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분할
아프리카 역사, 식민주의, 제국주의, 국제 관계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9:13
유럽 열강들이 1880년대부터 1914년까지 아프리카 대륙을 무자비하게 식민지로 분할한 사건입니다. 특히 1884~1885년 베를린 회의는 이 잔혹한 분할을 합법화하며 벨기에의 콩고 지배와 열강들의 무제한적 침탈을 공식화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에티오피아와 라이베리아를 제외한 아프리카 전역이 유럽의 손아귀에 들어가 검은 대륙의 비극적인 역사가 심화된 인류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강탈극입니다.
1815
[영국의 케이프 타운 장악]
치열했던 나폴레옹 전쟁이 마무리되자, 승전국 영국은 남아프리카의 전략적 요충지 케이프 타운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유럽 열강의 야욕을 상징하는 초기 사례 중 하나였습니다.
1830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지화]
강대국 프랑스가 북아프리카의 알제리를 자국의 식민지로 편입하며 아프리카 침탈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이는 훗날 아프리카 분할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신호탄이었습니다.
1873
[유럽의 장기 불황 시작과 아프리카 침탈 가속화]
1873년부터 1896년까지 유럽은 기나긴 경제 불황에 시달렸습니다.
이 위기를 타개하고자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열강들은 새로운 시장과 자원을 찾아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으려는 야심을 본격적으로 드러냈습니다.
1876
[벨기에 레오폴 2세의 콩고 진출 야욕]
벨기에 국왕 레오폴 2세는 '국제 중앙아프리카 탐험 및 문명협의회'를 설립하며 개인 자격으로 콩고 분지에 헨리 모턴 스탠리를 파견했습니다.
이는 아프리카의 심장부인 콩고에 대한 유럽 열강의 본격적인 경쟁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1884
[아프리카 분할을 위한 베를린 회의 개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열강의 고위 정치인들이 베를린에 모여 아프리카 식민지화의 원칙을 합의했습니다.
이 회의는 아프리카 대륙을 유럽 강대국들의 자의적인 탐험과 침략으로부터 '정당화'된 '분할'로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벨기에의 콩고 지배 인정 등 잔혹한 식민 지배의 틀이 이때 마련되었습니다.
베를린 회의에서는 벨기에 국왕이 개인 자격으로 콩고의 통치자가 되며 콩고가 자유 무역 지역으로 설정되었습니다. 또한, 아프리카 특정 지역을 식민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실제 그 지역에 대한 통치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원칙에 합의했습니다. 이로써 아프리카는 유럽의 철저한 시장이자 자원 공급처로 전락하는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1914
[아프리카 대륙의 완전한 분할]
베를린 회의 이후 약 30년 만에, 아프리카 대륙은 에티오피아와 라이베리아를 제외한 모든 지역이 유럽 열강의 식민지로 완전히 분할되었습니다.
이는 아프리카 분할의 비극적인 종착점이자, 수많은 아프리카 민족에게 수십 년간 지속될 고통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아프리카는 세계 지도에서 '미개척의 땅'이 아닌, 유럽 열강의 '거대한 놀이터'로 변모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