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론

철학, 형이상학,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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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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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형이상학,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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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념론은 우주의 근본이 물질이 아닌 정신 의식 관념이라고 주장하는 심오한 철학입니다. - 인식은 오직 정신을 통해 이루어지며 우리가 아는 실체는 근본적으로 비물질적이라고 강조합니다. - 고대 인도와 그리스에서 시작되어 19세기 독일 관념론으로 절정을 이루며 서양 철학의 거대한 물줄기를 형성했습니다. - 세상은 거대한 정신이라는 20세기 과학자의 통찰처럼 물질 세계의 본질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 조지 버클리 이마누엘 칸트 G. W. F. 헤겔 등 수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이 흐름을 통해 인류의 사유를 확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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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6C

[피타고라스의 영혼 불멸설 주창]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가 영혼 불멸설을 주창하며 물질 너머의 정신적, 영적 실재를 강조하는 객관적 관념론의 초기 사상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기원전 570년경, 피타고라스는 영혼 불멸설을 주창하며 물질적 현상계 이면에 존재하는 정신적 실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객관적 관념론의 초기 형태로서 플라톤주의 등에 영향을 미쳤다.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 주창]

고대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가 오직 존재하는 것은 하나이며 불변한다는 '존재'의 개념을 제시하여, 감각을 통한 경험보다 이성적 사유를 중시하는 관념론적 사고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기원전 510년경, 파르메니데스는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통해 유일하고 불변하는 '존재'의 개념을 주장했다. 이는 감각적 세계의 변화를 부정하고 이성을 통한 진리 파악을 강조하며 서양 철학의 관념론적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BC 5C

[플라톤의 형상 이론 주창]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관념적인 형상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보편자라는 형상 이론을 주창하며, 물질보다 이데아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기원전 427년경, 플라톤은 관념적인 형상을 어떠한 상황으로부터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보편자로 묘사하는 형상 이론을 발표했다. 그는 물질은 순간적이고 불완전하며, 외부의 이데아로부터 존재를 부여받는다고 주장하며 형이상학적 객관적 관념론의 가장 이른 대표자가 되었다.

BC 4C

[맹자의 성선설과 정신적 본질 강조]

유교 철학자 맹자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성선설을 주장하며, 내면의 정신적 본질과 도덕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양 관념론적 사유에 기여했습니다.

기원전 372년경, 유교 철학자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며, 도덕적 행위는 이 선한 본성에서 우러나온다고 주장하는 성선설을 제시했다. 그의 사상은 인간의 내면적 정신을 중시하고 도덕적 이상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동양적 관념론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BC 2C

[동중서의 천인감응 사상 발전]

한나라 유학자 동중서가 음양오행설을 유교에 접목하여 천인감응(天人感應) 사상을 주장하며, 우주의 정신적 질서와 인간 사회의 조화를 강조하는 관념론적 사유를 발전시켰습니다.

기원전 176년경, 한나라의 유학자 동중서는 음양오행설과 유교를 결합하여 천인감응 사상을 주장했다. 그는 하늘과 인간이 서로 감응하며, 우주적 정신 질서에 따라 인간 사회도 운영되어야 한다고 보며 동양 철학에서 관념론적 사유를 심화했다.

205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 창시]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 플로티노스가 '하나(The One)'로부터 모든 것이 유출된다는 유출설을 주장하며, 정신적 실재를 최고 가치로 두는 객관적 관념론적 세계관을 제시했습니다.

205년경, 플로티노스는 신플라톤주의를 창시하며 모든 존재의 근원인 '하나(The One)'로부터 지성, 영혼, 물질이 순서대로 유출된다는 유출설을 주장했다. 그는 영적인 세계를 최고의 실재로 보고 물질 세계를 그 반영으로 보아 객관적 관념론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했다.

400

[인도 유가행파의 관념론 등장]

대승불교 유가행파가 인간 경험에 대한 현상학적 분석을 기반으로 정신만을 인정하는 관념론을 주창했습니다.

기원후 4세기 인도에서 대승불교 교파인 유가행파는 정신만을 인정하는 관념론의 근거를 대부분 인간의 경험에 대한 현상학적 분석에 기반을 두었다. 이는 주관적 관념론으로의 전환을 예고했다.

480

[디그나가의 관념론적 기여]

인도 불교 논리학자 디그나가가 주관적 관념론의 흐름에 기여하며 인식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심화했습니다.

480년경, 인도 불교 논리학자 디그나가는 주관적 관념론 또는 현상론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의 사상은 경험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논의를 제공했다.

600

[다르마키르티의 주관적 관념론 발전]

7세기경 인도 불교 철학자 다르마키르티가 주관적 관념론의 발전과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7세기경, 인도 불교 철학자 다르마키르티는 주관적 관념론의 중요한 인물로, 인식론적 관념론의 발전에 기여하며 정신과 물질 세계의 관계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이어갔다.

617

[원효의 일심 사상 확립]

신라의 고승 원효가 '일심(一心)' 사상을 주창하여 모든 현상이 하나의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동양적 관념론의 정수를 보여주며, 불교 사상의 통일적 이해에 기여했습니다.

617년, 신라의 고승 원효는 모든 존재와 현상이 하나의 근원적인 마음인 '일심'에서 비롯된다는 '일심 사상'을 주창했다. 그의 사상은 물질 세계를 마음의 현현으로 보고, 불교의 다양한 사상들을 일심을 중심으로 통합하려는 동양적 관념론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700

[샹카라의 힌두 관념론 주창]

힌두교 베단타 학파의 핵심 사상가 샹카라가 힌두 관념론을 주창하며 의식이 모든 것의 토대라는 입장을 강화했습니다.

8세기경, 샹카라는 힌두교 베단타 철학과 카쉬미르 시바파의 핵심적 교의인 힌두 관념론을 주창했다. 그는 의식이 모든 것의 토대라고 주장하는 일원론적 관념론을 발전시켰다.

1280

[오컴의 윌리엄, 유명론 주창]

중세 철학자 오컴의 윌리엄이 유명론을 통해 보편자의 실재를 부정하며, 후대 경험론과 주관적 관념론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280년, 중세 철학자 오컴의 윌리엄은 유명론(Nominalism)을 주창하며 보편자가 객관적으로 실재하지 않고 단지 언어적 명칭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이후 경험론과 주관적 관념론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1472

[왕양명의 심학(心學) 사상]

명나라 유학자 왕양명이 정신이 객체를 형상화하므로 객체는 정신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독자적인 관념론을 주장했습니다.

1472년, 명나라의 유학자인 왕양명은 정신은 객체를 형상화하기 때문에 객체는 정신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신이 세계에게 원인을 제공하며 모든 원인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1632

[존 로크의 경험론적 인식론 발전]

영국 경험론의 아버지 존 로크가 감각 경험을 통한 지식 습득을 강조하며, 인식이 외부에 독립적인 실재를 반영한다는 관념론적 측면을 제시했습니다.

1632년, 영국 경험론의 대표자 존 로크는 인간의 정신이 백지 상태로 태어나 감각 경험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인식론은 관념이 경험으로부터 온다는 점에서 관념론적 흐름에 영향을 미쳤다.

1646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설 제창]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가 모든 실체를 '모나드'라는 정신적 단위로 구성된 것으로 보는 모나드설을 주장하며, 물질적 세계가 정신적 본질의 발현이라는 관념론적 세계관을 제시했습니다.

1646년,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우주의 모든 실체가 각기 다른 지각과 욕구를 가진 정신적 단위인 '모나드'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모나드설을 제창했다. 그는 물질적 세계가 이 모나드들의 조화로운 배치와 정신적 본질의 발현이라고 보며 관념론적 철학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1680

[아서 콜리어의 관념론적 주장 발표]

영국 철학자 아서 콜리어가 조지 버클리와 독립적으로 유사한 주관적 관념론적 사상을 발표하며, 인식하는 정신 없이는 외부 세계가 존재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1680년, 영국의 철학자 아서 콜리어는 조지 버클리와 영향을 주고받지 않았음에도 비슷한 주장을 발표했다. 그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실제는 영원한 대상에 대하여 상상된 이미지이며, 관찰자와 관련되지 않은 절대적 물질로서의 외부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인식하는 정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계는 그것이 나타는 것처럼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핵심이었다.

1685

[조지 버클리의 유심론 등장]

아일랜드 철학자 조지 버클리가 "존재하는 것은 인식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통해 주관적 관념론, 즉 유심론을 주창하며 18세기 유럽에서 관념론을 부활시켰습니다.

1685년, 아일랜드의 철학자 조지 버클리가 주관적 관념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개인이 대상에 대한 감각이나 개념만을 직접적으로 알 수 있으며, 물질과 같은 비실재적인 것은 알 수 없다고 주장하며 "존재하는 것은 인식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이 이론은 18세기 유럽에서 유물론에 대한 회의적 논증을 채용하여 관념론을 되살렸다.

1722

[데이비드 흄의 회의주의적 경험론]

데이비드 흄이 경험론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인과율의 객관적 실재성을 부정하고, 회의주의적 관점에서 관념론적 논의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1722년, 스코틀랜드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경험론을 통해 인과 개념과 외부 세계의 객관적 실재에 대한 회의주의적 입장을 제시했다. 그는 지식이 오직 인상과 관념의 조합에서 온다고 주장하며 주관적 관념론의 논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1724

[이마누엘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 주창]

이마누엘 칸트가 18세기에 초월적 관념론을 주창하며, 정신이 우리가 인식한 세계를 시공간의 형태로 형성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19세기 독일 철학을 지배하는 주요 흐름의 시작이었습니다.

1724년, 이마누엘 칸트가 초월적 관념론을 주창했다. 그는 정신은 우리가 인식한 세계를 시공간의 형태로 형상화한다고 주장하며, 물질적인 세계 전체는 주체로서의 우리의 감각 안에서의 현상적인 모습이자 상상의 일종일 뿐이므로 주체를 제거하면 세계는 사라진다고 보았다.

1768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 발전]

독일 신학자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가 종교의 본질을 감정의 영역에서 찾아, 주관적 경험과 신적 존재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며 관념론적 사유에 기여했습니다.

1768년, 독일 신학자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는 종교를 절대적 의존 감각, 즉 직관과 감정의 영역에서 이해하고자 했다. 그의 주관주의적 접근은 칸트 이후의 독일 관념론적 흐름 속에서 종교 철학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1770

[헤겔의 절대적 관념론 확립]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이 절대적 관념론을 통해 존재가 포괄적인 전체로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 탐구하며, 유한한 성질보다 자기 결정적인 무한한 성질과 정신적인 것의 실재성을 강조했습니다.

1770년,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자신의 철학을 버클리의 주관적 관념론과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과 구별하여 "절대적" 관념론이라고 불렀다. 그는 유와 무의 대립을 통한 현존의 성립을 주장하며, 이성과 지성을 통해 궁극적인 역사적 실제와 자기 결정의 현상학적 성질을 알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유한한 성질이나 자연적인 대상이 완전히 실제적이라는 유물론과 같은 학설은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1775

[셸링의 절대적 동일성 이론 제시]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이 주관과 객관, 관념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 사이에 차이가 없는 '절대적 동일성' 이론을 제시하며 객관적 관념론의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1775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은 객체 없이 주체가 존재할 수 없으므로 피히테의 '나(I)'는 '내가 아닌 것(Not-I)'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즉 관념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절대적 동일성'을 제시하며 객관적 관념론을 발전시켰다.

1821

[크리스천 사이언스 관념론적 신학 정립]

크리스천 사이언스의 창시자인 메리 베이커 에디가 모든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은 신이자 신의 생각이며, 감각 세계는 정신적 실체의 왜곡이라는 관념론적 신학을 제시했습니다.

1821년, 크리스천 사이언스의 창시자 메리 베이커 에디는 진정하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이자 신의 생각이며, 감각에 나타나는 세계는 그 본저에 있는 정신적 실체의 왜곡이라는 관념론적 형태의 신학을 가르쳤다. 왜곡은 생각의 재설정을 통하여 교정될 수 있다고 보았다.

1859

[에드문트 후설, 현상학 창시]

에드문트 후설이 현상학을 창시하여 의식 경험의 본질을 탐구하고, 객관적 실재가 의식에 어떻게 주어지는지를 분석하며 초월적 관념론의 흐름을 이었습니다.

1859년, 에드문트 후설은 현상학을 창시하여 의식 경험의 본질과 구조를 탐구했다. 그는 의식적 경험을 통해 현상 자체로 돌아가 객관적 실재가 의식에 어떻게 주어지는지를 분석하며, 초월적 관념론적 전통을 현대 철학에서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1877

[제임스 진스의 우주에 대한 관념론적 통찰]

20세기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진스가 "우주가 거대한 기계라기보다는 거대한 정신처럼 보이기 시작한다"고 기술하며 과학적 관점에서 관념론적 사고를 피력했습니다.

1877년, 20세기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호프우드 진스는 "우주가 거대한 기계라기보다는 거대한 정신처럼 보이기 시작한다"라고 기술하며 우주의 본질에 대한 관념론적 해석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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