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
대통령, 인권 운동가,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2- 01:20:20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자 인류의 위대한 스승 넬슨 만델라. * 27년이라는 긴 옥고를 치르면서도 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자유와 평등을 향한 투쟁을 멈추지 않은 불굴의 정신. *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통해 용서와 화해를 실천하며 과거의 상처를 치유 국민 통합을 이끈 위대한 리더십. * 그의 자서전 자유를 향한 긴 여정은 20세기 최고의 책으로 손꼽히며 전 세계인에게 희망과 영감을 준 진정한 자유의 상징입니다.
1918
['말썽꾸러기'의 탄생]
남아프리카 공화국 음베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이름 '롤리흘라흘라'는 코사족 언어로 '말썽꾸러기'를 의미하며, 이는 훗날 위대한 변화를 이끌 그의 삶을 암시하는 듯했습니다.
1944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 시작]
대학에서 다양한 사상을 접하며 정치적 식견을 넓힌 그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에 가입, 청년동맹을 설립하고 집행 위원으로 활동하며 본격적인 반인종차별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1950
[청년 리더로 부상]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의 최전선에서, 그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청년동맹 의장으로 취임하며 남아공 민주화 운동의 젊은 핵심 리더로 빠르게 자리매김했습니다.
1953
[변호사 개업과 부의장 취임]
요하네스버그에서 올리버 탐보와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습니다.
같은 해 12월에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부의장으로 취임하며 법률가이자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1961
[무장 투쟁의 시작]
평화적 투쟁의 한계를 느끼고 '움콘트 웨 시즈웨(민족의 창)'라는 군사 조직을 창설, 초대 사령관이 되었습니다.
이는 남아공 민주화 운동의 새로운 전환점이었습니다.
1962
[자유를 위한 첫 체포]
무장 투쟁 조직 활동으로 인해 반역죄로 체포되었습니다.
그의 체포는 인종차별 정권의 탄압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964
[27년 옥고의 시작]
국가 반역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악명 높은 로벤섬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27년이라는 긴 세월을 인종차별에 맞선 상징적인 투사로 보냈습니다.
1982
[형무소 이감]
로벤섬에서 케이프타운 교외의 포르스모아 형무소로 이감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건강 문제와 국제 사회의 압력이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1989
[정권과의 첫 대화]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레데리크 빌렘 데 클레르크와 극비 회담을 가졌습니다.
이 만남은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 종식과 그의 석방을 향한 중요한 첫 걸음이었습니다.
1990
[27년 만의 감격스러운 석방]
27년이라는 길고 긴 수감 생활 끝에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석방과 동시에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부의장으로 취임하며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다시 섰습니다.
1991
[ANC 의장 취임]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의장으로 취임하여, 데 클레르크 대통령과 협력하며 모든 인종 대표가 참여하는 민주 남아공화국 회의를 주도했습니다.
1993
[베이징대 명예 박사]
중국 베이징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받으며, 전 세계적인 인권 운동가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습니다.
[역사적인 노벨 평화상 수상]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민주화를 이끈 공로로 프레데리크 빌렘 데 클레르크 대통령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이는 전 세계에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순간이었습니다.
1994
[세계 최초 흑인 대통령 취임]
모든 인종이 참여한 남아공 총선에서 아프리카 민족회의(ANC)가 승리하며, 그는 1994년 5월 27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역사상 세계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이는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순간이었습니다.
대통령 취임 후, 그는 '진실과 화해위원회(TRC)'를 결성하여 과거 인종차별 시대의 폭력과 피해를 조사하고 용서와 화해를 강조했습니다. 가해자가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면 사면하고, 피해자들에게는 경제적 보상과 함께 잊히지 않도록 무덤에 비석을 세워주는 등, 인종차별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려 노력했습니다. 또한 민족 화해와 협력을 호소하며 국민 통합 정부를 수립하고, 경제 불황 회복을 위한 부흥개발 계획(RDP)을 추진했습니다. 그의 저서 《자유를 향한 긴 여정》은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책 중 하나입니다.
1997
[의장직 양보]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전당 대회에서 의장직을 부통령 타보 음베키에게 양보하며 후진 양성과 권력 이양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1999
[정계 은퇴]
그 해 열린 총선을 기점으로 공식적으로 정계에서 은퇴하며, 남아공에 민주주의의 기틀을 확립한 위대한 지도자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2000
[유엔 안보리 연설]
정계 은퇴 후에도 그는 활발한 국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처음으로 연설을 하며 세계 평화와 인권 증진에 대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2001
[전립선암 투병 시작]
전립선암이 발견되어 7주간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습니다.
건강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그의 정신은 여전히 강했습니다.
2005
[아들 죽음 공개와 에이즈 인식 개선]
전처 위니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마카토 만델라가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했음을 공개하며,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2010
[월드컵 폐회식 참석]
개회식에는 불참했지만, 남아공 월드컵 폐회식에는 직접 참석하여 전 세계에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는 그의 마지막 공식석상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월드컵 개회식 불참]
남아공에서 개최된 FIFA 월드컵 개회식에 참석하려 했으나, 전날 증손자의 안타까운 교통사고 사망으로 인해 참석을 포기하고 영상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2012
[폐 감염으로 입원]
90세를 넘은 고령의 나이로 폐 감염 증상이 심해져 수도 프리토리아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의 건강에 대한 전 세계의 우려가 커졌습니다.
2013
[재입원]
건강 상태가 다시 악화되어 감염이 재발, 병원에 재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점부터 그의 용태는 위독한 상태를 오갔습니다.
[병실에서 95번째 생일]
병실에서 95번째 생일을 맞았습니다.
유엔은 이날을 '넬슨 만델라의 날'로 지정하며 그의 공적을 기리고 회복을 기원했습니다.
[인류의 스승, 영면하다]
95세의 나이로 자택에서 가족들의 품에 안겨 평화롭게 서거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전 세계에 깊은 슬픔과 함께 그의 위대한 유산을 다시금 되새기게 했습니다.
제이컵 주마 대통령이 공식 발표했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부인 이희호 여사도 애도를 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