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암스트롱

인물, 우주비행사, 군인, 교수

num_of_likes 81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2- 01:28:43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닐 암스트롱
인물, 우주비행사, 군인, 교수
report
Edit

-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전설적인 우주비행사. - 해군 전투기 조종사 시험 비행사를 거쳐 NASA의 핵심 인재로 성장. - 1969년 아폴로 11호 선장으로 인류의 위대한 도약을 이루며 역사를 새로 썼다. - 은퇴 후에도 교육과 사고 조사에 헌신하며 국가에 봉사한 진정한 영웅.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930

[인류 달 착륙의 주인공, 세상에 나오다!]

미국 오하이오주 와파코네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비행기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며 하늘을 향한 꿈을 키웠다.

1948

[하늘을 향한 첫걸음, 명문대에 입학하다]

비행사의 꿈을 좇아 퍼듀 대학교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한 뒤, 곧바로 해군 항공대 지원을 위해 해군 비행학교에 진학했다.

1950

[전쟁 영웅이 되다, 한국 전쟁 참전]

학업을 잠시 멈추고 제트 조종사로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78차례 전투기를 출격하며 맹활약을 펼쳤다.

1953

[전쟁 영웅의 귀환]

한국 전쟁 정전협정 이후 조국으로 복귀했다.

1955

[파일럿의 꿈을 이루다]

비행학교를 졸업하고 고속 비행 기지에서 900회 이상 시험 비행사로 활약하며 화려한 경력과 경험을 쌓았다.

그의 탁월한 비행 실력은 이후 NASA 스카웃의 밑거름이 된다.

1962

[우주를 향한 운명적 부름, NASA에 스카웃되다]

그의 화려한 경력과 경험에 주목한 미항공우주국(NASA)은 그를 제2기 항공우주사로 스카웃하여 우주비행 적응 훈련에 돌입시켰다.

당시 미국과 소련의 치열한 우주 경쟁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1966

[우주에서 첫 임무 성공! 인류 최초 도킹의 역사 쓰다]

4년간의 우주비행 적응 훈련을 마치고 제미니 8호의 선장으로 첫 우주 비행에 나섰다.

D.R.

스콧과 함께 아제나 위성과 인류 최초로 도킹에 성공하며 우주 탐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969

[인류의 염원을 싣고, 달을 향해 출발하다]

아폴로 11호의 선장이 되어 버즈 올드린, 마이클 콜린스 비행사와 함께 플로리다주의 케네디 우주 기지를 출발, 인류 최초의 달 착륙이라는 역사적 임무를 시작했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다!”]

모선에 남은 마이클 콜린스와 헤어져 버즈 올드린과 함께 달 착륙선으로 '고요한 바다'에 착륙했다.

그는 이곳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디며 전 세계에 울려 퍼질 명언을 남겼다.

착륙 후 버즈 올드린과 함께 달 표면을 2시간 반 동안 탐사하며 모래와 암석을 모으고 지진계 등을 설치했다. 이 임무는 5일 뒤 무사히 지구로 귀환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당시 그의 나이는 39세였다.

1970

[위기의 NASA를 돕다, 아폴로 13호 사고 조사 참여]

NASA의 사고조사위원으로 아폴로 13호 사고 조사에 참여하며 전문성을 발휘했다.

1971

[NASA를 떠나 새로운 길을 걷다]

인류 최초의 달 착륙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후 NASA에서 사임했다.

1975

[명예로운 은퇴, 학자의 길을 걷다]

NASA를 공식적으로 은퇴한 후 신시내티 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로 부임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79

[교단에서의 마지막 강의]

신시내티 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직에서 퇴직하며 학자의 길을 마무리했다.

[대중에게 다가가다, 크라이슬러 광고 모델 발탁]

기업들의 유혹을 거절하다가 평직 성향의 비임원 영입을 수락, 크라이슬러 자동차 브랜드 광고에 출연하며 대중과의 접점을 넓혔다.

1986

[또 한 번의 위기에서 빛난 리더십, 챌린저호 사고 조사]

챌린저 우주왕복선 폭발 사고 조사 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임명되어 위원회를 이끌며 국가적 비극의 원인 규명에 기여했다.

2002

[공적 활동을 마무리하다]

달 착륙 이후 받은 국제적 관심에 대한 부담과 심장 질환 악화로 인해 모든 기업 경영에서 은퇴하며 공식 활동을 마무리했다.

2012

[인류의 영웅, 영원한 안식에 들다]

관상동맥 협착 증세로 심혈관계 수술을 받았으나 합병증으로 인해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미국 전역에서 국장을 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그의 유언에 따라 화장 후 유해는 대서양에 뿌려졌다.

마지막 국장이 치러진 전직 대통령 외 인물은 1964년 더글러스 맥아더 대장군이었다. 국장은 대통령 승인이 필요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