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리족
민족, 원주민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9:17
마오리족은 폴리네시아 동부에서 유래 약 10세기경 뉴질랜드에 정착한 원주민입니다. 타조 모아를 사냥하며 살았고 독창적인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백인과의 와이탕이 조약으로 동등한 관계를 추구했으나 마오리 전쟁 등 격동의 역사를 거쳤습니다. 현재는 전통문화 보존 및 정체성 회복을 위해 노력하며 뉴질랜드 사회의 중요한 부분을 이룹니다.
900
[모아 사냥꾼의 대항해: 뉴질랜드 정착]
아득한 옛날, 폴리네시아 타히티섬 부근에 살던 마오리족은 거대한 카누를 타고 미지의 땅 뉴질랜드로 건너왔습니다.
당시 아무도 살지 않던 무인도였던 이곳에 고구마, 감자 등 생존을 위한 작물을 가져와 정착의 터전을 마련했죠.
이들은 거대한 타조 '모아'를 사냥하며 살았기에 '모아 사냥꾼'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1700
[새로운 만남: 백인 개척자들의 도래]
평화롭던 마오리족의 땅에 18세기, 영국에서 온 백인 개척자들이 발을 디디기 시작했습니다.
이 새로운 이주민들의 등장은 마오리족과의 운명적인 만남이자, 뉴질랜드 역사에 중대한 변화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1840
[역사적 약속, 그리고 갈등의 씨앗: 와이탕이 조약]
마오리족과 영국 사이, 뉴질랜드의 미래를 결정할 '와이탕이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 조약으로 뉴질랜드는 대영제국의 자치 식민지가 되었고, 마오리족은 영국 시민권과 토지 소유를 보장받는 듯했습니다.
또한, 뉴질랜드가 뉴사우스웨일스에서 분리되어 독자적인 왕립 식민지가 된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조약은 영문판과 마오리어판의 내용이 크게 달랐고, 영국이 조약을 어기고 토지를 이민자들에게 팔아넘기면서 결국 대규모 분쟁의 불씨를 지피게 됩니다.
1841
[토지를 위한 피의 투쟁: 마오리 전쟁]
불평등한 토지 정책에 분노한 마오리족은 1841년부터 5년간 치열한 '마오리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 전쟁은 영국 정부에 맞서 자신들의 권리와 땅을 지키려는 마오리족의 필사적인 저항이었고, 2,0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는 비극적인 역사를 남겼습니다.
1860
[마오리족, 마침내 완전한 권리 인정받다]
마오리 전쟁 이후에도 끈질기게 자신들의 권리 인정을 주장해온 마오리족은 1860년대에 이르러 영국 정부로부터 완전한 권리 부여와 투표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마오리족과 백인이 뉴질랜드에서 공존하는 중요한 기반을 마련한 역사적인 진전이었습니다.
1914
[용맹한 전사들: 국제 전쟁에 참전하다]
마오리족은 제1, 2차 세계대전, 6.25 전쟁, 베트남 전쟁 등 굵직한 국제 분쟁에 ANZAC 군의 일원으로 참전하며 그들의 뛰어난 용맹함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특히 6.25 전쟁에서는 마오리족의 민요 '포카레카레 아나'가 한국에서 '연가'로 번역되어 사랑받는 등 문화적 교류도 이루어졌습니다.
1947
[뉴질랜드 독립, 마오리 문화의 새 시대]
뉴질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1947년, 마오리어는 국가의 공식 공용어로 지정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마오리족에게 특별 제도와 수당이 부여되는 등 우대 정책이 시행되며, 마오리족의 전통문화와 권리를 존중하려는 국가적 노력이 본격화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