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스 루뭄바
독립운동가, 정치인, 총리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9:15
콩고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이끈 영웅이자 초대 총리. 벨기에 식민 지배에 맞서 자주적인 아프리카 국가 건설을 꿈꾼 선구자. 1960년 6월 총리에 취임했으나 정세 혼란과 외세 개입 속에 비극적으로 암살당했다. 식민주의에 저항하고 아프리카 통합을 염원한 투쟁의 상징으로 그의 죽음은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켰다.
1925
[카타코콤베에서 태어나다]
벨기에령 콩고의 카타코콤베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선교 학교에 다니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뛰어난 지능을 보였다.
1954
[우편 서기로서 노동 운동 시작]
스탠리빌(현재 키상가니)에서 우편 서기로 일하며 지역 사회의 지도자로 빠르게 부상했다.
우편 근로자 노동 연합을 결성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벨기에 자유당의 지지를 받았다.
1957
[콩고국민운동 창당에 기여]
레오폴드빌(현재 킨샤사)로 옮겨 양조업 판매 국장으로 일했다.
특정 부족이나 지역의 이익이 아닌 콩고 전체 국민을 대표하는 정당인 '콩고국민운동'을 창당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뛰어난 대중 연설 능력은 그를 당의 핵심 인물로 만들었다.
1959
[전국적 인물로 부상 및 당내 분열]
벨기에 당국이 콩고 독립을 위한 지방 선거를 발표하면서, 콩고의 유일한 국가적 인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4월 '륄뤼아부르 의회'를 주도하며 콩고 통합 정부 구성을 시도했지만, 그의 급진적인 성향으로 인해 7월 콩고국민운동 내부에 파벌이 생겼다.
그의 설득력 있는 카리스마와 사람을 끄는 성격은 종족과 지방을 하나의 국가로 연합할 콩고 정부의 형성에 호의적인 정치 단체들을 지배하여 공통 전선을 설립하는 시도를 하였다. 대부분의 당수는 루뭄바를 지지했지만, 일부 창립자는 알베르 칼론지를 따랐다.
[투옥 후 브뤼셀 원탁 회의 참석]
스탠리빌 폭동 선동 혐의로 잠시 투옥되었으나, 벨기에 브뤼셀에서 콩고의 미래를 논의하는 원탁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석방되었다.
이 회의에서 그의 극적인 등장은 다른 콩고 당수들의 이목을 사로잡았고, 그의 독립을 향한 완고한 노력은 더욱 두드러졌다.
벨기에 정부는 콩고 정당들이 자국의 미래 계획을 논의할 수 있는 공개 토론회로 이 회의를 개최했다.
1960
[모부투 대령의 쿠데타로 자택 감금]
국회는 그를 총리로 복귀시켰으나, 모부투 대령이 이끄는 육군이 정부를 장악했다.
그는 비공식적인 자택 감금 상태에 놓였고, 그의 정치적 협력자들은 스탠리빌로 가서 라이벌 정부를 구성했다.
[스탠리빌 탈출 시도 중 체포]
수도 외부로 빠져나와 스탠리빌로 가려 했으나, 육군 순찰대에 의해 체포되어 티스빌에 포로로 잡혔다.
[총선 승리로 총리 후보 지명]
5월 총선에서 루뭄바와 동맹 세력은 국회 137석 중 41석을 확보하며 최대 정당이 되었다.
6개 지방자치제 중 4곳에서 중요한 직책을 얻었다.
[콩고민주공화국 초대 총리 취임]
독립 1주일을 앞두고 벨기에에 의해 콩고민주공화국의 초대 총리(국방부 장관 겸임)로 선발되었다.
오랜 라이벌인 조제프 카사부부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짧은 재임 기간 동안 군 반란, 카사이주 남부와 카탕가주의 분리 독립 등 수많은 비상사태에 직면했다.
루뭄바는 콩고를 위한 최선에 대한 자신의 정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상황에 직면하자 유엔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유엔은 상황을 바꾸는 데 병력 사용에 반대했다. 절망에 빠진 루뭄바는 카사이주 남부와 카탕가주의 분리주의 정부에 대항하는 군사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소련에 지원을 요청했다.
1961
[카탕가국에서 비극적인 최후]
투옥된 후에도 그의 명성과 추종자들의 힘은 콩고의 불안정한 새 통치자들에게 위협이 되었다.
루뭄바가 감시 병사들을 설득하여 거의 탈출에 성공할 뻔한 사건 이후, 당국은 그를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카탕가국의 수도 엘리자베트빌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유엔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탕가국 군대와 내무 장관이 이끄는 소규모 단체에 의해 끌려가 살해당했다.
카탕가국 정부는 살해를 은폐하려 했으나, 사건은 전 세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콩고 내 유엔군의 무력 사용을 허용할 만큼 충분한 국제적 압박을 받았다. 이 결정은 레오폴드빌에 민간 정부를 복구시키고 콩고의 모든 분리 독립 운동을 종식시키는 사건들로 이어졌다. 루뭄바의 비참한 죽음은 그를 다양한 원인을 위한 상징이자, 식민주의적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열렬한 옹호자로서 영웅으로 기억되게 만들었다.
2000
[대중문화 속의 루뭄바]
프랑스, 벨기에, 독일, 아이티 합작으로 그의 전기 영화 《루뭄바》가 제작되어, 에리크 에부아니가 루뭄바 역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