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이집트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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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집트 혁명
혁명, 시위, 정치 사건, 사회 운동 + 카테고리

이집트의 30년 독재를 끝낸 역사적인 시민 혁명 튀니지 재스민 혁명의 영향을 받아 시작됨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장기 집권과 부패 경찰 폭력 비상사태법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폭발 인터넷 통제 등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수백만 명이 참여하며 전례 없는 대규모 시위를 기록 결국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하고 군부에 권력을 이양하며 독재 정권에 종지부를 찍음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81

[무바라크 시대의 시작과 비상사태법 재효력]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 암살 후 호스니 무바라크가 권력을 이어받아 이집트 역사상 최장 기간 대통령으로 재임하며 독재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시민들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비상사태 법이 다시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비상사태 법 아래 경찰의 권한이 확장되고 검열이 합법화되었으며, 정부는 이유 없이 무기한으로 개인을 감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모든 반정부 단체 활동에 적용되어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2010

[경찰 폭력의 상징, 칼레드 사이드 사망]

알렉산드리아에서 칼레드 모하메드 사이드가 경찰의 구타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는 모두 Khaled Said'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전국적인 관심을 받으며 반정부 시위의 중요한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여러 목격자는 그가 경찰의 구타에 의해 죽음에 이르렀다고 증언했습니다. 국제 원자력 기구 전 사무총장 모하메드 엘바라데이는 경찰의 폭력에 대항하는 집회를 열고 사이드의 가족을 방문해 애도를 표했습니다.

[만연한 부정부패와 선거 의혹]

2010년 의원 선거에서 언론 검열, 체포, 특정 후보 등록 제한, 여당의 의회 독식 등 부정 선거 의혹이 제기되어 정부 부패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국제투명성기구 부패 인식 지수에서 10점 만점에 3.1점을 받으며 정부의 청렴도에 대한 비판이 커졌습니다.

2011

[알렉산드리아 폭탄 테러와 종교 통합 시위]

새해 알렉산드리아 교회에서 콥트 기독교인 23명이 사망한 폭탄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정부의 보안 실패가 비판받으며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시위에 참여했고, 이슬람 교도들도 합류하여 종교를 초월한 반정부 시위로 이어졌습니다.

가자지구의 이슬람 군대가 용의자로 지목된 이 사건 이후, 경찰과의 충돌이 발생하면서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 시위자들이 무바라크 통치를 규탄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노의 날, 혁명의 서막]

이집트 전역에서 '분노의 날' 시위가 시작되며 수천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는 15,000명, 알렉산드리아에서는 20,000명이 모이는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반독재 정부 시위가 폭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수에즈와 이스마일파 등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으며, 시위대는 곧 주요 시위가 열리는 타흐리르 광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아시우트 주에서만 25명의 시위자가 체포되었고, 전체적으로는 860명의 시위자가 체포된 것으로 예상됩니다.

[시위 지속]

전날에 이어 수천 명으로 예상되는 시위대의 폭동이 이집트 곳곳에서 계속되었습니다.

[금요일 대규모 시위 준비와 통신망 통제]

다가오는 '분노의 금요일'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며 큰 규모의 집회는 없었습니다.

정부는 외국 기자와 이집트인들의 SMS, 블랙베리 메시지 서비스를 차단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슬림 형제단과 개혁가 모하메드 엘바라데이가 시위 참여를 약속했으며, 엘바라데이는 무바라크 퇴진 시 전환 기간 동안 임시 대통령직을 맡겠다고 선언하며 시위대에 힘을 실었습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도 간헐적으로 차단되기 시작했습니다.

[분노의 금요일: 대규모 시위와 **세계 최초** 인터넷 전면 차단]

'분노의 금요일'을 맞아 수만 명이 시위를 시작해 한 시간도 안 되어 수백만 명으로 급증했습니다.

이에 이집트 정부는 전 세계 역사상 전례 없는 인터넷 전면 차단 조치를 단행했으나, 시위대는 대체 수단을 통해 소통하며 시위를 이어나갔습니다.

경찰은 최루 가스, 고무 총알, 물대포를 발포했고, 수에즈에서는 경찰서가 점거되고 포트사이드에서는 정부 건물이 점거되었습니다. 수에즈에서 경찰 발포로 최소 1명이 사망했으며, 정부는 통행 금지령을 내렸으나 시위대가 무시하고 경찰과 충돌했습니다. 저녁에는 카이로의 국민 민주당 본관에 불이 질러졌고,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수에즈에 군대가 배치되었습니다. 이 날 폭력으로 54명이 희생되고 1,000명이 부상당했습니다.

[무바라크 내각 해산 발표와 사망자 급증]

광범위한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내각을 해산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는 약 5만 명의 시위대가 모였고, 시위자들은 "무바라크는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이 날까지 최소 102명에서 105명의 시위자가 사망했으며, 대부분 총상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사망자 중에는 경찰 10명도 포함되었고, 2,000명이 부상당했습니다. 군대가 통행 금지령을 다시 내렸으나 전날처럼 효과는 없었습니다. 내무부 앞 시위에서는 3명이 경찰에 의해 살해되었고, 이집트 아제르바이잔 대사관 직원이 카이로에서 사망하여 국제적인 우려도 커졌습니다.

[**백만의 행진**과 무바라크의 불출마 선언]

반정부 단체 지도자들과 시민들이 참여한 '백만의 행진'이 타흐리르 광장에서 대통령궁까지 이어졌으며, 알자지라에 따르면 오후까지 백만 명이 넘는 시위자가 카이로 중심부에 모이고 나중에는 2백만 명까지 모이는 등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를 기록했습니다.

시위의 압박 속에 무바라크 대통령은 다음 대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선언은 버락 오바마 특사의 방문과 관련이 있었지만, 시위대는 그가 즉시 대통령직에서 하야할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은 폭력으로 300명 사망, 3,000명 부상이 보고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은행 폐쇄 등으로 현금 인출과 음식 구매가 어려워지고 물가가 폭등하는 등 경제적 어려움도 가중되었습니다.

[친정부-반정부 세력 충돌 격화]

무바라크 대통령의 불출마 선언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는 즉시 하야를 요구하며 시위 강도를 높였고, 알렉산드리아 및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다수의 시위대와 무바라크 옹호 세력 간의 충돌이 급증하며 부상자가 속출했습니다.

이집트의 인터넷 접속이 부분적으로 회복되고 통행 금지령도 완화되었지만, 카이로 외곽 지역에서는 잦은 총성이 들렸고, 지역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지역자치방범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시위대 일부는 낙타, 당나귀, 말 등을 타고 시위에 합류하는 이색적인 모습도 포착되었습니다. 정부는 시위의 심각성을 숨기려 했으나, 국민들은 글로벌 방송사를 통해 상황을 공유하며 독재, 경제 정책 실패, 실업, 부패 등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시위대 사상자 증가와 박물관 앞 충돌]

이집트 보건부는 전날 시위에서 8명 사망, 890명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돌과 가솔린 폭탄이 오가는 교착 상태가 이어졌으며, 이집트 박물관 앞에서도 충돌이 발생하여 문화유산에 대한 우려가 커졌습니다.

[**작별의 금요일**: 대통령 즉시 하야 요구]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는 '작별의 금요일' 시위가 헬리오폴리스 대통령궁 앞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카이로 도로에는 탱크가 배치되었고, 타흐리르 광장에는 수십만 명의 시위자가 모여 기도를 드린 후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알자지라 방송은 이 날 모인 사람의 수가 백만 명이 넘을 것이라고 집계했으며, 무바라크 옹호자들도 활동하며 대치 상황이 지속되었습니다.

[누적 사상자 발표]

이집트 보건부 장관은 시위로 인해 현재까지 11명이 사망하고 최소 5,000명이 부상당했다고 발표하며 사상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음을 알렸습니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사임, 독재 종식]

18일간 이어진 대규모 민주화 시위 끝에,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마침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군 최고위원회에 권력을 이양했습니다.

이로써 30년 가까이 이집트를 통치했던 독재 정권이 국민의 힘으로 종식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술레이만 부통령은 국영 TV를 통해 공식적으로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임을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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