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혁명

과학사, 혁명, 지적 운동, 계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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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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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 혁명, 지적 운동, 계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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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유럽을 뒤흔든 지적 대변혁! 고대 그리스 사상을 뛰어넘어 새로운 과학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로 시작해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으로 완성되며 인류의 우주관과 자연관을 송두리째 바꿨습니다. 세계 최초의 학술 단체 탄생과 인쇄술의 발전이 이 혁명을 가속화했으며 계몽주의 시대를 여는 사상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종교나 독단에 갇히지 않고 이성과 실험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근대 과학의 시작을 알린 인류사의 빛나는 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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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3

[코페르니쿠스, 태양중심설 선언]

폴란드의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간하며 우주의 중심이 태양임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신이 인간을 위해 우주를 만들고 지구가 중심이라는 기존의 '천동설'을 뒤집는 혁명적인 주장이었으며, 약 150년간 이어진 과학 혁명의 위대한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 주장은 신플라톤주의의 영향 아래 우주에 대한 적극적인 탐구와 새로운 체계 가능성을 열어주었으며, 기독교적 세계관에 큰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1601

[세계 최초 과학 단체, 린체이 아카데미 탄생]

이탈리아의 박학자 체시 공작의 후원으로 세계 최초의 과학 단체인 '린체이 아카데미'가 조직되었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포함한 32명의 과학자들이 모여 서로의 연구를 교환하고 토론하며 객관적인 지식 확보와 새로운 과학 활동 방식의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이는 과학자들이 고립된 개인 연구에서 벗어나 협력하는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아카데미는 과학자들의 개인적 실험을 경제적으로 후원하고 토론의 기회를 제공했지만, 부유한 개인의 의사에 따라 존속이 결정되는 단점도 있었습니다.

1630

[린체이 아카데미 해체]

세계 최초의 과학 단체인 린체이 아카데미가 설립자인 체시 공작의 사망으로 인해 해체되었습니다.

이는 과학 단체가 개인 후원에 의존할 경우 생기는 취약점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657

[피렌체 실험 아카데미 출현]

이탈리아 피렌체에 '실험 아카데미'가 설립되었습니다.

이 단체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으며 코페르니쿠스와 토리첼리의 제자들이 참여하여 실험을 중심으로 한 과학 활동을 수행했습니다.

1660

[영국 왕립학회 창립]

런던의 한 식당에 10여 명의 과학자들이 모여 '보이지 않는 대학교'라는 이름으로 영국 왕립학회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그레셤 대학에 모여 실험과 과학 이론을 토론하며 물리-수학적, 실험적 지식의 향상을 꾀했습니다.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왕립학회는 진정한 과학 단체의 시초로 평가받습니다.

왕립학회는 회원이 되는 데 자격 요건이 없었으며, 일정한 회비를 내고 자연 과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초기 회장은 브롱커 경이었고, 프란시스 베이컨의 영향을 받아 실험적 과학 증진에 힘썼습니다.

1665

[왕립학회, 《트랜스액선》 발행 시작]

영국 왕립학회가 전문 학회지인 《트랜스액선(Philosophical Transactions)》을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과학 논문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지식의 확산을 촉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현대 학술지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학회는 회원들의 논문을 이 학회지에 실어 보급했으며, 농작 기구 개선 등 다양한 분야의 실험적 연구 결과를 다루었습니다.

1666

[프랑스 왕립 과학 아카데미 설립]

프랑스 파리에 '왕립 과학 아카데미'가 설립되었습니다.

영국 왕립학회와 달리 회원 수가 16명으로 정해진 소수 정예 직업 과학자 집단으로, 왕으로부터 급여를 받으며 국가적 과학 문제 해결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는 국가 후원 과학 연구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아카데미는 네덜란드의 호이겐스, 덴마크의 뢰머 등 외국인 과학자들도 참여시켰으며, 1m 길이의 정확한 표준을 정하기 위한 탐사 등 방대하고 조직적인 연구 성과를 냈습니다. 그러나 왕의 절대 권한 부여로 인해 대표의 취향에 따라 특정 분야만 발전하는 취약점도 있었습니다.

1687

[뉴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출간하며 과학 혁명 종결]

아이작 뉴턴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출간하며 과학 혁명을 종결시켰습니다.

뉴턴은 '만유인력'이라는 단일한 힘으로 천상계와 지상계의 운동을 동일한 법칙으로 설명하여 '뉴턴 종합'을 이루었으며, 수학적·합리적 방법과 실험적·경험적 방법을 융합한 과학적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근대 과학의 중요한 방법론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뉴턴의 성공은 18세기 과학자들에게 자연계의 힘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를 촉발했으며, 화학, 전기, 자기, 생명과학, 사회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쳐 '뉴턴 과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확립했습니다. 뉴턴 과학은 이후 계몽주의 사상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1703

[아이작 뉴턴, 왕립학회 회장 역임]

과학 혁명의 대미를 장식한 아이작 뉴턴이 영국 왕립학회의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이는 과학적 성과와 사회적 위상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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