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

혁명, 사회주의, 공산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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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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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사회주의, 공산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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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2월과 10월 러시아에서 일어난 역사적 혁명. 니콜라이 2세의 전제정치와 잇따른 전쟁 패배로 인한 민중 불만이 폭발. 2월 혁명으로 300년 제정 시대 붕괴 임시정부 수립. 10월 혁명으로 볼셰비키가 집권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 탄생. 내전 승리 후 국제 질서와 이후 공산주의 운동에 지대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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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

[러일 전쟁 발발]

1904년 2월, 일본 제국이 러시아가 점유하던 청나라 뤼순항을 기습 공격하며 러일 전쟁이 시작됐다.

서방 국가들의 예상과 달리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러시아 국민들의 차르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며 이후 혁명의 배경이 되었다.

전쟁은 치열한 공방전 끝에 예상을 깨고 일본제국의 승리로 끝났다. 이 전쟁은 애초에 러시아 제국 여론은 물론이고 일본제국의 여론, 미국, 대영제국, 프랑스 등 서방 국가들의 여론마저 러시아 제국의 승리를 점쳤기에 이 전쟁은 러시아 제국에게 큰 타격이었다.

1905

[피의 일요일 학살]

1905년 1월 22일, 사제 가폰 신부 주도로 수많은 노동자와 가족들이 평화적인 개혁 요구 시위를 벌였으나, 차르의 군대가 무력 진압했다.

비무장 시위대에 발포하고 기마대가 추격하여 학살, 하루에만 3,000명 이상이 사상당했다.

이 사건으로 차르에 대한 환상이 깨지며 혁명의 불씨가 되었다.

당시 민중들은 차르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아버지로 믿었다. 그들은 평화와 굶주림을 달랠 빵을 달라고 하였으며, 노동조합의 설립과 근로조건의 향상들을 아버지 차르에게 요구하였으나, 차르는 그 요구에 무력 진압으로 답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차르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고 러시아 제국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였다.

[전함 포툠킨 반란]

피의 일요일 사건 이후 노동자 파업과 농민 반란이 끊이지 않던 중, 1905년 5월 흑해의 러시아 전함 '타우리스 공작 포툠킨'의 선원들이 열악한 근무 환경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루마니아 정부에 항복하며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자본가의 착취와 노동자의 인권이 존중되지 않는 열악한 근무환경에 맞선 온갖 파업 투쟁이 끊이지 않았다.

1906

[전국적 파업 및 농민 반란]

피의 일요일 사건과 러일전쟁 패배 이후 차르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여 1906년 한 해 동안 100만 명의 노동자가 파업하고 2,600건의 농민 반란이 전국적으로 발생했다.

이는 러시아 제국 정부가 '두마' 의회를 설치하는 등 개혁을 추진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나, 민중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러시아 제국정부는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두마'라 불리는 의회를 설치하는 등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농민들과 노동자들의 생활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1914

[1차 세계대전 참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니콜라이 2세는 국내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많은 병력 파병을 선전했다.

1,500만 명에 달하는 국민이 애국심에 지원했으나, 지휘관들의 무능과 전쟁으로 인한 국가 예산 낭비로 민중의 생활고가 극심해지며 혁명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지휘관들의 무능함으로 탄넨베르크 전투에서 자멸적인 대패를 초래했을뿐만 아니라, 수많은 젊은이들이 군에 지원하여 러시아의 노동력은 급격히 저하되었으며, 민중의 복지에 써야 할 국가예산이 전쟁에 사용되면서 민중들의 생활은 오늘 먹을 빵과 우유조차 없을 정도로 아주 어려워졌다.

1915

[니콜라이 2세 국정파탄]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니콜라이 2세 황제가 직접 전투 지휘에 나서면서 국정을 황후에게 맡겼다.

황후의 비호 아래 라스푸틴이 국정에 개입하며 국정이 파탄 지경에 이르렀고, 이는 러시아 제국의 무능을 보여주는 증거로 민중의 불만을 더욱 키웠다.

그럼에도 니콜라이 2세 황제는 1915년부터 직접 전투지휘에 나서며 국정은 황후에 맡기고, 황후를 등에 업은 라스푸틴을 중심으로 국정도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1917

[핀란드 독립]

러시아 혁명의 혼란 속에서, 1917년 러시아 제국에 속해 있던 핀란드가 독립을 선언하며 새로운 국가로 나아갔다.

[푸틸로프 공장 파업]

페트로그라드 시위가 확산되던 중, 1917년 2월 22일 대규모 푸틸로프 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켰다.

이 파업은 니콜라이 2세가 군대 진압을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이 노동자 편에 서는 계기가 되었다.

니콜라이 2세는 수도방위사령관 하발로프에게 군대를 보내 진압하도록 하였으나 2월 27일 군대까지 노동자들의 편에 섰다.

[군대 시위대 합류]

1917년 2월 27일, 니콜라이 2세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시위 진압에 나선 군대가 오히려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합류했다.

이는 제정 체제에 대한 저항이 혁명으로 발전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러시아 민중들의 시위는 전쟁에서 돌아오거나 민중시위 진압을 거부한 일부 사병들이 참여하면서 ‘페트로그라드 노동자, 농민 소비에트’로 단결하는 혁명로 발전하였다.

[케렌스키 임시정부 수립]

니콜라이 2세의 폐위와 제정 붕괴 이후인 1917년 3월, 부르주아와 사회주의자들의 연합 정권인 케렌스키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이 정부는 민중의 전쟁 종식 열망을 무시하고 경제 파탄을 겪으며 점차 지지 기반을 잃어갔다.

이렇게 됨으로써, 부르주아와 사회주의자들의 연합 정권인 케렌스키 임시정부가 탄생하였다.

[니콜라이 2세 폐위 및 제정 붕괴]

1917년 3월 2일, 군대의 시위대 합류로 통제력을 상실한 러시아 제국 황제 니콜라이 2세가 폐위되었다.

이로써 300년 이상 지속되었던 러시아 제정 체제가 붕괴되었고, 사회주의자들은 이를 '부르주아 혁명'으로 판단했다.

니콜라이 2세가 동생 미하일에게 정권을 넘겼으나 이 혁명으로 폐위되었고, 제정체제가 붕괴되었다. 사회주의자들은 이것을 '부르주아 혁명'으로 판단하고 정권을 장악하지 않았다.

[페트로그라드 시위 발발]

제1차 세계대전 장기화로 생활고가 심화되자, 1917년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을 맞아 페트로그라드 여성들이 빵과 우유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8만 명의 노동자들이 합류하며 시위는 노동 쟁의로 확산되었고, 이후 2월 혁명으로 발전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당시 페트로그라드의 민중들은 밀가루 반입량이 절반으로 줄어듦에 따라 빵을 살 수 없었고, 어린이들에게 먹일 우유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빵과 우유를 배급받고자 시민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줄을 서야 했다.

[레닌의 4월 테제 발표]

2월 혁명 후 임시정부와 소비에트가 대립하던 1917년 4월, 망명지 스위스에서 귀국한 블라디미르 레닌이 '자본주의 타도 없이 종전은 불가능하다'는 등 10개 항의 '4월 테제'를 발표했다.

이는 볼셰비키의 핵심 방침이 되어 '임시 정부 타도! 모든 권력은 소비에트로!'라는 구호로 이어졌다.

레닌은 자신을 환영하는 민중들에게 병사들이 가져온 장갑차에 올라가 연설하였다. 4월 테제는 곧 볼셰비키의 방침이 되어 '임시 정부 타도! 모든 권력은 소비에트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임시 정부에 대항했다.

[트로츠키 무장봉기 명령]

1917년 11월 6일 새벽, 임시정부 수상 케렌스키가 볼셰비키 신문 인쇄소를 봉쇄하자, 레온 트로츠키는 즉시 전 부대에 무장봉기를 명령했다.

노동자를 주축으로 하는 적위대가 전화국, 정부 청사 등 주요 거점을 무혈 점거하며 10월 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레닌의 강력한 요청으로 볼셰비키 당 내에서는 봉기의 방침이 결정되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의 의장 레온 트로츠키의 지도하에 공농혁명위원회가 설치되어 구체적인 계획이 진행됐다.

[10월 혁명과 소비에트 수립]

1917년 11월 7일(구력 10월 25일), 볼셰비키 군사혁명위원회가 트로츠키의 지휘 아래 러시아 수도 페트로그라드를 급습하며 케렌스키 임시정부 타도에 성공했다.

새벽 동궁 함락에 이어 레닌이 소비에트 정권 수립을 선언하며 세계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혁명인 10월 혁명이 완료되었다.

블라디미르 레닌의 망명 귀국 6개월여 만의 일이었다.

이 혁명은 볼셰비키 혁명이라고 부르는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혁명이다. 오전 6시, 해가 떠오르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레닌이 기초한 대회 선언이 낭독됐다.

1918

[발트 3국, 폴란드, 몰도바 독립]

러시아 혁명으로 인한 제국의 약화와 내전의 혼란을 틈타, 1918년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그리고 몰도바(트란스니스트리아 제외)가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며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22

[소비에트 연방 탄생]

10월 혁명 이후 볼셰비키의 적군과 황제 지지 백군 간의 러시아 내전이 발발했다.

백군이 제국주의 국가들의 후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인민들의 지지를 받은 적군의 끈질긴 저항으로 1922년 백군이 패망했다.

마침내 1922년 12월 30일,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연방 국가인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공식 탄생했다.

내전 초기의 혁명 국가는 완성되지 못했으며, 혁명 러시아의 국가 체제나 군대 체계는 매우 엉성한 상태였다. 반면에 백군은 제정 시대의 장교들의 통솔력과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후원받은 강력한 무기로 인해 상대적으로 내전 초기에 적군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다. 내전과 무관하게 적군에 반대했던 무정부주의적 노동자, 농민 집단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데, 이는 내전 이후 공산당에 반대할 대항 세력의 몰락을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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