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사상
공산주의 사상, 마르크스-레닌주의, 정치 철학, 혁명 이론, 반수정주의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9:58
마오쩌둥 사상: 중국 공산주의 혁명의 심장!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중국 현실에 맞춰 독창적으로 발전시킨 사상입니다. 산업화가 미진한 신식민지 국가들에 새로운 혁명의 길을 제시하며 소련의 수정주의에 맞서 제3세계 공산주의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인민 내부의 모순 지구전 신민주주의 같은 개념으로 세계 혁명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 중국 공산당 창립과 마오쩌둥의 혁명 동력 탐색
- 마오쩌둥, 통일전선 혁명 이론 구상
- 코민테른, 중국 혁명 성격 규정
- 마오쩌둥, 『당내의 그릇된 사상을 시정하는 문제에 대하여』 발표
- 코민테른, 중국 혁명 단계를 인민민주주의로 규정
- 일본의 중국 침략과 항일 연합 전선 형성
- 마오쩌둥, 『지구전론』 발표
- 옌안 정풍운동과 마오쩌둥 사상 전면화
- 중국 공산당, 마오쩌둥 사상을 당의 공식 지침으로 채택
- 중화인민공화국 건국과 신민주주의 단계론
- 김일성, 흐루쇼프의 탈스탈린화에 반대하며 마오쩌둥 사상 지지
- 마오쩌둥, '인민 내부의 모순' 개념 제시
- 대약진 운동 시작
- 마오쩌둥, 흐루쇼프의 수정주의 정책 비판
- 문화대혁명 발발 및 북중 관계 악화
- 네팔, 마오주의자 지도 하에 공화정 전환 성공
1921
[중국 공산당 창립과 마오쩌둥의 혁명 동력 탐색]
1921년 7월 중국 공산당이 건립되었고, 마오쩌둥은 중국 혁명의 동력이 될 수 있는 요소를 탐색하며 자신만의 이론적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1925
[마오쩌둥, 통일전선 혁명 이론 구상]
마오쩌둥은 저서 《중국의 사회 각 계층 분석》을 기점으로 광범위한 통일 전선의 성격을 갖는 혁명 이론을 구상하며 그의 사상 발전에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1928
[코민테른, 중국 혁명 성격 규정]
코민테른이 〈12월 테제〉를 통해 중국 혁명의 성격을 사회주의 혁명이 아닌 민주주의 혁명으로 규정했습니다.
이는 당시 중국의 낮은 산업 발전 수준과 신식민지 상황을 반영한 결정으로, 마오쩌둥 노선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1929
[마오쩌둥, 『당내의 그릇된 사상을 시정하는 문제에 대하여』 발표]
마오쩌둥은 『당내의 그릇된 사상을 시정하는 문제에 대하여』를 발표하며 천두슈, 취추바이, 리리싼, 왕밍 노선 등 당내의 잘못된 경향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혁명가들이 피해야 할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1930
[마오쩌둥, 『서책주의를 반대하자』 발표]
마오쩌둥이 『서책주의를 반대하자』를 발표하며 소련 유학파의 기계적인 마르크스주의 해석인 '서책주의'를 비판하고, 현실에 기초한 실질적인 조사와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1934
[코민테른, 중국 혁명 단계를 인민민주주의로 규정]
코민테른이 중국 혁명 단계를 인민민주주의 혁명으로 규정하면서, 사회주의 혁명을 고집하던 교조주의자들과의 논쟁에서 마오쩌둥의 노선이 승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35
[마오쩌둥,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전술에 대하여』 발표]
마오쩌둥이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전술에 대하여』에서 통일전선에 기반한 인민정부 수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당내 교조주의적 소비에트 노선을 재차 비판하며 자신의 전략적 우위를 확고히 했습니다.
1937
[일본의 중국 침략과 항일 연합 전선 형성]
일본의 중국 침략이 시작되자, 마오쩌둥은 중국 사회의 주요 모순을 반국민당 투쟁에서 항일 투쟁으로 과감히 전환하고, 국민당과의 항일 연합 전선을 형성하여 민족적 위기에 대응했습니다.
1938
[마오쩌둥, 『지구전론』 발표]
마오쩌둥이 그의 독창적인 군사 이론서 『지구전론』을 발표했습니다.
이 이론은 군사적 열세 속에서도 농촌에 기반한 게릴라전과 인민의 지지, 그리고 유동적이고 신축적인 해방구 운영을 통해 적을 소모시키는 장기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1941
[마오쩌둥, 『우리 학습의 개조』 발표]
마오쩌둥은 『우리 학습의 개조』를 통해 주관주의와 서책주의를 비판하며, 혁명가가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깊이 이해하고 실천적 조사를 통해 현실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1942
[옌안 정풍운동과 마오쩌둥 사상 전면화]
옌안 정풍운동을 통해 마오쩌둥은 《당정풍론》을 발표하며 당내 우경투항주의와 극좌모험주의를 배척하는 대대적인 쇄신을 단행했고, 이를 통해 마오쩌둥 사상이 중국 공산당의 핵심 지침으로 전면에 부상했습니다.
1945
[중국 공산당, 마오쩌둥 사상을 당의 공식 지침으로 채택]
중국 공산당 제7차 전당대회에서 '마오쩌둥 사상'을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중국 혁명의 실천을 통일한 당의 모든 지침으로 공식 채택했습니다.
이는 마오쩌둥 사상의 위상을 확고히 한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1946
[남조선로동당, 마오쩌둥 사상 수용]
1946년 남조선로동당이 설립되면서 마오쩌둥 사상을 당의 주요 이념 중 하나로 수용했고, 이는 해방 직후 남한의 좌익 운동에 중요한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1947
[남한 지역 내 마오쩌둥 서적 대규모 출판]
1947년부터 남한 지역에서 마오쩌둥의 저서들이 대규모로 출판되기 시작하며, 남조선로동당을 비롯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 사이에서 마오쩌둥 사상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크게 확산되었습니다.
1948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좌익 탄압 시작]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이후 좌익 당파에 대한 대규모 탄압이 시작되었고, 이로 인해 남한 내 마오쩌둥 사상과 관련된 세력은 제도권에서 큰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1949
[중화인민공화국 건국과 신민주주의 단계론]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고, 마오쩌둥은 이를 사회주의 혁명이 아닌 자신의 독창적인 '신민주주의 혁명'의 산물로 규정했습니다.
이는 당시 중국의 특수한 현실을 반영한 세계 최초의 단계론적 혁명 모델이었습니다.
1953
[스탈린 사망과 북한 내 마오쩌둥 사상 위상 증대]
이오시프 스탈린 사망과 한국전쟁 휴전 이후 북한 내 소련의 입지가 점차 감소하면서, 김일성 정권은 마오쩌둥 사상에 대한 관심을 높이며 새로운 국제적 연대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전쟁 종전과 남한 사회주의 몰락]
한국전쟁 종전 이후에도 남한 지역에서는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강력한 탄압이 계속되면서, 마오쩌둥 사상을 포함한 사회주의 이념은 사실상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1954
[중국 헌법 개정 및 사회주의 발전 단계 내용 추가]
중화인민공화국은 1954년 헌법 개정을 통해 사회주의 발전 단계에 대한 예비적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이는 신민주주의 단계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 과정을 법적으로 명시한 중요한 조치였습니다.
1955
[김일성, 자신을 마오쩌둥과 동등한 위상으로 격상 시작]
김일성은 1955년부터 자신을 마오쩌둥과 동등한 위치로 격상시키려는 시도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북한 내부에서 김일성 개인의 권위와 독자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이었습니다.
1956
[김일성, 흐루쇼프의 탈스탈린화에 반대하며 마오쩌둥 사상 지지]
니키타 흐루쇼프의 탈스탈린화 정책에 김일성이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며 마오쩌둥 사상의 반수정주의적 요소에 동의했습니다.
이는 북한이 소련 중심의 외교에서 마오쩌둥과의 친밀함을 우선시하게 된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957
[마오쩌둥, '인민 내부의 모순' 개념 제시]
마오쩌둥은 1957년 논문 《인민 내부의 모순을 정확히 처리하는 문제에 관하여》를 통해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적대적 모순인 '인민 내부의 모순' 개념을 제시하며, 이를 해결하는 것이 사회주의 발전의 핵심임을 강조했습니다.
1958
[대약진 운동 시작]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생산력 증강 정책인 '대약진 운동'이 마오쩌둥의 신민주주의론에 기초하여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중국의 자력 발전을 위한 야심 찬 시도였으나, 이후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1964
[마오쩌둥, 흐루쇼프의 수정주의 정책 비판]
마오쩌둥이 흐루쇼프를 '사회제국주의'로 강력히 비판하는 논평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소련의 수정주의 정책이 자본주의 세력의 성장을 촉진한다고 지적하며 중소분쟁의 이념적 대립을 첨예하게 드러냈습니다.
1966
[문화대혁명 발발 및 북중 관계 악화]
마오쩌둥이 사회주의 국가 내 '계속혁명론'에 입각하여 '문화대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해 홍위병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김일성 비판까지 이어지면서, 한때 긴밀했던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흑표당 창당 및 마오쩌둥 사상 수용]
미국의 흑인해방운동 단체인 흑표당이 창당되면서 마오쩌둥 사상의 일부를 수용했습니다.
이는 마오쩌둥 사상이 아시아를 넘어 서구 사회의 다양한 해방 운동에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줍니다.
1972
[주체사상 등장과 마오쩌둥 사상의 위상 약화 (북한)]
김일성의 독자적인 이념인 주체사상이 1972년에 공식 등장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 마오쩌둥 사상의 직접적인 영향력은 크게 퇴색하고 주체사상이 북한의 핵심 이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1980
[1980년대 남한 운동권, 마오쩌둥 사상 재도입]
1980년대 초반, 대한민국 운동권의 일부 급진적 정파들이 마오쩌둥 사상을 재해석하여 국내에 도입하며 한동안 주목을 받았고, 사회주의 이념의 재활성화를 시도했습니다.
[남한 지식인, 마오쩌둥 사상 영향으로 주체사상파 및 민중민주파 형성]
1980년대 중반, 마오쩌둥 사상의 영향을 받은 남한 지식인들이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동조하는 주체사상파를 형성하거나, 민중민주파를 결성하며 그 사상적 영향력이 다양한 형태로 분산되었습니다.
1990
[남한 좌익 진영 내 마오쩌둥 사상 몰락]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 대한민국 운동권이 쇠퇴하면서, 좌익 진영 내 마오쩌둥 사상은 사회민주주의나 제3의 길 등 다른 이념들에 밀려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1991
[소련 붕괴 후에도 이어진 마오쩌둥 사상의 영향력]
1991년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에도 마오쩌둥 사상은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의 공산주의 운동에서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하며 독자적인 이론으로 재평가되었습니다.
1999
[크메르 루주 수뇌부 항복 및 소멸]
극단적인 공산화 정책으로 수많은 인명 피해를 초래했던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 수뇌부가 1999년 현 캄보디아 정부에 항복을 선언하며 사실상 소멸했습니다.
2008
[네팔, 마오주의자 지도 하에 공화정 전환 성공]
네팔 공산당(마오주의 센터)의 지도 아래 네팔이 2008년 성공적으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이는 마오주의 사상이 국가 체제 변혁을 이끈 세계적인 성공 사례로 기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