럽 연합 탈퇴 협상을 전담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히 버르호프스타트(EU 측)와 테리사 메이 내각 구성원들이 협상을 이끌게 됩니다.
이는 영국 정부가 브렉시트 절차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2020
[EU-영국 탈퇴 협정 서명]
유럽 연합과 영국 양측은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에 관한 협정에 최종 서명했습니다.
이 협정은 수년간의 복잡한 협상 끝에 이루어진 것으로, 브렉시트의 최종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이는 영국이 EU를 떠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집약된 결과물이었습니다.
[영국, 유럽 연합 공식 탈퇴]
23시(영국 현지 시각)를 기해 영국은 유럽 연합에서 정식으로 탈퇴했습니다.
이로써 1973년 유럽 경제 공동체(EEC) 가입 이후 47년간 이어져 온 영국의 유럽 통합 역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브렉시트는 세계 경제와 정치 질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며, 영국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