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

국가, 영연방, 입헌군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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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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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원주민 문명을 품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는 광활한 대륙과 독특한 생태계를 자랑하는 국가입니다. 유럽인의 정착 이후 스스로 성장하여 영연방 내 자주국가로 발돋움했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삶의 질과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독특한 문화 그리고 야외 활동을 즐기는 국민들의 여유로운 모습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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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대륙 정착 시작]

현재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인간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인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문화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약 65,000년 전, 현재의 남아시아 지역에서 육교를 이용하거나 좁은 바다를 건너 이주했습니다. 가장 오래된 인간의 유골인 멍고인은 약 4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들은 복잡한 경제와 사회를 동반한 수렵채집사회를 이루고 있었으며, 약 75만 명의 인구가 유지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606

[유럽인의 오스트레일리아 본토 최초 발견! 네덜란드 다프켄 호의 역사적 상륙]

네덜란드 항해사 빌렘 얀스존이 이끄는 다프켄 호가 오스트레일리아 본토 해안을 처음으로 측량하고 원주민과 조우했습니다.

이는 유럽인에 의한 오스트레일리아 본토 최초 관측 및 상륙 기록으로, 세계사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케이프 요크반도 해안을 관측하고 페네파더 강에 상륙했습니다. 같은 해 스페인 탐험가 루이스 바에스 데 토레스도 토레스 해협 제도를 항해했습니다. 17세기 동안 네덜란드인들은 서쪽과 북쪽 해안을 측량하고 '뉴 홀랜드'라 명명했지만 정착하지는 않았습니다.

1770

[대영제국의 새로운 영토! 제임스 쿡 선장의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개척]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이 오스트레일리아 동쪽 해안을 따라 항해하며 지도화했고, 이 지역을 '뉴사우스웨일즈'라고 명명하며 대영제국에 편입시켰습니다.

이는 영국 식민지화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이정표가 됩니다.

미국 식민지를 잃은 영국 정부는 1783년 뉴사우스웨일즈에 새 유형 식민지를 건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788

[오스트레일리아의 탄생! '제1함대'의 시드니 코브 정착과 이민 시작]

아서 필립 지휘 아래 '제1함대'가 포트잭슨만의 시드니 코브에 정착지를 세우고 죄인들을 수송해 이민을 시작했습니다.

이 날은 훗날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경일인 '오스트레일리아의 날'이 됩니다.

이후 인구가 늘어나며 대륙을 탐험해 5개의 자치 식민지를 추가 건설했습니다. 이로 인해 유럽인들의 정착이 본격화되었습니다.

1848

[죄수 수송 시대의 종말! 오스트레일리아, 새로운 시작을 알리다]

뉴사우스웨일즈 정착민들의 캠페인 끝에 오스트레일리아로의 죄수 수송이 종말을 고했습니다.

마지막 죄수선이 도착하며 유형 식민지 시대가 마무리됩니다.

이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1846), 빅토리아(1851), 퀸즐랜드(1859) 등 추가 식민지가 분리되었습니다.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는 '자유 지역'으로 설립되어 죄수 수용 역사가 없었습니다.

1850

[황금의 땅! 오스트레일리아 골드 러시, 대륙을 뒤흔들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골드 러시가 시작되며 대규모 인구 유입과 경제 활성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유레카 반란'과 같은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1855년부터 1890년 사이에 6개 식민지가 정부로부터 독립된 권리를 얻고 대부분의 일을 스스로 관리하게 됩니다. 이는 향후 연방 설립의 기반이 됩니다.

1869

[숨겨진 비극, '빼앗긴 세대'의 시작: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동화 정책 시행]

원주민 보호법이 시작되며 정부의 '동화' 정책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이는 '빼앗긴 세대'라 불리는 비극적인 역사를 낳으며 수많은 원주민 아이들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강제로 격리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 정책은 원주민 인구 감소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으며, 오랫동안 사회적 문제로 남아있었습니다. 150년간 전염병과 국경 전쟁으로 인해 원주민 인구가 크게 감소했습니다.

1901

[하나 된 대륙!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탄생, 자주국가로 첫걸음]

10년간의 치열한 계획과 협의, 투표 끝에 여섯 개 식민지가 연합하여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을 설립했습니다.

이로써 대영제국의 지배를 받는 새로운 자주국가가 탄생했습니다.

연방 수도 준주(현재 캔버라)가 지정되었으며, 캔버라가 건설되는 1901년부터 1927년까지는 멜버른이 임시 수도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오스트레일리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입니다.

1914

[국가 정체성의 시험대! 오스트레일리아, 제1차 세계대전 참전과 ANZAC의 탄생]

오스트레일리아가 영국과 함께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습니다.

갈리폴리 전역에서의 ANZAC(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군단)의 활약은 국가적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첫 번째 대규모 군사 행동입니다.

416,000명의 오스트레일리아군이 참전하여 60,000명이 전사하고 152,000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코코다 트랙 작전 또한 국가를 정의한 전투로 평가됩니다.

1931

[완전한 독립을 향한 발걸음! 영국 웨스트민스터 헌장 통과로 헌법상 연관 종료]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헌장이 통과되며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사이의 헌법상 연관이 종료되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이를 1941년에 수용하며 법적 자주권을 강화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시아에서 벌어진 영국의 패배와 일본 제국의 침략은 오스트레일리아가 미국을 새로운 동맹이자 보호자로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1951년 ANZUS 조약 체결로 이어집니다.

1948

[오스트레일리아 국적의 시작! 국가 정체성 확립의 중요한 단계]

오스트레일리아에 거주하는 영국 국민들이 오스트레일리아 국적을 사용하게 되면서, 국가로서의 정체성이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본토와 아시아 등지에서의 이민을 적극 장려하며 오스트레일리아의 인구, 문화, 자아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1973

[차별의 벽을 허물다! 오스트레일리아, '백호주의' 정책 전면 폐지]

노동력 부족 등 사회적 문제로 인해 오랫동안 고수했던 '백호주의' 정책을 전면 폐지했습니다.

이는 인종 차별을 줄이고 다양한 민족이 함께하는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아시아 및 다른 지역에서의 이민이 장려되면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인구 구성과 문화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1983

[경제 개혁의 신호탄! 오스트레일리아 달러 유통 및 금융 규제 완화]

호크 정부가 오스트레일리아 달러를 유통시키고 부분적으로 금융 규제를 완화하는 중요한 경제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이는 오스트레일리아 경제의 현대화에 기여했습니다.

이후 2000년 7월에는 10%의 관세(GST) 도입과 함께 간접세 제도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1986

[마침내 완전한 독립! 오스트레일리아, 영국과의 모든 법적 끈을 끊다]

오스트레일리아법이 영국 의회에서 통과되면서 영국 의회의 오스트레일리아 내 입법권이 정지되었습니다.

사법권 또한 오스트레일리아 고등법원으로 옮겨져 영국과의 모든 법적 종속 관계를 단절하고 완전한 자주국가가 되었습니다.

이 법은 간간히 쓰이던 영국 추밀원의 재판상 상소 선택권도 빼앗아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법 주권을 확립했습니다.

1990

[대륙을 점령했던 토끼와의 전쟁 종결! 자연의 회복을 알리다]

약 200년간 이어진 토끼와의 전쟁이 토끼 바이러스 개발로 종식되었습니다.

영국에서 유입된 토끼는 한 해 200만 마리를 사살해도 계속 번식하며 골칫거리였으나, 이제 초목들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1920년대 세계 대공황 때는 토끼 고기가 식량 걱정을 덜어주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생태계 복원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정확한 토끼 유입 시점은 불분명하지만 18세기 말~19세기 초부터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1992

[원주민 권리의 승리! '테라 무효'를 뒤집은 마보 판결의 역사적 의미]

마보 대 퀸즐랜드(제2호) 판결에서 오스트레일리아 고등법원이 영국 정착 당시 '테라 무효'(Terra Nullius)라는 법적 교리가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원주민의 전통적 토지 소유권을 인정한 획기적인 판결입니다.

이 판결은 '원래 소유권'을 인정하며,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역사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008

[불황을 비켜간 유일한 선진국! 오스트레일리아 경제의 강인함 입증]

2008~2009년 글로벌 대침체 속에서도 오스트레일리아는 경기 침체를 겪지 않은 유일한 선진국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는 견고한 경제 체력과 적절한 정책 대응의 결과입니다.

세계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레일리아는 꾸준한 성장률을 유지하며 그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역사적 사과! 오스트레일리아 정부, '빼앗긴 세대' 원주민에게 고개 숙이다]

케빈 러드 행정부가 '빼앗긴 세대'로 불리는 정부 주도의 토착민 가정 및 사회 파괴 행위에 대해 범정부 차원의 첫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연방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이는 오스트레일리아 과거사 청산의 중요한 의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존 하워드 정권은 이전 정권 일이라는 이유로 사과에 소극적이었으나, 러드 정부는 적극적인 사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2007년 원주민 보상 결정에 이은 중요한 진전입니다.

2012

[세계가 인정한 살기 좋은 나라! 오스트레일리아, 삶의 질 1위 달성]

OECD 조사에서 오스트레일리아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1위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는 높은 삶의 질, 건강, 교육, 경제적 자유 등 다양한 지표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은 결과입니다.

멜버른은 이코노미스트 선정 '가장 살기 좋은 도시'에서 4년 연속 1위를 차지했으며, 시드니, 퍼스, 애들레이드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2018

[세계 최고 부자 국가 등극! 오스트레일리아, 평균 재산 1위 달성]

오스트레일리아는 스위스를 추월하여 평균 재산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는 2013년부터 꾸준히 세계 2위를 유지해오다 달성한 값진 기록입니다.

1인당 GDP 또한 세계 6위, 명목 GDP는 세계 14위를 기록하며 대표적인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높은 경제적 자유 지수(5위)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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