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
시위 운동, 혁명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9:11
2010년 12월부터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휩쓴 대규모 반정부 시위 및 혁명의 물결입니다. 권위주의 정치 부패 인플레이션 실업 인권 남용 등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튀니지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자살이 도화선이 되어 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소셜 미디어가 시위 조직 의사소통 인식 확대를 위한 세계 최초의 광범위한 시민 저항 운동 도구로 활용되었습니다. 튀니지 이집트 예멘에서 정권 교체에 성공하며 혁명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정국 불안정 및 내전 장기화로 이어져 아랍의 겨울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2010
[모하메드 부아지지 분신 자살]
튀니지에서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경찰 부패와 공권력 남용에 항의하며 분신자살했습니다.
이는 아랍의 봄을 촉발시킨 세계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그의 희생은 북아프리카와 중동 전역으로 확산된 대규모 시위와 혁명의 물결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튀니지 반정부 시위 시작]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자살 이후, 튀니지 전역에서 높은 실직률, 식료품 인플레이션, 정권 부패, 인권 침해 등에 항의하는 폭력적인 가두 시위가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이 시위는 튀니지에서 30년 만에 가장 격동적인 파장을 일으켰으며,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알제리 반정부 시위 시작]
튀니지 시위의 영향으로 알제리에서도 강권적인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에 반발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알제리는 과거부터 사회 전반의 불만과 정부 부패, 식량 문제 등으로 시위가 빈번히 발생하던 국가였습니다.
2011
[튀니지 혁명 성공]
23년 장기 집권하던 튀니지 대통령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가 시민들의 시위로 축출되어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하며 튀니지 혁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는 아랍의 봄으로 정권이 교체된 최초의 사례입니다.
벤 알리 퇴진 후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연립정부가 구성되었으나, 야당 인사들의 사임과 지속적인 시위로 총리 모하마드 간누치가 사임하고 베지 카이드 엘 세브시가 새 총리로 취임했습니다.
[요르단 반정부 시위 시작]
수도 암만을 비롯한 요르단 여러 도시에서 노동조합원과 좌파 지지자들이 총리 사미르 리파이 사임과 경제 정책 개선을 요구하며 반정부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시위는 금요일 예배 이후 시작되었으며, 정부는 유가 상승폭을 줄이는 등 대응책을 내놓았으나 시위는 계속되었습니다.
[모리타니 반정부 시위 시작]
모리타니에서 야쿱 울드 다후드가 대통령궁 앞에서 시위 중 분신자살하며 반정부 시위가 촉발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수도 누악쇼트에서 수백 명의 시민이 모여 시위를 벌였고, 여당 소속 시장이 젊은이들을 지지하며 탈당하는 등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되었습니다.
[오만 반정부 시위 시작]
오만에서 약 200명의 시위대가 봉급 인상과 최저생계비 하향 조정을 요구하며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평온하던 오만에서 발생한 이 시위는 부패 정권 타도와 석유 세입 분배율 증대 요구로 이어졌습니다.
바시르 대통령은 2015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시위대를 진정시키려 노력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반정부 시위 시작]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홍수 피해 복구와 인프라 구축을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했으며, 40여 명의 여성이 재판 없이 구류된 수감자 석방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북동부 카티프, 호푸프, 리야드 등지에서 시위가 지속적으로 발생했으며, 정부는 치안 경비를 강화하고 경찰력을 배치하여 시위를 진압했습니다.
[이집트 반정부 시위 시작]
튀니지 혁명의 영향으로 이집트에서도 18일간 지속된 대규모 시위가 시작되어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정부는 시위 초기에 인터넷 연결을 차단하고 소셜 미디어를 통한 결집력을 막으려 했으나, 수만 명의 시위대가 주요 도시에서 가두 행진을 벌였습니다.
[예멘 반정부 시위 시작]
남북 예멘에서 헌법 개정, 실직 및 경제난 해결을 위한 시위가 시작되었으며, 곧 대통령 알리 압둘라 살레의 사임 요구로 확대되었습니다.
사나에서 16,000명 이상이 모인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인권활동가는 '격노의 날'을 선포했으며 살레 대통령은 2013년 재선 불출마 의사를 밝혔습니다.
[요르단 국왕, 내각 해산 및 개혁 지시]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가 가두 시위를 빌미로 내각을 해산하고 전 육군 참모총장 마루프 알 바키트에게 신속하고 실증적인 정치 개혁을 위한 새 내각 구성을 요청했습니다.
이 조치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멈추지 않았으며, 2월 25일에는 6천 명에서 1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튀니지 집권당 활동 정지]
계속되는 대중 시위의 결과로 튀니지 총리 모하마드 간누치가 정부 개혁을 단행하며 집권 여당이던 헌법민주당의 활동을 정지시켰습니다.
이는 벤 알리 대통령 축출 이후 연립정부 구성에도 불구하고 지속된 시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이집트 혁명 성공]
18일간의 대규모 시위 끝에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30년간의 장기 집권 끝에 퇴진하고 권력이 군 최고위원회로 이양되면서 이집트 혁명이 성공했습니다.
군부는 즉시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 효력을 중지했으며, 국가보안조사부를 해체하고 전 집권당인 국민민주당을 해체하는 등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무바라크와 측근들은 시위대 사살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바레인 반정부 시위 시작]
바레인에서 정치적 자유와 인권 보호를 목적으로 한 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초반에는 군주제 타도까지는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이집트와 튀니지 혁명에 영감을 받은 시위대는 수니파 정권 하의 시아파 대다수의 좌절감 속에서 시작되었으며, 경찰의 진압 이후 군주제 폐지를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리비아 내전 발발]
리비아에서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었으며, 2월 18일부터 반정권 시위대가 리비아 2대 도시인 벵가지를 점령하면서 내전으로 발전했습니다.
정부는 정예 군부대를 파견하여 수복을 시도했으나 쫓겨났고, 무아마르 카다피의 아들이 리비아가 내전 양상에 빠져들 수 있음을 경고했습니다. 최소 6천 명 이상이 교전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쿠웨이트 반정부 시위 시작]
쿠웨이트에서 국적이 없는 베두인들이 시위에 착수했으며, 야당 세력도 총리 사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계획했습니다.
에미르 사바흐 알 아흐마드는 시민들에게 무료 음식 배급과 1,000 쿠웨이트 디나르(약 4천 미국 달러)를 지급하며 불만을 잠재우려 노력했습니다.
[모로코 반정부 시위 시작]
튀니지와 이집트 사건에 영감을 받아 모로코에서 분신자살 시도가 있었고, 페이스북을 통해 조직된 37,000명의 시민이 수도 라바트로 행진하며 국왕 무함마드의 권력 양도를 요구했습니다.
시위는 왕정 타도보다는 왕정 개혁에 중점을 두었으며, 첫 시위 이후에도 카사블랑카 등지에서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계속되었습니다.
[알제리 비상사태 해제]
알제리 정부가 계속되는 반정부 시위의 압력에 굴복하여 19년 만에 비상사태를 해제하는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이는 시민들의 저항에 대한 정부의 양보 조치로, 부분적인 정치 개혁을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레바논 반정부 시위 시작]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수백 명의 시위대가 '라이시테(정교분리 원칙) 행진'을 시작하며 정치 제도의 개혁을 요구했습니다.
동시에 시돈에서 평화로운 시위가 일어났고, 3월에는 헤즈볼라의 무장 해제와 정치적 이익 행사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도 발생했습니다.
[지부티 반정부 시위 시작]
아랍의 봄 영향을 받아 지부티에서 현 대통령 오마르 굴레아의 3선 연임을 위한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튀니지 집권당 헌법민주당 해산]
튀니지에서 대중 시위의 압력으로 전 집권당이던 헌법민주당이 공식적으로 해산되고, 벤 알리와 측근들의 재산이 몰수되었습니다.
이는 튀니지 혁명의 성공 후 민주적 정권 교체를 위한 중요한 단계로 평가됩니다.
[바레인, GCC 군 파견 요청]
바레인 왕자가 걸프협력회의(GCC) 군대 파견을 요청하며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 병력이 시위대 진압을 위해 바레인에 투입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이 이루어져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라크 등지에서도 바레인으로의 병력 투입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바레인 국왕 긴급사태 선포]
바레인 국왕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가 전국적으로 퍼지는 시위 물결을 막기 위해 군 활동 재개를 요청하고 3개월간의 긴급사태를 선포했습니다.
이 조치에도 시위대의 반발은 계속되었으며, 3월 16일 시위대의 집합소인 펄 로터리의 캠프가 철거되고 기념비가 파괴되는 등 강경 진압이 이어졌습니다.
[시리아 반정부 시위 시작]
시리아 다마스쿠스, 알레포, 다라 등 여러 도시에서 정치 개혁, 인권 재인식, 1963년부터 지속된 계엄령 해제를 요구하는 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시위대는 '신이시여, 시리아, 자유 그것이면 족합니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정권 비호 노랫말에 대적했고, 정부는 강압 진압으로 수많은 체포자와 사상자를 발생시켰습니다.
[요르단 암만, 시위대-친정부 세력 충돌]
요르단 암만 중심가에 캠프를 차린 시위대와 친정부 세력이 충돌하여 최소 1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이 다치는 유혈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경찰력이 투입되어 진압에 나섰으며, 요르단에서는 충돌과 경찰 개입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시위가 지속되었습니다.
아사드 대통령은 새 총리를 지명하는 등 유화적인 자세를 취했으나, 시위는 더욱 격화되어 '순교도의 금요일', '저항의 금요일'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스라엘 국경 지역 팔레스타인 시위 발생]
아랍의 봄에 자극받은 팔레스타인인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조직되어 나크바의 날 기념 시위를 이스라엘 국경에서 진행했으며, 이스라엘 정부의 강력 진압으로 12명이 사망하고 300명 이상이 부상당했습니다.
팔레스타인 난민의 영토 찾기 운동과 함께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 각지에서 시위대가 모여 이스라엘 국경으로 행진하려 했습니다.
[바레인 긴급사태 재발표 및 시위 재개]
바레인에서 3개월간의 긴급사태가 해제되자마자 다시 발표되었고, 시아파 거주 마을 곳곳에서 억류된 사람들의 석방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 종파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대규모 행진이 발생했습니다.
의료진이 시위 도중 다친 부상자 치료에 애썼으며, 시위대는 계속해서 정부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예멘 살레 대통령 사우디아라비아로 출국]
예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치료를 받고자 영부인을 포함한 35명의 가족과 함께 출국했습니다.
BBC는 살레 대통령이 조국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으나, 이는 일시적 출국에 불과했습니다.
[골란고원 시위 중 사망자 발생]
이스라엘 국경 지역의 골란고원에서 영유권 주장을 하던 시리아 시위대가 이스라엘 치안 병력의 공격으로 23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다쳤습니다.
사망자 중에는 12살 소년도 포함되었습니다.
시리아 정부는 더 많은 피해를 막기 위해 완충지대를 설정하고 국경지대로의 접근을 금지했습니다.
무아마르 카다피가 축출되고 국가과도위원회가 리비아를 임시 통제하며 국제적으로도 단독 통치 기구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제2차 내전이 발발하는 등 정국 불안은 지속되었습니다.
말리키 총리는 2014년 총선에 3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시위대의 요구에 일부 응답했습니다.
2012
[예멘 살레 대통령 축출]
예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축출되었으며, 그에게는 면책 특권이 부여되었습니다.
이는 아랍의 봄 세 번째 성공적인 혁명으로 기록됩니다.
살레 대통령 축출 후 국민 통일 정당이 정권을 장악했으나, 부족 및 지역 갈등으로 인한 분열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로 정국 불안정이 심화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