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러더퍼드
물리학자, 화학자, 노벨상 수상자, 핵물리학의 아버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10:18
핵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방사능 법칙과 원자 내부 반응을 밝혀냈습니다. 알파 입자 산란 실험으로 원자 내부 구조에 대한 혁신적인 핵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인류 최초로 원자핵 분열을 성공시키며 양성자를 발견했고 1908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1871
[뉴질랜드 브라이트워터에서 태어난 물리학 천재]
7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스코틀랜드 출신 수레바퀴 제조인 아버지와 영국 출신 학교 영어 교사 어머니 밑에서 기술과 교육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1889
[캔터베리 대학교 장학생 입학]
16살에 넬슨 칼리지에 입학했습니다.
이듬해 장학금을 받고 웰링턴의 캔터베리 대학교에 진학하며 학문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1893
[최우수 성적으로 석사학위 취득]
캔터베리 대학교에서 수학과 물리학 석사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고주파 방전에 의한 철의 자기화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초기 연구 성과를 보였습니다.
1894
["이게 내가 캐는 마지막 감자다!"]
전자기학 연구로 학사 학위를 받은 후, 영국 대학원 장학금에 지원했습니다.
처음엔 떨어졌지만, 다른 지원자가 포기하며 결국 장학금을 받게 되었고, 감자를 캐다 이 소식을 듣고 "이게 내가 캐는 마지막 감자다!"라고 외치며 감자를 던진 일화는 유명합니다.
1895
[톰슨 경의 제자가 되다]
장학금을 받고 뉴질랜드를 떠나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 조지프 존 톰슨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전자기파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승의 무한한 신뢰를 받으며 역량을 마음껏 발휘했습니다.
1898
[알파파와 베타파 발견 및 맥길 대학교 교수 임명]
우라늄 방사에서 알파파와 베타파의 존재를 발견하고 그 성질을 밝혔습니다.
같은 해 캐나다 맥길 대학교의 교수직 제안을 수락하며 연구를 이어나갈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1900
["붕괴이론"의 탄생]
메리 뉴턴과 결혼했으며, 같은 해 프레더릭 소디와 함께 방사현상을 분자 반응이 아닌 원자 내부 반응으로 해석하는 획기적인 "붕괴이론"을 고안했습니다.
이는 기존 물질관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1902
[원자설에 도전한 방사능 붕괴 논문 발표]
프레더릭 소디와 함께 "방사선의 원인과 본질" 논문을 발표하여, 방사선이 원자 내부 붕괴에 의해 방출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는 모든 원소는 변하지 않는다는 존 돌턴의 원자설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물질관에 대변화를 일으켰습니다.
1903
1905
1907
[맨체스터 대학교 교수 임명 및 알파선 연구 성과]
영국으로 돌아와 맨체스터 대학교 물리학과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라듐 방사와 알파파를 계속 연구했으며, 알파선이 헬륨 원자라는 사실을 밝혀내는 중요한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1908
["나는 화학자로 변신했다!" 노벨 화학상 수상]
원소의 붕괴와 방사화학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수상 소식에 친구에게 "내가 물리학자에서 화학자로 전환한 것은 원소 변화보다 놀라운 일이다"라는 유머러스한 소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1909
[원자핵 존재를 암시한 알파 입자 산란 실험 시작]
한스 가이거, 어니스트 마즈든과 함께 금박에 알파 입자를 발사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대부분의 알파 입자가 금박을 통과했지만, 일부는 90도 이상 큰 각도로 산란하는 기이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물리적으로 어떤 물체가 충돌 후 90도 이상 각도로 튀어나오려면 충돌된 물체의 질량이 이 물체의 질량보다 커야 합니다. 이 결과는 원자 중심에 양전하가 뭉쳐 있을 것이라는 러더퍼드의 핵 개념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1910
[원자 내부 '핵' 개념 주장]
알파파 산란 연구를 통해 원자의 내부 구조에 대한 신개념인 '핵'을 주장했습니다.
이는 이후 러더퍼드 원자 모형으로 발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같은 해 토리노 과학원 브레사 상을 수상했습니다.
1911
[혁명적인 러더퍼드 원자 모형 제시]
가이거-마즈든 실험 결과를 토대로, 원자 가운데에 작지만 질량이 크고 양전하가 집중된 '핵'이 있으며, 작은 전자들이 그 둘레를 도는 새로운 원자 모형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당시 통용되던 톰슨의 원자 모형을 뒤엎는 혁명적인 발견이었습니다.
1913
[헨리 모즐리와 주기율표 연구 및 마테우치 메달 수상]
헨리 모즐리와 함께 음극선을 이용해 원자 번호에 따른 주기율표를 고안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같은 해 이탈리아에서 마테우치 메달을 수상했습니다.
1914
[기사작위 서임]
영국과학발전연합이 호주에서 정기회의를 가진 해에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받았습니다.
이전 서훈 대상자에서 빠졌던 러더퍼드였기에, 이는 그의 과학적 영향력을 인정받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1919
[세계 최초! 인공 원자핵 분열 성공]
방사성 원자의 붕괴 원리를 토대로, 핵에서 특정 입자를 방출시켜 원자를 변환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실현했습니다.
대기 중의 질소에 알파 입자를 충돌시켜 수소 원자핵을 방출시키고 산소를 생성하며 인류 최초로 인공 원자핵 분열을 이루어냈습니다.
같은 해 스승 톰슨 경의 뒤를 이어 케임브리지 대학교 캐번디시 연구소 소장직을 역임하게 됩니다. 이 연구소는 맥스웰, 레일리, 톰슨 등 당대 최고 물리학자들이 이끌어왔으며, 러더퍼드가 소장으로 있던 시절은 캐번디시 연구소의 전성기로 평가받습니다.
1920
[중성자 존재 예측]
양성자 간의 척력에 의한 핵 붕괴를 막는 '중성자'의 존재를 예측했습니다.
이 예측은 12년 후 제임스 채드윅에 의해 실제 발견으로 이어지며 원자핵 연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같은 해 영국 왕립과학연구소 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1922
1925
[메리트 훈장 수훈 및 왕립학회 학회장 역임]
영국의 최고 훈장 중 하나인 메리트 훈장(OM)을 수훈하며 국가적 영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1925년부터 1930년까지 왕립학회 학회장을 역임하며 과학계의 리더로서 활동했습니다.
이 시기 호주와 뉴질랜드를 방문하여 대중 강연을 통해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1931
[러더퍼드오브넬슨 남작 작위 수여]
뛰어난 과학적 업적과 국가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제1대 러더퍼드오브넬슨 남작'으로 승작되며 귀족 작위를 받았습니다.
1937
[핵물리학의 아버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잠들다]
1937년 10월 19일, 케임브리지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시신은 아이작 뉴턴, 켈빈 경 등 위대한 과학자들이 잠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어 영원히 기억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