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브웨
국가, 아프리카, 공화국, 내륙국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9:18
한때 아프리카의 보석이라 불린 짐바브웨는 고대 왕국부터 식민 지배 독립에 이르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녔습니다. 로버트 무가베의 장기 집권은 인권 침해와 초인플레이션 등 심각한 경제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2017년 쿠데타 이후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지만 여전히 사회·경제적 난관을 극복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1001
[아프리카 문명의 요충지, 짐바브웨]
11세기부터 현재 짐바브웨 지역은 이주와 교역의 주요 경유지였습니다.
로즈비 제국과 마트와카지 등 다양한 국가와 왕국들이 이곳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 현재 짐바브웨 지역을 장악한 여러 쇼나족 문명들의 선구국가 역할을 한 마붕구브웨 왕국은 독특한 건석 건축양식을 남겼습니다.
1890
[세실 로즈의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 짐바브웨 영토 확정 시작]
세실 로즈가 이끄는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가 마쇼날랜드를 정복하며 현재 짐바브웨의 초기 경계를 그렸습니다.
1888년 로즈는 은데벨레 국왕 로벤굴라에게서 광산 채굴권을 확보하고 영국 정부로부터 마타벨렐란드와 마쇼날랜드 지배 칙허장을 요구했습니다.
1893
[제1차 마테벨레 전쟁, 영국 식민지 지배 확장]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는 맥심 기관총을 앞세워 제1차 마테벨레 전쟁에서 은데벨레 왕국을 격파하고 마타벨렐란드를 정복했습니다.
이로써 현재 짐바브웨의 경계가 확정되고 영국의 식민 지배가 확고해졌습니다.
1923
[남로디지아 탄생, 백인 소수 통치의 시작]
마쇼날랜드와 마타벨렐란드가 백인 식민주의자 주도로 통합되어 영국 자치령 '남로디지아'로 합병되었습니다.
흑인 원주민이 배제된 채 소수의 백인 거주민만 참여한 국민 투표를 거쳐 1923년 10월 1일 첫 헌법이 발효되었습니다.
1930년 제정된 토지 분배법은 흑인의 토지 소유권을 특정 지역으로 제한하고 백인에게 국토 대부분의 토지를 허가하여 급격한 불평등을 초래했습니다. 남로디지아는 두 차례 세계 대전에서 영국군으로 참전하여 영국 본토를 포함해 대영제국에서 1인당 가장 많은 기여도를 기록했습니다.
1965
[로디지아, 영국으로부터 '일방적 독립 선언']
이언 스미스가 이끄는 소수 백인 보수주의 정부는 영국 식민지 정책을 거부하고 로디지아의 일방적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1776년 미국 독립선언 이후 최초로 반란 세력에 의해 취해진 대영제국으로부터의 독립으로 기록됩니다.
영국은 이를 반란으로 간주했지만 무력 조치는 없었습니다.
1966
[유엔, 로디지아에 사상 최초의 강제적 경제 제재 부과]
영국이 로디지아의 일방적 독립 선언을 반란으로 규정하고 유엔에 경제 제재를 요청하자, 유엔은 1966년 12월 로디지아에 대한 강제적인 금수조치를 결의했습니다.
이는 사상 최초로 자치 국가에 대해 행해진 강제적인 경제 제재였습니다.
이 조치는 1968년에 그 범위가 확대되었고, 조슈아 은코모의 ZAPU(소련, 쿠바 지지)와 로버트 무가베의 ZANU(중국 지지) 등 흑인 민족주의 게릴라 세력은 공산 진영의 지원을 받으며 백인 정권에 대항한 내전을 전개했습니다.
1979
[짐바브웨 로디지아 출범, 백인 공직 유지 합의]
내부 갈등 격화로 이언 스미스 정부가 공산주의 세력과 협상에 나서 1978년 3월 아벨 무조레와 주교 등 아프리카 지도자들과 합의를 도출했습니다.
이에 따라 1979년 4월 총선이 실시되었고, 6월 1일 무조레와가 총리로 부임하며 국명이 '짐바브웨 로디지아'로 변경되었습니다.
이 합의로 로디지아 보안군, 행정부, 사법부, 그리고 입법부 의석의 1/3에서 기존 백인들의 공직이 유지되었습니다. 같은 해 6월 12일 미국 상원이 로디지아에 대한 경제 제재 해제를 결의했습니다.
[랭커스터 하우스 협정 체결, 내전 종식]
영국 외무장관 피터 캐링턴의 주도 하에 1979년 9월부터 12월까지 무조레와, 무가베, 은코모 등 주요 지도자들이 런던에서 헌법 회의를 가졌습니다.
12월 21일 모든 대표들이 랭커스터 하우스 협정에 조인하며 로디지아 내 게릴라전이 공식적으로 종식되었습니다.
12월 11일 로디지아 의회는 영국 식민지로의 회귀에 만장일치했고, 12일 크리스토퍼 소임스 총독이 도착하며 영국은 짐바브웨 로디지아를 남로디지아 보호령으로 공식 발표했습니다. 유엔은 12월 16일 제재를 해체하고 회원국들에게 제재 해제를 요구하며 국제적 압박이 완화되었습니다.
1980
[로버트 무가베, 총선 압승 및 짐바브웨 공식 독립]
1980년 2월 총선에서 로버트 무가베와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 연맹(ZANU)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어서 4월에는 영국 찰스 왕세자가 참석한 공식 행사에서 영국이 짐바브웨의 독립을 승인하며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습니다.
짐바브웨 독립 직후 카난 바나나가 초대 대통령으로 부임했으나 의례적 역할을 담당했고, 로버트 무가베 ZANU 대표가 초대 총리이자 행정수반으로 임명되며 실질적인 권력을 쥐었습니다.
1983
[구쿠라훈디 대학살, 은데벨레족 탄압]
1983년부터 1987년까지 로버트 무가베 정권은 마타벨렐란드 지역의 은데벨레족에 대한 무자비한 '구쿠라훈디' 대학살을 자행했습니다.
북한의 군사 훈련을 받은 정예부대인 짐바브웨 제5여단이 마타벨렐란드에 진입하여 수천 명에서 최대 8만 명에 이르는 민간인을 학살하고 또 다른 수천 명을 고문했습니다.
이 끔찍한 작전은 무가베 정권의 쇼나족 중심 권력 강화에 대한 반정부 움직임을 진압하려는 목적이었으며, 1987년 은코모와 무가베의 정당 합병으로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
1987
[무가베, 대통령직 장악과 바나나 전 대통령 숙청]
1987년, 로버트 무가베 총리는 카난 바나나 대통령을 동성연애 혐의로 체포, 대통령직을 박탈하고 자신이 직접 대통령에 취임하며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바나나는 이후 구속, 탈옥, 망명을 거쳐 2003년 런던에서 사망했습니다.
1990
[무가베 ZANU-PF당, 압도적 총선 승리]
1990년 3월 총선에서 무가베와 ZANU-PF당은 전체 120석 중 117석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는 무가베 정권의 장기 집권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학생, 노동조합, 노동자들의 반정부 시위가 잦아졌습니다.
1997
[토지 재분배 문제와 HIV 확산, 사회 위기 고조]
1997년, 소수 백인이 농지의 대부분을 소유한 불균형 문제가 다시 주요 국정 과제로 떠오르며 사회적 갈등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또한, 전체 인구의 25%가 HIV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며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기가 닥쳤습니다.
2000
[강제적 '패스트트랙 토지개혁' 시행]
2000년, 무가베 정권은 백인 소유 농지를 강제로 몰수하여 흑인에게 재분배하는 '패스트트랙 토지개혁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농업 생산량이 급감하고 경제 침체가 가속화되었습니다.
이 개혁은 외부 금융 지원 감소와 가뭄이 겹치면서 짐바브웨의 주요 수출품이었던 농산물 생산량을 크게 감소시켰습니다. 다만, 이후 58,000명의 흑인 영세 농부들이 황폐화된 농지를 소규모로 복구하며 제한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2001
[미국, 짐바브웨 민주주의·경제 회복 법안(ZDERA) 제정]
2001년 미국은 짐바브웨 민주주의와 경제 회복을 위한 법안(ZDERA)을 제정했습니다.
이 법안은 2002년 발효되어 짐바브웨 정부 자산 동결을 포함한 국제적 제재로 이어졌으며, 힐러리 클린턴, 조 바이든 등 유력 정치인들이 발의했습니다.
ZDERA 제4C 조항에 따라, 미 재무장관은 국제금융기관에 소속된 미국 사무관들에게 짐바브웨 정부에 대한 대출, 신용, 보증 확대 및 부채 취소/감소 결정에 반대하도록 지시했습니다.
2002
[짐바브웨, 영연방 회원 자격 정지 및 탈퇴]
무분별한 농장 몰수와 노골적인 부정 선거 등으로 짐바브웨 정부의 국제법 위반이 이어지자, 2002년 영연방 회원 자격이 정지되었고, 결국 2003년 12월 짐바브웨 정부는 자진적으로 영연방 회원 자격을 해지했습니다.
이는 국제 사회에서의 고립을 심화시켰습니다.
2003
[짐바브웨 경제 붕괴 및 대규모 인구 유출]
2003년 짐바브웨 경제가 완전히 붕괴하며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1,100만 명이 나라를 떠났습니다.
남은 인구의 3/4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연명하는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습니다.
이는 극심한 경제난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2005
['무람밧스비나 작전' 강행, 대규모 주거지 철거]
2005년 총선 직후 짐바브웨 정부는 '무람밧스비나 작전'을 시행하며 도시 빈민가와 불법 시장을 철거했습니다.
이 작전으로 인해 도시의 상당수 인구가 무주택자로 전락했고, 국제앰네스티 등은 정부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며 인권 탄압 논란이 일었습니다.
짐바브웨 정부는 이를 국민들에게 양질의 거주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시도라 표현했으나, 인권 단체들은 당국이 이와 같은 주장을 제대로 입증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습니다.
2008
[짐바브웨, 최악의 초인플레이션 기록]
2008년 짐바브웨는 역사상 유례없는 초인플레이션을 겪으며 1달러에 200억 짐바브웨 달러라는 경이적인 화폐 가치 하락을 기록했습니다.
지폐에 유통기한이 표시될 정도였고, 연평균 물가 상승률은 220만%에 달하는 세계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정부는 하루 인출 금액을 1000억 짐바브웨 달러(미화 약 5달러)로 제한하기도 했으며, 빵 하나 가격이 교사 월급의 3분의 1에 달하는 기현상이 벌어졌습니다.
[2008년 총선 및 대선, 결과 발표 지연 논란]
2008년 3월 29일 짐바브웨 총선 및 대선이 치러졌으나, 민주변화운동(MDC-T)이 의회에서 근소한 차이로 과반수를 차지했다는 소문이 돌자 선거 결과 발표가 2주간 보류되며 큰 논란을 빚었습니다.
[러시아·중국, 유엔 짐바브웨 제재안에 거부권 행사]
2008년 7월 10일, 러시아와 중국이 영국-미국 발의 유엔 짐바브웨 제재안(무기 금수 조치 포함)에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당시 유엔 위원회 15개국 중 9개국이 짐바브웨가 '국제 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반대했습니다.
[콜레라 비상사태 선포 및 확산]
2008년 짐바브웨는 콜레라 사망자가 500명에 육박하자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훼손된 배관 시설의 박테리아가 원인으로 지목되었으며, 콜레라는 인근 국가로까지 퍼져나가 심각한 보건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2008년 말, 짐바브웨는 열악한 생활 조건, 공중 보건 및 여러 기초 문제에서 위기 상황을 겪었습니다. 식량 부족 문제로 인해 비정부단체들이 정부를 대신하여 식량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2009
[짐바브웨, 자국 화폐 폐지 및 외국 통화 도입]
2009년 9월, 짐바브웨 정부는 초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자국 화폐인 짐바브웨 달러를 폐지하고 미국 달러 등 외국 통화를 공식 유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경제 안정화를 위한 극단적인 조치였습니다.
이로 인해 거스름돈 문제, 농촌 지역의 물물교환 심화 등 불편함이 있었지만, 정부는 경제가 제 궤도에 오를 때까지 자체 화폐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010
[무가베, 서방 제재 해제 시 민간 기업 강제 몰수 경고]
2010년 12월,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은 서방의 제재가 해제되지 않을 경우 짐바브웨 내 모든 민간 소유 회사를 강제 몰수하겠다고 경고하며 국제 사회와의 긴장을 고조시켰습니다.
2013
[대통령 권한 축소 새 헌법 통과 및 무가베 재선 논란]
2013년 짐바브웨 국민선거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을 담은 새로운 헌법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열린 대통령 선거에서 로버트 무가베가 재선에 성공하자 '이코노미스트'와 '데일리 텔레그래프' 등은 이를 각각 "조작된", "도둑맞은" 선거라고 비판하며 대규모 조작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민주변화운동(MDC)은 법원에 헌법소원을 제출했으나 기각되었고, 2014년 ZANU-PF 당 회의에서 무가베가 2008년 선거에서 야당이 73%를 득표했다고 실수로 밝혀 논란이 더욱 커졌습니다. 재집권 후 일당제 재도입과 공무원 수 두 배 증가는 "실정과 휘황천란한 부패"로 평가되었습니다.
[존 은코모 부통령 사망]
2013년 1월 17일, 짐바브웨의 존 은코모 부통령이 78세의 나이로 하라레에서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2015
[짐바브웨, 자국 화폐 최종 폐지 및 미화 교체]
2015년 6월 11일, 짐바브웨 준비은행은 초인플레이션을 끝내기 위해 자국 화폐를 최종 폐지하고 미화로 교체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3경 5천조 짐바브웨 달러가 1 미국 달러로 교환되는 충격적인 조치였습니다.
짐바브웨 달러화는 2010년 달걀 3개조차 구매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현재는 RTGS 달러가 대체 통화로 사용되고 있으나, 과거 여러 외국 통화를 함께 사용하는 불편을 겪기도 했습니다.
2016
[경제 붕괴로 인한 전국적 시위 발생]
2016년 7월, 짐바브웨의 경제 붕괴로 인해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재무부 장관은 "현재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시인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2017
[군부 쿠데타로 무가베 가택연금]
2017년 11월 15일, 짐바브웨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을 가택연금했습니다.
경제 침체와 1년간 지속된 반정부 시위 속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37년 독재의 종말을 예고했습니다.
군부는 자신들의 행동이 쿠데타가 아니라고 부인했으며, 이후 11월 19일 ZANU-PF는 무가베를 당 대표에서 해임하고 에머슨 음낭가과 전 부통령을 임명했습니다.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 전격 사임]
2017년 11월 21일,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탄핵 절차 완료 직전 사표를 제출하며 37년간의 장기 집권을 마감했습니다.
이는 짐바브웨 역사상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ZANU-PF 당 원내 총무 러브모어 마투케는 로이터에 에머슨 음낭가과가 대통령으로 임명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무가베 정권 37년간 300만 명 살해, 최악의 인권 참사]
2017년 12월 공개된 통계에 따르면, 로버트 무가베 정권의 37년 집권 기간 동안 직간접적으로 최소 300만 명의 짐바브웨인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현대 아프리카 역사상 최악의 인권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무가베 정권은 경제 성장률을 지연시켜 GDP를 예측치보다 훨씬 낮게 만들었으며, 인구는 기아와 질병, 정치적 폭력으로 인해 감소했고, 기대수명도 절반으로 줄어드는 등 국가를 파탄으로 이끌었습니다.
2018
[에머슨 음낭가과 대통령 당선, ZANU-PF 재집권]
2018년 7월 30일 짐바브웨 총선에서 에머슨 음낭가과가 이끄는 ZANU-PF당이 승리하며 집권 여당이 되었고, 음낭가과는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제1야당 MDC 연합의 넬슨 차미사는 선거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며 헌법소원을 제출했으나, 법원은 음낭가과의 당선을 확정했습니다.
2019
[가뭄으로 200만 명 기아 위기 직면]
2019년 8월, 유엔세계식량계획은 짐바브웨가 겪고 있는 심각한 가뭄으로 인해 200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기아 상태에 직면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기후 변화와 경제난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