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정교회

기독교, 교단, 종교, 동방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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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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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단, 종교, 동방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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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기독교 교단입니다. - 그리스 동유럽 러시아 등 광범위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를 명예상 대표로 하는 독특한 연합체입니다. -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과 7차 공의회 결정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는 전통적 교회입니다. - 1054년 대분열 이후 동방 기독교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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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밀라노 칙령과 기독교 공인]

로마 제국이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다신교였던 제국의 종교적 지형을 변화시켰습니다.

이는 기독교가 제국의 국교로 발전하는 중요한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400

[기독교 5대 총대주교좌 형성]

초기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구역을 기반으로 로마, 콘스탄티누폴리스,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의 다섯 총대주교좌로 나뉘며 교계 질서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이 중 로마를 제외한 네 교회가 현재의 정교회에 속합니다.

451

[칼케돈 공의회와 오리엔트 정교회 분열]

칼케돈 공의회에서 단성론이 이단으로 선언되며, 그리스도론에 대한 이견으로 인해 오리엔트 정교회와 분열하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로써 동방 교회 내에 또 다른 균열이 생겼습니다.

600

[세계 최대급 하기아 소피아 대성전 건설]

동로마 제국의 국교로서 정교회의 문화적, 종교적 중심을 상징하는 세계 최대급의 성당인 하기아 소피아 대성전이 콘스탄티누폴리스에 건설되었습니다.

이는 정교회의 위상을 보여주는 건축적 걸작입니다.

700

[이슬람교 대두와 총대주교좌 상실]

이슬람교가 성장하면서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의 세 총대주교좌 지역이 무슬림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기독교권에 남은 총대주교좌는 로마와 콘스탄티누폴리스만 남게 되며, 콘스탄티누폴리스 교회의 권위가 더욱 강해졌습니다.

726

[성상파괴령 선포]

동로마 황제 레온 3세가 성상파괴주의를 지지하며 성상파괴령을 내렸습니다.

이는 성상 옹호주의와 충돌하며 교회를 분열시키는 격렬한 논쟁과 저항을 촉발했습니다.

787

[성상 옹호 공의회 개최]

여제 이레네가 사태 수습을 위해 공의회를 소집하여 성상 사용 교리를 다시 확인하고 성상파괴주의를 공식적으로 부정했습니다.

이는 격렬했던 성상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800

[샤를마뉴의 황제 대관식]

로마 교황이 프랑크 왕 샤를마뉴에게 로마 황제의 대관식을 거행하며 동로마 제국으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이는 동서 교회 간의 위상 경쟁을 심화시키고 향후 대분열의 단초를 제공했습니다.

870

[불가리아 정교회 건립]

불가리아에서 정교회가 건립되며 슬라브어 전례가 도입되었습니다.

900

[키릴로스와 메토디오스 형제의 슬라브어 선교]

동로마 제국의 선교사 키릴로스와 메토디오스 형제가 문자가 없던 슬라브어를 위해 문자를 고안하고 성서 및 기도서를 번역했습니다.

이들이 고안한 그라고르 문자는 키릴 문자로 발전하여 슬라브 문화 형성에 크게 기여하며 슬라브 민족 지역에 정교회가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000

[블라디미르 1세의 개종과 루스 정교회 성립]

키예프 루스의 대공 블라디미르 1세가 정교회로 개종하고 이를 국교로 삼으면서 루스 정교회가 성립되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지역이 기독교화되는 중대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054

[교회 대분열 (상호 파문)]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와 로마 교황이 교황의 권위 문제를 놓고 상호 파문하며 동서 교회 대분열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비록 이때의 파문이 즉각적인 분열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갈등의 극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로마 교황 레오 9세의 특사 훔베르트 추기경이 사망한 교황의 이름으로 미카엘 총대주교를 파문하고, 이에 미카엘 총대주교가 특사단을 파문하며 발생했습니다. 이는 총대주교 간의 갈등이었으나, 지역 교회 간의 교류는 이후에도 지속되었습니다.

1204

[제4차 십자군 원정, 동서 교회 실질적 분열]

제4차 십자군이 이슬람 국가가 아닌 정교회 국가를 침략하고 약탈 및 방화를 자행하며, 콘스탄티누폴리스를 함락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정교회 신자들 사이에 반로마 감정이 깊어지고, 동서 교회의 완전한 단절을 초래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십자군은 정교회 성당의 제단 장식, 십자가, 성상, 성인 유해 등 성물까지 약탈했습니다. 이 폭력은 15세기 피렌체 공의회에서의 동서 교회 합의를 동방 교회의 평신도들이 격렬히 거부하게 만들었고, 동로마 제국 패망 후 영구적인 분열로 이어졌습니다.

1329

[루스 대주교좌 모스크바 이전]

루스 대주교좌가 모스크바로 이전하며, 모스크바 대공국이 새로운 루스의 중심지로 떠올랐습니다.

1453

[콘스탄티누폴리스 함락과 '제3의 로마' 모스크바]

오스만 제국에 의해 콘스탄티누폴리스가 함락되자, 모스크바는 스스로를 '정교회의 마지막 보루'이자 '제3의 로마', '제3의 예루살렘'으로 칭하며 정교회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했습니다.

1547

[모스크바 대공의 '차르' 칭호 사용]

모스크바 대공이 '차르'를 자칭하기 시작하며 종교와 결합한 민족의식 고양에 기여했습니다.

1589

[러시아 정교회의 독립 및 모스크바 총대주교좌 설립]

러시아 정교회가 독립 교회로 인정받고 모스크바 총대주교좌를 설립하며 콘스탄티누폴리스의 지배에서 벗어났습니다.

이는 러시아가 독자적인 정교회 세력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700

[표트르 1세의 교회 통제 강화]

표트르 1세 황제가 모스크바 총대주교의 후임자 지명권을 금지하고 황제가 직접 임명하는 성무회원을 설치하며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1721

[러시아 총대주교 제도 폐지]

러시아 황제가 총대주교 제도를 폐지하고 성무회원이 교회를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이 강력한 국가 통제 체제는 1917년 러시아 혁명까지 이어지며 러시아 정교회의 독립성을 크게 제한했습니다.

1782

[《필로칼리아》 출판과 정교회 부흥]

그리스에서 정교회의 전통적인 신비 사상과 정적주의를 담은 성가집 《필로칼리아》가 출판되었습니다.

이는 각국 언어로 번역되어 전 정교회에 퍼지며 침체되어 있던 교회의 신앙 부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833

[그리스 정교회 독립 선언]

그리스 정교회가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민족주의 고양과 함께 오스만 제국의 통제 아래 있던 여러 정교회 국가들의 독립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1850

[콘스탄티누폴리스의 그리스 정교회 독립 승인]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청이 그리스 정교회의 독립을 승인했습니다.

이는 여러 정교회 국가들이 독립 교회를 형성하는 흐름에 중요한 선례를 남겼습니다.

[정교회 국가들의 독립 운동과 선교 확산]

19세기 중반, 유럽의 민족주의 고양과 함께 오스만 제국 내 정교회 국가들의 독립 운동이 활발해졌습니다.

이에 발맞춰 교회들도 콘스탄티누폴리스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했으며, 러시아 정교회는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등지로 선교 활동을 적극적으로 확대했습니다.

1860

[불가리아 정교회 독립]

불가리아 정교회가 독립 교회가 되었습니다.

1879

[세르비아 정교회 독립]

세르비아 정교회가 독립 교회가 되었습니다.

1885

[루마니아 정교회 독립]

루마니아 정교회가 독립 교회가 되었습니다.

1905

[한국 정교회 설립]

러시아 정교회의 선교 활동을 통해 한국에 정교회가 들어왔습니다.

1917

[러시아 혁명과 교회 통제 체제 종식]

러시아 혁명이 발생하며 1721년부터 이어져 온 러시아 제국의 정교회에 대한 강력한 국가 통제 체제가 마침내 종식되었습니다.

1956

[중국 정교회 자치교회 승격 및 붕괴]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으로부터 자치교회로 승격되었으나, 문화대혁명 등의 공산주의 운동과 중국 정부의 종교 인준 미비로 사실상 붕괴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1965

[동서 교회 상호 파문 파기]

1054년 대분열의 상징이었던 동서 교회 간의 상호 파문 상태가 1965년 12월 파기되었습니다.

이는 양측이 상호 이해와 화해를 모색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1990

[공산주의권 정교회 활동 재활성화]

1990년대 공산당 정권 퇴진 후, 러시아, 세르비아 등 옛 공산주의 진영에서 국가의 통제가 철폐되며 정교회의 활동이 다시 활발해졌습니다.

이는 정교회 신앙의 부흥과 사회적 역할 확대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2003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십자군 약탈 사죄]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그리스 방문 시 십자군의 정교회 약탈에 대해 사죄했습니다.

이는 동서 교회 간의 오랜 불신 해소와 화해 모색에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2008

[한국에서의 정교회 관심 증대]

한국에서 개신교 출판사를 통해 정교회 예전 해설서가 번역 출판되는 등,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정교회에 대한 한국 교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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