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
국가 이념, 사회주의, 김일성주의, 전체주의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9:56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조선로동당의 공식 이념. 김일성에 의해 시작 김정일에 의해 이론적 체계가 완성된 것으로 평가됨.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인간중심 철학이 핵심. 사상·정치·경제·국방에서 주체·자주·자립·자위를 원칙으로 삼음. 수령의 절대적 지도와 개인숭배를 정당화한다는 비판을 받음. 군사력 집중과 경제난 등 현실적 문제로 인해 비판의 대상이 됨.
1930
[주체사상, 그 태동의 시작]
김일성이 지린성 창춘 카륜 회의에서 연설 '조선혁명의 진로'를 발표하며 주체적 입장을 천명했습니다.
이는 훗날 주체사상의 뿌리가 된 중요한 순간으로, 당시 조선 혁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이 연설에서 김일성은 당시 조선의 특수성을 고려한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론'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식민지 조선을 봉건제와 자본주의가 혼재된 '식민지반봉건사회'로 규정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 속에서 조선의 내재적 발전 가능성이 억제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마오쩌둥 사상의 신민주주의혁명론과 유사한 맥락을 가집니다.
1932
[세계 최초의 무장 항일 유격대 창설]
김일성을 중심으로 타도제국주의동맹이 주축이 되어 조선인민혁명군을 조직했습니다.
이는 통일전선에 기반한 세계 최초의 무장 항일 유격대로서, 중국공산당의 지원을 받으며 항일 투쟁의 선봉에 섰습니다.
1948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이는 훗날 주체사상이 국가의 공식 이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기반이 마련된 중요한 역사적 순간입니다.
1955
['주체' 용어 공식 첫 등장]
김일성은 당 선전선동원대회에서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연설을 했습니다.
이 연설에서 '주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공식 사용되었으며, 훗날 반대 세력 숙청의 명분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김일성은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유일지도체계를 포기하고 수정주의 노선을 걷는 것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국내에서 발생한 '8월종파사건'과 같은 정변 시도를 겪으면서 인민민주독재 체제를 더욱 강화하려는 의도를 가졌습니다.
1956
[독자 노선 구축의 사회역사적 배경]
소련의 스탈린 격하 사건과 수정주의 노선에 대해 북한과 중국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소련 및 중국과 다른 독자적인 사회주의 이념인 주체사상을 정립하게 되는 중요한 사회역사적 배경이 됩니다.
당시 소련이 위성국의 정치에 간섭하고 수정주의 노선을 따르게 하면서 김일성과 김정일은 이를 공산주의 운동의 해악으로 보았습니다. 이에 맞서 독자적인 정치 노선, 즉 '정치에서의 자주'를 내세울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1960
['청산리 방법' 제시로 현장 중시]
김일성이 평안남도 강서군 청산리에서 현지 지도를 하며 '청산리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간부들이 현장에 직접 내려가 실정을 파악하고, 군중의 요구를 반영하며, 정치사업을 앞세워 대중의 적극성을 이끌어내는 것을 핵심으로 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 '청산리 방법'을 헌법 전문에 명기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는 단순히 행정적 지시가 아닌, 인민대중의 요구에 기반한 혁명 지도를 강조하는 주체사상의 실천적 방법론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61
['대안사업체계'로 경제 관리 혁신]
김일성이 남포의 대안 전기공장을 현지 지도하며 '대안사업체계'를 확립했습니다.
이는 공장 당 위원회가 최고 결정 기관이 되어 집체적으로 공장을 관리하고, 중앙에서 자재를 집중 공급하며, 노동자 생활을 책임지는 후방 공급 체계를 갖추는 등 사회주의 경제 관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이 체계는 산업 시설 운영에서 당의 주도성을 강화하면서도, 공장과 노동자의 일체감을 높이고 노동자의 전 생활과정을 긴밀하게 결합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이는 사회주의 체제의 고유한 문제점들을 해결하려는 목적을 가졌습니다.
1965
[주체사상 4대 원칙 공식화]
김일성이 인도네시아 알리 아르함 사회과학원에서 연설하며 주체사상의 핵심인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라는 4대 원칙을 천명했습니다.
이는 주체사상이 이론적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중요한 순간입니다.
김일성은 이 연설에서 "우리 당이 일관하게 견지하고 있는 입장"이라고 강조하며, 주체사상이 단순한 슬로건이 아닌 당의 확고한 지도 원칙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1967
[김일성 개인숭배 운동 본격화]
조선로동당 4기 16차 전원회의 이후,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와 개인숭배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주체사상이 수령의 절대적 지위를 강조하며 독재 체제를 합리화한다는 비판을 받는 주요 근거가 됩니다.
주체사상 비판론자들은 이러한 개인숭배가 '혁명적 수령관'과 결합하여 주체사상이 본래 내세우던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주체성을 잃고 일인독재 체제의 도구로 변질되었다고 지적합니다.
1972
[주체사상, 헌법에 명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에 주체사상이 명문화되었습니다.
이는 주체사상이 국가의 공식 이념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음을 의미하며, 이 시기부터 김정일 후계 체계 준비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헌법 명문화는 주체사상이 단순한 당 이념을 넘어 국가 통치의 근본 원칙이 되었음을 상징합니다. 이는 김일성에서 김정일로의 권력 승계 과정에서 이념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1982
[김정일, '주체사상에 대하여' 발표]
김정일이 논문 '주체사상에 대하여'를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은 일반적으로 주체사상의 핵심 이론이 완성된 것으로 평가되며, 김정일의 사상 지도를 통해 주체사상의 이론적 종합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이 논문은 주체사상의 '철학 원리', '사회역사 원리', '지도 원칙' 등 사상의 주요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정립했습니다. 특히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철학적 원리를 깊이 있게 다루며 인간 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을 강조했습니다.
[주체사상탑 완공으로 사상 상징물 건립]
평양에 주체사상탑이 완공되었습니다.
이 탑은 주체사상의 상징물로서 사상의 위상을 높이고 대내외에 그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건설되었습니다.
1985
['위대한 주체사상 총서' 발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총 10권에 달하는 '위대한 주체사상 총서'를 발간했습니다.
이는 주체사상 이론을 보다 광범위하게 보급하고 체계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2012
['김일성-김정일주의' 시대 개막]
개정된 조선로동당 당헌에 '김일성-김정일주의'라는 표현이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이는 김정일의 선군정치와 결합된, 전일적 체계로서의 주체사상을 의미하며, 김정은 시대의 이념적 토대가 됩니다.
이 명칭은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김정일의 선군정치가 결합하여 새로운 단계의 공식 이념으로 발전했음을 상징하며, 두 지도자의 사상을 통합하여 체제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보여줍니다.
2016
[조선 혁명 단계 재규정]
개정된 조선로동당 당규에서 조선 전체의 혁명을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으로 규정했습니다.
이는 남조선 혁명의 성격과 목표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입장을 다시 한번 명확히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