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텔러
물리학자, 핵물리학자, 수소폭탄 개발자, 과학 정책가, 맨해튼 계획 참여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10:20
수소폭탄의 아버지라 불린 20세기 핵 물리학의 거장. 맨해튼 계획을 시작으로 인류의 핵 시대 개척에 핵심적 역할 수행. 핵무기 개발과 활용을 평생 옹호하며 평화적 핵폭발 및 스타워즈 계획까지 지지. 동료 과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핵확산을 두고 격렬히 대립.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캐릭터의 실제 모델 중 한 명. 논쟁적 삶을 살며 현대사에 지대한 영향.
1908
[미래 핵 물리학 거장의 탄생]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부다페스트에서 유대계 미국 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훗날 '수소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며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926
1930
[물리학 박사 학위 취득]
라이프치히에서 현대 양자역학의 대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지도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으며 학문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1934
[나치 독일을 탈출하다]
유대인 구출 위원회의 도움으로 나치 독일을 탈출하여 잠시 영국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당시 유럽의 불안정한 정세와 그의 유대계 배경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1935
[미국 이주, 교육자의 길을 걷다]
미국으로 이주한 뒤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미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저명한 물리학자 조지 가모프를 만납니다.
1942
[인류 역사를 바꿀 '맨해튼 계획'에 합류]
브릭스 위원회에서 근무하며 인류 최초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에 전격 참여했습니다.
그는 핵분열을 넘어 핵융합을 이용한 핵폭탄, 즉 수소폭탄 개발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하며 핵 시대의 다음 단계를 예견했습니다.
1946
1950
[소련의 핵 도전에 맞서, 수소폭탄 개발에 다시 뛰어들다]
소련의 핵폭탄 개발 성공 소식에 로스 앨러모스로 돌아와 '수소폭탄' 개발 계획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동료 스타니스와프 울람과 함께 실제 작동하는 수소폭탄의 획기적인 설계를 제출하며 핵무기 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꿀 초석을 다졌습니다.
1952
[세계 최초 수소폭탄 '아이비 마이크' 성공!]
오늘날의 마셜 제도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수소폭탄인 '아이비 마이크'가 성공적으로 폭발했습니다.
이는 텔러의 비전과 노력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자, 핵무기 개발 경쟁의 새로운 서막을 알리는 세계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같은 해 로스 앨러모스를 떠나 새로 설립된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에 참여했습니다.
1954
[오펜하이머와의 비극적 대립, 과학계의 분열을 낳다]
보안 청문회에서 동료 과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비난하며 둘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습니다.
텔러는 핵무기 개발과 핵확산에 대해 오펜하이머와 극명한 의견 차이를 보였고, 오펜하이머가 공직에서 쫓겨나야 한다고 주장하며 과학계 내에서 소원한 관계를 자처했습니다.
텔러는 오펜하이머와 달리 정부의 수소 폭탄 개발을 강력히 지지했고, 모든 핵무기를 유엔의 관리하에 두자는 오펜하이머의 제안에도 회의적이었습니다. 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텔러는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의 종전 이후 행적을 증언하며 그를 비난했습니다. 이 사건은 텔러의 뜻대로 오펜하이머가 공직에서 축출되는 결과를 낳았으나, 텔러는 다른 과학자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1957
['평화적 핵폭발'의 강력한 주창자]
텔러는 핵무기의 평화적 용도를 끊임없이 주장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그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설득하여 석유 탐사, 운하 건설, 심지어 기상 조절에 핵폭발을 활용하는 '보습 기획'을 추진하게 했습니다.
이는 핵에 대한 그의 독특한 시각을 보여줍니다.
1958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 소장 역임]
1958년부터 1960년에 걸쳐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하며 핵 연구의 최전선에서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이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구소의 부소장으로도 근무했습니다.
1960
1964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모델이 되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4년 풍자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광기 어린 과학자 캐릭터의 실제 모델 중 한 명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그의 대중적 이미지와 핵 개발에 대한 인식을 반영합니다.
1975
[연구소 명예소장으로 퇴직]
공식적으로 퇴직 후 죽을 때까지 로렌스 리버모어 연구소의 명예소장으로 활동하며 핵 개발 정책에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또한 후버 연구소의 연구원으로도 임명되었습니다.
1980
['스타워즈 계획(SDI)'의 열렬한 옹호자]
로널드 레이건 정권의 '전략방위구상(SDI)', 일명 '스타워즈 계획'을 강력히 지지했습니다.
적국의 핵미사일을 요격하려는 이 비현실적이고 막대한 비용의 계획에 대해 수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텔러는 지치지 않는 핵 개발론의 옹호자로서 이 프로젝트를 끝까지 밀어붙였습니다.
1991
['평화에 대한 이해를 바꾼 공로'로 이그 노벨상 수상]
"평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꾸고자 한 평생의 노력"을 인정받아 1991년 이그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그의 핵 개발 옹호론이 지닌 역설적인 측면을 보여줍니다.
2003
[핵 시대를 마감하며 영면하다]
캘리포니아주 스탠포드에서 95세의 나이로 핵 물리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에드워드 텔러가 사망했습니다.
그의 삶은 20세기 핵 시대의 명암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2023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재조명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23년 전기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베니 사프디가 에드워드 텔러 역을 맡아 그의 삶과 로버트 오펜하이머와의 관계가 재조명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