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좌부 불교
불교 종파, 종교, 철학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9:37
상좌부 불교는 붓다의 원칙적인 가르침을 고수하는 불교 종파입니다. 불교 교단의 근본 분열 이후 보수파인 상좌부에서 시작되어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에 주로 전파되어 남방 불교라 불립니다. 팔리어 경전을 중시하며 특히 위빳사나 수행을 강조합니다. 북방 상좌부와는 다른 발전 과정을 거쳐 학문적 깊이와 수행 중심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BC 4C
[불교 교단의 근본 분열 발생]
부처의 열반 후 약 100년경, 불교 교단이 신설에 찬성하는 진보파의 대중부와 이에 반대하는 보수파의 상좌부로 양분되며 근본 분열이 발생했습니다.
불멸 후 100년경, 마하데바의 5개조 신설 또는 와지족 비구의 계율 십사 신설을 계기로 불교 교단이 대중부와 상좌부로 양분되는 근본 분열이 일어났다. 상좌부는 보수파로서 부처의 계율을 고수하는 입장을 취했다.
BC 3C
[상좌부 불교의 스리랑카 전파 및 팔리어 대장경 기록]
인도의 아쇼카 왕 때인 기원전 3세기, 상좌부가 스리랑카에 정착했으며, 기원전 1세기에는 팔리어 대장경이 싱할리 문자로 기록되어 현재 테라와다 불교의 근간이 됩니다.
인도의 아쇼카 왕 때인 기원전 3세기, 상좌부의 주도로 팔리어로 행한 제3차 결집 직후, 아쇼카 왕의 아들 마힌다 장로를 통해 상좌부가 스리랑카에 정착했다. 스리랑카 상좌부는 스스로를 "분별설부"라 불렀으며, 암송되어 오던 제3차 결집의 팔리어 대장경을 기원전 1세기에 싱할리 문자로 기록하였다. 현재 테라와다는 이 분별설부의 삼장을 계승하고 있다.
BC 2C
[상좌부, 본상좌부와 설일체유부로 분파]
불멸 후 300년 초, 북방에서 상좌부가 본상좌부와 설일체유부로 나뉘었다. 본상좌부는 히말라야 지방으로, 설일체유부는 캐시미르 지방을 본거지로 삼았다.
불멸 후 300년 초, 북방에서는 상좌부가 본상좌부와 설일체유부로 분파되었다. 본상좌부는 히말라야 지방으로 옮겨 설산부라 불렸고, 설일체유부는 캐시미르 지방을 본거지로 하여 세력을 확장했다. 이후 대승불교의 비판은 주로 설일체유부에게 돌려지며 북방 상좌부 불교의 중심이 되었다.
[설일체유부의 근본 경전, 발지론 저술]
기원전 2세기, 설일체유부의 카티야야니푸트라가 교법 연구의 근간이 된 《발지론》을 저술하며, 설일체유부 교의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기원전 2세기, 설일체유부의 카티야야니푸트라(迦多衍尼子)가 교법에 대한 연구서인 《발지론》을 저술했다. 이는 설일체유부가 전거로 삼은 중요한 논서가 되었다. 본상좌부가 경과 율을 중시한 반면, 설일체유부는 논(아비달마)을 중시했다.
200
[설일체유부 교의의 집대성, 대비바사론 완성]
기원후 2세기, 쿠샨 왕조 카니시카 왕의 보호 아래 《대비바사론》 200권이 완성되며 설일체유부의 교의가 집대성되었습니다. 이는 다른 부파 교설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방대한 저서입니다.
《발지론》 이후 6종의 논이 만들어져 《6족발지》라 불렸고,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기원후 2세기 쿠샨 왕조의 카니시카 왕의 보호 아래 연구 성과가 집대성되어 《대비바사론》 200권의 대저로 발전, 설일체유부의 교의가 완성되었다. '비바사'는 분석 또는 주석을 의미한다.
300
4세기, 설일체유부에서 분파한 경량부 소속의 세친이 《구사론》을 저술했다. 이 책은 유부의 교리를 비판적으로 해설한 것으로 중시되었다. 예를 들면, 《구사론》 〈수면품〉에서 세친은 삼세실유설을 경량부적 입장, 즉 과미무체설의 입장에서 반박하고 있다.
425
[남방 테라와다, 청정도론 완성]
기원후 425년 전후, 남방 테라와다 불교에서 위빳사나 수행 전통을 이어받아 수행 중심의 아비담마 이론을 집대성한 《위수디막가(청정도론)》를 완성했습니다.
남방의 테라와다는 설일체유부와 다른 칠론을 발전시켰고, 빠띠삼비다막가(무애해도)의 위빳사나 수행 전통을 이어갔다. 기원후 425년 전후, 수행 중심의 아비담마 이론을 집대성한 《위수디막가(청정도론)》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