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 혁명

혁명, 독립 운동, 국가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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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5- 00:4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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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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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 혁명은 18세기 중엽 13개 식민지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미국을 세운 역사적 대사건입니다. * 조지 워싱턴을 중심으로 1775년부터 1783년까지 치열한 독립 전쟁을 치렀죠. * 대표 없는 세금은 무효라는 외침에서 시작해 1776년 독립 선언으로 세계에 새로운 나라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 프랑스 혁명과 함께 민주주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두 거대 혁명 중 하나입니다. * 세계 최초의 성문헌법을 만들며 민주주의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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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1

[항해법 논란 촉발]

매사추세츠 변호사 제임스 오티스가 영국의 중상주의적 항해법이 식민지 주민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존 아담스는 이 주장이 훗날 '미국 독립의 시작'이 되었다고 평가할 만큼 중요한 반발이었습니다.

1762

[패트릭 헨리 비판]

버지니아주의 2페니 법을 영국 왕 조지 3세가 거부하자, 패트릭 헨리가 “왕이 자신의 국민에게 이로운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다만 폭군일 뿐이며 왕으로서 권리를 누릴 자격이 없다”고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1763

[영국, 식민지 통제 강화]

7년 전쟁 승리로 막대한 전비 부담을 안게 된 영국은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제국 유지 비용을 충당하려 했습니다.

또한, 조지 3세는 애팔래치아산맥 서부 개척을 금지하는 포고문을 발표하며 식민지인들의 강한 반발을 샀습니다.

이는 미국 독립 운동의 중요한 발단이 되었습니다.

1765

[인지세법 부과]

영국 의회가 식민지 대표의 참여 없이 일방적으로 '인지세법' 등 새로운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식민지 대표자들은 "대표자의 참여 없는 세금은 무효"라며 강력히 저항하며 갈등이 고조되었습니다.

1773

[보스턴 차 사건 발생]

영국의 '차법'에 반발한 식민지 주민들이 보스턴 항구에 정박된 영국 동인도회사의 차 상자를 바다에 버린 사건입니다.

이 '보스턴 차 사건'은 영국의 군대 파견을 유발하며 미국 독립 전쟁의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1774

[제1차 대륙회의 개최]

영국에 대항하기 위한 독자적인 의회인 제1차 대륙회의가 결성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인들은 민병대를 조직하여 훈련시키고 군수물자를 비축하기 시작했습니다.

1775

[렉싱턴 콩코드 전투]

영국 제국과 13개 식민지 간의 첫 전투인 '렉싱턴 콩코드 전투'가 벌어지며, 미국 독립 전쟁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제2차 대륙회의 개최]

사실상 연방의회 역할을 한 제2차 대륙회의가 시작되었고, 벤자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 등이 독립선언서 기초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또한 조지 워싱턴을 대륙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며 본격적인 독립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1776

[미국 독립 선언 발표]

13개 식민지 대표자들이 필라델피아 인디펜던스 홀에서 '미국 독립 선언'에 서명하고 새로운 국가 '아메리카 합중국'의 독립을 선포했습니다.

이날은 미국의 독립기념일로 기념됩니다.

미국 독립 선언문에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조물주로부터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다.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다. 어떠한 형태의 정부이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은 인민의 권리이다'라는 역사적인 문구가 담겨있습니다.

1777

[새러토가 전투 승리]

미국 대륙군이 '새러토가 전투'에서 영국군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는 국제적으로 미국의 역량을 알리며, 프랑스의 공식적인 군사적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778

[프랑스와 동맹 체결]

미국은 프랑스와 군사 동맹을 맺어 강력한 지원군을 얻었습니다.

이후 에스파냐, 네덜란드와도 동맹을 맺으며 독립 전쟁의 판도를 유리하게 만들었습니다.

1781

[최초 성문헌법 제정]

미국은 세계 최초로 성문헌법인 '연합규약'을 제정했습니다.

이는 13개 주정부가 연합한 형태였으나, 중앙집권제를 독재와 인권 침해의 원인으로 여겼던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연합규약은 13개 주가 완전한 주권을 가지며, 외교, 국방, 화폐 등 공통사항을 연합회의에서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징세, 통상규제 권한이 없고 상비군도 없어 오늘날의 UN과 유사한 형태였습니다.

[요크타운 전투 승리]

미국 대륙군이 '요크타운 전투'에서 영국군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로 영국은 사실상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전쟁은 종식 수순을 밟게 되었습니다.

1783

[파리 조약 체결]

미국과 영국 제국은 '파리 조약'을 체결하며 평화 협정을 맺었습니다.

영국은 마침내 미국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미국은 국제적으로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1787

[헌법 제정회의 개최]

재정 곤란과 사회 불안으로 강력한 중앙정부 수립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필라델피아에서 '헌법 제정회의'가 열렸습니다.

알렉산더 해밀턴 중심의 연방주의자들이 점차 회의를 주도했습니다.

1788

[연방헌법 발효]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 원리에 입각한 새로운 '연방헌법'이 발효되었습니다.

각 주에 광범위한 자치권을 부여하면서도 훨씬 강력한 연방정부를 두는 내용으로, 오늘날 미국 정부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연방헌법에 따라 입법권은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된 연방의회에, 행정권은 간접선거로 선출되는 4년 임기의 대통령에게 부여되었습니다. 사법부는 주와 연방의 이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최고 법정으로 대법원이 설치되었습니다.

1789

[초대 대통령 선출]

미국 독립 전쟁의 총사령관이었던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아메리카 합중국(USA)'이 공식적으로 탄생했습니다.

이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1791

[권리장전 제정]

미국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수정헌법 10개조', 즉 '권리장전'이 제정되었습니다.

이는 미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지는 중요한 과정이자, 시민의 자유를 수호하는 약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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