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

도시, 이슬람 성지, 순례지, 역사적 중심지

num_of_likes 126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9:33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도시, 이슬람 성지, 순례지, 역사적 중심지
report
Edit

사우디아라비아의 제3의 도시 메카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탄생지이자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성스러운 성지입니다. 모든 무슬림이 일생에 한 번 이상 순례하는 하즈가 의무인 곳으로 매년 수백만 명의 순례자가 방문하여 도시 전체가 신앙의 중심으로 활력을 띕니다. 고대부터 중요한 무역 거점이었으며 현대에도 대규모 개발을 통해 역사와 신앙의 숨결이 살아있는 유일무이한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BC 1k

[메카의 시초, 이스마엘의 정착]

이슬람 전승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이 정착하면서 메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정착은 이 도시의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사건으로 여겨집니다.

고대 사마리아인들은 메카가 이스마엘의 장남 느바욧에 의해 세워졌다고 믿었으며, 이슬람 전승은 이스마엘이 메카에 정착하며 도시가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이는 메카가 가진 깊은 역사적 뿌리와 종교적 중요성을 보여주는 첫걸음입니다.

BC 1C

[고대 그리스 역사서에 기록된 카바 숭배]

고대 그리스 역사가 디오도로스 시켈로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기원전 1세기경 메카의 카바를 신성시하고 숭배하는 풍습이 이미 존재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는 메카와 카바의 오랜 종교적 중요성을 시사합니다.

기원전 60년에서 30년 무렵의 역사를 기록한 디오도로스 시켈로스는 당시 메카에서 카바를 신성한 곳으로 여기며 숭배하는 풍습이 있었음을 전했습니다. 이는 이슬람 이전 시대부터 카바가 종교적 중심지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적 단서입니다.

400

[쿠라이시 부족의 카바 활용과 다신교 숭배]

5세기경, 메카는 여러 다신교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특히 쿠라이시 부족은 후발 신을 숭배하는 장소로 카바를 활용했습니다. 카바는 이슬람 이전 시대에도 중요한 종교적 의미를 지녔습니다.

5세기 무렵, 메카는 다양한 다신교 문화에서 중요한 종교적 장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지역의 강력한 부족이었던 쿠라이시 부족은 카바를 그들의 주요 신인 후발을 숭배하는 장소로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다신교 숭배는 7세기까지 이어졌습니다.

500

[육상 무역로의 핵심, 메카의 경제적 부상]

6세기 무렵 향신료 무역이 급성장하면서 메카는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 제국 등 여러 세력이 무역로를 장악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는 중요한 무역 거점으로 떠올랐습니다.

5세기까지 쿠라이시 부족의 활동 무대였던 메카는 6세기에 접어들면서 향신료 무역의 주요 거점으로 급부상했습니다. 홍해 무역로가 해적 때문에 불안정해지자,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 제국 등은 육상 무역로의 확보에 힘썼고, 메카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대상들에게 필수적인 휴식처와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특히 잠잠 우물은 대상들의 갈증을 해소하며 메카의 전략적 가치를 높였습니다.

570

[예언자 무함마드의 탄생]

이슬람의 창시자로 추앙받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탄생은 훗날 이슬람이라는 거대한 종교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서기 570년, 이슬람의 위대한 예언자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탄생은 단순한 한 인물의 출생을 넘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이슬람 종교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610

[무함마드, 히라 동굴에서 첫 계시를 받다]

메카 인근 히라 동굴에서 무함마드는 대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알라의 첫 계시를 받았습니다. 이는 이슬람교의 시작을 알리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이후 꾸란으로 집대성될 가르침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서기 610년, 메카 인근 '빛의 산'에 있는 히라 동굴에서 무함마드는 대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알라의 첫 계시를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무함마드가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순간이며, 이슬람 종교가 세상에 전파되기 시작하는 위대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622

[무함마드의 히즈라, 이슬람력의 시작]

다신교도들의 박해를 피해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했습니다. 이를 '히즈라'라 부르며, 이슬람력은 이 해를 원년으로 삼습니다. 히즈라는 이슬람 공동체가 새롭게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서기 622년, 메카에서 이슬람을 전파하던 무함마드와 추종자들은 다신교도들의 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결국 무함마드는 추종자들과 함께 메디나로 피신했는데, 이 사건을 '히즈라'라고 부릅니다. 히즈라는 이슬람 공동체가 비로소 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슬람력은 이 해를 기원으로 삼을 정도로 이슬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630

[이슬람, 메카를 받아들이다]

무함마드와 무슬림들이 여러 전투에서 승리한 후, 메카는 마침내 이슬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메카는 이슬람 세계의 가장 중요한 성지이자 구심점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습니다.

무함마드의 메디나 이주 이후에도 무슬림과 메카의 다신교도들 사이의 분쟁은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몇 차례의 전투에서 이슬람 세력이 승리하면서, 메카는 결국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무슬림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메카는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신성하고 중요한 도시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632

[무함마드 사후에도 지속된 메카의 성지 위상]

무함마드가 사망한 후에도 메카는 이슬람 세계의 가장 중요한 도시이자 성지로 그 위상을 굳건히 지켰습니다. 매년 수많은 무슬림 순례자들이 메카를 찾아 이슬람의 중심지임을 증명했습니다.

서기 632년,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사망한 후에도 메카는 그 종교적 중요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슬람 세계가 확장됨에 따라 메카는 더욱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성지가 되었으며, 이슬람의 정신적 수도로서의 역할을 계속 수행했습니다.

661

[이슬람 세계, 순니파와 시아파로 분열]

마지막 정통 칼리파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사망 이후, 이슬람 세계는 순니파와 시아파로 나뉘는 대규모 분열을 겪게 됩니다. 이는 이슬람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주요 사건입니다.

서기 661년, 이슬람 공동체의 마지막 정통 칼리파였던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가 사망하자, 이슬람 세계는 후계 문제로 인해 순니파와 시아파로 크게 분열되었습니다. 이 분열은 이슬람 종교와 정치 지형을 영구적으로 바꾸는 중대한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우마이야 왕조, 메카 지배 시작]

이슬람 세계의 대분열 이후, 메카는 우마이야 왕조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우마이야 왕조는 이슬람 제국의 영토를 크게 확장한 첫 세습 왕조였습니다.

서기 661년,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사망과 함께 이슬람 세계가 분열된 후, 메카 지역은 우마이야 왕조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우마이야 왕조는 이슬람 제국의 통치 체제를 확립하고 영토를 크게 확장해 나갔습니다.

750

[아바스 왕조, 메카를 통치하다]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린 아바스 왕조가 새로이 이슬람 세계의 패권을 잡고 메카를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바스 왕조는 이슬람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서기 750년, 우마이야 왕조를 계승한 아바스 왕조가 등장하며 메카는 이들의 통치 아래에 놓였습니다. 아바스 왕조 시대는 이슬람 문명의 학문과 예술이 꽃을 피운 황금기로 기억됩니다.

1171

[아이유브 왕조, 메카의 지배권 획득]

이슬람 세계가 격변하던 시기, 살라흐 앗 딘이 세운 아이유브 왕조가 메카를 포함한 넓은 영토를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왕조는 십자군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서기 1171년, 이집트와 시리아를 기반으로 살라흐 앗 딘이 세운 아이유브 왕조가 메카 지역의 지배권을 획득했습니다. 아이유브 왕조는 이슬람의 영토를 수호하며 십자군에 대항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250

[맘루크 왕조의 메카 통치 시작]

이집트와 시리아를 중심으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 맘루크 왕조가 메카를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몽골의 침입을 격퇴하며 이슬람 세계를 방어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서기 1250년, 노예 출신 병사들이 세운 맘루크 왕조가 이집트에서 발흥하여 메카를 포함한 지역을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맘루크 왕조는 이슬람 문명을 수호하며 몽골 제국의 서진을 막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517

[오스만 제국의 메카 통치 시대 개막]

강력한 이슬람 제국인 오스만 제국이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를 멸망시키고 메카를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이후 수세기 동안 이슬람 세계의 상당 부분을 통치했습니다.

서기 1517년, 오스만 제국이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를 정복하며 메카를 포함한 히자즈 지역의 통치권을 확립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성지 순례 경로를 보호하고 메카의 종교적 시설을 관리하며 수세기 동안 이슬람 세계의 중요한 중심지로서 메카의 위상을 유지했습니다.

1918

[제1차 세계대전, 오스만 제국 축출과 영국의 영향력 확대]

제1차 세계대전 중 아라비아 부족들이 영국과 협력하여 오스만 제국을 아라비아 반도에서 몰아냈습니다. 이로 인해 메카는 한동안 영국의 보호령 아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던 동안, 아라비아 반도의 여러 부족들은 영국의 지원을 받아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의 협력으로 오스만 제국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영향력을 잃게 되었고, 메카를 포함한 이 지역은 한동안 영국의 보호령으로 편입되었습니다.

1924

[사우드 왕가, 메카를 점령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 병합]

1924년 메카 전투에서 사우드 왕가가 승리하며 메카를 점령하고 자국 영토로 병합했습니다. 이 사건은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형성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서기 1924년, 사우드 왕가는 '메카 전투'를 통해 주변 부족들을 물리치고 메카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승리를 바탕으로 사우드 왕가는 메카를 자신들의 영토로 병합하였고, 이는 현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아라비아 반도에 세워지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1980

[사우디 정부, '메카' 공식 표기 '마카'로 변경]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1980년대에 이슬람 성지와 비유적 표현인 '메카'를 구별하기 위해 공식 표기를 '메카'에서 '마카'로 변경했습니다.

1980년대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이슬람 성지로서의 '메카'와 어떤 분야의 중요한 장소를 비유적으로 일컫는 '메카'라는 표현을 구별하기 위해 도시의 공식 표기를 '마카'로 변경하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이는 성지의 고유성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1985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대규모 재건축 프로젝트]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메카에서 대규모 개발 사업을 추진하여 카바 사원을 개축하고 도시를 현대화했습니다. 그 결과 1985년 무렵에는 메카 건물 대부분이 새로 지은 것이 되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메카를 자국 영토로 병합한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대규모 개발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카바 사원을 대대적으로 개축하고 도시 인프라를 현대화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1985년 무렵에는 메카 내 건물 중 약 95%가 새롭게 건설된 것으로, 도시의 모습이 크게 변화했음을 보여줍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