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츠키주의
마르크스주의, 혁명 이론, 공산주의 사상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9:52
레프 트로츠키가 주창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이론입니다. 핵심은 영구혁명론으로 끊임없는 세계 혁명을 강조하며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에 맞섰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의 관료주의와 비민주적 경향을 강하게 비판하며 퇴보한 노동자 국가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스스로를 정통 레닌주의자로 칭했지만 레닌과의 복잡한 관계와 여러 이론적 차이로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기회주의 맹동주의 극심한 종파주의 등 다양한 비판에 직면하며 복잡한 정치 사상의 흐름을 형성했습니다.
1903
[트로츠키와 레닌의 첫 대립]
레프 트로츠키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2차 당대회에서 블라디미르 레닌과 당 운영 방식에 대해 처음으로 대립했습니다.
트로츠키는 대중 정당 노선을, 레닌은 정예주의 노선을 주장하며 이후 오랜 갈등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1905
[영구혁명론 공식화]
레프 트로츠키가 '영구혁명'이라는 국제 혁명 이론을 공식화했습니다.
이는 트로츠키주의의 핵심 사상이자 특징으로, 각국의 무산계급이 단결하여 혁명이 국제적으로 계속되어야 진정한 사회주의 달성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1912
[레닌과의 대립 절정: 8월 블록 형성]
트로츠키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내 분파 통합을 주장하며, 레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합 찬성파를 이끌어 '8월 블록'을 주도했습니다.
이 시기는 트로츠키와 레닌의 대립이 가장 첨예했던 시기로 기록됩니다.
1936
[소련 비판: 『배반당한 혁명』 출판]
트로츠키는 저서 『배반당한 혁명』을 통해 '퇴보한 노동자 국가'라는 개념을 창안하며, 소련이 타락한 관료 집단에 의해 사회주의 발전 동력을 상실했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는 트로츠키주의의 핵심적인 반관료주의 입장을 대변합니다.
1938
[스탈린, '일국사회주의론' 재강조]
이오시프 스탈린이 '이바노프 동지에게 보내는 답장'을 통해 세계 혁명론이 아닌 '일국사회주의론'이 제국주의 단계의 자본주의에 적합하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이는 영구혁명론을 주창하는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이었습니다.
1940
[관료주의 비판 심화: 『맑스주의를 옹호하며』 출판]
트로츠키는 저서 『맑스주의를 옹호하며』를 통해 소련 체제의 비민주적, 관료주의적 경향과 인권 침해 문제를 집중적으로 꼬집으며 자신의 반관료주의 입장을 더욱 심화했습니다.
이는 오늘날까지 트로츠키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논쟁점으로 남아있습니다.
1953
[트로츠키주의 국제 운동 분열]
레프 트로츠키 사망 후, 그가 창립했던 국제 공산주의 운동인 제4인터내셔널은 '국제사무국'과 '국제위원회'로 분열하며 트로츠키주의 내부의 다양한 해석과 노선 차이를 드러냈습니다.
1960
[일본 신좌익 운동 내 극심한 종파주의 발현]
1960년대 일본 신좌익 운동에서 트로츠키주의 사상을 고수하는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 등은 극단적인 종파를 형성하며 사회주의 운동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는 트로츠키주의의 '종파주의' 비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963
[제4인터내셔널 재통합]
1953년 분열되었던 제4인터내셔널의 국제사무국과 국제위원회가 재통합되며 트로츠키주의 국제 운동의 단합을 모색했습니다.
1974
[노동자 인터내셔널 위원회 창립]
제4인터내셔널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트로츠키주의 분파인 '노동자 인터내셔널 위원회(CWI)'가 창립되었습니다.
이는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확산과 조직적 분화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2000
[일본 트로츠키주의 분파의 '내부게발트' 지속]
일본의 주요 트로츠키주의 분파인 혁마르와 중핵파가 2000년대까지 다른 종파 간의 암살, 집단 살해, 집단 습격 등 '내부게발트' 행위를 자행하며 극단적인 대립을 이어갔습니다.
이는 트로츠키주의의 종파주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