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제이 굴드

고생물학자, 진화생물학자, 과학사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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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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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물학자, 진화생물학자, 과학사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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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이 굴드는 미국의 저명한 고생물학자 진화생물학자이자 대중적인 교양 과학 작가입니다. 닐스 엘드리지와 단속평형설을 발표해 진화론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자연선택 지상주의를 비판하고 과학과 종교의 중첩되지 않는 권위를 주장했습니다. 인종/성차별 반대 등 사회적 참여도 적극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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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스티븐 제이 굴드, 세상에 나오다]

미국 뉴욕시 퀸스 버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법원 서기, 어머니는 화가였습니다.

1946

[고생물학자의 꿈을 키우다]

다섯 살이 되던 해 아버지와 함께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서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 렉스 골격을 보고 압도적인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은 굴드가 훗날 고생물학자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3

[인권 운동에 뛰어들다]

안티오크 대학교에서 지질학, 철학을 복수 전공으로 졸업했습니다.

이후 인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영국의 한 댄스홀에서 흑인 차별에 맞서 시위를 벌여 차별 철회를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1965

[데보라 리와 결혼]

안티오크 대학교에 다니며 사귄 데보라 리와 결혼하여 슬하에 두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1967

[하버드 대학교 교수로 임용]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하버드 대학교 지질학 교수 겸 비교 동물학 박물관의 무척추 고생물 학예사로 임용되었습니다.

1972

[진화론의 판도를 바꾼 '단속평형설' 발표]

닐스 엘드리지와 함께 생물 종이 상당 기간 안정적 상태를 유지하다 특정 시기에 급격히 종분화가 일어난다는 혁신적인 '단속평형설'을 발표했습니다.

이 이론은 기존의 계통점진이론에 반하는 것으로, 진화생물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세계 최초'로 현대 진화 이론에 중요한 수정을 가했습니다.

단속평형설은 굴드의 가장 큰 과학적 업적으로 꼽히며, 리처드 도킨스와 메이너드 스미스 등 저명한 생물학자들도 이 이론이 생물학에 미친 지대한 영향을 인정했습니다.

1975

[사회생물학에 대한 공개 비판]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의 사회생물학 이론이 '인간 사회와 행동을 결정론적으로 파악한다'고 비판하며, 리처드 르원틴 등과 함께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반박 공개 서한을 게재했습니다.

이는 사회생물학 논쟁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이 서한은 '다윈 전쟁'이라 불리는 학문적 논쟁의 주요 시작점 중 하나가 되었으며, 굴드는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결정적인 반론으로 굴절적응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1977

[진화발생생물학의 문을 열다]

두 종류의 달팽이 연구를 바탕으로 한 진화발생생물학 전공 서적인 《개체발생과 계통발생》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발생 과정의 이시성(heterochrony)에 주목하며 진화발생생물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78

['스펜드럴' 개념의 탄생]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대성당 방문 중 아치 사이의 '스펜드럴'(Spandrel: 부수적인 공간)에서 영감을 얻어 중요한 진화생물학적 개념을 구상했습니다.

이는 진화 과정에서 자연선택과 직접 관련 없이 발생한 부수적인 특징들이 생물의 중요한 기능이 될 수 있다는 이론으로 발전했습니다.

1979

[진화론 논쟁의 불을 지핀 '스펜드럴과 팡그로스 패러다임' 발표]

리처드 르원틴과 함께 진화생물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논문 《산 마르코 대성당의 스펜드럴과 팡그로스 패러다임》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은 모든 진화를 자연선택으로만 설명하려는 '적응주의자 프로그램'을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에 나오는 '팡그로스 박사'에 비유하며 비판했습니다.

이 논문은 '세계 최대' 인용 횟수 중 하나를 기록하며 진화생물학 논쟁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굴드의 스펜드럴 논문은 3,000회 이상 인용되며 그의 영향력을 입증했습니다. 이는 찰스 다윈과 조지 게일로드 심슨 다음으로 고생물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중 하나입니다.

1981

[창조론 논쟁의 최전선에 서다: 맥린 대 아칸소주 사건]

아칸소주에서 창조과학이 진화 이론과 동등하게 교육되어야 한다는 법에 반대하는 맥린 대 아칸소주 사건에 '최고'의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이 재판 결과,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닌 종교라는 판결이 내려져 법적 무효를 이끌어냈습니다.

굴드는 이를 계기로 과학과 종교가 서로 다른 영역을 다루는 '중첩되지 않는 권위'(NOMA) 개념을 수립했습니다.

이 판결은 창조론과 과학 교육의 분리라는 중요한 선례를 남겼습니다. 굴드는 이후 자신의 여러 저서에서 NOMA 개념을 발전시켜나갔습니다.

1982

[삶의 통계적 의미를 탐구하다]

복막 중피종 진단을 받고 여생이 8개월뿐일지 모른다는 소식에 《디스커버》에 〈중앙값은 메시지가 아니다〉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이 글에서 그는 통계적 평균이 어떤 대상을 추상화하는 도구일 뿐, 개개인의 다양성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치료 목적으로 대마초를 사용한 뒤 치료용 대마 사용을 옹호하게 됩니다.

[하버드 대학교 동물학 교수 승진]

알렉산더 임매뉴얼 아가시의 업적을 이어 하버드 대학교 동물학 교수로 승진했습니다.

1983

[미국 과학 진보 협회 회원]

과학 발전과 과학에 대한 대중적 이해의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미국 과학 진보 협회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1985

[고생물학회 대표 역임]

1986년까지 고생물학회의 대표를 역임했습니다.

1989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 회원]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1990

[진화 연구 학회 대표 역임]

1991년까지 진화 연구 학회의 대표를 역임했습니다.

1995

[론다 롤랜드 실러와 재혼]

조각가 론다 롤랜드 실러와 재혼했습니다.

1996

[뉴욕 대학교 교환 연구 교수 재직]

2002년까지 뉴욕 대학교의 빈센트 에스터 교환 연구 교수로 재직하며 생물학을 강의했습니다.

1997

[《심슨 가족》에 등장한 과학자]

인기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에피소드 〈회의론자 리사〉에서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고생물학자'로 묘사된 본인 캐릭터의 목소리를 직접 연기하며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섰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방영되기 이틀 전 사망한 굴드를 추도하는 내용이 2002년 《심슨 가족》 마지막 회 자막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1999

[미국 과학 진보 협회 회장 역임]

2001년까지 미국 과학 진보 협회의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2001

['올해의 인문주의자' 선정]

미국 인문주의 협회로부터 '올해의 인문주의자'로 선정되어 그의 학문적 성과와 사회적 기여를 인정받았습니다.

2002

[최후의 역작, 《진화 이론의 구조》 출간]

방대한 저작인 《진화 이론의 구조》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그의 유작이 되었으며, 리처드 도킨스는 이 책을 '학자로서 걸을 만한 눈부신 길'이라고 평했습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 영면에 들다]

폐암으로 고생하다 뉴욕시 맨해튼에서 60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2008

[사후에도 빛나는 학문적 업적: 다윈-월러스 메달 수상]

사후 런던 린네 학회로부터 그의 생전 학문적 업적을 기리는 '다윈-월러스 메달'을 수여받았습니다.

이는 그의 진화생물학 연구가 사후에도 '최고'로 인정받았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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