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현왕후전
소설, 역사 소설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10:53
- 작자 미상의 고전 소설로 원명은 인현성모덕행록이다. - 조선 숙종 시대 인현왕후와 희빈 장씨의 갈등을 선과 악의 대립으로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 선량한 인현왕후가 간악한 희빈 장씨의 계략으로 폐위되었다가 복위하고 희빈 장씨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 권선징악의 전형적인 구도를 따른다. - 특히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으로 당대 사회의 도덕적 이상과 흥미로운 궁중 암투를 엿볼 수 있다.
1680
[새 왕비 간택, 인현왕후의 등장]
숙종의 첫 왕비인 인경왕후가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대왕대비가 새로운 왕비 간택령을 내립니다.
인현왕후의 뛰어난 덕성과 기품에 대한 소문을 들은 청풍부원군 김우명이 그녀를 추천하고, 궁에서 인현왕후를 확인한 대비는 크게 기뻐하며 대혼을 결정합니다.
태생부터 성스럽고 아름다운 자태와 완벽한 인성, 요조숙녀의 품행과 재기, 높은 학문을 갖춘 여인으로 성장한 인현왕후는 외조부 송준길과 중부 민정중의 찬사와 각별한 사랑을 얻었으며, 이웃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일찍부터 명성과 칭송이 높았습니다.
1681
[온 백성의 축복 속 책비례]
하늘마저 축복하듯 화창하고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한 가운데, 대례식에 나타난 인현왕후의 아리따운 자태에 만백성과 궁 안 모든 이들이 놀라 황홀해합니다.
두 대비와 숙종 역시 크게 기뻐하며 인현왕후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깁니다.
소설 속에서는 인현왕후의 책비례가 하늘의 축복처럼 묘사되지만, 실제 역사와는 달리 지진 등 흉한 조짐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1683
[숙종의 병환과 대비의 죽음, 희빈 장씨의 등장]
숙종이 위독한 천연두에 걸리자 인현왕후와 대비(명성왕후)는 밤낮으로 정성을 다해 쾌유를 빌고, 대비는 차가운 물에 목욕하며 기도하다 병을 얻어 승하합니다.
숙종은 쾌유하지만, 인현왕후는 효성이 지극하여 대비의 3년상을 정성껏 치릅니다.
3년상을 마친 후, 궁인 장씨가 후궁으로 들어와 곧장 희빈에 봉해집니다. 간교하고 민첩한 희빈은 숙종의 비위를 잘 맞춰 총애를 얻지만, 인현왕후는 죽은 시모에 대한 그리움에 빠져 전혀 경계하지 못합니다.
1688
[인현왕후의 덕성, 후궁 간택]
숙종이 30이 가까워도 자식이 없음을 근심한 인현왕후는 덕성 깊은 후궁을 뽑아 자손을 보기를 힘써 권합니다.
숙종은 인현왕후의 깊은 덕성에 감복하여 후궁 간택령을 내려 숙의 김씨를 후궁으로 뽑습니다.
인현왕후는 숙의 김씨에게도 예로 대하고 은혜롭게 거느려 모두가 인현왕후의 성덕에 탄복하지만, 희빈 장씨의 시기는 점점 커져갑니다. 이 해, 인현왕후의 든든한 지지 기반이었던 대왕대비 조씨(장렬왕후)마저 승하합니다.
[왕자 생산과 희빈 장씨의 야심]
희빈 장씨가 왕자를 생산하자, 숙종은 득남의 기쁨에 빠져 희빈과 왕자를 지나치게 사랑하게 됩니다.
희빈은 자기 분수를 잊고 참람한 뜻과 방자한 마음을 일으켜 인현왕후의 국모 지위를 찬탈하기 위해 모함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숙종이 희빈의 말을 믿지 않았으나, 인현왕후가 신생왕자를 해치려 한다는 소문이 궁인들을 통해 퍼지자 숙종은 점차 인현왕후를 의심하고 박대하기 시작합니다. 희빈은 악한 교태로 숙종을 미혹하고 간신들과 결탁하여 국모 찬탈 계략을 꾸밉니다.
1689
[충신 박태보의 희생, 인현왕후의 폐비]
인현왕후의 부친 민유중이 사망하여 인현왕후가 슬픔에 잠겨있는 사이, 폐비를 작정한 숙종은 인현왕후의 탄일 하례 연회를 중단시키고 이를 빌미로 삼아 폐출을 선포합니다.
대신들과 백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현왕후는 결국 폐비되어 친정으로 돌아갑니다.
이 과정에서 충신 박태보가 인현왕후를 위해 나섰다가 모진 고문 끝에 목숨을 잃는 비극이 벌어집니다. 궁녀들과 백성들이 통곡하며 길을 막았지만, 숙종의 강경한 명에 따라 인현왕후는 가마에 올라 궁을 떠나게 됩니다.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슬픔 속에서 폐비가 된 인현왕후는 친정 별채에 머물며 험난한 생활을 이어갑니다. 이때 집으로 들어온 네 마리의 개가 귀신을 쫓아내고 인현왕후를 수호합니다.
1692
[숙종의 깨달음과 인현왕후에 대한 그리움]
왕비가 된 희빈 장씨와 그 오라비 장희재는 방약무인한 행패를 부리고, 숙종은 비로소 희빈의 실체를 깨닫고 후회합니다.
꿈에서 명성왕후를 만나 인현왕후의 억울함과 희빈의 간악함을 계시받은 숙종은 희빈을 멀리하고 인현왕후를 그리워합니다.
희빈 장씨는 숙종의 변화를 알아채고 무옥을 일으켜 인현왕후를 사형시키려 모략하지만, 숙종은 이를 간파합니다. 이는 숙종이 인현왕후를 복위시키기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1694
[희빈 장씨의 불복과 저주]
원한을 품은 희빈 장씨는 인현왕후에게 왕후의 예를 거부하고 어린 세자를 폭행합니다.
숙종은 세자를 인현왕후의 슬하에 두게 하여 세자가 인현왕후의 극진한 사랑 아래 생모를 잊게 만듭니다.
세자를 통한 유세가 불가능해진 장씨는 인현왕후의 독살을 꾀하지만 실패합니다. 결국 제주에 유배 중인 오라비 장희재의 처와 공모하여 무녀와 술사를 동원, 신당을 차리고 인현왕후를 저주하기 시작합니다. 흉악한 귀신 형상을 만들어 화살을 쏘고, 해골 가루를 옷에 뿌리는 등 끔찍한 저주를 이어갑니다.
[인현왕후 복위 교지]
숙종은 희빈 장씨의 흉계를 막고 인현왕후를 복위시키고자 환국을 일으켜 간신들을 물리치고 옛 신하들을 다시 부릅니다.
숙종은 4월 9일 비망기를 내려 인현왕후의 무죄를 밝히고 별궁으로 모시라는 명을 내립니다.
그러나 인현왕후는 스스로 국모의 자격이 없다며 겸양하여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애통한 숙종의 독촉과 지친들의 간곡한 권고 끝에 4월 21일에야 문이 열리고, 숙종의 여러 서찰과 간청에 비로소 복위를 받아들입니다.
[감격스러운 복위와 희빈 장씨의 몰락]
호화로운 행렬과 만백성의 환호 속에 인현왕후는 다시 궁으로 돌아와 숙종의 눈물 어린 환영을 받으며 국모로 복위합니다.
희빈 장씨는 왕비에서 다시 후궁인 희빈으로 강등되어 옛 처소에 유폐됩니다.
이는 숙종이 세자의 어미임을 감안하여 강등과 유폐로 선처한 것이었으며, 이후 숙종은 단 한 번도 희빈의 처소를 찾지 않고 인현왕후에게 정성을 쏟습니다.
1700
[저주로 시작된 인현왕후의 병환]
희빈 장씨의 끔찍한 저주가 효험이 있었는지, 1700년 중추부터 인현왕후의 병환이 시작됩니다.
숙종은 인현왕후 곁을 지키며 정성을 다합니다.
이 해 가을부터 인현왕후의 병세는 점점 깊어집니다.
1701
[비극적인 인현왕후의 승하]
1701년 5월부터 병환이 더욱 중해진 인현왕후는 몸을 가눌 수 없게 되고, 7월에는 위독해집니다.
마침내 8월 14일, 창경궁 경춘전에서 3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궁중 전체가 슬픔에 빠지고, 특히 숙종은 애통하여 방성통곡하며 과도한 슬픔을 보입니다. 그러나 희빈 장씨는 기뻐하며 무당, 술사들과 함께 자신의 생일인 9월 7일에 굿을 벌여 인현왕후의 죽음을 축하합니다.
[숙종의 꿈, 진실을 밝히다]
인현왕후의 죽음을 슬퍼하며 잠이 든 숙종은 꿈에서 죽은 내시의 인도로 인현왕후의 영혼을 만나 그녀의 죽음이 희빈 장씨의 저주 때문임을 계시받습니다.
숙종은 즉시 희빈의 처소인 취선당으로 달려갑니다.
국상 중에 잔치를 벌여 웃고 떠드는 희빈 장씨의 모습과 인현왕후의 죽음을 기뻐하는 것에 격노한 숙종은 취선당을 수색하여 화살 맞은 인현왕후의 화상 등 저주의 흔적을 찾아냅니다. 이는 꿈속 계시가 사실임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희빈 장씨의 저주 발각과 사약 명령]
숙종은 친국을 열어 희빈 장씨의 주변 인물들을 문초하고, 그들은 저주 범죄를 줄줄이 자백합니다.
숙종은 희빈에게 자진할 것을 명하지만, 희빈은 세자를 믿고 거부합니다.
대신들은 세자의 처지를 걱정하여 희빈을 용서해 줄 것을 간청하지만, 숙종은 단호합니다. 결국 숙종이 직접 취선당에 임하여 희빈을 끌어내 꾸짖고, 눈앞에서 사약을 집행시켜 장씨는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시신마저 녹아 검은 피만 남는 끔찍한 모습은 하늘의 벌을 받은 듯합니다.
[정의 구현과 숙종의 슬픔]
숙종은 모든 옥사를 결단한 후, 인현왕후의 혼전에 친히 임하여 직접 지은 제문으로 제사를 지냅니다.
또한 희빈 장씨의 오라비 장희재 역시 사지가 찢겨 죽는 참혹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세자는 악독한 생모 탓에 죄인이라 자처하며 세자 자리를 사양하지만, 숙종은 부자간의 정과 인현왕후가 생전 세자를 극진히 아꼈던 것을 떠올리며 세자를 위로하고 면죄합니다. 백성들은 장희재의 죽음에 기뻐합니다.
1702
[숙종의 재혼과 인원왕후 책봉]
나라의 체면상 곤위(왕비의 자리)를 비워둘 수 없게 되자, 숙종은 마지못해 1702년 경은부원군 김주신의 딸을 새 왕비(인원왕후)로 간택하고 책봉합니다.
새 왕비 책봉 조하를 받을 때에도 숙종은 인현왕후를 떠올리며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비빈과 궁녀들 역시 서러워 함께 울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