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족
민족, 독립운동, 역사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9:13
- 쿠르드족은 중동에서 아랍 페르시아 튀르키예인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약 4 560만 명의 민족입니다. -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수천 년간 지켜온 이들은 살라딘으로 유명한 아이유브 왕조를 세우는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 현재 독립된 국가 없이 튀르키예 이라크 이란 시리아 등 4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독립을 향한 열망과 이를 억압하려는 주변국들의 갈등 속에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BC 10C
[최초의 쿠르드 왕국, 메디아 건국]
쿠르드족의 조상들은 이란 고원 북서부에서 활동하며 고대 메디아 왕국을 세웠습니다.
이는 그들의 유구한 역사를 상징하며, 오늘날 쿠르디스탄 국가에도 '우리는 메디아 왕국의 자손'이라는 구절이 남아있을 정도입니다.
메디아 왕국은 파르니족과 스키타이족으로 구성된 부족 연방을 이끌었으며, 쿠르드족은 독립적인 아리안계 언어와 문화를 고대부터 지켜왔습니다. 이들은 파르티아 왕국 역시 건국했습니다.
1171
[전설의 영웅 살라딘, 아이유브 왕조 건국]
쿠르드족 역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로, 전설적인 영웅 살라딘이 아이유브 왕조를 세웠습니다.
그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십자군에 맞서며 이슬람 세계의 영웅으로 추앙받았고, 이는 쿠르드족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예언자 무함마드 이후 쿠르드족은 평화롭게 이슬람으로 개종하며 우마이야 왕조의 군인 귀족으로 편입되었고, 압바스 왕조에서도 군인으로 활약했습니다. 살라딘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쿠르드족의 힘을 세상에 알린 인물입니다.
1920
[독립의 꿈, 세브르 조약]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망하자, 승전국 영국과 프랑스는 세브르 조약을 통해 쿠르드족에게 독립 국가 '쿠르디스탄'의 건설을 약속했습니다.
수천 년간 염원했던 자신들의 국가를 가질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1923
[좌절된 독립, 로잔 조약]
세브르 조약의 독립 약속은 튀르키예 정부의 반발로 결국 무산되었습니다.
1923년 로잔 조약에서 쿠르디스탄의 독립은 언급되지 않았고, 쿠르드족은 독립 국가 대신 여러 국가에 분산되어 살아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튀르키예 공화국의 독립은 오스만 술탄제 부활을 요구했던 쿠르드족의 시도 또한 좌절시켰습니다.
1945
[전후 독립 운동의 불씨와 탄압]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쿠르드족 사이에서 민족주의적 독립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거주하는 튀르키예, 이라크, 이란, 시리아 등 4개국 모두가 독립 운동을 강력히 탄압하며, 수많은 갈등과 희생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1946
[이란 내 쿠르드 독립국 수립과 좌절]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이란의 쿠르드족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잠시 독립국을 세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소련군이 철수하자 이 독립국은 곧바로 이란 정부에 의해 진압되며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이란은 자국 내 쿠르드족의 독립을 탄압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이란-이라크 전쟁 시에는 이라크 내 쿠르드족을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1988
[사담 후세인의 쿠르드족 학살]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 정권은 쿠르드족의 독립 시도를 끔찍하게 탄압했습니다.
특히 걸프 전쟁 중 이란과의 협력을 명분 삼아 화학 무기를 사용한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여 수많은 쿠르드 민간인들이 학살당하는 비극이 발생, 국제사회의 큰 비난을 받았습니다.
2003
[이라크 전쟁, 후세인 정권 붕괴와 쿠르드족의 새로운 희망]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자, 쿠르드족은 미군 주둔을 열렬히 환영하며 독립적인 자치 정부 수립의 희망을 품었습니다.
오랜 탄압에서 벗어나 자치권을 확보할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이후 쿠르드족은 IS 격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더 강력한 자치 정부 수립을 미군 당국에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UN 동맹국인 튀르키예의 반대로 인해 독립 논의는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2005
[이라크 최초의 쿠르드족 대통령 탄생]
2005년, 이라크는 역사상 처음으로 쿠르드족 출신인 잘랄 탈라바니를 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이는 이라크 내 소수 민족이었던 쿠르드족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으며, 민족 간 균형을 도모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쿠르드족은 여전히 정권 내 소수파로 남아있으며, 탈라바니 대통령이 쿠르드족의 운명을 어떻게 이끌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있었습니다.
2015
[IS 공습 명분 삼은 튀르키예의 쿠르드 공격]
튀르키예 정부는 이슬람 극단주의 IS 격퇴를 명분 삼아 시리아 북부로 이동했던 쿠르디스탄 노동자당(PKK) 반군을 공습했습니다.
이는 오랜 독립 요구로 인한 터키 내 쿠르드족과의 긴장 관계를 더욱 고조시키는 사건이었습니다.
유럽연합 가입을 염원하는 튀르키예에게 유럽연합 측은 쿠르드족 인권 문제를 제기하며 융화 정책을 권고했고, 쿠르드어 서적 출판 허용 등 일부 개선이 있었으나 독립 요구로 인한 갈등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7
[시리아 락까 해방, 쿠르드족의 대IS 전공]
시리아 내전에서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호부대(YPG)는 미국 지원을 받는 시리아 민주군(SDF)의 주축으로 극단주의 테러 조직 IS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2017년, IS의 수도 격인 락까를 해방시키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YPG의 세력이 크게 커지자, 쿠르드족의 독립에 반대하는 튀르키예는 러시아의 묵인 아래 시리아 내 쿠르드족에 대한 무력 공격을 전개하며 새로운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2018
[튀르키예군의 시리아 쿠르드족 공격 격화]
IS 격퇴 후 세력이 커진 시리아 쿠르드 민병대 YPG에 대해 튀르키예는 독립을 막기 위해 대규모 무력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튀르키예군 헬기가 격추되는 등 격렬한 충돌이 벌어지며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튀르키예는 러시아의 묵인 아래 터키 지원 자유 시리아군과 함께 YPG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있으며, 이는 시리아 내전의 복잡성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