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주의
정치 철학, 공산주의, 마르크스주의, 이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9:53
레닌주의는 블라디미르 레닌이 마르크스주의를 혁명적 실천에 적용하며 발전시킨 사상이다. 기존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인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켰다. 전위당론 노농동맹 프롤레타리아 독재 제국주의론 등을 통해 현실 사회주의 건설의 이론적 실천적 토대를 제공하며 20세기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895
[게오르기 플레하노프, 반영론 제시]
게오르기 플레하노프가 『일원론적 역사관의 발전』을 저술하며 마르크스주의의 기계론적 해석을 비판하고 변증법적 유물론의 철학적 기반을 다졌다.
이 저서는 훗날 블라디미르 레닌의 철학적 관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플레하노프의 반영론은 기계적 운동과 인간의 의식적 사유를 구분하고, 의식은 물질로부터 도출되며 물질의 모순 정도에 따라 의식의 형상이 달라진다고 보았다. 레닌은 플레하노프의 이러한 관점을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이 가져야 할 사상으로 인정하고 자신의 저서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크게 인용했다.
1902
[『무엇을 할 것인가?』 저술: 전위당론의 씨앗]
블라디미르 레닌이 소책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저술하여 당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투쟁 방식을 비판했다.
그는 노동자의 임금 투쟁만으로는 혁명을 이룰 수 없으며, 합법주의에 매몰된 독일 사회민주당의 사례를 경고했다.
레닌은 공산당이 혁명의 전위대가 되어 구체제를 전복하고, 완전한 공산주의 사회가 건설될 때까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과도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소수 직업 혁명가들이 노동자와 농민을 지도해야 한다는 '전위당론'으로 발전했다. 그는 합법 활동과 비합법 활동을 혁명 목표에 따라 적절히 배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05
[『사회주의와 종교』 저술: 종교 비판]
블라디미르 레닌이 『사회주의와 종교』를 통해 종교의 기만성을 비판했다.
종교가 인민의 복종심을 고양시켜 봉건영주들의 지배를 돕고, 인민의 이성적 활동에 제약을 가한다고 지적하며 정치와 종교의 완전한 분리를 주장했다.
레닌은 카를 마르크스의 종교 비판을 이어받아 과학에 기반한 무신론과 반(反)과학에 기반한 유신론 사이의 투쟁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후 1909년 『노동자당이 종교에 대해 가져야 하는 태도』에서는 더 급진적인 입장을 표명, 프롤레타리아 전위당은 인민의 무신화를 위해 과학과 무신론을 보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종교인이 당 사업에 적극적이고 계급 의식의 선두에 설 수 있다면 당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유연한 태도도 보였다.
1906
[블랑키주의에 대한 레닌의 비판]
블라디미르 레닌이 『대회의 총결과에 붙여서』에서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오귀스트 블랑키의 비밀결사주의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블랑키주의가 소수 인텔리겐차의 음모를 통한 혁명 방식이며, 노동계급의 계급의식 표출과는 무관한 소수에 의한 쿠데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레닌은 러시아 사회의 후진성과 반동적 사상 조류를 고려하여 소수 직업혁명가의 역량 확보를 강조했는데, 이 지점에서 블랑키 사상과 유사점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폭력혁명에 대한 긍정 및 합법/비합법 활동의 배합, 직업 혁명가와 일반 노동자계급의 뚜렷한 구분 강조는 블랑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레닌과 블랑키의 차이가 지엽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1907
[『농업문제와 소위 ‘마르크스비판’』 저술: 노농동맹론의 구체화]
블라디미르 레닌이 『농업문제와 소위 ‘마르크스비판’』을 저술하여 농민의 혁명성을 인정하고, 사회주의 혁명에서 농업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농민을 '농촌 프롤레타리아'와 '농촌 부르주아'로 분류하고, 빈농과의 협력을 추구하는 노농동맹 노선을 주장했다.
레닌은 자본주의 농업 발전의 두 가지 길(융커 모델, 영국 모델)을 분석하며 봉건적 토지 소유 제도의 붕괴와 소규모 자영농의 일반화를 실증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농민 역시 잉여가치 독식 현상으로 인해 프롤레타리아와 같은 혁명성을 가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 특히 1920년 코민테른 2차 대회에서는 빈농·소농·영세농을 혁명적 농민으로 규정하며 산업 프롤레타리아와의 적극적인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908
[『마르크스주의와 수정주의』 저술: 혁명적 계층의 확장]
블라디미르 레닌이 『마르크스주의와 수정주의』를 저술하여 수정주의의 불가피성을 자본주의 사회 내 소부르주아와 소소유자층의 존재에서 찾았다.
이는 노동자와 빈농뿐 아니라 영세자영업자, 지식인까지 혁명성을 지닐 수 있다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레닌은 자본주의가 소생산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며 새로운 '중간층'들이 불가피하게 프롤레타리아의 대열로 내던져진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은 멘셰비키와 트로츠키주의가 농민과 지식인 등 비(非)산업프롤레타리아 계층의 혁명성을 불인정했던 것과 대비된다. 스탈린은 레닌 사후 농업 집산화 과정에서 중농에 대한 레닌의 입장을 고수하며 레닌주의의 계승자임을 자처했다.
1909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저술: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정립]
블라디미르 레닌이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을 저술하여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다양한 경험주의와 절충주의 사조들을 비판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를 기계론과 기술주의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전통 철학을 계승하여 유물론적 해답을 제시하고자 했다.
레닌은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의 경험일원주의를 '기계론', '마하주의', '유아론' 등으로 지칭하며 가장 큰 분량을 할애하여 비판했다. 또한 데이비드 흄의 불가지론적 경험주의와 유사한 내재주의, 칸트주의 노선을 따르는 기호실용주의와 신칸트주의를 반동철학으로 규정하며 논파했다. 그는 인간의 의식 활동이 단순히 감각인지의 단순 인과론적 조합이 아니며, 물자체를 알기 위한 변증법적 투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저서는 러시아 공산주의 사상을 이해하는 핵심 텍스트로 평가받는다.
1916
[『제국주의론』 저술: 제국주의 분석 및 약한 고리론 제시]
블라디미르 레닌이 『제국주의론』을 저술하여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필연적 관계를 설명하고, 거대 초국적 기업과 강대국의 약소국 착취를 분석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태생적 불균등성이 독점자본주의와 제국주의로 나아가게 한다고 보았다.
레닌은 제국주의국가들이 이윤율 증대를 위해 지속적인 세계 재분할을 시도하며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약한 고리'가 등장하여 혁명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제국주의 경쟁의 결과이며 차르 체제의 러시아가 바로 그 '약한 고리'라고 분석했다. 이는 '일국 혁명'의 정당성을 제시하며 마르크스의 '세계 혁명론'을 제국주의 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것으로, 수많은 식민지 해방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1917
[『국가와 혁명』 저술: 혁명의 객관적 조건 재해석]
블라디미르 레닌이 『국가와 혁명』을 저술하여 멘셰비키의 '자본주의 발전 성숙도 없이는 사회주의 혁명 절대불가'라는 교조주의적 주장을 비판했다.
그는 생산력 발전을 국가 단위가 아닌 세계 단위에서 보아야 하며, 제국주의 단계의 자본주의는 생산력 과잉으로 전지구적 분쟁을 야기한다고 분석했다.
레닌의 이러한 지론은 '현재의 자본주의는 제국주의 단계로 넘어왔고, 생산력 과잉 시대로 진입한 현 시점에서 혁명의 고조는 제국주의 분쟁의 중심지인 유럽에서 산발적이며 분산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에 기반한다. 이 저서는 수정주의와 교조주의가 생산력 발전 논의를 국내에 한정하는 것을 반혁명 사조라고 비판하는 기반이 되었다.
[러시아 2월 혁명 발발]
러시아에서 2월 혁명이 발생하여 차르 체제가 붕괴하고 자본주의적 발전 단계로의 도약이 완료되었다.
이 사건은 레닌이 주장한 '혁명적 분위기 조성'의 객관적 조건이 되었다.
레닌은 4월 테제에서 2월 혁명 이후 사회주의로의 이행기를 산업노동자 계급이 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본주의 발전의 성숙도와 혁명적 분위기 조성을 개별 민족 단위가 아닌 세계 단위에서 보아야 한다고 역설하며, 러시아 프롤레타리아가 유럽 프롤레타리아 중 가장 계급적으로 각성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레닌의 4월 테제 발표]
블라디미르 레닌이 '4월 테제'를 발표하며 2월 혁명 이후 자본주의로의 도약이 완료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에 의한 혁명적 분위기 조성을 바탕으로 사회주의로의 이행기를 산업노동자 계급이 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테제는 멘셰비키가 주장하는 '자본주의 발전 성숙도 없이는 사회주의 혁명 불가'라는 교조적 해석을 비판했다. 레닌은 생산력 발전을 국가 단위가 아닌 세계 단위에서 봐야 하며, 제국주의 단계에 이른 자본주의는 전 지구적 식민지 쟁탈 현상을 야기하여 러시아와 같은 '약한 고리'에서 혁명적 분위기가 고조된다고 보았다.
[세계 최초 사회주의 혁명: 러시아 10월 혁명]
블라디미르 레닌의 볼셰비키가 주도한 사회주의 혁명, '10월 혁명'이 성공하여 차르 체제의 러시아에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 건설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는 레닌의 전위당론과 노농동맹론의 실천적 증명으로 평가받는다.
레닌주의는 당시 유럽에 존재하던 마르크스주의의 세 가지 잘못된 경향(교조주의, 수정주의, 소아병적 사회주의)에 대항하며 러시아 혁명을 이끈 중심 사상이었다. 볼셰비키는 노동자와 농민으로 이루어진 소수 혁명가가 지휘하는 레닌의 전위대였고, 이들의 활동으로 러시아 제국은 철저히 전복되었다.
1918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저술: 수정주의/교조주의 비판]
블라디미르 레닌이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를 저술하여 독일 내 수정주의자들과 카우츠키류의 교조주의자들을 비판했다.
그는 수정주의와 교조주의가 생산력 발전이라는 논의를 오직 국경 안에서의 발전으로 국한하는 점에서 반혁명 사조라고 지적했다.
이 저서는 멘셰비키 비판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레닌주의가 마르크스주의를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현실 혁명의 필요성에 맞게 이론을 발전시켰음을 보여준다. 레닌은 혁명적 분위기 조성을 전지구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함을 강조하며, 유럽 내 자본주의 국가들의 생산력 과잉과 제국주의 분쟁이 혁명적 고조를 가져온다고 보았다.
1920
[『공산주의 운동에서 ‘좌익’소아병』 저술: 극좌 모험주의 비판]
블라디미르 레닌이 『공산주의 운동에서 ‘좌익’소아병』을 저술하여 볼셰비키 내 좌익공산주의파의 극좌 모험주의와 당내 분파 활동을 비판했다.
그는 공산주의 운동이 현실과 괴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혁명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냉정한 수단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레닌은 좌익공산주의파가 유럽 혁명의 완수를 위해 독일과 전쟁을 감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신경제정책 대신 전시공산주의 유지를 주장하는 것을 비현실적이라고 보았다. 그는 공산주의자가 부르주아 정치의 기만성을 알리기 위해 의회, 노동조합, 언론, 시민단체 등 어떤 곳에든 참여해야 하며, 합법과 비법의 영역에서 상황에 맞는 투쟁 방식을 적절히 구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공산주의자의 실천 강령을 제시하는 중요한 문헌이다.
[코민테른 2차 대회: 농업문제 테제 발표]
코민테른 2차 대회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이 「농업문제에 관한 테제」를 발표하며 혁명적 농민을 빈농·소농·영세농으로 규정하고, 이들과 산업 프롤레타리아의 동맹을 강조했다.
이는 농민도 혁명성이 있는 존재로 취급하는 레닌주의의 핵심 노선이었다.
레닌은 농업의 자본주의화가 농민의 빈곤화를 야기하며, 이는 농민이 산업노동자와 같은 혁명의 유적존재로서 거듭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이 된다고 보았다. 그는 토지의 사회주의화를 빈농의 인간 해방을 위한 것으로 보고,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이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할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러한 입장은 멘셰비키와 트로츠키주의가 농민의 혁명성을 불인정한 것과 대비되며, 이오시프 스탈린의 노농동맹 정책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1921
[중국 공산당 창건]
코민테른의 지시에 따라 중국 공산당이 창건되었다.
이는 레닌의 『제국주의론』에서 제시된 '일국 혁명' 및 '약한 고리론'과 연관되어, 중국과 같은 아시아를 새로운 혁명의 발산지로 여긴 볼셰비키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레닌은 중국을 제국주의 열강이 재분할 대상으로 여기는 핵심 국가이자 '약한 고리'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보았다. 소련은 반제국주의 연대 명분으로 쑨원의 중국 국민당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독립 자금을 지원했다. 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민족 모순'을 '계급 모순'의 파생 문제로 보고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을 적극 지원하는 바탕이 되었다.
1923
[『협동조합에 관하여』 저술: 신경제정책과 협동조합의 역할]
블라디미르 레닌이 『협동조합에 관하여』를 저술하여 신경제정책(NEP) 시기 농민에게 일정한 양보를 포함한 사회주의 경제 조직 형성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농업 인구의 사회주의 조직화에 협동조합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경제 조직 과정에서 농민과의 파괴적인 계급투쟁이 발생하지 않는 이유를 사회주의적 협동조합의 형성과 연결시켰다. 그는 중농의 토지를 몰수하지 않고 세금 제도 및 농산물 회수제를 통해 국가 기관과 생산 조직의 괴리성을 해소하며 농업 인구를 사회주의로 조직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유럽 혁명이 후속적으로 일어나지 않아도 소비에트 러시아의 사회주의 달성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레프 트로츠키의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가 되었다. 협동조합은 국영은행 대출, 세금 혜택, 사업 전략 피드백, 타 공업과의 연계망 지원 등을 통해 소생산자들을 대공업으로 변신시키는 길을 걸었으며, 이는 제1차 5개년 경제 개발 계획 때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