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국가, 섬나라, 입헌군주국, 오세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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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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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섬나라, 입헌군주국, 오세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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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는 오세아니아의 섬나라로 폴리네시아인 정착 후 마오리 문화가 발전했습니다. 영국 식민지 시대를 거쳐 독립한 입헌군주국이며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했습니다. 높은 삶의 질과 시민 자유를 자랑하며 자유무역 경제를 추구합니다. 독특한 생물다양성과 대자연을 자랑하며 관광업이 발달했습니다. 혁신적인 과학 기술 분야와 럭비 등 스포츠 강국으로도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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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0

[폴리네시아인 뉴질랜드 정착 시작]

대양을 항해하는 카누를 타고 폴리네시아인들이 뉴질랜드에 처음 도달했습니다.

이들은 이후 고립된 환경에서 독특한 마오리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약 1280년부터 1350년 사이에 여러 차례에 걸쳐 이주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기 정착민들은 마오리족으로 발전하며 이위(iwi)와 하푸(hapu)라는 부족 단위로 나뉘어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하며 살았습니다. 이들의 정착은 계획적이고 의도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1642

[유럽인의 뉴질랜드 최초 발견]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과 그의 승무원들이 유럽인으로서 처음으로 뉴질랜드를 발견했습니다.

당시 원주민들은 이들을 적대적으로 대했으며, 충돌로 인해 선원 4명이 사망했습니다.

타스만은 뉴질랜드를 발견한 후 네덜란드 의회의 이름을 따 '스타텐란트'(Staten Land)라고 명명했습니다. 1645년, 네덜란드 지도학자들이 네덜란드의 제일란트주 이름을 따 '노바 제일란디아'(Nova Zeelandia)로 변경했으며, 이후 제임스 쿡에 의해 '뉴질랜드'로 영어화되었습니다.

1769

[제임스 쿡의 뉴질랜드 해안선 지도 작성]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이 뉴질랜드의 해안선 대부분을 정확하게 지도로 그리며 유럽인들에게 뉴질랜드의 존재를 더욱 명확히 알렸습니다.

쿡의 방문 이후 많은 유럽 및 북아메리카 포경선, 물개잡이 배, 무역선들이 뉴질랜드를 찾아왔습니다. 이들은 유럽산 물품을 목재, 마오리 음식 등과 교환하며 교역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1801

[머스킷 전쟁 발발]

감자와 머스킷 총의 도입으로 마오리족의 농업과 전쟁 방식이 크게 변화했습니다.

이로 인해 마오리 부족 간의 '머스킷 전쟁'이 1801년부터 1840년까지 이어졌으며, 600회 이상의 전투와 함께 3만에서 4만 명에 이르는 마오리족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감자는 안정적인 식량 공급원이 되어 군사 작전의 지속성을 높였고, 머스킷 총은 전쟁의 양상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이 시기 기독교 선교사들이 정착하며 많은 마오리족이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19세기 동안 질병으로 인해 마오리 인구가 약 40% 감소했습니다.

1832

[뉴질랜드 주재 영국 공사관 임명]

영국 정부는 북부 마오리족의 청원에 따라 제임스 버스비를 뉴질랜드 주재 영국 공사관으로 임명하여 양국 관계의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1835

[뉴질랜드 독립선언서 발표 및 영국 보호 요청]

프랑스의 정착 임박 선언에 대응하여 뉴질랜드 부족연합은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영국 윌리엄 4세에게 보호를 요청했습니다.

이는 뉴질랜드의 미래에 대한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1840

[와이탕이 조약 체결]

뉴질랜드 역사상 가장 중요한 문서인 와이탕이 조약이 베이오브아일랜즈에서 영국 대표와 마오리족 수장들 사이에 처음으로 체결되었습니다.

이 조약은 뉴질랜드의 주권을 영국에 선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조약은 뉴질랜드 회사의 정착 제안과 프랑스 정착민의 토지 매입 시도에 대한 우려 속에서 체결되었습니다. 윌리엄 홉슨은 조약 체결 후 1840년 5월 21일 영국이 뉴질랜드 전체의 영유권을 소유한다고 선언하며, 이는 이민자 수의 급증으로 이어졌습니다.

1841

[뉴질랜드, 영국 왕령 식민지로 분리]

와이탕이 조약 체결 이후, 뉴질랜드는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의 일부로 남아있다가 1841년 7월 1일 영국의 왕령 식민지인 뉴질랜드 식민지로 공식적으로 분리되었습니다.

1843

[뉴질랜드 전쟁 발발]

1843년 와이라우 학살을 시작으로 영유권과 토지 문제로 인한 갈등이 증폭되면서 식민지 정부와 마오리족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 분쟁은 주로 북섬에서 일어났으며, 수천 명의 영국군이 파견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뉴질랜드 전쟁'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전쟁 이후 정착민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마오리족의 땅이 뉴질랜드 정부에 의해 압수되었습니다.

1852

[뉴질랜드 헌법 제정 및 대의정치 시작]

1852년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면서 뉴질랜드는 대의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어서 1854년에는 뉴질랜드 최초의 의회가 개설되어 자치권 확대를 위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1856년에는 뉴질랜드 식민지가 원주민 정책을 제외한 모든 국내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인수하며 자치가 가능해졌습니다. 원주민 정책은 1860년대에 인계되었습니다.

1865

[웰링턴으로 수도 이전]

남섬이 또 다른 식민지가 될 것을 우려한 뉴질랜드 제4대 총리 알프레드 도멧의 제안에 따라, 뉴질랜드의 수도가 오클랜드에서 쿡 해협 인근의 웰링턴으로 이전되었고, 1865년부터 웰링턴에 의회가 자리 잡았습니다.

1891

[뉴질랜드 자유당의 집권 시작]

뉴질랜드 역사상 처음으로 설립된 정당인 뉴질랜드 자유당이 1891년 집권에 성공하며 뉴질랜드 정치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리처드 세던이 대부분의 재임 기간 동안 자유당 정부를 이끌며 중요한 사회적, 경제적 법안들을 통과시켰습니다.

1893

[세계 최초 여성 선거권 부여]

뉴질랜드는 세계 최초로 모든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는 여성의 정치 참여를 보장한 혁신적인 조치였습니다.

1894

[산업 조정 및 중재법 제정]

뉴질랜드 정부는 1894년 산업 조정 및 중재법을 제정하여 고용주와 노동조합 간의 분쟁 발생 시 중재를 의무화하며 노동 관계 안정에 기여했습니다.

1907

[뉴질랜드, 자치령으로 선포]

뉴질랜드 의회의 요청에 따라 영국 에드워드 7세 국왕은 뉴질랜드를 대영제국에 속한 자치령으로 선언하며, 뉴질랜드의 자치 상황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1931

[웨스트민스터 헌장 적용]

뉴질랜드는 1931년 제정된 웨스트민스터 헌장의 적용을 받게 되면서 영국 의회가 뉴질랜드 의회의 동의 없이 뉴질랜드와 관련된 법을 제정하는 것을 금지하는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1939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선언]

뉴질랜드는 1939년 9월 3일 영국과의 동맹을 기반으로 독일에 선전포고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습니다.

당시 수상 마이클 조지프 새비지는 '그녀가 가는 곳에 우리도 간다.

그녀가 서 있는 곳에 우리도 서 있는다'라는 유명한 선언을 남겼습니다.

뉴질랜드는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에 모두 참전했으며, 갈리폴리 전역을 비롯하여 크레타 전투,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 몬테카시노 전투, 그리고 태평양 전쟁 등에서 활약했습니다. 특히 갈리폴리 전역은 뉴질랜드의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47

[웨스트민스터 헌장 법안 채택]

뉴질랜드 의회는 1947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을 채택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며, 영국 의회가 뉴질랜드 의회의 동의 없이 뉴질랜드 관련 법을 제정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실질적인 독립을 향한 중요한 단계를 밟았습니다.

1951

[ANZUS 조약 체결]

영국이 유럽과의 이익에 집중하기 시작하자, 뉴질랜드는 오스트레일리아 및 미국과 태평양 안전 보장 조약(ANZUS)을 체결하며 새로운 안보 동맹 관계를 구축했습니다.

1973

[영국 EEC 가입으로 수출 시장 축소]

영국이 유럽 경제 공동체에 가입하면서 뉴질랜드의 농산물 수출 시장이 크게 축소되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1973년 및 1979년 석유 파동과 같은 여러 요인이 겹쳐 심각한 경제 불황이 발생했습니다. 1982년에는 세계은행 조사에서 선진국 중 1인당 소득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1975

[와이탕이 조사위원회 설립]

와이탕이 조약 관련 논란과 마오리족의 역사적인 불만을 조사하기 위해 와이탕이 조사위원회가 1975년 설립되었습니다.

이 위원회는 1985년부터 불만 원인을 조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뉴질랜드 정부는 현재도 와이탕이 조약에 따른 마오리족의 주장에 대해 많은 부족들과 협상 중입니다.

1980

[농업 보조금 철폐 및 규제 완화]

1980년대 중반, 뉴질랜드는 농업 부문의 보조금을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철폐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대대적인 경제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이는 1984년 이후 로저노믹스(Rogernomics)와 루타네시아(Rutanasia)로 불리는 거시경제 구조 조정의 일환으로, 보호주의 경제에서 자유무역 경제로 빠르게 전환하는 과정의 핵심이었습니다.

1986

[뉴질랜드 헌법 제정]

뉴질랜드는 1986년에 독립적인 헌법을 제정하며 국가의 법적 체계를 확립하고 주권을 강화했습니다.

2005

[세계 최초 여성 고위 공직자 독식]

뉴질랜드는 2005년 3월부터 2006년 8월까지 국가원수, 총독, 총리, 대의원 대변인, 대법원장이 모두 여성으로 임명되는 세계 최초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성 평등을 향한 뉴질랜드의 진보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2006

[뉴질랜드 수화, 공식 언어로 지정]

뉴질랜드 수화가 2006년 뉴질랜드의 공식 언어 중 하나로 지정되며, 청각 장애인 공동체의 언어적 권리가 법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2008

[중국과 최초의 FTA 체결]

뉴질랜드와 중화인민공화국이 2008년 4월 7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습니다.

이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개발도상국이 아닌 선진국과 체결한 최초의 FTA로, 뉴질랜드 경제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2013

[북섬·남섬 명칭 공식화]

2009년 뉴질랜드 지리국이 북섬과 남섬의 이름이 공식화되지 않았음을 발견한 후, 2013년 10월 10일 두 섬의 명칭을 공식화하며 혼란을 해소하고 국가 지명 체계를 정비했습니다.

이후 각각의 섬은 영어 또는 마오리어 이름(북섬: 테이카아마우이, 남섬: 테와이포우나무) 중 하나를 선택하여 쓰거나 둘을 병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1

[최저 실업률 기록]

뉴질랜드의 실업률은 2021년 12월, COVID-19 팬데믹 기간 중 3.2%를 기록하며 사상 최저치를 달성했습니다.

이는 비교 가능한 27개 OECD 국가 중 세 번째로 낮은 수치였습니다.

실업률은 1991년과 1992년 주식 시장 붕괴 이후 10%를 넘는 수준으로 정점을 찍었으나, 2007년 3.7%까지 하락하기도 했습니다. 2009년 말에는 세계 금융 위기의 영향으로 다시 7%로 상승했었습니다.

2023

[EU-뉴질랜드 자유무역협정 체결]

2023년 7월, 뉴질랜드와 유럽 연합은 EU-뉴질랜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여 양측 간 거래되는 여러 상품에 대한 관세를 철폐했습니다.

이는 기존 자유무역협정을 확장한 것으로, 특히 고기와 유제품에 대한 관세가 감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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