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기업인, 정치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3- 10:05:51
도널드 트럼프의 삶은 부동산, 미디어, 정치를 관통하며 브랜드와 권력을 융합시킨 끊임없는 투쟁의 연대기다.
그는 거래적이고 전투적인 스타일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고, 자신의 서사를 재창조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생애는 환경을 지배하려는 영구적인 캠페인 그 자체였으며, 이는 그를 미국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면서도 변혁적인 인물 중 하나로 만들었다.
1946
[뉴욕 퀸스에서 출생]
도널드 존 트럼프는 1946년 6월 14일 뉴욕 퀸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는 성공한 부동산 개발업자였고, 어머니 메리 앤 매클라우드는 스코틀랜드 이민자였다.
그는 5남매 중 넷째로, 자메이카 에스테이츠의 23개 방이 있는 저택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트럼프의 가문은 이민과 야심 찬 기업가 정신으로 특징지어진다. 그의 친할아버지인 독일 이민자 프리드리히 트럼프는 클론다이크 골드러시 당시 식당과 유흥업소 운영으로 부를 축적했으며, 병역 기피로 독일에서 추방당한 이력이 있다. 그의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는 뉴욕 외곽 지역에 27,000채 이상의 중산층 아파트를 건설하며 부동산 제국을 이룩했고, 아들에게 "동전 한 푼도 소중히 하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배경은 트럼프가 전통적인 의미의 자수성가형 인물이 아니라, 수 세대에 걸쳐 부와 야망을 축적한 부동산 가문의 후계자임을 보여준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레드 트럼프가 가문의 독일 혈통을 숨기고 스웨덴계라고 주장했던 사실은, 브랜드 관리와 대중 인식의 중요성에 대한 가문의 조기 교육을 시사한다. 트럼프는 8세에 이미 백만장자였으며(인플레이션 조정 기준), 아버지로부터 "너는 왕"이며 "킬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으며 자랐다.
1959
[뉴욕 군사학교 입학]
반항적이고 다루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트럼프는 13세에 뉴욕 군사학교에 보내졌다.
아버지가 그의 맨해튼 비밀 여행과 칼 수집 사실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는 엄격하고 때로는 폭력적인 환경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웠고, 위생과 정돈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생도로서 계급이 상승했다.
뉴욕 군사학교는 트럼프의 인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공간이었다. 이곳은 단순한 훈육 기관을 넘어, 교관과 선배 생도에 의한 물리적 폭력이 만연한 위계적이고 가혹한 시스템이었다. 트럼프 자신도 이 시기를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묘사했다. 이러한 경험은 아버지가 주입한 '킬러' 본능을 강화하고, 공격적인 환경을 헤쳐나가고 지배하는 법을 체득하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동료들과 사회적으로 거리를 두면서도 위생 및 정돈과 같은 외적인 부분에서 탁월함을 추구했는데, 이는 협력적 관계보다는 외양과 개인의 생존을 우선시하는 성향을 일찍부터 발전시켰음을 시사한다. 그는 학업에서도 우등생 명단에 올랐고, 하사관(supply sergeant)까지 진급했다.
1968
[베트남전 징병 면제]
트럼프는 포덤 대학교에서 2년을 보낸 후, 아버지의 권유로 명성과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위해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로 편입했다.
1968년 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고 졸업했으나, 학업 우등생 명단에는 오르지 못했으며 과외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 시기 그는 아버지의 건물 세입자였던 족부의의 진단을 통해 발뒤꿈치 뼈돌기(골극)를 사유로 베트남 전쟁 징집을 면제받았다.
와튼 스쿨로의 편입은 학문적 열정보다는 학위가 주는 브랜드 가치를 위한 전략적 결정이었다. 트럼프 스스로 훗날 "그 학위가 많은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많은 비즈니스 상대들이 그것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며 '자랑거리'로서의 가치를 인정했다. 이러한 결정은 그의 인생 전략의 핵심, 즉 자신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권위 있는 상징을 획득하고 활용하는 패턴을 보여준다.
그의 대학 시절은 눈에 띄지 않았다. 동급생 대부분은 그를 기억하지 못했으며, 그는 사교 활동이나 클럽 활동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가족의 인맥을 통해 확보한 징병 면제는 가문의 부와 네트워크를 이용해 개인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고 의무를 회피하는 그의 초기 행동 양식을 보여주는 사례다.
1971
[트럼프 그룹 회장 취임]
1971년, 트럼프는 아버지의 부동산 회사를 물려받아 1973년경 '트럼프 그룹(The Trump Organization)'으로 개명했다.
그는 퀸스를 떠나 맨해튼의 스튜디오 아파트로 이사했으며, '르 클럽'과 같은 상류층 사교 클럽에서 로이 콘을 비롯한 유력 인사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이는 아버지의 중산층 주택 사업에서 벗어나 맨해튼의 화려한 고급 프로젝트로 사업 방향을 전환하는 신호탄이었다.
'E. Trump & Son'에서 '트럼프 그룹'으로 변경한 것은 브랜드의 초점을 가족에서 개인으로 옮기는 중요한 행위였다. 맨해튼으로의 이주와 엘리트 사교계 진출은 아버지가 회피했던 대규모, 고위험 거래에 필요한 사회적, 정치적 자본을 구축하기 위한 계산된 전략이었다. 악명 높은 공격적인 변호사였던 로이 콘의 지도는 뉴욕의 정치 및 법률 시스템을 탐색하고 조종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6
[그랜드 하얏트 호텔 재개발 착수]
트럼프는 하얏트 그룹과 손잡고 파산한 코모도어 호텔을 인수하여 재개발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는 파산 직전의 뉴욕시로부터 상업용 부동산 최초로 40년간의 파격적인 세금 감면 혜택을 확보했다.
1980년, 거울 유리 외관으로 상징되는 호텔이 그랜드 하얏트로 재개장하면서 트럼프는 맨해튼의 주요 부동산 거물로 떠올랐다.
이 프로젝트는 트럼프의 출세작이었다. 그는 도시의 쇠퇴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정치적 인맥을 활용해 막대한 공공 보조금을 확보했으며, 화려한 건축 디자인으로 언론의 주목을 끄는 능력을 입증했다. 이 거래의 성공은 단순한 재정적 성과를 넘어, 트럼프를 "지도에 올린" 홍보의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시 감사관들은 호텔이 "비정상적인" 회계 변경을 통해 시에 지불해야 할 임대료 수백만 달러를 체납했다고 결론 내렸다. 하얏트와의 파트너십 역시 소송으로 얼룩졌고, 결국 1996년 하얏트가 트럼프의 지분을 1억 4,200만 달러에 매입하며 막을 내렸다. 이는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나타날 파트너 및 정부 기관과의 공격적인 법적 다툼 패턴의 시작을 알렸다.
1977
[첫 결혼 (이바나)]
체코인 이바나 트럼프와 결혼하여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이방카 트럼프, 에릭 트럼프 세 자녀를 두었습니다.
1978
[맨해튼 부동산 투자]
아버지로부터 100만 달러를 대출받아 맨해튼 중심가에 호화로운 고층 빌딩들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코모도르 호텔을 인수하여 그랜드 하얏트 호텔로 재건축하는 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1983
[트럼프 타워 공식 개장]
맨해튼 5번가에 위치한 58층짜리 복합 용도 초고층 빌딩인 트럼프 타워가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이 건물은 독특한 톱니 모양의 외관과 5층 높이의 아트리움, 60피트 높이의 폭포 등을 특징으로 하는 궁극적인 럭셔리의 상징으로 설계되었다.
트럼프 타워는 트럼프 그룹의 본사이자 트럼프의 주 거주지가 되었다.
트럼프 타워는 트럼프 브랜드의 물리적 구현체였다. 화려하고, 대담하며, 세계적인 명품 거리의 중심에 위치한 이 건물은 단순한 빌딩을 넘어선 하나의 선언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옛 본윗 텔러 백화점 부지의 토지와 공중권(air rights)을 확보하기 위한 복잡한 협상 과정을 거쳤다. 건물의 건설과 마케팅은 최고급 개발자로서 그의 명성을 공고히 했으며, 이후 리얼리티 쇼 '어프렌티스'와 그의 대통령 출마 선언의 상징적인 배경이 되면서 강력한 자기 홍보 도구로 활용되었다. 이는 건물의 물리적 가치가 그것을 둘러싼 미디어 서사와 개인 브랜드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그의 사업 철학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1987
[공화당 입당]
공식적으로 공화당에 입당하며 정치 활동의 폭을 넓혔습니다.
이후 무소속, 개혁당, 민주당을 거쳐 다시 공화당으로 복귀했습니다.
[자서전 '거래의 기술' 출간]
저널리스트 토니 슈워츠와 공동 집필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회고록과 비즈니스 조언을 결합한 형태로,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13주간 자리를 지키는 등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책을 통해 트럼프는 뛰어난 협상가라는 대중적 이미지를 확고히 하며 전국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다.
'거래의 기술'은 트럼프 신화를 집대성한 가장 중요한 매체였다. 이 책은 그를 뉴욕의 부동산 개발업자에서 성공의 국가적 아이콘으로 변모시켰다. 책에서 제시된 '크게 생각하기', '언론의 주목 활용하기', '진실된 과장(truthful hyperbole)'과 같은 전략들은 단순한 사업 비법이 아니라, 그가 훗날 미디어와 정치계에서 성공적으로 적용할 개인 철학이자 행동 지침의 공개 선언이었다. 이 책은 그의 성공 신화를 만들어내는 피드백 루프의 핵심이었다. 실제 거래들이 브랜드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그렇게 구축된 브랜드는 다시 다음 거래를 더 가치 있고 자금 조달이 용이하게 만들었다. 이 책의 성공은 그가 물리적 자산만큼이나 무형 자산인 '이미지'를 중요시했음을 보여준다.
1988
[트럼프 재단 설립 & WWE 후원]
'거래의 기술' 책 수익금 기부를 위해 도널드 J. 트럼프 재단을 설립했고, WWE 레슬매니아 IV와 V를 공식 후원하며 엔터테인먼트 산업에도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1989
[투르 드 트럼프 개최]
유럽 주요 사이클 투어와 같은 위상을 목표로 '투르 드 트럼프' 사이클 대회를 개최하며 자신의 이름을 홍보했습니다.
1991
[이바나와 이혼]
첫 번째 배우자 이바나 트럼프와 이혼했습니다.
같은 해 레슬매니아 VII에 출연하며 WWE와의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트럼프 타지마할 카지노 파산 보호 신청]
트럼프는 애틀랜틱 시티로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트럼프 플라자(1984), 트럼프 캐슬(1985), 트럼프 타지마할(1990)을 차례로 개장했다.
특히 고금리 정크본드로 자금을 조달한 타지마할은 과도한 부채 부담으로 인해 1991년 파산 보호(Chapter 11)를 신청했다.
이후 그의 카지노 지주회사는 2004년, 2009년, 2014년에도 연이어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애틀랜틱 시티에서의 연쇄적인 기업 파산은 '거래의 기술'에서 그려진 무결점 협상가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그의 경력에서 가장 큰 재정적 실패를 상징한다.
그러나 그는 기업 파산 절차를 활용하여 개인 자산은 보호하면서 기업 부채를 구조조정하는 재정적 생존술을 터득했다. 이 경험은 그에게 중요한 전략적 전환을 강요했다. 막대한 부채를 동반하는 자산 소유 및 운영 모델에서 벗어나, 자본 집약도가 낮은 '트럼프' 이름 자체를 라이선싱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실패는 역설적으로 그가 미디어 아이콘으로 재탄생하는 발판이 되었다.
1992
[나홀로 집에 2 출연]
영화 '나 홀로 집에 2'에 플라자 호텔 소유주 자격으로 카메오 출연하여 주인공 케빈에게 길을 알려주는 친절한 아저씨 역할을 연기했습니다.
1993
1996
[미인대회 조직 인수]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인 대회인 미스 유니버스 조직회를 인수하여 미스 유니버스, 미스 USA, 미스 틴 USA 대회를 주최하기 시작했습니다.
1997
[한국 '트럼프월드' 분양]
한국 대우건설과 손잡고 한국에서도 아파트 '트럼프월드'를 지어 분양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1999
[말라와 이혼 & 모델 회사 설립]
두 번째 배우자 말라 메이플스와 이혼했습니다.
같은 해 뉴욕 맨해튼 소호에 트럼프 모델 매니지먼트사를 설립하여 패션 모델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또한 잠시 무소속으로 활동한 뒤 개혁당에 입당했습니다.
2001
2002
[미인대회 중계권 이전]
방송사 CBS에서 NBC로 미스 유니버스, 미스 USA, 미스 틴 USA 중계권을 옮겼습니다.
이는 주요 스케줄 배정에서 미인대회를 제외한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습니다.
2004
['어프렌티스' 진행 시작]
NBC 리얼리티 TV쇼 '어프렌티스'를 진행하며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었고, "넌 해고야(You're fired)"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냈습니다.
[NBC '어프렌티스' 첫 방영]
트럼프가 진행하는 리얼리티 TV 쇼 '어프렌티스'가 NBC에서 첫 방송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이 트럼프 그룹의 임원직을 놓고 경쟁하는 형식으로, 첫 시즌 피날레는 4,150만 명의 시청자를 끌어모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의 유행어 "넌 해고야!(You're fired!)"는 사회적 현상이 되었고, 14시즌 동안 방영되며 그에게 '미국의 보스'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어프렌티스'는 성공적인 TV 쇼를 넘어, 트럼프의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브랜드 구축 수단이었다. 10년 넘게 매주 수백만 미국 가정에 그가 결단력 있고, 강하지만 공정하며, 최고로 성공한 비즈니스 거물이라는 잘 다듬어진 이미지를 송출했다. 이러한 반복적이고 일방적인 노출은 시청자들과 그 사이에 '유사 사회적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를 형성하게 했다. 이는 훗날 그의 정치 경력에 필수적인 대중적 인지도와 신뢰의 기반이 되었다. 사업 실패로 위기를 겪은 그가 자산이 아닌 '이미지'를 판매하는 전략으로 선회했음을 보여주는 정점이었으며, 이 쇼가 없었다면 그의 정치적 부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05
[멜라니아와 결혼 & 트럼프 대학]
슬로베니아 출신 모델 멜라니아 크나우스와 결혼하여 아들 배런 트럼프를 두었습니다.
이 해 영리 목적의 교육 기관인 트럼프 대학교를 설립했습니다.
2007
[WWE 레슬매니아 출전]
WWE 회장 빈스 맥맨과의 '헤어 vs 헤어' 매치(지는 쪽이 삭발)에 고용선수 바비 레쉴리를 내세워 승리했고, 빈스 맥맨을 직접 삭발시키는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2009
[WWE RAW 구입 및 매각]
WWE RAW를 구입하여 RAW의 오너가 되었으나, 6월 22일 다시 RAW를 절반 가격에 빈스 맥맨에게 되팔고 해고되었습니다.
이 해 공화당에 다시 입당했습니다.
2011
['버서(Birther)' 음모론 주도]
트럼프는 여러 차례 당적을 바꾸며 꾸준히 정치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왔다.
특히 2011년을 전후하여 그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버서(Birther)' 음모론의 가장 대표적인 주창자로 부상했다.
이 논란을 통해 그는 정치적 인지도를 크게 높이며 보수층 내에서 상당한 지지 기반을 확보했다.
트럼프의 정치적 소속은 공화당(1987), 개혁당(1999), 민주당(2001), 다시 공화당(2009)으로 여러 번 바뀌었는데, 이는 확고한 이념보다는 실용적, 기회주의적 접근을 시사한다. 1999년 개혁당 후보로 잠시 대선 출마를 모색하기도 했다. '버서' 논란은 그의 정치 경력에 전환점이 되었다. 이 논란은 그가 포퓰리즘적 분노와 인종적 불안감이라는 대중의 정서를 활용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그는 주류 정치 담론에서 벗어나 있던 강경 우파의 주목을 받으며, 사실상 현대 정치 무대에 자신의 경력을 '출범'시키는 데 성공했다.
[출처]
2012
2013
2015
[2016년 대선 출마 공식 선언]
트럼프는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대통령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황금색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 행한 연설에서 불법 이민 문제(멕시코가 비용을 대는 국경 장벽 건설), 불공정한 무역 협정, 기성 정치권에 대한 비판을 캠페인의 핵심 주제로 제시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이 공식화되었다.
이 출마 선언은 현대 미국 정치의 관행을 모두 깨뜨린 순간이었다. 특히 멕시코 이민자들에 대해 "그들은 문제를 가져온다. 마약을 가져오고, 범죄를 가져온다. 그들은 강간범이다"라고 한 그의 발언은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기성 정치권과 언론의 거센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 발언은 즉각적으로 미디어의 모든 관심을 독점했으며, 특정 유권자층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논란을 통해 무료 미디어 노출을 극대화하고, 포퓰리즘적 분노에 직접 호소하는 그의 캠페인 전략의 시작을 알렸다.
[출처]
[유니비전 소송 제기]
미인 대회 중계를 거부한 방송사 유니비전에 대해 계약 위반으로 5억 달러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미스 유니버스 매각]
멕시코 이민자 발언 파문 여파로 미스 유니버스 운영권을 WME-IMG에 매각하며 미인대회 사업에서 손을 뗐습니다.
2016
[낙태 여성 처벌 발언]
MSNBC 타운홀 미팅에서 낙태 여성에 대한 처벌을 주장하여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보수층 표심을 겨냥한 입장 번복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공화당 대선 후보 사실상 확정]
트럼프는 16명의 다른 후보들을 제치고 공화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저질 체력' 젭 부시, '꼬마 마르코' 루비오 등 경쟁자들에게 별명을 붙이며 조롱하는 공격적인 스타일로 토론과 뉴스 사이클을 지배했다.
5월 3일 인디애나 경선에서 압승을 거둔 후, 경쟁자였던 테드 크루즈와 존 케이식이 사퇴하면서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
트럼프의 경선 승리는 공화당에 대한 '적대적 인수'에 가까웠다. 그의 성공은 공화당 주류와 일반 당원들 사이의 깊은 괴리를 드러냈다. 수십 년간 부동산과 TV 쇼를 통해 연마한 미디어 장악 능력은 그가 전통적인 선거 조직을 우회하여 유권자들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게 했다. 그는 기성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분노를 다른 어떤 후보보다 효과적으로 포착하고 대변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 확정]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역대 공화당 후보 중 가장 많은 득표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습니다.
공화당 주류의 난색에도 대세론을 형성했습니다.
[이민 정책 입장 논란]
전부의 밀입국자 추방 요구에서 입장을 완화할 것을 시사했으나, 같은 달 멕시코 대통령 방문 후 강경 노선을 재확인하는 10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액세스 할리우드' 음담패설 테이프 공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의 본선 경쟁은 분열적이고 부정적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2016년 10월, 트럼프가 여성을 성추행했다고 자랑하는 내용이 담긴 2005년 '액세스 할리우드' 녹음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캠페인은 최대 위기를 맞았다.
많은 공화당 지도자들이 후보 사퇴를 요구했지만, 트럼프는 이를 '탈의실 농담'으로 일축하고 위기를 넘겼다.
'액세스 할리우드' 테이프는 일반적인 정치 캠페인이라면 종결되었을 법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트럼프가 이 스캔들에서 살아남은 것은 그의 지지 기반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보여주었다. 그의 지지자들은 다른 정치인에게는 치명적이었을 도덕적 결함이나 과거의 잘못을 용납했으며, 그의 기성 정치권에 대한 저항적 이미지와 강력한 리더십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이 사건은 그의 지지자들이 기존의 정치적, 도덕적 잣대로 그를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제45대 미국 대통령 당선]
도널드 트럼프는 모든 여론조사와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에게 전체 득표수에서 약 290만 표 뒤졌지만,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미시간 등 '러스트 벨트' 핵심 경합주에서 신승을 거두며 선거인단 304명을 확보해 승리했다.
이 결과는 미국 정치사에 가장 큰 이변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트럼프의 승리는 미국 정치 지형의 지각 변동을 의미했다. 이는 제조업 쇠퇴 지역 백인 노동자 계층의 경제적 불안과 문화적 소외감에 힘입은 우파 포퓰리즘과 민족주의의 승리였다. 이 선거 결과는 미국 사회의 깊은 분열을 드러냈으며, 그의 패배를 압도적으로 예측했던 정치 및 미디어 기득권에 대한 거부 신호로 해석되었다.
[트럼프 대학교 소송 합의]
트럼프 대학교 관련 사기 소송 3건을 해결하기 위해 총 2,500만 달러를 지불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트럼프는 어떤 부정 행위도 부인했습니다.
[타임지 '올해의 인물' 선정]
타임지는 트럼프를 '양당을 모두 공격하며 규칙을 부쉈고, 미래의 정치 문화를 제시했다'고 평가하며 2016년 '올해의 인물'에 선정했습니다.
[플린, 러시아와 접촉 논란]
당시 국가 안보 보좌관이던 마이클 플린이 러시아 대사인 세르게이 키슬랴그와 같은 날 미국이 부과한 제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후 트럼프는 제재 논의를 부인하며 플린을 해고했습니다.
2017
[러시아 선거 개입 논란]
CIA, FBI, NSA 등 미국 정보기관들이 러시아 정부가 트럼프의 선거를 지지하기 위해 2016년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는 '상당한 확신'을 공동으로 발표했습니다.
[제45대 대통령 취임]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하며 '미국 우선주의'를 천명, 보호무역주의와 해외 주둔 미군 방위비 재협상을 예고했습니다.
[7개국 대상 여행 금지 행정명령 서명]
2017년 1월 20일 취임한 트럼프는 "미국의 살육"을 멈추겠다고 선언했다.
취임 첫 주, 그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등 여러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특히 1월 27일에는 7개 이슬람권 국가 국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행정명령 13769호에 서명하여 전국적인 시위와 법적 소송을 촉발했다.
이러한 초기 조치들은 이전 행정부와의 급격한 단절과 '미국 우선주의' 공약을 즉각 이행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특히 '여행 금지' 명령은 이민과 국가 정체성에 대한 4년간의 격렬한 정치적, 법적 갈등의 서막을 열었다. 이 명령은 그의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동시에 반대 세력을 강력하게 자극하며 임기 내내 이어질 극심한 양극화의 기폭제가 되었다.
[언론 신뢰도 논란]
폭스 뉴스 채널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 45%가 트럼프를, 42%가 언론을 신뢰한다고 답하며 언론의 신뢰도에 타격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FBI, 러시아 연관성 조사]
FBI 국장 제임스 코미가 의회에서 2016년 대통령 선거 개입과 관련하여 트럼프 선거운동과 러시아 정부 간 연결 및 공모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연방대법관 3명 임명]
트럼프는 임기 동안 3명의 보수 성향 연방대법관을 임명하여 연방 사법부의 지형을 수십 년간 바꿔놓았다.
닐 고서치(2017년 4월), 브렛 캐버노(2018년 10월), 에이미 코니 배럿(2020년 10월)이 차례로 인준되었다.
특히 캐버노의 인준은 성폭력 의혹으로, 배럿의 인준은 대선 직전에 이루어져 극심한 정치적 논쟁을 낳았다.
3명의 대법관 임명은 트럼프의 가장 중요하고 지속적인 국내 정책 업적으로 평가된다. 이는 보수 및 복음주의 지지층에 대한 핵심 공약을 이행한 것이며, 연방대법원의 이념 지형을 6대 3의 확고한 보수 우위로 재편했다. 이 성과는 2016년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오바마 대통령의 대법관 후보 지명을 거부하고, 2020년에는 트럼프의 임기 마지막 날에 배럿의 인준을 강행하는 등, 사법부 임명의 기존 규범을 근본적으로 바꾼 정치적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감세 및 일자리 법안(TCJA) 서명]
트럼프는 수십 년 만의 가장 큰 규모의 세제 개편안인 '감세 및 일자리 법안'에 서명했다.
이 법안은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영구 인하하고, 대부분의 개인 소득세율을 한시적으로 인하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또한 표준 공제를 두 배 가까이 늘리는 대신, 주 및 지방세(SALT) 공제 한도를 1만 달러로 제한했다.
TCJA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표적인 입법 성과였다. 이는 기업 투자와 경제 성장을 촉진하려는 공화당의 전형적인 공급 측 경제학에 기반한 정책이었다. 법안 통과 이후(코로나19 이전까지) 미국 경제는 견조한 성장을 보였으나, 경제학자들은 이 법안이 성장, 소득 불평등, 그리고 향후 10년간 약 1.5조 달러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 부채에 미칠 장기적 영향에 대해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2018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시작]
트럼프 행정부는 '불공정 무역 관행'과 지적 재산권 절도를 이유로 2018년부터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시작했다.
철강, 알루미늄, 태양광 패널 등 수천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은 대두와 같은 미국산 농산물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며 맞대응했고, 양국 간의 관세 공방은 그의 임기 내내 계속되었다.
무역 전쟁은 미국 제조업을 보호하고 부활시키려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경제 의제의 핵심이었다. 이 정책은 자유 무역과 세계화에 대한 냉전 이후의 국제적 합의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었다. 2020년 1월 '1단계 무역 합의'에 도달했지만, 양국 간의 핵심적인 경제 갈등은 대부분 해결되지 않았으며, 관세는 후임 행정부에서도 대부분 유지되었다.
[트럼프 재단 소송]
뉴욕 법무장관 사무실이 트럼프 재단에 280만 달러의 배상금과 추가 벌금을 요구하는 민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개최]
트럼프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전례 없는 개인 외교를 펼쳤다.
두 정상은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처음 만났고,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두 번째 회담을 가졌으나 합의 없이 결렬되었다.
이후 2019년 6월, 트럼프는 판문점 비무장지대(DMZ)에서 즉흥적으로 세 번째 만남을 갖고 북한 땅을 밟은 최초의 미국 현직 대통령이 되었다.
이 정상회담들은 '전략적 인내'로 대표되던 수십 년간의 대북 정책에서 벗어나, 최고 지도자 간의 하향식 소통으로 전환하는 극적인 변화였다. 싱가포르 회담에서는 '한반도의 비핵화'에 합의하는 공동성명을 이끌어내고 2017년 최고조에 달했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검증 가능하게 해체하는 구체적인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출처]
2019
[뮬러 특검, 최종 보고서 제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는 22개월간의 2016년 대선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마치고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는 러시아의 '전방위적이고 체계적인' 선거 개입 사실을 확인했지만, 트럼프 캠프가 러시아 정부와 '공모하거나 협력했다는 점을 입증하지는 못했다'고 결론 내렸다.
사법 방해 의혹에 대해서는 10가지 사례를 적시하면서도, "대통령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결론 내리지 않지만, 또한 면죄부를 주는 것도 아니다"라며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뮬러 특검은 트럼프 임기 첫 2년을 뒤덮은 거대한 그림자였으며, 트럼프는 이를 끊임없이 '마녀사냥'이라고 비난했다. 보고서의 결론은 정치적으로 폭발적이었다. 민주당은 사법 방해 증거에 집중했고,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공모 혐의에 대해 '완전하고 전적인 면죄'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사법 방해에 대한 모호한 결론과 윌리엄 바 당시 법무장관의 요약 발표는 격렬한 당파적 논쟁을 촉발시켰고, 이는 결국 트럼프에 대한 첫 번째 탄핵 절차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판문점 3자 대담]
오산공군기지를 방문한 뒤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3자 대담을 가졌습니다.
[하원에서 첫 번째 탄핵소추안 가결]
2019년 7월, 트럼프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군사 원조를 대가로 정적인 조 바이든에 대한 수사를 압박했다는 내부고발이 나오면서 하원은 탄핵 조사를 시작했다.
2019년 12월 18일, 하원은 '권력 남용'과 '의회 방해' 혐의로 트럼프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그러나 2020년 2월 5일, 공화당이 다수당인 상원은 두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2020
[코로나19 국가비상사태 선포]
트럼프 행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은 2020년 1월 첫 확진자 발생과 중국발 여행 금지로 시작되었다.
그는 3월 13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백신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한 '초고속 작전(Operation Warp Speed)'을 개시했다.
그러나 바이러스의 심각성을 경시하고 입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홍보하는 등 공중 보건 전문가들과 잦은 마찰을 빚어 비판을 받았다.
팬데믹은 트럼프 임기 마지막 해를 규정한 결정적 위기였다. 행정부의 대응은 '초고속 작전'과 같은 성공적인 측면과, 공중 보건 메시지 전달 및 국가적 대응 조율 실패라는 비판받는 측면이 혼재했다. 특히 과학자들과의 충돌, 마스크 착용에 대한 엇갈린 메시지 등 위기에 대한 그의 공개적인 태도는 2020년 대선의 핵심 쟁점이 되었고, 그의 패배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2020년 말까지 미국 내 사망자는 34만 6천 명을 넘어섰다.
[음악 저작권 침해 논란]
오클라호마주 털사 집회에서 톰 페티의 "I Won't Back Down"을 사용하여 유족으로부터 사용금지 요구를 받았습니다.
트럼프 캠프는 정치 단체 라이선스 계약을 주장했으나, 작곡가 반대 시 예외 조항이 있었습니다.
[코로나19 양성 판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가 신종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 백악관에서 자가격리되었습니다.
이후 음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2020년 11월 대선에서 조 바이든에게 패배한 후, 트럼프는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광범위한 사기 주장을 펼치며 결과 뒤집기 시도가 시작되었다.
수십 건의 소송은 기각되었고, 주 선거 관리들을 압박하는 시도도 실패했다.
특히 2021년 1월 2일, 그는 브래드 래펜스퍼거 조지아주 국무장관에게 "11,780표를 찾아내라"고 요구하는 통화 내용이 공개되어 큰 파문을 일으켰다.
2021
[1·6 의사당 점거 사태 및 두 번째 탄핵]
2021년 1월 6일, 트럼프는 '도둑맞은 선거를 멈춰라' 집회에서 지지자들에게 "지옥같이 싸우라"며 의사당으로 행진할 것을 촉구했다.
이후 폭도로 변한 시위대가 선거인단 투표 결과 인증을 막기 위해 의사당을 점거했다.
이 사건으로 하원은 1월 13일 '내란 선동' 혐의로 트럼프를 탄핵했으며, 그는 역사상 최초로 두 번 탄핵된 대통령이 되었다.
의사당 점거 사태는 미국 역사상 충격적인 순간이었으며, 이를 선동한 트럼프의 역할은 그의 퇴임 후 모든 활동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2021년 2월 13일, 상원은 그가 퇴임한 후 열린 재판에서 57대 43으로 유죄 평결을 내렸으나, 유죄 인정에 필요한 3분의 2에는 미치지 못해 무죄가 선고되었다. 7명의 공화당 상원의원이 유죄에 투표한 이 표결은 대통령 탄핵 역사상 가장 초당적인 유죄 투표로 기록되었다.
[출처]
[2차 탄핵 소추 발의]
미국 의회 습격 사건이 원인이 되어 2차 탄핵 소추가 발의되었습니다.
하원에서는 통과되었으나 상원에서는 부결되었습니다.
2022
[FBI, 마러라고 자택 압수수색]
FBI는 백악관에서 불법적으로 반출된 기밀문서 취급과 관련한 수사의 일환으로 플로리다에 있는 트럼프의 마러라고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FBI는 1급 비밀, 2급 비밀을 포함한 수백 건의 기밀문서를 포함하여 11,000건 이상의 정부 문서를 회수했다.
이 압수수색은 국가기록원의 지속적인 반환 요청과 대배심의 소환장 발부 이후에 이루어졌다.
전직 대통령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것은 법무부의 전례 없는 조치로, 수사의 심각성을 보여주었다.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이 압수수색을 '딥 스테이트'에 의한 정치적 동기의 '급습'으로 규정하며 지지층 결집에 활용했다. 이 압수수색에서 확보된 증거는 결국 그의 첫 연방 기소로 이어졌다.
[2024년 대선 출마 공식 선언]
트럼프는 마러라고에서 2024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비연속적인 두 번째 임기에 도전했다.
그는 '아젠다 47'로 알려진 공약에서 이민 문제에 대한 강경 노선, '미국 우선주의' 무역 정책, 연방 관료제 개혁을 통한 '늪지대 배수'를 약속했다.
이른 시점의 출마 선언은 공화당 경선 경쟁자들을 견제하고 사법적 위기 속에서 정치적 건재함을 과시하려는 시도로 해석되었다.
이 출마 선언은 전직 대통령이 여러 형사 기소에 직면한 상태에서 대선에 출마하는 전례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로써 그의 법적 투쟁과 정치 캠페인은 불가분하게 얽히게 되었다. 그의 캠페인은 '항복은 없다(Never Surrender!)'와 같은 슬로건을 내걸고, 법적 문제들을 오히려 정치적 박해의 증거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2023
[연방 기밀문서 유출 혐의로 기소]
플로리다 연방 대배심은 트럼프가 마러라고 자택에 보관한 기밀문서와 관련하여, 간첩법에 따른 국방 정보의 고의적 보유 및 사법 방해 등 37개 중범죄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2023년 7월 추가 기소로 혐의가 늘어났다.
이 사건은 트럼프가 임명한 에일린 캐넌 판사에게 배정되었으며, 재판 전 절차가 지연되어 2024년 대선 전에 재판이 열리지 않았다.
이 기소는 오디오 녹취록과 증인 진술 등 강력한 증거로 인해 트럼프에게 가장 위험한 사건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 이 사건은 그의 기밀 자료 취급이 국가 안보에 미친 영향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캐넌 판사가 재판 전 절차를 계속 지연시키고 피고 측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면서, 재판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20년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
워싱턴 D.C. 연방 대배심은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한 트럼프의 시도와 관련하여 미국에 대한 사기 공모, 공무 집행 방해 등 4개 중범죄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이 사건은 대통령 면책 특권에 대한 법적 공방으로 인해 지연되었다.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후, 잭 스미스 특별검사는 현직 대통령을 기소하지 않는다는 법무부 정책에 따라 기소 취하를 요청했고, 2024년 11월 25일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 기소는 1·6 사태로 이어진 트럼프의 행동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사법적 심판 시도였다. 사건의 핵심은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 행위에 대해 형사 소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법적 문제였다. 연방대법원은 2024년 7월 1일 '공식적 행위'에 대해 일부 면책 특권을 인정하면서도 사건을 하급 법원으로 돌려보냈으나 , 트럼프의 당선으로 인해 그는 결국 이 혐의에 대한 재판을 받지 않게 되었다.
[조지아주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
조지아주 풀턴 카운티 대배심은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한 혐의로 트럼프와 18명의 공모자들을 리코(RICO, 부패 조직 방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트럼프는 2023년 8월 24일 풀턴 카운티 구치소에 출두하여 수감 절차를 밟았고, 이때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머그샷을 촬영했다.
이 사건은 패니 윌리스 검사에 대한 법적 문제 제기로 인해 절차가 지연되었다.
조지아 사건은 주 법률인 리코법을 적용하고 광범위한 공모자 네트워크를 기소했다는 점에서 독특했다. 연방 사건과 달리, 주 법원에서의 유죄 판결은 대통령 사면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전직 대통령의 머그샷 이미지는 그의 법적 곤경을 보여주는 강력하고 상징적인 장면이 되었다.
2024
[공화당 대선 후보 사실상 확정]
트럼프는 공화당 경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사실상의 대선 후보 자리를 확보했다.
그의 마지막 경쟁자였던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는 '슈퍼 화요일' 경선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둔 후 3월 6일 사퇴했다.
이로써 트럼프는 공화당의 확고한 기수로서 본선 경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트럼프의 경선 승리는 당내에서 그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함을 입증했다. 헤일리의 사퇴는 공화당이 트럼프를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민과 경제 문제가 유권자들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트럼프의 메시지는 공화당 유권자들 사이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입막음 돈' 관련 34개 혐의 유죄 평결]
2023년 3월, 맨해튼 대배심은 2016년 대선 당시 성인영화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입막음 돈'을 지급한 것과 관련하여 사업 기록을 위조한 34개 중범죄 혐의로 트럼프를 기소했다.
2024년 5월 30일, 배심원단은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를 평결했다.
이로써 트럼프는 중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최초의 미국 전직 대통령이 되었다.
이 유죄 평결은 역사적이고 법적으로 중대한 사건이었다. 일부 법률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그가 직면한 4개의 기소 중 가장 덜 심각하다고 보았지만, '유죄 판결을 받은 중범죄자'라는 꼬리표는 2024년 대선의 핵심 쟁점이 되었다. 트럼프 캠프는 이 평결을 '조작된 사법 시스템'의 증거라며 즉각 항소 의사를 밝히고, 이를 정치 자금 모금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펜실베이니아 유세 중 암살 시도]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인근에서 열린 유세 연설 도중, 트럼프는 저격범의 총에 맞아 오른쪽 귀 윗부분에 부상을 입었다.
이 공격으로 청중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저격범은 비밀경호국 요원에 의해 사살되었다.
이 사건은 미국 정치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대선 캠페인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총격 직후, 피를 흘리면서도 주먹을 쥐고 "싸워라!(Fight!)"라고 외치는 트럼프의 모습은 그의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이 사건은 비밀경호국의 경호 실패 논란을 일으켰고, 결국 킴벌리 치틀 국장이 사임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공화당 전당대회 및 부통령 후보 지명]
트럼프는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공식적으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오하이오주 상원의원 J.D. 밴스를 자신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발표했다.
한때 트럼프의 비판자였던 밴스는 이후 그의 가장 충성스러운 동맹자 중 한 명이 되었다. 밴스의 지명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강화하고, 젊은 세대와 러스트 벨트 지역 유권자들에게 소구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되었다. 이 결정은 트럼프가 공화당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고히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제47대 미국 대통령 당선]
도널드 트럼프는 현직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를 꺾고 제47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선거인단 312명을 확보했으며, 2004년 이후 공화당 후보로는 처음으로 전체 득표에서도 49.8%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이로써 그는 그로버 클리블랜드 이후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비연속적인 임기를 수행하는 대통령이 되었다.
트럼프의 승리는 중범죄 유죄 평결과 여러 형사 기소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또 하나의 역사적인 정치적 복귀였다. 그의 성공은 경제, 인플레이션, 이민 문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우려와, 노동자 계층, 남성, 그리고 소수 인종 유권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소구한 캠페인 전략에 힘입은 것으로 분석된다. 그의 승리는 바이든-해리스 행정부와 그에게 법적 책임을 묻고자 했던 정치 및 사법 기득권에 대한 강력한 거부로 해석되었다. 승리 연설에서 그는 "지난 4년간의 분열을 뒤로하고 단합할 때"라며 통합을 호소했다.
[대통령 당선인 신분 및 내각 인선]
대선 승리 후, 트럼프는 대통령직 인수 절차에 착수하며 두 번째 임기를 함께할 내각 인선을 발표했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팸 본디 법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등 충성파 인사들이 주요 직책에 지명되었다.
이 시기, 법무부는 현직 대통령을 기소하지 않는다는 정책에 따라 트럼프에 대한 연방 사건들을 기각했다.
트럼프의 내각 인선은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첫 임기 때와 달리 행정부를 완전히 장악하려는 의도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스콧 베센트(재무), 하워드 루트닉(상무), 더그 버검(내무) 등 재계 인사들과 툴시 개버드(국가정보국장)와 같은 의외의 인물들도 발탁되었다. 이 과정은 상원 인준 절차를 거치며 2025년 초까지 이어졌다.
2025
[제47대 대통령 취임]
도널드 트럼프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취임식을 가졌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이날을 미국 시민을 위한 '해방의 날'로 선언했다.
그는 남부 국경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여 이민을 통제하고, "시추하라, 아기야, 시추하라(drill, baby, drill)"는 구호 아래 국내 에너지 생산을 확대하며, 새로운 '대외 국세청'을 통해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즉시 서명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취임 연설은 그의 두 번째 임기를 위한 급진적이고 공격적인 의제를 제시했다. 이는 전임자의 정책을 폐기하고 '미국 우선주의' 원칙을 더욱 강력하게 재확립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민, 에너지, 무역 분야에서 즉각적이고 광범위한 변화를 위해 행정 권력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신호였으며, 또 한 번의 파괴적이고 변혁적인 임기를 예고했다.
['프로젝트 2025'와 행정명령]
취임 직후, 트럼프는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이 주도한 '프로젝트 2025'의 정책 제안과 일치하는 다수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조치들은 연방 공무원 신규 채용 동결,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프로그램 폐지, 성별을 생물학적 성으로만 정의하는 정책 등을 포함했다.
'프로젝트 2025'는 대통령의 권한을 극대화하고 연방 정부를 보수 이념에 따라 재편하기 위한 900페이지 분량의 상세한 계획이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 동안 이 프로젝트와 거리를 두었지만, 그의 초기 행보는 이 계획의 핵심 목표인 연방 관료제 장악, 이민 통제 강화, 낙태 및 성소수자 권리 제한 등을 충실히 이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그의 두 번째 임기가 첫 임기보다 더 체계적이고 이념적으로 급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임을 시사했다.
https://www.pbs.org/newshour/show/the-project-2025-policies-the-trump-administration-is-already-impleme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