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전
소설, 사대기서, 중국 소설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10:49
《수호전》은 중국 명나라 시대의 장편소설이자 중국 사대기서 중 하나이다. 실제 송강의 난을 바탕으로 108명의 호걸들이 양산박에서 관에 맞서는 이야기를 다룬다. 무협 소설의 원류이자 민중의 역사 지식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반관 정신과 통쾌한 서사로 오랜 시간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1022
[108마성의 봉인 해제]
북송 인종 시기, 태위 홍신이 실수로 복마전의 봉인을 풀어 108마성이 세상에 흩어지면서 《수호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북송 인종 재위 중, 태위 홍신이 산속에서 복마전의 봉인을 실수로 해제하여 그 안에서 108마성이 세상으로 흩어지게 된다. 이는 훗날 양산박 호걸들의 근원이 되는 사건으로, 《수호전》 이야기의 서막을 알린다.
1119
송 휘종 선화 연간, 하급 관리, 무관, 학자, 농어민, 상인, 도박꾼, 도둑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108명의 호걸들이 송강을 주축으로 산동의 양산박을 근거지로 삼아 탐관오리가 득세하는 관(官)에 맞서게 된다. 이들은 각자 다른 사연으로 양산박에 합류한다.
1120
[양산박 호걸들의 비극적 결말]
양산박 호걸들은 조정의 초안을 받아 관군이 되어 요나라, 전호, 왕경, 방랍의 반란을 진압하지만, 결국 대부분 전사하거나 이산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양산박 호걸들은 결국 조정의 초안(招安)을 받아들여 관군이 된다. 이후 북방의 요나라를 공격하고, 전호와 왕경의 반란을 진압하며, 마지막으로 방랍의 난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대다수가 전사하거나 뿔뿔이 흩어진다. 살아남은 일부는 탐관오리들에게 독살당하거나 체념하며 잠적하는 등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1127
[송강의 난, 민중 연예의 재료가 되다]
실제로 발생했던 송강의 난은 남송과 원나라 시대를 거치며 강담(이야기)과 연극의 주요 소재로 전설화되었다.
실제로 일어났던 송강의 난은 《송사》 등에 기록되어 있으나, 이후 민중들 사이에서 전설화되어 남송과 원나라 두 시대를 거치며 강담(이야기)이나 연극의 중요한 재료로 활용되었다. 이는 훗날 소설 《수호전》의 집필에 중요한 토대가 된다.
1400
[《수호전》의 최초 집필 및 유포]
명나라 초, 시내암이 풍부한 전설 자료를 바탕으로 《수호전》을 독본 소설로 집필하여 사본 형태로 유포되었다.
남송과 원나라 시대에 걸쳐 전해지던 풍부한 강담과 연극 자료들을 바탕으로, 명나라 초(1400년 전후)에 시내암의 손에 의해 비로소 독본 소설 형태의 《수호전》이 완성되었다. 처음에는 인쇄본이 아닌 사본(필사본)의 형태로 민중들에게 유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522
[《충의수호전》 100회본 간행]
명나라 가정 연간(1522-1566)에 《수호전》이 재정리되어 100회본인 《충의수호전》으로 정식 간행되었다.
시내암의 손으로 쓰여진 《수호전》은 명나라 가정 연간(1522년-1566년)에 이르러 대대적으로 재정리되었고, 총 100회로 구성된 《충의수호전》이라는 제목으로 정식으로 간행되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는 《수호전》의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600
[다양한 《수호전》 판본의 등장]
100회본 이후, 양정견의 120회본과 김성탄의 70회본 등 다양한 판본이 등장하여 《수호전》의 내용과 문체에 변화를 주었다.
《충의수호전》 100회본이 간행된 이후, 다양한 작가와 비평가들에 의해 《수호전》의 판본이 재구성되었다. 대표적으로 양정견은 풍부한 운문 부분을 삭제하고 후반부 줄거리를 늘린 120회본을 내놓았으며, 김성탄은 문체를 더욱 산문화하고 양산박 호걸들이 모이는 전반부에서 이야기를 끊은 70회본을 선보였다. 이러한 다양한 판본들은 《수호전》의 해석과 향유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8
1998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영 방송사인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에서 고전 소설 《수호전》을 원작으로 한 대규모 드라마를 제작하여 방영하였다. 이 드라마는 원작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생생하게 구현하여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