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

정치인, 독재자,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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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8- 07: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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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태생 독일의 정치인이자 나치 독일의 독재자. 제1차 세계 대전 패전과 대공황 이후 정권을 잡고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군비 확장을 통해 실업을 극복하고 독일을 최강국으로 만들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그의 유대인 말살 정책인 홀로코스트는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낳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 중 하나이다. 1945년 베를린에서 자살하며 독일의 패망과 함께 생을 마감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889

[아돌프 히틀러 탄생]

오스트리아-헝가리 브라우나우암인에서 알로이스 히틀러와 클라라 히틀러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디' 또는 '볼프'로 불리기도 했다.

1903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 사망]

14세의 히틀러는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의 사망에 크게 슬퍼했지만, 이후 학업에 대한 의욕을 잃고 성적이 바닥을 밑돌았다.

1907

[빈 미술학교 첫 낙방]

화가가 되기를 열망했던 히틀러가 빈 미술학교 입학 시험에 응시했으나, 교수의 "건축적 재능이 뛰어나다"는 조언과 함께 첫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어머니 클라라 히틀러 사망]

유방암으로 고통받던 어머니 클라라가 사망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친척들과 더욱 멀어지게 되었고, 히틀러는 고아연금으로 생활하게 된다.

1908

[빈 미술학교 재차 낙방]

빈 미술학교에 두 번째 지원했으나 또 다시 입학을 거절당했다.

이는 그의 재정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병역 징집에 대한 두려움을 키웠다.

1913

[뮌헨 이주 및 징집 면제]

오스트리아 군 징집을 기피하고 독일 뮌헨으로 이주했다.

그는 슬라브족과 유대인으로 혼탁한 오스트리아군에서 복무하고 싶지 않아 "몸이 허약하다"는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1914

[1차 세계 대전 자원 입대]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소식에 기쁨을 느끼며 바이에른 16보병연대 입대를 자원했다.

그는 진정한 마음의 조국인 독일을 위해 봉사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1919

[독일 노동자당 입당]

독일 육군 통신병으로 복무하며 뮌헨의 제4군 사령부로 복귀했다.

이후 군 정보작전참모부의 명령으로 민족주의 운동을 조사하던 중, 오히려 독일 노동자당(DAP)에 당원증 제55번을 받고 입당했다.

1920

[나치당 창당 및 강령 발표]

뮌헨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2천 명 앞에서 독일 노동자당을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SDAP, 나치스)'으로 개명하고, 민주공화제 타도, 독재 강행, 베르사유 조약 타도, 민족주의, 반유대주의 등을 포함한 25개 조항의 당 강령을 발표했다.

1923

[뮌헨 폭동 시도]

베니토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에 자극받아 뮌헨에서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바이에른 군부와 관료의 지지를 얻지 못해 실패하고 부상당했다.

이 사건으로 란츠베르크 감옥에 투옥되었다.

[투옥 및 '나의 투쟁' 집필]

뮌헨 폭동 실패 후 란츠베르크 감옥에 수감되었다.

옥중에서 동유럽 정복과 게르만 민족의 생존권 확장을 담은 저서 《나의 투쟁》을 집필하며 합법적인 운동을 통한 정권 전복 기반을 마련했다.

그의 수감 생활은 6개월로 끝났지만, 당은 사실상 해체된 상태였다.

1929

[대공황, 나치당 도약의 발판]

1929년 '검은 목요일'로 시작된 경제 대공황으로 독일 경제가 큰 타격을 입고 실직자가 6백만 명으로 급증하자, 민주주의 정당들이 무력한 사이 나치당은 18.3%의 득표율로 제2당이 되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1933

1933.01.30 1해당 사건의 피인용 횟수를 나타냅니다. 44세

[독일 총리 취임]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는 경제와 정계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아돌프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다.

그는 보수파와 군부의 협력을 얻어 좌파 세력 및 반대파를 탄압하며 권력을 강화했다.

[일당 독재 체제 확립]

총리가 된 히틀러는 반대파를 감금, 납치, 암살, 고문 등으로 탄압하고 기존 바이마르 공화국의 무능함을 강조하며 1933년 7월 일당 독재 체제의 기틀을 확립했다.

1934

[장검의 밤 사건 발생]

나치 조직 내부의 권력 재편을 위해 '장검의 밤 사건'을 일으켜 나치 돌격대 지휘관 에른스트 룀을 제거하고, 전임 총리 슐라이허 장군을 제거하는 등 반대파 숙청을 단행하여 권력을 공고히 했다.

['퓌러' 겸 국가수상 취임]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 사망 후 국민투표를 통해 총리가 대통령의 지위를 겸하게 되었고, '퓌러 겸 국가수상'(총통)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며 독일의 명실상부한 독재자가 되었다.

1938

[세계 수도 '게르마니아' 계획]

세계를 정복하려는 야심에 따라 전 세계의 수도가 될 '게르마니아'를 오늘날 베를린 지역에 계획하고 공사를 시작했다.

이는 인구 1억 명을 수용할 초대형 도시이자 광신적 민족주의 이념의 결정체였으나, 그의 패망과 함께 중단되었다.

1939

[폴란드 침공, 2차 세계 대전 발발]

선전 포고 없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이는 이오시프 스탈린과의 상호 불가침 조약과 폴란드 분할 협정 이후 이루어졌다.

1940

[서유럽 및 북유럽 점령]

"전격전"이라는 새로운 전법으로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프랑스를 항복시키고 1940년 말까지 스웨덴을 제외한 서부 및 북부 유럽을 점령했다.

[영국 침공 실패]

영국에 우세한 공군력을 쏟아 부어 폭격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을 점령하지 못하며 첫 주요 군사적 좌절을 겪었다.

1941

[홀로코스트 (유대인 학살)]

전쟁 중 그의 유대인 말살 정책인 홀로코스트를 본격화했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 집시, 슬라브인, 동성애자, 장애인 등이 아우슈비츠와 같은 강제 수용소의 가스실에서 학살당했다.

히틀러는 할아버지가 유대인이라도 증손자를 잡아가는 유대인 족보를 만들어 재산을 몰수하고 막노동이나 생체 실험을 강요했으며, 병들면 총살했다. 이는 나치 독일의 인종 우월주의 이념에서 비롯된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대량 학살이었다.

[소련 침공 (바르바로사 작전)]

영국 공습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오시프 스탈린과의 불가침 조약을 깨고 소련을 침공하는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했다.

10월에는 모스크바 근처까지 진격했으나 소련의 혹독한 겨울 앞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 선전 포고]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한 지 나흘 후, 미국에 선전 포고를 했다.

이는 전쟁의 전기를 마련하며 전열이 더욱 두터워진 연합군의 진공으로 독일은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1942

[주요 전선 패배 시작]

소련군과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연이어 패배하며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잇따른 미국의 참전으로 독일은 궁지에 몰리며 승승장구하던 독일군의 기세가 꺾였다.

1944

[연합군의 독일 본토 진격]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거의 같은 시기에 바그라티온 작전이 성공하며 연합군과 소련군이 독일군을 독일 본토까지 밀어내고 베를린을 점령함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의 종말이 임박했다.

1945

[에바 브라운과 결혼]

소련군에게 베를린이 포위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국가수상부 지하 벙커에서 오랜 연인 에바 브라운과 결혼했다.

[아돌프 히틀러 자살]

결혼 다음 날, 소련군의 공격권에 단 두 블록밖에 떨어지지 않은 베를린 국가수상부 지하 벙커에서 청산가리 캡슐을 삼키고 발터 PPK 권총으로 자신을 쏘아 자살했다.

향년 57세.

독약 캡슐을 쓰지 않고 권총만을 이용해 자살했다는 서술도 존재한다. 그의 사망 후에도 두개골 진위 논란과 1960년대까지 생존했다는 설 등 다양한 추측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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