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혁명
혁명, 민주화 운동, 사회 운동, 정치 변동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9:09
2010년 말 청년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비극적인 분신으로 촉발된 튀니지의 민주화 운동입니다. 24년간 튀니지를 통치한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재스민 혁명이라 불리며 이집트 리비아 등 다른 아랍 국가로 확산되어 아랍의 봄을 알린 세계 최초의 성공적인 민주화 혁명입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정보 공유가 시위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2010
[튀니지 혁명의 불씨, 청년 부아지지 분신]
튀니지 시디 부 지드에서 실직 중이던 26세 청년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경찰의 부당한 노점상 단속과 폭행에 항의하며 분신을 시도했습니다.
이 사건은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키는 촉매제가 되어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이어졌습니다.
그의 사촌이 촬영한 분신 영상이 페이스북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며 튀니지 혁명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부아지지는 판매 허가 없이 과일과 채소를 팔다 상품과 저울을 몰수당하고 폭행당했습니다. 지방청사 앞에서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분신했으며, 이는 부패한 정부와 높은 실업률에 대한 민중의 좌절감을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벤 알리 대통령, 병원 방문으로 사태 진정 시도]
전날 분신을 시도한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이 직접 병원을 찾아 부아지지를 위문했습니다.
이는 시위 확산을 막고 민심을 달래기 위한 정부의 첫 시도였습니다.
2011
[혁명의 불씨, 부아지지 결국 사망]
분신을 시도했던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18일간의 사투 끝에 결국 사망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튀니지 민중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고, 반정부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시위, 수도 튀니스 남부 타라로까지 확산]
부아지지 사망 이후, 중부 도시 타라로에서는 분노한 군중이 경찰서와 정부 청사, 은행에 불을 지르는 등 시위가 더욱 폭력적으로 격화되었습니다.
이는 혁명이 수도 인근 지역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시위 진압 중 보안군 발포, 다수 사망자 발생]
카세린과 같은 도시에서 높은 실업률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보안군이 시위대에 발포하면서 최소 14명에서 최대 25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하며 혁명의 유혈 사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위는 8일 밤부터 9일까지 이어졌습니다. 야당 측 지도자에 따르면 사망자는 25명에 달했다고 전해지며, 이 사건은 정부의 강경 진압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더욱 부추겼습니다.
[카세린 시위 재격화, 시민 4명 추가 사망]
카세린에서는 다시 방화와 경찰서 습격이 일어났고, 경찰의 발포로 시민 4명이 추가로 사망했습니다.
정부의 강경 진압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멈추지 않고 더욱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혁명, 마침내 수도 튀니스 장악]
혁명의 불길이 마침내 수도 튀니스로 번졌습니다.
노동자와 시위대가 차, 은행, 경찰서 등 정부 청사를 방화하고 상점을 약탈하는 등 사회 혼란이 극에 달했습니다.
경찰의 위협 사격으로 4명이 사망했으며, 내무부는 23명 사망을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5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튀니스 야간 통행금지령 발령]
시위가 수도 튀니스까지 확산되자, 정부는 튀니스와 그 주변 지역에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야간 통행금지령을 발령하며 사태를 진압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시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벤 알리 대통령, 재선 불출마 및 개혁 약속]
벤 알리 대통령은 TV 연설을 통해 2014년 대선 불출마와 함께 임기 만료 시 퇴임 의사를 밝혔습니다.
또한 식료품 가격 인하, 언론 자유 확대, 인터넷 열람 제한 해제, 치안 부대 발포 금지 등 전례 없는 개혁 조치를 약속하며 민심을 회유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독재정권 붕괴, 벤 알리 대통령 사우디 망명!]
노조 총파업과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진 가운데, 벤 알리 대통령은 결국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정부 해산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진정되지 않았고, 그는 끝내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하며 24년간 이어진 튀니지의 독재 정권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는 시위에 의해 아랍 독재 정권이 타도된 세계 최초의 사례입니다.
망명 전 벤 알리 부인이 중앙은행에서 1.5톤의 금괴를 가져갔다는 보도가 있었으며, 망명을 시도하던 친족들도 검거되었습니다. 군부는 시위대에 대한 실탄 사용 명령을 거부하며 사실상 벤 알리에게 망명을 강요했습니다.
[간누시 총리, 임시 대통령 선언]
벤 알리 대통령의 망명으로 정권이 붕괴되자, 모하메드 간누시 총리가 헌법 제56조를 근거로 자신이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한다고 국영 TV를 통해 발표했습니다.
이는 과도기적 혼란을 수습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간누시 총리의 임시 대통령 취임은 헌법적 정당성 논란이 제기되었습니다.
[후아드 메바자 하원의장, 임시 대통령 취임]
간누시 총리의 임시 대통령 취임이 헌법상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헌법위원회의 견해를 거쳐 의회는 헌법 제57조에 의거하여 후아드 메바자 하원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임명했습니다.
메바자는 취임 선서를 하고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를 실시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과도 정부 공식 출범]
메바자 임시 대통령과 간누시 총리가 주도하는 과도 정부가 야당 및 정부 간 협의를 통해 공식 출범했습니다.
야당 인사 3명과 투옥되었던 블로거 등도 입각했으나, 벤 알리 정권의 주요 각료들이 유임되면서 '완전한 배제'를 요구하는 시위가 계속되었습니다.
[과도 정부 총리 간누시 사임]
이전 정권 구성원들의 배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과도 정부의 모하메드 간누시 총리가 사임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이에 메바자 임시 대통령은 전 외무 장관인 베지 카이드 엘 세브시를 후임 총리로 임명하며 과도 정부의 재편을 시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