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 이념, 사회주의, 공산주의, 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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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시프 스탈린이 정립한 레닌주의에 기반한 경제 사회 정치 철학 이론으로 소비에트 연방에서 유래한 20세기 사회주의의 한 갈래이다. 계획 경제 집산화 전위당론 민족 해방 운동 지원 등을 특징으로 하며 평등 실현과 빈곤국 성장에 기여했으나 관료주의 권위주의 전체주의 등으로 비판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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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

[『독일 이데올로기』 출판]

카를 마르크스가 저서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청년헤겔주의를 비판하고 생산관계에 의해 발전되는 미래 사회를 논함.

마르크스는 이 책에서 언어가 각 사회 환경에 따라 특정한 논리를 갖추고 있음을 인정하며, 언어 활동이 인간 스스로가 사회적 활동과 연계해 사용하는 일반적인 논리 활동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언어결정론적 입장에는 반대했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 변증법과 유물론의 기초를 다졌으며, 물질과 의식 사이의 합법칙성 규명은 부족했지만, 자연물의 기계적 속성을 인식하고 물질의 운동성을 규명하려는 시도가 담겼다.

1848

[『공산당 선언』 출판]

『공산당 선언』이 출판되며 카를 마르크스가 제시한 '공산주의' 개념이 명확해짐.

공산주의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극복된 사회를 의미한다고 정의됨.

이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견지에서 일반적으로 공산주의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극복된 사회를 의미하게 되었으며,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청산하는 시기인 프롤레타리아 독재 기간을 상정했으나, 구체적인 사회 모습은 논하지 않아 후대 공산주의자들의 논쟁을 촉발했다.

1850

[영국의 제국주의 단계 진입 (추정)]

영국이 인도를 서서히 지배하기 시작하며 제국주의 단계로 본격적으로 진입함.

레닌은 1850년대부터 영국이 제국주의 단계로 나아갔다고 분석했다.

레닌은 대륙 유럽의 경우 1860년대 말 식민지 팽창을 시작한 프랑스를 기점으로 제국주의 단계로 나아갔다고 보았으나, 이 시기는 여전히 제국주의 포화 상태는 아니었으며, 카를 마르크스가 이 시기에 세계혁명론을 주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분석했다.

1860

[프랑스의 제국주의 단계 진입 (추정)]

프랑스가 식민지 팽창을 시작하며 대륙 유럽의 제국주의 단계 진입을 알림.

레닌은 이 시기를 제국주의 포화 상태 이전으로 보았고, 카를 마르크스가 세계혁명론을 주장한 배경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1871

[파리 코뮌 진압]

파리 코뮌이 진압됨.

레닌은 이를 '자본주의세계의 공고한 연합'에 의해 일국혁명이 진압된 사건으로 분석하며, 불균등 발전법칙이 약화되지 않은 시기의 한계로 보았다.

레닌은 이후 제국주의 팽창이 극에 달하면서 제국주의국가 간의 경쟁이 시작되면 협력 관계가 사라지고, 자본 경쟁이 극에 달해 세계 재분할 시도로 이어지며 '약한 고리'에서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895

[『일원론적 역사관의 발전』 출판]

게오르기 플레하노프의 저서 『일원론적 역사관의 발전』이 출판됨.

이 저서는 레닌의 철학적 관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의 기계론적 해석을 차단했다.

플레하노프의 반영론은 기계적 운동과 인간의 의식적 사유를 나누면서 의식은 물질로부터 도출되며, 물질의 모순 정도가 의식의 성격을 규정한다고 보았다. 이 의식성을 통해 계급의 일반성을 정의하고, 계급투쟁을 모순 최소화의 목적의식적인 투쟁으로 보았다.

1905

[『사회주의와 종교』 출판]

블라디미르 레닌이 『사회주의와 종교』를 통해 종교의 기만성을 비판하고 정치와 종교의 완전한 분리를 주장함.

레닌은 러시아 역사를 되짚으며 동방정교회와 국가 법 체계의 밀접한 연관이 인민에게 야만적이었음을 지적했다. 또한 그는 낡은 생산관계를 청산하려는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과학에 기반한 무신론과 반(反)과학에 기반한 유신론 사이의 투쟁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1907

[『농업문제와 소위 '마르크스비판'』 완료]

블라디미르 레닌이 『농업문제와 소위 '마르크스비판'』(사회민주주의의 농업강령) 저술을 완료하고 농민의 혁명성을 인정하며, '농촌 프롤레타리아'와 '농촌 부르주아'를 분류해 빈농과의 협력을 추구함.

레닌은 '자본주의 농업 발전의 두 가지 길' 이론을 제시하여 농민도 프롤레타리아와 같은 역사성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인민주의자들의 농업 발전 거부론과 멘셰비키의 농본주의 비판을 반박하며 농업 구조 변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08

[『마르크스주의와 수정주의』 출판]

블라디미르 레닌이 저서 『마르크스주의와 수정주의』를 통해 소부르주아와 소소유자층이 자본주의에 의해 불가피하게 프롤레타리아 대열로 내던져진다는 점을 언급하며, 노동자, 빈농뿐 아니라 영세자영업자, 지식인에게도 혁명성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함.

레닌은 이 책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부르주아적 세계관이 노동자 대열 내에서 계속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 인식 이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단순 경제주의적 접근의 한계를 비판하는 배경이 되었다.

1909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완료]

블라디미르 레닌이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저술을 완료함.

이 저서는 마르크스주의 인식 이론을 과학적으로 정립하려는 노력의 결실로, 경험주의 사조를 비판하고 마르크스주의의 근간인 변증법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레닌은 이 저서에서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유행하는 절충주의, 경험주의 주장을 비판했으며, 특히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의 경험일원주의를 가장 큰 비중으로 논파했다. 그는 모든 행동이 감각인지로부터 파생된 것이라면 역사적 법칙이 존재할 수 없다고 반박하며, 인간이 성숙한 인식을 통해 물자체를 알 수 있고, 이 의식은 경험된 '불완전한 인지'를 비판하고 종합하여 형성된다고 보았다.

1910

[스탈린, 민족 문제 저작 시작 (추정)]

이오시프 스탈린이 민족 문제에 대한 책자를 저작하기 시작함.

당시 중앙유럽, 동유럽,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이 민족감정 문제에 미숙하여 분리주의 투쟁과 사회주의 투쟁을 연결하고, '민족실체론'을 주장하며 타민족과 우열을 나누는 행위를 하는 것에 위기감을 느껴 시작되었다.

스탈린은 국제주의적 연대를 감행해야 할 사회주의자들이 서로 단결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으로 이러한 민족주의 태동을 지목했다. 이 작업은 1913년 『마르크스주의와 민족 문제』의 출판으로 이어졌다.

1913

[『마르크스주의와 민족 문제』 출판]

이오시프 스탈린의 소책자 『마르크스주의와 민족 문제』가 출판됨.

스탈린은 '민족'을 '공통된 언어, 영토, 경제 생활, 문화, 심리적 구성'의 다섯 가지 특성에 기초한 집단으로 정의하며, 민족의 유동성을 강조하고 민족실체론을 비판했다.

스탈린은 각 '민족'의 발달이 타민족과의 교류로부터 나온다고 보며, '민족'이 심리적 요인에 따라 흩어지거나 뭉쳐질 수 있는 유동적인 집단임을 강조했다. 그는 '문화적 자주성 회복'을 내세우는 움직임을 사회주의의 옷을 입은 국민주의로 규정하고 반혁명적이라고 비판했다.

1915

['유럽의 슬로건' 기고]

블라디미르 레닌이 『사회민주주의자』 44호에 '유럽의 슬로건'을 기고하며 자본주의의 불균등한 발전이 몇몇 나라, 심지어 한 나라에서 먼저 사회주의가 승리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함.

레닌은 이 글에서 승리한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가를 수탈하고 사회주의 생산을 조직한 후 나머지 자본주의 세계에 대항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무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일국사회주의 이론의 기반이 되었다.

1917

[『국가와 혁명』 출판]

블라디미르 레닌이 저서 『국가와 혁명』을 출판함.

이 책에서 레닌은 멘셰비키와 카우츠키류의 교조주의자들의 주장을 비판하며, 혁명의 객관적 조건을 개개 민족 단위의 국가 틀에 한정 지어 해석하는 것을 문제 삼음.

레닌은 자본주의 발전의 성숙도가 혁명의 필수 조건이지만, 그 이유는 '발전된 자본주의'가 갖는 제국주의적 속성 때문이며, 전지구적인 식민지 쟁탈 현상이 국경 없는 '자본주의 발전 성숙도'에 기반한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 내에서도 혁명적 분위기 조성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2월 혁명 발생 및 4월 테제]

러시아에서 2월 혁명이 발생하여 자본주의로의 도약이 완료됨.

블라디미르 레닌은 4월 테제에서 제1차 세계대전에 의한 혁명적 분위기 조성을 언급하며 사회주의로의 이행기를 산업노동자 계급이 선도해야 한다고 주장함.

레닌은 멘셰비키가 자본주의 발전의 성숙도와 혁명적 분위기 조성을 결정론적으로 연계하여 '국내 자본주의 발전 성숙도 없이는 혁명 불가'라는 교조주의적 해석을 가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생산력 발전을 세계 단위에서 보아야 하며, 러시아 프롤레타리아가 유럽 프롤레타리아 중 가장 계급적으로 각성된 의식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10월 혁명 및 동성애 관련 법 폐지]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모든 차르 러시아의 법이 폐지되었고, 이 과정에서 동성애에 대한 광범위한 제재가 사라짐.

그러나 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서구 사회의 퇴폐 구습과의 투쟁'을 결의하여 동성애 및 관련 하위 문화를 파괴함.

소비에트 연방 사회에서 성소수자는 불결하고 천박하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당했으며, 극소수 볼셰비키 정치가를 제외한 대다수는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1918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출판]

블라디미르 레닌이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를 통해 독일 내 수정주의자들과 카우츠키류의 교조주의자들을 비판하기 시작함.

수정주의와 교조주의는 생산력 발전을 국내 국경 내에 국한한다는 점에서 반혁명 사조라고 비판함.

레닌은 기계론을 설파하는 학자들과 마르크스주의에 경험론적 해석을 가미하는 모든 시도를 비판하며, 마르크스주의 인식 이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경제 법칙의 실증성과 기계성만을 강조하며 대중의 능동적인 투쟁을 무시하는 것은 소박한 기계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레닌, '한 국가 혁명 가능성' 강조]

블라디미르 레닌이 모스크바 인민위원회 공동회의에서 모든 국가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권력을 장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현명한 사회주의자'들이 혁명에서 멀어지고 부르주아 편에 가담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한 국가에서의 혁명 승리가 가능하다고 역설함.

레닌은 국제적 규모의 노동자 혁명을 기다려야 한다면 어느 국가도 혁명을 이룰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일국사회주의론의 중요한 기반 중 하나가 되었다.

1919

[코민테른 창립]

코민테른(Communist International)이 창립되면서 각국의 공산당 지부에 사회민주주의자를 공격할 것을 요구함.

이 국제당 가입 공산당들은 추상적 공산주의 가치에만 단일성을 가졌음.

코민테른은 각국의 공산당에게 당 조직과 동시에 당은 오직 하나여야 하며, 종파주의 활동을 엄금해야 한다는 '일국일당 원칙'을 지시했다. 이는 아시아의 공산주의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중국 공산당(1921년)과 조선공산당(1925년) 창립으로 이어졌다.

1920

[코민테른 2차 대회]

코민테른 2차 대회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이 혁명적 농민을 빈농·소농·영세농으로 규정하고 중농과 부농은 제외하여 농업문제에 관한 테제를 발표함.

레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토지'는 '허용받은 프롤레타리아가 다루는 (부르주아의)생산수단'과 같게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임차농이 사실상 봉건 사회의 농노와 다를 바 없으며, 농업의 사회주의화는 빈농의 인간해방을 위한 것이라고 보아 빈농의 혁명성을 중시했다.

[레닌의 공산주의 교육 강조 연설]

블라디미르 레닌이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제3회 전러시아 대회에서 연설하며, 공산주의 이론 학습과 실천의 중요성, 그리고 인텔리겐치아의 노동계급에 대한 봉사 의무를 강조함.

레닌은 자본주의적 교육을 '낡은 교육'으로 비판하며 주입식 교육과 암기 위주 교육이 이론과 실천을 괴리시킨다고 보았다. 그는 진정한 공산주의자가 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뿐 아니라 인류가 축적한 모든 인문과학적 이론을 학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21

[중국 공산당 창건 및 소련의 민족 해방 지원]

코민테른의 지시로 중국 공산당이 창건됨.

레닌이 지도하는 소련은 반제국주의 연대 명분으로 쑨원의 중국 국민당을 지원하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도 독립 자금을 지원함.

소련의 지원은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민족 모순' 개념을 만들고 중국 혁명 성격을 재진단하는 핵심 사건이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반제민족주의자들의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을 적극 지원·장려하는 원칙을 가졌다.

1922

[레닌의 '감제고지' 개념 제시]

블라디미르 레닌이 러시아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경제 통제 방식을 비유하며 '감제고지'(Commanding heights) 개념을 사용함.

이는 생산력 이론에 기반한 공산당 경제 지도의 기본 원칙이 됨.

레닌은 러시아 내전 종전 후 소련 산업 수준이 자본주의 국가보다 낮음을 체감하고, 혁명적 당을 통해 '본원적 축적'을 이룩해야 한다는 경제 전술로 감제고지를 내세웠다. 소련의 첫 시행은 신경제정책으로, 농업 부문에서 본원적 축적을 달성하려는 시도였다.

1923

[『협동조합에 관하여』 출판]

블라디미르 레닌이 『협동조합에 관하여』를 통해 한 나라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주장함.

레닌은 정치 권력이 노동 계급의 손에 있고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협동조합 사회에서 인구를 조직하는 것이 사회주의 건설의 유일한 과제라고 보았다. 그는 이것이 완전한 사회주의는 아니지만 완전한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고 강조했다.

1924

[『레닌주의의 기초와 레닌주의의 제문제』 강연]

이오시프 스탈린이 『레닌주의의 기초와 레닌주의의 제문제』 강연을 통해 마르크스·엥겔스의 이론을 레닌주의와 연계하여 코민테른을 위한 이데올로기적 정설을 세움.

스탈린은 한 나라에서의 혁명 승리가 가능하다고 보았으나, 이것이 사회주의의 완전한 최종적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으며, 외국의 개입으로부터 자강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몇몇 국가에서의 혁명 승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일국사회주의'와 '세계 공산화'를 구별하는 중요한 맥락을 제공한다.

1925

[조선공산당 설립]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 조선공산당을 설립함.

이는 코민테른의 '일국일당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당 조직 원칙에서 파당주의로 대표되는 종파주의는 엄금되며, 한 나라의 공산주의자들은 세부적 주장이 다르더라도 오직 하나의 당에 단결된 상태여야 한다는 원칙이 적용되었다.

1926

[『새로운 경제학』 출판]

예브게니 프레오브라첸스키가 저서 『새로운 경제학』을 통해 급진적인 중공업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함.

이는 '감제고지' 이론의 가장 가열찬 주장 중 하나였음.

프레오브라첸스키의 주장은 당시 농업 기반이 연약하던 소련 경제의 현실성을 무시한 것으로, 농민을 착취하여 본원적 축적을 빠르게 달성하자는 내용 때문에 이오시프 스탈린 계파 및 대다수 볼셰비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27

[스탈린, '노농정부' 개념 확립]

이오시프 스탈린이 『노농정부 문제에 관하여』를 통해 소비에트 정부가 노농동맹에 입각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노농정부라고 불릴 수 있다고 주장함.

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노동자(산업프롤레타리아를 포함한 광범한 노동계급)·농민(빈농·소농·영세농)의 동맹에 기초한 사회주의국가임을 명확히 했다. 반면 트로츠키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하여 '노동자국가'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1928

[제1차 5개년 경제계획 시작]

이오시프 스탈린이 '제1차 5개년 경제계획'을 실시하며 경제 정책의 토대를 쌓고, 경제 집산화를 시작함.

이는 소련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본원적 축적'을 이룩하는 과정이었다.

스탈린은 『곡물 조달 및 농업 발전 전망』 회의록에서 신경제정책(NEP)이 부농의 농업 사보타주를 막기 어렵고 농산물 물가 폭등을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농업의 집단화 없이는 사회주의 발전을 지도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콜호스(집단농장) 체계를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부농들의 저항과 홀로도모르 기근 사태가 발생했으나 스탈린은 집산화를 밀어붙였다.

[콤비나트 개발법 등장]

소련에서 '콤비나트'가 등장하며 사회주의 국가의 산업단지 개발법으로 자리잡음.

이는 제1차 5개년 경제 계획의 일환이었다.

콤비나트는 가공 시설·기술 연구소·운송 시설·원료 생산 시설·편의 시설 등 해당 지역에 특화된 산업 시설과 관련된 모든 요소를 묶은 지역적 결합체이다. 원료 확보 비용 절감, 제품 생산 집중화, 유통 과정 간소화로 생산 비용 절감 효과가 매우 컸다. 1920년대 후반부터 소련에서 철광 및 석탄 콤비나트를 시작으로 다수 건설되었다.

1929

[경제 대공황 시작]

세계 경제 대공황이 시작됨.

마르크스-레닌주의 경제 이론은 잉여생산의 공정한 분배와 계획 경제를 통해 이 위기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고 분석됨.

『소련 사회주의의 경제 문제들』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율 저하 경향과 주기적 공황이 불가피하며, 이는 자본가들의 잉여가치 증식 추구로 인해 상품 소비 계층의 소비력이 억제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사회주의 경제는 이러한 문제를 막는 데 효과적이라고 분석되었다.

1930

[제노텔 폐쇄 및 여성위원회 대체]

이오시프 스탈린이 전연방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여성 해방 기구인 제노텔(Женотдел)을 폐쇄하고, 소비에트 여성위원회로 대체함.

이는 여성 정책의 변화를 알리는 사건이었다.

스탈린의 이러한 조치는 군사국가화, 반혁명분쇄, 중공업화 명목하에 국가주의 정책을 감행하며 소련이 가부장제를 회복하려는 시도로 분석된다.

1931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 폭파]

이오시프 스탈린의 지시로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이 폭파됨.

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전투적 무신론을 상징하는 사건 중 하나임.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종교를 인간의 지식 활동에 제약이 있을 때 등장하는 것으로 보며, 과학과 무신론의 보급을 통해 종교성을 완전히 사라지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 무신론' 명분하에 수많은 종교인이 탄압받고 종교 시설이 파괴되었다.

[스탈린의 '콤비나트' 연설]

이오시프 스탈린의 연설문 초안인 〈경제 건설에서의 새로운 과제들〉 제3장에서 생산조합 결속체(콤비나트)의 효율성과 발전성에 대해 언급됨.

이는 콤비나트 개발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콤비나트는 원료 확보 비용 절감, 제품 생산 집중화, 유통 과정 간소화 등 큰 생산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왔다. 소련의 성공적인 콤비나트 건설은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도 이 방식을 모방하게 만들었다.

1933

[남성 동성애 불법화 지령]

이오시프 스탈린 주도 전연방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최고소비에트 대의원에 대한 입법 포고를 통해 남성에 의한 동성애를 공식적으로 불법화하도록 지령함.

이 법은 통과되어 남성 동성애 행위 시 최대 징역 5년형이 가해졌다. 동성애자로 드러날 경우 일정 기간 정신 교정 센터로 보내졌으며, 여성 동성애는 조항은 없었으나 실질적으로 금기시되었다. 당시 소련에서는 남성 동성애가 파시즘 지지로 간주된다는 연구도 존재한다.

1934

[소련 국영기업 비중 93% 달성]

소련의 국영기업이 전체 기업 비중의 93%를 차지하게 되며, 명목 GDP 규모가 1928년에 비해 약 2.2배 증가함.

이는 경제 집산화의 성공적인 결과로 평가됨.

1938년에는 국영기업 비중이 97%에 달했으며, 붕괴 직전인 1990년에도 전체 기업의 80%가 국영기업이었다. 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의 원칙적인 경제 운영 방식이자 일반적인 운영 원리임을 보여준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단일 이념화]

코민테른 7차 대회 이후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단일 이념으로 정해짐.

이전에는 공산주의라는 추상적 가치에만 단일성을 갖고 있었음.

이는 코민테른 창립 이후 각국 공산당 지부에 사회민주주의자 공격을 요구하던 맹공 태세가 계속 유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독일 나치 집권 등 반동적 사건 이후 변화된 것이다. 이로써 공산당 내 이념적 통일이 이루어졌다.

1935

[통일전선론 채택]

코민테른 7차 대회에서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를 중심으로 반파쇼인민전선론이 채택되어 통일전선(United front)의 시초가 됨.

주요 골자는 반파쇼 항쟁을 위해 각국의 민족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아나키스트, 자유주의자들과도 연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공산당의 대외 전술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공산주의 이론 간명화 작업 시작]

이오시프 스탈린이 다른 고참 볼셰비키들과 공동 저술을 통해 공산주의 이론 종합 작업을 간명화하기 시작함.

이 작업은 1938년 『볼셰비키당사』 출판으로 이어짐.

『볼셰비키당사』는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용어를 보편화시키고,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반한 세계관 및 역사 해석을 공산주의적 세계관 해석의 통일적인 해석론으로 규정하는 역할을 했다.

1936

[소련의 동성애 및 낙태 금지 지속]

소련에서 남성 동성애는 계속해서 금지되었으며, 낙태도 1944년까지 금지됨.

이는 사회 보수화의 일환으로 분석됨.

1936년 전연방 공산당 중앙위원회 통제위원 니콜라이 크리렌코는 반동성애 형법을 공개적으로 옹호하며, 동성애 지지 선전이 파시즘 정치 선동 방식과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여성 동성애는 조항은 없었으나 실질적으로 금기시되었다.

[스탈린 헌법 제정]

전 연방 소비에트 제8차 대회에서 새로운 소비에트 연방헌법(스탈린 헌법)이 개정됨.

1918년부터 1936년 사이를 사회주의 발전 단계로 규정하고, 소련을 '노동자와 농민의 사회주의국가'로 규정함.

이 헌법 개정으로 사회주의 본원적 축적 과정이 완료되었음을 공포했다. 스탈린은 1918년에서 1936년 사이의 사회 구성도 사회주의로 보았으며, 1936년 이후도 소련을 사회주의라고 규정했다. 이는 유물사관의 단계론적 측면을 반영한 것이다.

1938

[농업 집산화 완료]

이오시프 스탈린이 농업 집산화를 완료함.

이는 부농의 사보타주와 홀로도모르 기근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게 추진된 정책이었다.

스탈린은 농업 집산화를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는 계급투쟁'으로 보았으며, 빈농과 콜호스를 수호하기 위해 민병대 병력을 투입하고 빈농을 무장시켜 자체 치안을 담당하게 했다. 이로써 농민은 농업노동자이자 농업공무원으로서 기능하는 집단농장 체계가 확립되었다.

[스탈린의 '불완전한 승리'와 '완전한 승리' 구분]

이오시프 스탈린이 〈이바노프 동지에게 보내는 답장〉을 작성하여, 소련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불완전한 승리'와 세계 공산화라는 '완전한 승리'를 구별하고 일국사회주의가 전자를 위한 방편임을 서술함.

스탈린은 국제 혁명의 지원 없이는 소련 내 생산력 증강이 불가능하며, 국제 혁명을 지원하여 사회주의의 승리를 얻어내야 한다는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을 극좌모험주의라고 비판했다. 그는 소련이 혁명의 병기창이 되기 위해 자력으로 생산력 증강을 꾀하여 사회주의 달성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볼셰비키당사』 출판]

『볼셰비키당사』(『볼셰비키당사』)가 출판됨.

이 책자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용어를 보편화시키고,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반한 세계관 및 역사 해석을 공산주의적 세계관 해석의 통일적인 해석론으로 규정함.

이 책의 제4장 『변증법적 유물론』(DIAMAT)은 이오시프 스탈린의 마르크스주의 변증법과 유물론을 국정 철학으로 교조화하기 위한 핵심 저서이다. 스탈린은 과학과 철학의 동일성을 규정하고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이다'라는 것을 정식화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레닌의 인식론을 계승하고 이를 생산 관계 및 경제 현상 분석 이전에 고려되어야 할 중요한 요소로 간주했다.

1940

[『신민주주의론』 출판]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가 마오쩌둥이 저서 『신민주주의론』을 펴내 중국 혁명의 성격을 '신민주주의 혁명'으로 규정함.

이는 인민민주주의 노선과 맞닿아 있었음.

마오쩌둥의 이론은 노동자, 농민뿐 아니라 민족자본가, 양심적 지식인, 중산쁘띠부르주아의 연합 정권을 지향하는 '인민민주주의 정부'와 일맥상통했다. 이러한 정부는 반봉건 잔재를 잠식하고 사회주의 혁명의 객관적 조건을 마련하는 목적성을 가졌다.

1943

[코민테른 해체]

코민테른이 해체됨.

이후 주로 소련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각국 공산당이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을 따르게 됨.

이 해체는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조직적 구심점을 잃게 만들었으나, 개별 국가 차원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의 확산은 계속되었다. 1991년 소련 붕괴 후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 규모는 크게 축소되었다.

1944

['모성영웅' 상훈 제도 도입]

'모성영웅'(Мать-героиня)이라는 상훈 제도가 만들어져 여성을 가부장제의 틀에 맞추려는 시도가 이루어짐.

이는 스탈린 시대 여성 정책의 변화를 보여줌.

케이트 밀렛은 스탈린이 군사국가화, 반혁명분쇄, 중공업화 명목하에 국가주의 정책을 감행하면서 소련이 가부장제를 회복하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이는 1930년 제노텔 폐쇄와 1936년-1944년 낙태 금지와도 연결되는 흐름이다.

1945

[동유럽 공산화 및 인민민주주의 선포]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추축국이 패하고 수많은 동유럽 국가들이 공산화됨.

이오시프 스탈린은 동유럽 및 한반도 이북 지역의 혁명을 '인민민주주의 혁명'으로 규정하고 광범위한 통일전선에 따른 정부를 구성하라고 지시함.

이러한 '인민민주주의 정부'는 노동자와 농민뿐만 아니라 민족자본가, 양심적 지식인, 중산쁘띠부르주아의 연합 정권 형태를 보였으며, 원칙적으로는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반봉건사회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단계에 있는 정체였다. 이는 유물사관의 단계론적 해석을 보여준다.

1950

[『마르크스주의 언어학』 출판]

이오시프 스탈린이 자신의 논문 『마르크스주의 언어학』을 통해 언어의 일반적 속성을 언어도구론과 반영주의에 기반하여 규정함.

이로 인해 니콜라스 마르의 언어상부구조론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언어 이론 내에서 비주류 이론으로 전락함.

스탈린은 언어가 인간 사회 활동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실용적인 요소일 뿐이며, 질적 차원에서 상승과 하강을 병행하는 의식의 구성물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언어가 기호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물리적 속성으로 이루어진 감각질에 불과하다고 분석했으며, 이는 카를 마르크스의 언어 이론에 충실한 입장이라고 해석했다.

1951

[『소련 사회주의의 경제 문제들』 출판]

전연방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이오시프 스탈린의 지시로 『소련 사회주의의 경제 문제들』이 출판됨.

이 저서는 사회주의적 계획 경제의 특성과 생산력에 따른 경제사적 발전 관계, 국유화와 집단농업화의 이점을 서술함.

이 책은 스탈린과 정치국 위원, 소련 과학원 경제 연구소 박사들, 소련 국가계획위원회의 경제 관료 사이의 토론 내용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경제 문제들을 분석했다. 스탈린은 이 저서에 계획 경제의 세 가지 특성으로 '중앙당 계획하의 중앙집중적 사회주의 경제', '관료 조직에 대한 혁명적인 통제와 인민에 의한 지도 체계', '소비와 공급량 조절 및 지역소비에트 역량 강화'를 제시했다.

1952

[공산당 아동 교육 매뉴얼에서 동성애 비난]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이 배포한 아동 교육 메뉴얼에 동성애가 퇴폐적인 부르주아 구습이자 성병을 유발하는 비윤리적 행위로 간주된다고 명시됨.

성소수자 탄압에는 첩보 기관도 동원되어, 국가보안위원회는 1958년부터 지속적으로 반동성애 형법 집행에 개입하고 강한 형벌을 부과하도록 강제했다. 1960년대 초반에는 동성애가 소련 사회에서 정신 질환으로 널리 간주되었다.

1953

[중국의 경제 국유화 시작]

중화인민공화국이 소련의 제1차 5개년 경제 계획을 모방하여 경제 국유화를 단행함.

이는 자국 기업의 해외 투자금과 외채 자산을 동결하고 대자본과 공장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급진적 조치였음.

이 과정에서 수많은 대자본가들이 처형되거나 자살했지만, 사회주의 경제로 나아가는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소생산자, 중소기업가의 법인은 공동소유조합으로 전환되어 국가가 간접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의 집체소유 상태로 전환되었다. 1958년까지 연평균 9%의 경제 성장률을 달성했으며, 국유기업이 전체 경제의 89.17%를 차지했다.

1958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기초』 출판]

이오시프 스탈린 사후인 1958년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기초』가 출판됨.

이 책은 스탈린의 변증법적 유물론 사상을 체계화하여 정리한 서적임.

스탈린의 초기 저서인 『변증법적 유물론』에는 명시되지 않았던 '부정의 부정의 법칙'이 이 책에서 다시 추가되었다. 이는 스탈린 사후 변증법적 유물론 교재의 변화를 보여준다.

[인민공사 성립]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농업 집산화 정책에 기반하여 인민공사(人民公社)가 성립됨.

이는 소련의 콜호스와 달리 농축산물 유상공출제에 기반을 두었음.

인민공사는 1982년 개혁개방의 영향으로 농업을 비롯한 경제 업무에 관한 권한이 사라지면서 사실상 폐지되었다. 이는 각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마다 감제고지 적용이 천차만별로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1960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초』 출판]

오토 빌헬모비치 쿠시넨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초』를 저술 및 출판함.

이 책은 스탈린의 변증법적 유물론 사상을 체계화하여 정리한 서적임.

이 책은 스탈린의 사상을 계승하면서도 '부정의 부정의 법칙'을 다시 추가하는 등, 스탈린 사후 변증법적 유물론 교재의 발전에 기여했다.

[동성애 정신 질환 취급]

소련 사회에서 동성애가 일종의 정신 질환으로 널리 간주되기 시작함.

법학자 파벨 파블로비치 오시포프는 1966년 저술한 《성범죄 연구》에서 동성애를 정신 질환으로 보아 단순 형벌 대신 고도의 치료 기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대부분의 다른 공산권에서도 보편적으로 인정된 입장이었다 (동독, 베냉 제외).

1970

[소련 내 LGBT 운동에 대한 당의 탄압]

소련에서 서구의 LGBT 담론을 받아들인 여러 운동이 일어났으나,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동성애를 부르주아 사회의 퇴폐적이고 난잡한 생활 양식의 일부이자 정신 질환이라는 입장을 고수함.

이는 소비에트 연방 사회뿐 아니라 대부분의 다른 공산권에서도 보편적으로 인정된 입장이었다. 현재도 스탈린의 레닌주의 해석을 받아들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단체, 정당은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제국주의 선전 전략 중 하나로 본다 (쿠바 등 극히 드문 사례 제외).

1982

[중국 인민공사 폐지]

중국의 인민공사가 개혁개방의 영향으로 농업을 비롯한 경제 업무에 관한 권한이 모두 사라지면서 사실상 폐지됨.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국영기업에 기초한 산업 발전을 지향했으며, 현재도 주요 기업들은 공산당 산하 국가개발기구의 지령을 받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감제고지의 원칙은 유지되고 있다.

1988

[소련의 해외 원조액 최고 기록]

소비에트 연방의 해외 원조액이 1,476억 USD로 명목 GDP의 7%에 해당하는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함.

소련의 지원을 받은 리비아 등 아프리카 국가와 쿠바는 사회 부조리 일소와 극단적 빈곤 해소에 성공했으며, 지원 기간 동안 유아 사망률, 문맹률, 여성 권리 수준 등이 급속도로 개선되었다. 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빈곤국의 성장에 기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1990

[소련 국영기업 비중 80% 기록]

소련 붕괴 직전 전체 기업의 80%가 국영기업이었음.

이는 국영기업을 통한 산업집산화가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의 원칙적인 경제 운영 방식임을 보여줌.

사회주의 국영기업은 단순히 국가 기관만의 통제가 아닌, 각 지역 노동계급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경제 조직과 혁명적 당의 삼중 통제를 통해 운영되었다. 이는 국유화된 기업의 이윤이 곧 국가 예산이 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1991

[소비에트 연방 붕괴]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됨.

이는 마르크스주의를 사변 철학의 틀에서 해석하던 거대한 흐름이 붕괴된 것과 마찬가지였음.

소련 붕괴 후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반한 공산당의 규모는 크게 축소되었으며, 토마스 피케티는 소련 붕괴 후 자본주의 경제 도입으로 실업 해소, 빈부격차 해소, 사회 안전망 수준 등 경제 영역의 이점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1998

[공산당-노동자당 국제 회의 창설]

그리스 공산당 주도로 공산당-노동자당 국제 회의(International Meeting of Communist and Workers Parties)가 창설됨.

이 단체는 '공산주의'를 내세울 뿐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공식 이념으로 내세우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가입 공산당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공식 이념으로 갖고 있어 사실상 마르크스-레닌주의 국제단체로 취급됨.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 조직 국제회의 국제파(ICMLPO-IN),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 조직 국제회의 통합투쟁파(ICMLPO-U&S), 혁명 정당 조직 국제협력(ICOR) 등은 공식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 계승을 내세우는 국제 단체이지만, 규모는 공산당-노동자당 국제 회의보다 훨씬 작다.

2002

[중국공산당 이념 확립]

중국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삼개대표사상을 세 기반 이념으로 규정함.

이는 중국 공산당의 공식 이념 체계를 명확히 한 것임.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에 중국 공산당이 제2차 국공내전에서 승리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이래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핵심 이념으로 삼아왔다. 이는 '시장사회주의'라는 독자적인 노선을 유지하면서도 이념적 정통성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2012

[북한 농업 개혁 단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농업 개혁을 단행하여 초과 생산분에 대한 자체 처분을 허용함.

이는 집단농장 체계의 기본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일부 변화를 준 것임.

이러한 개혁은 농민에게 할당된 토지에서의 임무 수행 권리 및 국가 기관에 문제 해결 요구 권리 등 집단농장의 기본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북한은 기업 비중의 95% 이상이 국영기업인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의 원칙적인 경제 운영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2019

[중국 국영기업의 지배적 위치 유지]

중화인민공화국의 20대 기업 중 12개 기업이 국영기업이며, 세계 500대 기업에 들어간 98개 중국 기업 중 약 90%가 국영기업임.

이는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에도 국영기업에 기초한 산업 발전을 지향함을 보여줌.

이는 1953년 경제 국유화 이후 형성된 국영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가 현재까지도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 공산당 산하 국가개발기구의 지령을 받는 형태로 운영되는 것은 감제고지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쿠바 동성 결혼 전면 허용]

쿠바가 동성 결혼을 전면 허용함.

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 중 이례적인 성소수자 정책 변화 사례임.

대부분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 및 단체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나 관련 하위 문화를 제국주의 선전 전략의 일부로 보고 퇴폐 구습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따라서 쿠바의 이러한 조치는 기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성소수자 정책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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