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

고전 역사 소설, 연의, 중국 4대 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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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5- 00: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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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역사 소설, 연의, 중국 4대 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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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이 집필한 중국의 대표적 고전 역사 소설. 후한 말 황건적의 난(184년)부터 삼국 통일(280년)까지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한다. 유비를 중심으로 한 영웅들의 활약과 비극을 극적으로 묘사하며 역사적 사실에 흥미로운 상상력을 더해 대중의 몰입을 유도한다. 《수호전》 《서유기》 등과 함께 중국 4대 기서로 꼽히며 한국과 일본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수많은 파생 작품을 낳았다.

연관 연혁
주요사건만
최신순

184

[황건적의 난 발발 및 도원결의]

후한 말 매관매직과 가혹한 수탈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분노가 폭발하며 황건적의 난이 발생했습니다.

교주 장각이 이끈 이 농민 봉기는 후한 역사상 최대 규모로 약 50만 명에 달했으며, 6개 주에 걸쳐 세력을 떨쳤습니다.

이 혼란 속에서 유비, 관우, 장비 세 영웅이 도원결의를 맺으며 이야기의 막이 오릅니다.

황건적의 난은 후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농민 봉기로 기록되며,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 대륙의 수많은 영웅들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됩니다. 특히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는 훗날 삼국지의 핵심 서사가 되는 우정의 맹세로, 대중적 흥미를 유발하는 소설의 시작점입니다.

189

[후한 영제 사망과 십상시의 난]

후한 영제가 사망하자, 권력을 독점하려던 환관 집단 '십상시'가 난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은 조정에 남아있던 청류파 인사들과 대장군 하진을 살해하며 후한 황실을 더욱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이 사건은 동탁이 중앙 권력에 개입할 명분을 제공하며 삼국지의 격동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십상시의 난은 후한의 중앙 정부가 완전히 무너지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이를 통해 동탁과 같은 지방 세력이 황실을 장악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는 곧이어 벌어질 군벌들의 대립과 연합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190

[반동탁 연합군 결성 및 한 왕조 천도]

십상시의 난으로 혼란에 빠진 황도에 들어와 권력을 장악한 동탁은 스스로 상국의 자리에 오르며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이에 원소를 필두로 한 18로 군벌들이 '반동탁 연합군'을 결성하여 동탁에 대항했습니다.

동탁은 한 황제를 낙양에서 장안으로 강제로 천도시키며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 했으나, 연합군은 제후들 간의 내분으로 어이없이 와해되고 맙니다.

동탁의 횡포는 전국 각지의 군벌들이 봉기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으며, 이들이 결성한 '반동탁 연합군'은 삼국지의 주요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인 최초의 대규모 세력 대결이었습니다. 그러나 단결하지 못한 제후들의 모습은 훗날 삼국 정립의 혼란을 예고하는 듯합니다.

192

[연환지계로 동탁 암살]

동탁의 양자 여포가 동탁의 시녀와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동탁은 자신의 기분 나쁠 때면 여포에게 화극을 던지는 등 난폭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사도 왕윤은 둘 사이의 틈을 이용해 '연환지계'를 꾸며 이간질했습니다.

결국 여포는 동탁을 황궁에서 주살하고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동탁의 죽음은 그의 폭정이 끝났음을 알렸지만, 동시에 중앙 권력의 공백을 더욱 심화시키며 군웅할거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습니다. 왕윤의 뛰어난 지략과 여포의 배신이 결합된 이 사건은 삼국지연의의 극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입니다.

200

[관도 대전에서 조조의 대승]

조조와 원소, 당시 중국 대륙의 '양대 영웅'이라 불리던 두 세력이 맞붙은 삼국지 최초의 대규모 전투, 관도 대전이 발발했습니다.

병력과 사기 면에서 모두 열세였던 조조는 곽가의 헌신적인 지략과 활약 덕분에 원소를 창정에서 대파하는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패배로 원소는 도주하다 죽음을 맞고, 원씨 일족은 분열되어 하북 전체가 조조의 손에 들어가게 됩니다.

관도 대전은 삼국 정립의 흐름을 결정적으로 바꾼 전쟁으로 평가됩니다. 조조가 압도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하며 강력한 기반을 다지게 된 반면, 원소 세력은 와해되어 이후 조조가 중원 통일의 패권을 쥐게 됩니다. 이는 조조가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중요한 계기 중 하나입니다.

207

[유비의 삼고초려]

조조에게 쫓겨 신야성에 머무르던 유비는 서서의 추천으로 '와룡' 제갈량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유비는 완전히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도 특유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제갈량의 초막을 세 번이나 찾아갔습니다.

마침내 유비의 진심에 감동한 제갈량은 그를 따르기로 결심하고, 유비 휘하에 들어온 직후 조인과 하후돈의 군사를 대파하며 자신을 시기하던 관우와 장비마저 굴복시켰습니다.

'삼고초려'는 유비의 인품과 제갈량의 비범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삼국지연의의 명장면입니다. 유비가 제갈량을 얻기 위해 세 번이나 찾아간 이야기는 인재를 얻기 위한 간절함과 끈기의 상징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유비는 천하 통일의 꿈을 이룰 기반을 마련하게 됩니다.

208

[적벽 대전의 대승리]

천하 통일의 기치를 들고 85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를 개시한 조조군.

이에 맞설 힘이 없던 유비는 제갈량을 통해 오나라와 동맹을 성사시킵니다.

적벽에서 벌어진 이 거대한 전투는 오나라 총사령관 주유의 지략과 제갈량이 예측한 남동풍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동맹군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습니다.

조조는 대패하여 도망치던 중 화용도에서 관우를 만나 목숨을 건졌고, 이 일로 관우는 제갈량에게 완전히 무릎을 꿇게 됩니다.

'적벽 대전'은 삼국 정립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세계사적으로도 손꼽히는 대규모 해상 전투입니다. 조조의 천하 통일 야망을 저지하고, 유비와 손권 세력이 각각 촉과 오의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제갈량의 기상천외한 계략과 주유의 뛰어난 지휘력이 합쳐져 절대 열세였던 동맹군이 대승을 거둔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큰 흥미를 유발합니다.

219

[유비의 한중왕 등극 및 관우의 비극적 죽음]

서촉 41주를 점령한 유비는 조조와의 한중 쟁탈전에서 대승을 거두며 마침내 한중왕에 등극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조조는 사마의의 만류로 오나라와 동맹을 맺고, 오나라의 명장 여몽은 형주를 수비하던 관우를 기습하여 맥성에서 붙잡아 관평과 함께 참수했습니다.

이 소식에 유비는 깊은 슬픔과 분노에 잠겨 관우의 복수전을 계획하게 됩니다.

한중왕 등극은 유비가 자신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고 정통성을 확보한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관우의 죽음은 유비 세력에게 크나큰 타격이었으며, 삼국지연의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는 곧이어 벌어질 이릉 대전의 발단이 되며, 세 영웅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가르게 됩니다.

220

[조조의 죽음과 위나라 건국]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으로 불리던 조조가 마침내 사망했습니다.

그의 장남 조비는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선양 형식으로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에게서 제위를 찬탈하고 위 황제에 즉위했습니다.

이로써 한 고조 유방으로부터 400년간 이어져 내려오던 한나라는 막을 내리고, 위나라가 새롭게 건국되어 본격적인 삼국 시대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조조의 죽음은 삼국지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이 퇴장했음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조비의 위나라 건국은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던 후한이 완전히 사라지고, 세 개의 국가가 공식적으로 대립하는 삼국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이는 유비가 꿈꾸던 한실 부흥의 대의명분이 더욱 중요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221

[촉한 성립 및 장비의 비극적 최후]

한왕조 재건이라는 오랜 이념의 주체였던 한나라가 멸망하자, 유비는 관우의 죽음과 더불어 격심한 허탈감에 빠졌습니다.

제갈량의 설득으로 유비는 마음을 굳혀 촉한의 초대 황제로 등극하며,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은 없다'는 법칙이 깨지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관우의 복수전을 서두르던 장비가 부하에게 암살당하는 비극이 겹치며 유비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유비의 촉한 건국은 후한의 정통성을 계승하려는 그의 염원이 이루어진 순간이지만, 동시에 장비의 암살은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는 '도원결의'로 맺어진 세 형제의 비극적인 운명을 심화시키고, 유비가 복수심에 이끌려 이릉 대전이라는 무리한 전쟁을 감행하게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이 됩니다.

222

[이릉 전투의 대패]

승상 제갈량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비는 관우의 복수를 위해 75만 대군을 이끌고 오나라를 향해 진격했습니다.

그러나 장비마저 암살당하고 그 시신이 오나라로 넘어가자 유비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초반에는 선전했지만, 여몽의 뒤를 이은 젊은 백면서생 육손의 기습적인 화공에 의해 이릉에서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유비는 백제성으로 패주했습니다.

이릉 전투는 촉한이 건국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전쟁입니다. 유비의 복수심이 냉철한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고, 육손의 뛰어난 전략이 결합되어 촉한의 대군이 참패했습니다. 이 전투는 삼국 정립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 유비의 몰락을 가속화했습니다. 제갈량의 '석병팔진'과 조비의 형주 공격 실패 등 여러 사건이 이 전투의 여파로 발생합니다.

223

[유비의 유언과 제갈량의 남만 정벌]

관우와 장비를 잃고 이릉 전투에서도 패배한 유비는 백제성에서 제갈량에게 후사를 부탁하고 사망했습니다.

안팎으로 무거운 짐을 떠안게 된 제갈량은 계속해서 난을 일으키던 남만 지역의 맹획을 정벌하기 위해 출정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계책을 다하여 맹획을 일곱 번 붙잡고 일곱 번 놓아주는 '칠종칠금'의 전략으로 진정한 항복을 받아내고 남만에서 귀환했습니다.

유비의 사망은 '도원결의'로 시작된 삼국지연의의 큰 줄기 중 하나가 마무리되는 슬픈 순간입니다. 이로써 촉한의 운명은 제갈량의 어깨에 놓이게 됩니다. 제갈량의 '칠종칠금'은 무력보다는 덕과 지략으로 적을 복종시키는 그의 비범함을 보여주는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뛰어난 외교 전략으로,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227

[제갈량의 출사표와 북벌 시작]

유비 사후 촉한을 지탱하던 제갈량은 위나라의 사마의가 군비 증강 계획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촉한의 천하 통일이 불가능해질 것을 우려했습니다.

그는 마량의 동생 마속을 시켜 사마의를 실각시키고, 촉한의 백년대계를 위해 유명한 '출사표'를 써 내려가며 북벌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한실 부흥이라는 유비의 꿈을 이어가기 위한 제갈량의 처절한 노력이었습니다.

'출사표'는 제갈량의 충심과 비장함을 가장 잘 드러내는 명문으로, 후대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제갈량의 북벌은 위나라와의 숙명적인 대결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그의 지략과 충정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일련의 전쟁들이 시작됩니다.

229

[손권의 황제 등극과 오나라 성립]

북벌에 나선 제갈량의 촉군과 조진이 이끄는 위군이 혼란한 틈을 타, 손권이 대황제를 칭하고 연호를 '황룡'이라 하며 오나라를 세웠습니다.

이로써 완전한 삼국정립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234

[오장원 전투와 제갈량의 죽음]

유비, 관우, 장비, 조조 등 수많은 영웅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후, 촉한을 지탱하던 마지막 거대한 대들보인 제갈량이 오장원으로 진출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전장에서의 생활로 그의 건강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수단으로 수명을 늘리는 술법을 행했지만, 위연이 촛대를 쓰러뜨려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제갈량은 강유에게 병법을 전수하고 가을바람 부는 오장원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죽음은 사마의에게 승리를 안겨주었고, 위연의 반란은 마대에게 진압되며 촉한은 거대한 기둥을 잃게 됩니다.

오장원 전투는 삼국지연의의 가장 비극적이고 중요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제갈량이라는 불세출의 영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순간이며, 이는 촉한의 멸망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사마의와의 마지막 대결에서 끝내 승리하지 못하고 병사하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263

[촉나라의 멸망]

삼국 정립이 50여 년간 이어지던 중, 위나라에서는 사마의 가문이 권력을 장악하며 사마씨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촉한 역시 제갈량 사후 강유 혼자서 겨우 버티는 상태였습니다.

위나라의 사마사, 사마소 형제는 등애와 종회 두 장군을 보내 촉을 토벌했습니다.

등애는 일반적인 행군로를 벗어나 산악 지대로 기습 돌파하여 마침내 승리했습니다.

이로써 촉한은 2대 황제 유선을 끝으로 허무하게 무너졌고, 한 왕조 부흥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촉한의 멸망은 한나라 부흥을 꿈꾸던 유비와 제갈량의 노력이 결국 실패로 돌아갔음을 의미합니다. 등애의 예측 불가능한 기습 전략은 촉한의 방어선을 뚫고 승리를 거둔 결정적인 요인이었으며, 이는 삼국 시대 통일의 서곡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265

[위나라 멸망과 서진 건국]

역사는 반복되는 듯, 조비가 헌제에게서 제위를 선양받았듯이, 위나라의 마지막 황제 조환 역시 사마의의 손자인 사마염에게 제위를 선양하고 물러났습니다.

이로써 위나라가 멸망하고, 사마염이 세운 새로운 왕조 '진나라(서진)'가 탄생했습니다.

280

[오나라 멸망과 삼국 통일]

사마염이 세운 진나라가 마지막 남은 오나라를 정벌함으로써, 오랜 혼란과 대립의 삼국 시대가 마침내 종결되고 중국 대륙은 하나의 통일 왕조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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