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무가베

정치인, 독재자, 대통령, 총리

num_of_likes 86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9:16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정치인, 독재자, 대통령, 총리
report
Edit

짐바브웨의 독립 영웅이자 초대 총리 제2대 대통령. 37년간 장기 집권하며 아프리카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림. 초기 흑인 권익 신장에 기여했으나 독재와 백인 토지 몰수 정책으로 경제를 파탄시키고 세계 최악의 초인플레이션을 초래. 군부 쿠데타로 축출되며 권좌에서 물러났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924

[미래의 지도자, 로버트 무가베 탄생]

짐바브웨의 초대 총리이자 제2대 대통령이 될 로버트 가브리엘 무가베가 로디지아(현 짐바브웨) 솔즈베리 근교 농촌에서 태어났다.

1963

[독립 운동의 핵심 인물로 부상]

학창 시절부터 흑인 민족주의 운동에 참여한 무가베는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 연맹(ZANU) 창립에 참여하며 독립 운동의 주요 간부가 되었다.

1964

[독단적 행동으로 수감되다]

독립 운동 중 과한 언동으로 인해 체포되어 10년간 수감 생활을 하게 된다.

이는 그의 정치 경력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1974

[10년 수감 후 ZANU 의장 취임]

10년간의 수감 생활 끝에 석방된 무가베는 즉시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 연맹(ZANU) 의장에 취임하며 독립 투쟁의 선봉에 섰다.

1976

[애국전선 결성, 무장 투쟁 전개]

그가 이끄는 ZANU와 조슈아 은코모가 이끄는 ZAPU가 연합하여 애국전선(PF)을 결성, 백인 정권에 대한 무장 투쟁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1980

[짐바브웨 건국과 초대 총리 취임]

재총선에서 ZANU가 최다 의석을 확보하며 짐바브웨가 공식 건국되었고, 무가베는 초대 총리로 취임하여 실권을 잡았다.

짐바브웨 건국 당시 카난 바나나가 대통령을 맡았고, 무가베는 그의 총리로서 국정을 이끌기 시작했다.

1982

[독재의 서막과 경제 혼란 가속화]

연정 파트너였던 은코모를 축출하고 흑인 민족 대립을 조장하며 독재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필수적인 역할을 하던 백인들이 대거 짐바브웨를 떠나면서 국가 경제는 파탄 상태로 치달았다.

1987

[쿠데타로 대통령 취임, 1당 독재 시대 개막]

대통령 카난 바나나를 동성애 혐의로 체포, 수감하며 사실상 쿠데타를 일으켰다.

총리제를 폐지하고 대통령에 모든 권한을 집중시키는 헌법 개정을 통해 직접 대통령에 취임하며 1당 독재 체제를 공고히 했다.

1990

[압도적 득표율로 재선 성공]

대통령 선거에서 8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되며 자신의 장기 집권 기반을 더욱 굳혔다.

이 시기 그는 공산주의자로써 마오쩌둥의 계획 경제 체제를 받아들이려 했으나 국제 사회의 압력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96

[세 번째 대통령 임기 시작]

다시 한번 대통령 선거에서 90%에 육박하는 득표율로 당선되며 세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했다.

2000

[논란의 백인 토지 몰수 정책]

국제 여론 악화로 야당의 총선 참여를 허용하는 한편, 백인들의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하여 흑인 빈농들에게 나누어주며 지지를 확보했다.

이는 국가 경제에 더 큰 혼란을 야기했다.

2002

[경제 파탄 속 논란의 재선]

모건 창기라이 후보와 격돌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짐바브웨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전락했다.

그의 호화 생활과 재산 빼돌리기가 큰 물의를 빚었다.

각국의 경제 제재와 식량난으로 초인플레이션 상황에 직면하자 여러 차례 화폐개혁을 실행했으나 경제 혼란은 더욱 심해졌다.

2007

[대통령 임기 헌법 개정]

여당과 야당의 합의로 대통령 임기를 6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2008

[부정 선거 의혹과 국제적 비난]

총선에서 야당이 최다 의석을 확보하고 대선 1차 투표에서 창기라이가 앞섰으나, 2차 투표에서 무가베 측의 방해와 창기라이의 불참 속에 85.5%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국제 사회는 선거 무효를 주장하며 짐바브웨에 대한 제재를 강화했다.

대선 직후 국제 사회의 거센 비난에 직면한 무가베는 창기라이 측과의 협상을 통해 헌법을 개정, 총리직을 부활시키고 모건 창기라이를 총리로 임명하였다.

2013

[논란 속 다섯 번째 대통령 임기]

대통령 선거에서 61.9%의 지지로 재선에 성공했으나, 야당과 국제 감시단은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하며 논란이 되었다.

선거 결과가 인정되며 로버트 무가베는 5년 임기를 더 수행하여 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2017

[군부 쿠데타로 구금되다]

영부인 그레이스 무가베에게 정권을 이양하기 위해 군부 출신 부통령 에머슨 음낭가과를 경질하자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무가베 대통령을 구금했다.

37년간의 장기 집권에 막이 내리는 순간이었다.

[37년 독재 종식, 마침내 하야]

군부 구금 상태에서도 퇴진을 거부하던 무가베는 결국 쿠데타 압력으로 대통령직에서 하야했다.

이는 짐바브웨 독립 이후 37년간 이어진 그의 장기 독재가 종식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2019

[세계 최악의 초인플레이션을 남기고 사망]

짐바브웨를 초유의 경제 파탄과 초인플레이션으로 몰아넣은 장본인 로버트 무가베가 싱가포르 월드브리지 병원에서 95세를 일기로 숙환으로 사망했다.

그가 집권했던 시기 짐바브웨 달러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낮은 화폐로 전락했으며, 한때 계란 3개를 사는데 1,050,000,000,000 짐바브웨 달러가 필요했던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은 그의 독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