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유대주의
차별, 증오, 박해, 사회 문제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9:40
- 유대인을 향한 뿌리 깊은 차별과 증오를 의미합니다. - 홀로코스트 같은 인류 최악의 박해를 포함하며 가장 오래된 증오로 불립니다. - 종교적 인종적 편견을 넘어 사회주의 급진 이슬람주의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 현대에는 그 양상이 변화했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사회 문제로 남아있는 인류의 아픔입니다.
BC 2C
[아가타르키데스의 유대인 비난]
고대 그리스 역사가 아가타르키데스가 유대인들의 풍습을 조롱하고 안식일을 지켜 예루살렘이 침략당했다고 비난하며 반유대주의의 초기 흔적을 남겼습니다.
기원전 2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아가타르키데스는 자신의 책에서 유대인들의 풍습을 어리석다고 조롱하고, 그들이 안식일을 지킨 탓에 예루살렘이 침략받았다고 비꼬는 기록을 남겼다. 이는 반유대주의의 가장 오래된 흔적 중 하나로 평가된다.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의 반유대주의 정책]
셀레우코스 제국의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 왕이 유다인들에게 이교도 관습을 강요하고 유대교 율법 준수를 금지하는 반유대주의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구약성서 《마카베오기 제1권》에 따르면,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점령한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 왕은 유다인들에게 이교도들의 관습을 따를 것, 성소에서 번제 및 희생제물 금지, 안식일 및 축제일 미준수, 할례 금지 등 유대교 율법을 저버리고 모든 규칙을 바꿀 것을 명령했다. 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사형에 처하는 극심한 반유대주의 정책을 펼쳤다.
1096
[십자군 원정 중 유대인 학살]
교황 우르반 2세가 성지 회복을 위해 소집한 제1차 십자군이 원정 중 유대인들을 무슬림과 동일시하며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1096년 교황 우르반 2세의 소집으로 시작된 제1차 십자군 원정 중, 십자군 병사들은 성지로 향하는 도중 만나는 유대인들을 무슬림과 다름없이 취급하며 대규모 학살을 저질렀다. 예루살렘에서도 유대인 회당에 불을 질러 많은 유대인이 희생되었다. 유대인들은 기독교 개종을 거부하고 죽음이나 집단 자살을 택하며 저항했다.
1350
14세기 중엽부터 16세기에 걸쳐, 스페인 외에도 독일의 대부분 도시에서 유대인들이 공식적으로 추방되는 박해가 지속되었다. 이는 서유럽 전반에서 유대인에 대한 불신과 차별이 만연했음을 보여준다.
1492
[스페인의 유대인 추방 칙령]
스페인에서 유대인들에게 기독교로 강제 개종하거나 스페인에서 영구적으로 추방당하라는 칙령이 내려져 대규모 박해와 이주가 발생했습니다.
스페인 왕실은 1492년 유대인들에게 기독교로 강제 개종하거나 스페인 영토에서 영구적으로 추방당하라는 칙령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많은 유대인이 스페인을 떠나야 했으며, 이는 서유럽 전반의 유대인 박해에 큰 영향을 미쳤다.
1523
[루터의 유대인 옹호 논문 발표]
마르틴 루터가 유대인에 대한 기독교인의 태도를 비판하며 유대적 배경을 강조한 논문 《예수는 유대인으로 나셨다》를 발표했습니다.
1523년 마르틴 루터는 《예수는 유대인으로 나셨다 (Dass Jesus Christus ein geborener Jude sei)》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유대인을 핍박하는 기독교인의 악한 태도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유대인에 대한 동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1543
[루터의 반유대주의 저술 발표]
마르틴 루터가 유대인 탄압을 선동하는 반유대주의 저술 《유대인들과 그들의 거짓말에 관하여》를 발표하며 초기 입장과 180도 다른 급진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1543년 1월, 마르틴 루터는 《유대인들과 그들의 거짓말에 관하여 (Von den Jüden und jren Lügen)》라는 저술을 통해 "유대인의 회당을 불지르고, 그들을 죽이고, 매장하고 회당을 무너뜨리고, 탈무드를 빼앗으라"고 주장하며 노골적인 반유대주의를 선동했다. 이 주장은 후대 아돌프 슈퇴커와 나치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1750
[동유럽으로의 유대인 이주와 인구 집중]
서유럽의 박해를 피해 대다수 유대인이 동유럽, 특히 폴란드에 정착하여 18세기 중엽에는 전 세계 유대인 인구 300만 명 중 대부분이 동유럽에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스페인 등 서유럽에서의 지속적인 유대인 박해와 추방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폴란드를 중심으로 한 동유럽으로 대규모 이주를 단행했다. 18세기 중엽에는 전 세계 유대인 인구 약 300만 명 중 대부분이 동유럽에 편중되어 살았으며, 폴란드에는 약 150만 명의 유대인이 거주했다. 폴란드 붕괴 후 이들은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로 편입되었다.
1894
[드레퓌스 사건 발생]
프랑스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드레퓌스 대위가 간첩 혐의로 유배되는 사건이 발생, 반유대주의가 사회문제로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1894년, 프랑스에서 유대인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가 증거 없이 간첩 혐의로 몰려 무기징역에 처해져 악마섬으로 유배되었다. 이 사건은 프랑스 가톨릭 교회, 언론, 군부를 중심으로 반유대주의가 급속히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에밀 졸라 등 지식인들의 항의로 유럽 사회에 반유대주의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이는 테오도어 헤르츨의 시온주의 주창으로 이어졌다.
1941
[홀로코스트의 시작]
나치 독일이 유럽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조직적인 인종 학살극, 즉 홀로코스트를 본격적으로 자행하여 전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1941년경, 나치 독일은 유럽 전역의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직적이고 대규모적인 인종 학살극, 홀로코스트를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이는 수백만 명의 유대인 희생자를 낳았고, 전 세계에 반유대주의의 극단적인 결과에 대한 깊은 경각심을 일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