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본위제
화폐 제도, 경제 정책, 국제 금융, 통화 시스템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10:09
금본위제는 화폐 가치를 일정량의 금에 고정하는 통화 제도로 금화 본위제와 금지금 본위제로 나뉩니다.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어 세계 주요 통화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으나 1차 대전과 대공황을 겪으며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후 브레튼 우즈 체제를 통해 이어졌지만 1971년 미국의 금 태환 정지로 역사적인 막을 내렸습니다. 이 제도는 국제 무역 안정에 기여했지만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는 한계도 보였습니다.
- 인류, 금을 화폐로 처음 사용하다
- 영국 기니금화 가치 고정, 복본위제 형성의 계기
- 영국, 세계 최초로 금본위제 도입 선언
- 영국 필 은행 조례, 금본위제 확고히 정착
-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 발발
- 골드 러시, 전 세계 금본위제 확산의 촉매가 되다
- 호주 골드 러시 발발
- 금본위제, 국제 통화 체제의 핵심으로 부상
- 1차 세계대전 발발, 금본위제 일시 중단
- 미국, 금본위제로 다시 복귀
- 영국, 금지금본위제 형태로 금본위제 복귀
- 세계대공황 발발, 금본위제 붕괴 가속화
- 브레튼 우즈 체제 시작, 금본위제 재개
- 미국 금 태환 정지, 금본위제 시대의 종말
BC 6C
[인류, 금을 화폐로 처음 사용하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소아시아 지역에서 금이 화폐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금은 그 희소성과 안정적인 가치로 인해 일찍이 중요한 교환 수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기원전 600년경 소아시아(Asia Minor)에서 금이 화폐로 사용되기 시작하며, 이는 금이 화폐로서 널리 수용되는 형태의 시초가 됩니다. 하지만 18세기 이전까지 금이 단일 통화나 계산 단위로 사용되는 경우는 없었으며, 1천 년 동안 많은 국가에서 은이 경제의 실질적 기초로 기능했습니다.
1704
[영국 식민지에 금본위제 도입 선언]
영국 앤 여왕의 칙유 선포를 통해 영국령 서인도에 명목상의 금본위제가 도입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영국의 중상주의 정책으로 인해 금 통화의 실제 유통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영국의 중상주의 정책은 식민지에서 금은을 본국으로 가져와 축적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식민지에서의 금 통화 및 금본위제는 널리 확산되지 못했습니다. 실제 식민지에서의 일상 교환 수단은 주로 스페인 은 달러였습니다.
1717
[영국 기니금화 가치 고정, 복본위제 형성의 계기]
영국에서 순금 7.6885g의 기니금화가 21실링으로 고정되었습니다.
이는 금은 태환율을 15.2로 설정한 것으로, 유럽 대륙보다 높은 비율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영국은 금이 은과 함께 유통되는 복본위제 체제를 겪게 됩니다.
이 비율은 당시 유럽 대륙의 태환율에 비해 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평가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영국에서는 깎아낸 은화보다 신뢰도 높고 저렴한 금이 은과 함께 운용되는 사실상의 복본위제가 시작되었으며, 정량 은화는 유통되지 않고 유럽으로 유출되었습니다.
1816
[영국 대주조개혁 단행]
영국에서 '대주조개혁'이 단행되어, 보조 법폐로서 은화의 발행이 제한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이후 금본위제로의 공식적인 전환을 위한 중요한 단계 중 하나였습니다.
1819
[영국, 세계 최초로 금본위제 도입 선언]
영국이 '현금 지급 재개 조례'를 통해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선언하며, 세계 최초로 국가 단위의 금본위제가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영란은행 발행 은행권의 금소버린 태환은 1823년부터 재개되었습니다.
이 조례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영국이 안정적으로 금본위제를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습니다. 이는 국제 통화 체제로서 금본위제가 자리 잡는 중요한 시작점이었습니다.
1844
[영국 필 은행 조례, 금본위제 확고히 정착]
'필 은행 조례'가 통과되며 영국 내 금본위제가 확고히 정착되었습니다.
이 조례는 영란은행이 비축한 금 보유량에 비례하여 은행권을 발행하도록 규정하고, 다른 은행의 은행권 발행 특권을 강력히 억제했습니다.
이로써 영국은 금소버린은 물론, 금소버린 또는 영란은행 발행 은행권으로 동등한 액면가에 태환 가능한 은행권을 통용시키는 방식으로 호주, 뉴질랜드, 영국령 서인도에도 금본위제를 도입하게 됩니다.
1849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 발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막대한 양의 금이 발견되면서 대규모 '골드 러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 금 공급량을 크게 늘려 국제 통화 체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1850
[골드 러시, 전 세계 금본위제 확산의 촉매가 되다]
캘리포니아와 호주의 골드 러시로 세계 금 공급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1850년대에는 프랑스와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금본위제 전환 압력을 받았습니다.
1850년대와 1860년대에는 포르투갈과 일부 영국 식민지에서도 금본위제를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19세기 말 국제 금본위제 확립의 중요한 모멘텀을 제공했습니다.
이 시기 영국과 프랑스는 세계 금융 주도 국가이자 산업 국가로 성장했고, 미국은 떠오르는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영향력은 금본위제의 국제적 확산을 더욱 가속화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1851
[호주 골드 러시 발발]
호주에서도 대규모 금이 발견되어 '골드 러시'가 발생했습니다.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와 함께 전 세계 금 공급량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많은 국가가 금본위제로 전환하는 데 강력한 압력으로 작용했습니다.
1865
[라틴 통화 연합 창설]
프랑스의 주도하에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가 참여하는 '라틴 통화 연합'이 창설되었습니다.
이는 금프랑과 은프랑에 기반한 복본위제를 유지하려는 시도였으나, 국제 금본위제 확산 추세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1867
[캐나다 금본위제 도입]
캐나다가 미국 금달러와 동등한 액면가로 태환 가능하며 금소버린과의 고정 태환율을 가진 금달러를 도입하며 금본위제를 채택했습니다.
1870
[금본위제, 국제 통화 체제의 핵심으로 부상]
1870년대부터 금본위제가 전 세계 국제 통화 체제의 핵심 기반으로 확고히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19세기 후반 세계 경제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습니다.
1914
[1차 세계대전 발발, 금본위제 일시 중단]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각국은 막대한 전비 조달을 위해 통화 발행량을 급격히 늘리고 금 태환을 중지하며 금본위제에서 이탈했습니다.
이로 인해 전간기에는 변동환율제가 운영되는 혼란을 겪었습니다.
1919
1925
[영국, 금지금본위제 형태로 금본위제 복귀]
영국이 금화 유통 없이 중앙은행이 금괴를 보유하고 필요시 태환에 응하는 '금지금본위제' 형태로 다시 금본위제로 복귀했습니다.
1929
[세계대공황 발발, 금본위제 붕괴 가속화]
세계대공황이 발생하자 각국은 자국 무역 보호를 위해 경쟁적으로 통화 평가절하를 단행하며 금본위제에서 대거 이탈했습니다.
이는 금본위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고, 국제 통화 시스템에 큰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1944
[브레튼 우즈 체제 시작, 금본위제 재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통화 질서 안정을 위해 '브레튼 우즈 체제'가 수립되었고, 이를 통해 금지금본위제는 다시 지속되었습니다.
미국 달러가 금에 고정되고 다른 통화들은 달러에 고정되는 새로운 국제 통화 시스템이었습니다.
1971
[미국 금 태환 정지, 금본위제 시대의 종말]
미국이 달러의 금 태환을 정지하며 사실상 금본위제를 포기했습니다.
이는 브레튼 우즈 체제의 종결을 의미하며, 전 세계는 금본위제 시대의 막을 내리고 변동환율제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