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뇽 유수

교회사, 유럽 역사, 중세 시대, 종교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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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8- 07: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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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 유수
교회사, 유럽 역사, 중세 시대, 종교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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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로마 교황청이 프랑스 아비뇽으로 강제로 이전하여 약 70년간 머문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고대 유대인의 바빌론 유수에 빗대어 불릴 정도로 교황권의 쇠퇴를 상징합니다. 이 시기 프랑스 왕의 영향력 아래 7명의 교황이 꼭두각시처럼 움직였으며 이는 서방교회 대분열이라는 더 큰 혼란으로 이어졌습니다. 최종적으로 교황 그레고리오 11세에 의해 교황청이 로마로 복귀하며 종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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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

[프랑스 왕의 교황 습격, 아나니 사건 발생]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와 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대립이 극에 달했습니다.

프랑스군이 이탈리아 아나니의 별장에 있던 교황을 습격하여 생포하고 심한 욕설과 구타를 가했습니다.

이 충격으로 교황은 한 달 뒤 사망했고, 교황권이 약화되며 프랑스 왕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305

[프랑스 꼭두각시 교황, 클레멘스 5세 즉위]

프랑스 출신 추기경 베르트랑이 교황 클레멘스 5세로 즉위했습니다.

그는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의 요청에 따라 교황청을 프랑스 남부로 옮길 준비를 시작했으며, 이는 교황권이 프랑스 국왕의 영향력 아래에 놓였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신호탄이었습니다.

1308

[교황청, 프랑스로 이주 결정]

클레멘스 5세 교황이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교황청을 프랑스 남부로 이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아비뇽 유수의 시작을 알리는 실질적인 조치였습니다.

1309

[교황청, 아비뇽에 자리 잡다]

교황 클레멘스 5세가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에 교황청 거처를 공식적으로 마련하며, 약 70년간 이어질 아비뇽 유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 아비뇽은 프랑스 왕국의 영내가 아닌 교황의 봉신인 프로방스 백작의 영지였습니다.

1310

[이탈리아 혼란 가중, 교황의 귀환 좌절]

이탈리아반도를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7세가 침략(1310~1313년)하며 혼란이 가중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교황은 이탈리아로 돌아가지 못하고 프랑스에 계속 머무르게 되면서 아비뇽 유수의 장기화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1377

[70년 유수의 종말, 교황청 로마 복귀]

유럽 사회에서 교황청을 로마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치자, 교황 그레고리오 11세가 마침내 로마로 귀환하며 약 70년간 지속된 아비뇽 유수가 종식되었습니다.

이는 교황권 회복을 향한 중요한 발걸음이었습니다.

1378

[교황 선종 후 터진 교회 대분열]

로마로 돌아온 그레고리오 11세 교황이 이듬해 선종하자, 로마에서 새로운 교황 우르바노 6세가 선출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임 교황과 친프랑스파 추기경들 사이에 극심한 갈등이 발생하며 콘클라베 무효를 선언, 아비뇽에서 또 다른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옹립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로써 로마와 아비뇽에 두 명의 교황이 공존하는 '서방교회 대분열'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시작되었습니다. 클레멘스 7세는 무력으로 우르바노 6세 축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아비뇽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교황청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교황권의 권위가 더욱 실추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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