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국가, 중동 국가, 서아시아 국가, 유대 국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9:07
이스라엘은 고대 유대인 역사와 깊이 연결된 약속의 땅에 세워진 독특한 국가입니다. 1948년 건국 이래 주변 아랍 국가들과의 잦은 충돌 속에서도 끊임없이 국방력을 강화하고 첨단 기술을 발전시켜 중동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품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히브리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입니다. 동시에 팔레스타인과의 오랜 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 '이스라엘' 단어 최초 기록
-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 (유목민 정착)
- 사울 왕조의 형성 및 파괴
- 북부 이스라엘 왕국의 전신 형성 (여로보암 왕조)
- 북쪽 이스라엘 왕국 존재
- 북 이스라엘 왕국 멸망
- 유다 왕국 멸망
- 신바빌로니아 멸망 및 유대인 귀환, 성전 재건
- 알렉산더 대왕 정복 및 하스몬 왕조 건립
- 하스몬 왕조, 로마 제국의 보호국 및 속주화
- 제1차 유대-로마 전쟁 발발
- 제1차 유대-로마 전쟁 진압
- 바르 코크바의 난 발발
- 바르 코크바의 난 진압 및 유대 속주 편입
- 이슬람 지배 시작
- 예루살렘 재점령 (아이유브 술탄국)
- 오스만 제국 지배 시작
- 시온주의 운동 촉발
- 밸푸어 선언
- 영국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설립
- 유엔 팔레스타인 분할안 제안 및 내전 발발
- 이스라엘 건국 선포
- 제1차 중동 전쟁 발발
- 제1차 중동 전쟁 휴전 및 영토 확장
- 6일 전쟁 발발 및 점령지 확대
- 욤키푸르 전쟁 발발
- 이집트-이스라엘 평화 조약 체결
- PLO와의 자치 합의 및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립
- 요르단-이스라엘 평화 조약 체결
BC 1k
['이스라엘' 단어 최초 기록]
고대 이집트의 메르넵타 석비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발견되어, 성경 외부에서 이스라엘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오래된 증거로 기록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메르넵타 석비는 기원전 13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며, 이 비문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단어가 집단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가장 오래된 유물이다. 이는 성경 외적으로 이스라엘인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오래된 고고학적 증거로 평가받는다.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 (유목민 정착)]
기원전 1200년경, 기후 및 사회 변화로 유목민들이 고원 지대에 정착하며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200년경, 고원 지대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도시 쇠락으로 인해 곡물 자급자족을 위해 정착 생활로 전환하면서 초기 이스라엘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는 기후 변화와 사회적 혼란 속에서 발생한 생활 방식의 혁명으로 여겨진다.
[블레셋 민족의 정착]
기원전 1200년경, 메르넵타 석비에 이스라엘이 등장한 시기와 비슷하게 블레셋 사람들이 남쪽 해안 평야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1200년경, 이스라엘의 존재가 확인된 시점과 유사하게 블레셋 민족이 남쪽 해안 평야에 터를 잡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이 지역의 주요 세력을 형성하게 된다.
BC 10C
[사울 왕조의 형성 및 파괴]
기원전 10세기경, 기브온-기브아 고원에 사울 왕조로 추정되는 정치 세력이 형성되었으나, 이집트 쇼솅크 1세에 의해 파괴되고 소규모 도시 국가로 분열되었다.
기원전 10세기 무렵, 이스라엘 고원 지대에서 사울 왕조로 추정되는 정치적 세력이 급작스럽게 등장했으나, 이집트의 쇼솅크 1세에 의해 그 기반이 파괴된 후 다시 작은 도시 국가들로 회귀하게 되었다는 학설이 있다.
[북부 이스라엘 왕국의 전신 형성 (여로보암 왕조)]
기원전 950년에서 900년 사이, 북부 고지대에서 여로보암 왕조로 추정되는 정치 세력이 나타나 디르사를 수도로 삼으며, 이스라엘 왕국의 전신을 형성했다.
기원전 950년경부터 900년 사이에 북부 고지대에서 여로보암 왕조로 추정되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부상하여 디르사를 수도로 삼았다. 이 세력은 훗날 이스라엘 왕국으로 발전하는 중요한 기반을 마련했다.
BC 9C
고고학적 추정으로 기원전 900년경부터 북쪽 이스라엘 왕국이 형성되어 존재했으며, 두 왕국 중 더욱 번영하여 지역 강국으로 성장했다. 오므리 왕조 시대에는 사마리아, 갈릴리 등 광범위한 지역을 통제했다.
고고학적 추정으로 기원전 850년경부터 유다 왕국이 형성되어 존재했으며, 기원전 9세기 후반부터 번영의 시기를 맞이했다.
BC 8C
번성했던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기원전 722년 강력한 아시리아 제국의 침략으로 인해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BC 6C
기원전 586년, 남쪽의 유다 왕국은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으며, 많은 유대인이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신바빌로니아 멸망 및 유대인 귀환, 성전 재건]
기원전 539년, 신바빌로니아 제국이 페르시아에 멸망하자, 키루스 2세의 명령으로 바빌론에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했다.
기원전 539년, 강력했던 신바빌로니아 제국이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무너지면서, 키루스 2세는 유대인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로써 유대인들은 오랜 망명 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신앙의 중심지를 재건하는 중요한 역사를 맞이했다.
BC 4C
[알렉산더 대왕 정복 및 하스몬 왕조 건립]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이후 마케도니아 분열을 겪고 셀레우코스와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의 지배를 받다가, 마카베오 전쟁을 통해 유대인의 왕국 하스몬 왕조가 세워졌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으로 이 지역이 정복된 후, 대왕 사후 마케도니아 왕국이 분열되면서 팔레스타인과 유대 지역은 셀레우코스 제국과 프톨레마이오스 왕국 사이에서 지배권이 교체되었다. 이후 유대인들은 마카베오 전쟁을 거쳐 독립적인 하스몬 왕조를 수립하게 되었다.
BC 1C
[하스몬 왕조, 로마 제국의 보호국 및 속주화]
기원전 1세기경, 하스몬 왕조는 로마 제국의 보호국이 되었다가, 이후 로마 제국의 속주인 유대 속주로 편입되었다.
기원전 1세기경, 유대인의 독립 왕국이었던 하스몬 왕조는 점차 강력해지는 로마 제국의 영향력 아래 보호국으로 편입되었다. 이후 로마 제국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게 되면서 유대 속주로 전환되는 과정을 겪었다.
66
기원후 66년, 로마 제국의 지배에 저항하며 유대인들이 대규모 봉기인 제1차 유대-로마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은 유대 민족의 독립을 위한 중요한 시도였다.
70
기원후 70년, 로마 제국은 발발 4년 만에 제1차 유대-로마 전쟁을 완전히 진압하고, 유대인의 정신적 중심지였던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132
[바르 코크바의 난 발발]
기원후 132년, 유대인들이 로마 제국에 맞서 최후의 대규모 봉기인 바르 코크바의 난(제3차 유다 전쟁)을 일으켰다.
기원후 132년, 로마 제국의 지배에 대항하는 마지막 대규모 봉기인 바르 코크바의 난, 즉 제3차 유다 전쟁이 발발했다. 이는 유대 민족의 독립을 향한 절박한 저항의 시도였다.
135
[바르 코크바의 난 진압 및 유대 속주 편입]
기원후 135년, 로마 제국에 의해 바르 코크바의 난이 진압되었고, 유대 속주는 시리아 속주에 편입되었다.
기원후 135년, 로마 제국은 바르 코크바의 난을 완전히 진압하고, 유대 속주를 시리아 속주에 병합시키는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중동 전역으로 흩어져 디아스포라가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636
[이슬람 지배 시작]
기원후 636년 동로마 제국이 정통 칼리파에 패배하면서, 이 지역의 패권은 오스만 제국 멸망 시기까지 대부분 이슬람 국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636년, 동로마 제국이 정통 칼리파에게 패배한 후, 이 지역은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는 시기까지 약 1300년간 이슬람 국가들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는 장기적인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했다.
1099
제1차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1099년,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며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그리스도교 왕국을 건립했다. 이는 약 88년간 지속될 십자군 국가의 시작이었다.
1187
[예루살렘 재점령 (아이유브 술탄국)]
1187년 하틴 전투에서 예루살렘 왕국이 패배하면서, 예루살렘이 아이유브 술탄국에 의해 다시 이슬람 세력의 손에 넘어갔다.
1187년, 살라흐 앗 딘이 이끄는 아이유브 술탄국이 하틴 전투에서 십자군을 대파하고 예루살렘을 재점령했다. 이로써 약 88년간 유지되었던 예루살렘 왕국의 실질적인 통제권은 상실되었다.
1291
1291년, 십자군이 세웠던 예루살렘 왕국은 맘루크 술탄국의 공격으로 멸망하며, 이로써 십자군 국가 시대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1517
1517년, 오스만 제국이 맘루크 술탄국을 정복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후 제1차 세계 대전까지 약 400년간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1880
19세기 후반, 유럽 전역에서 반유대주의가 팽배해지자, 이에 맞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민족적 정체성을 회복하고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려는 시온주의 운동을 시작했다.
1917
[밸푸어 선언]
1917년, 영국 외무장관 밸푸어가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하는 선언을 발표했고, 이는 1920년 영국의 공식 외교 정책이 되었다.
1917년, 영국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밸푸어 선언을 발표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선언은 이후 1920년 영국의 공식 외교 정책으로 채택되어 팔레스타인 내 유대인 이민 증가와 아랍-유대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1920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배한 후,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하고 1920년에 국제 연맹으로부터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를 승인받아 위임통치령을 설립했다. 이는 유대인과 아랍인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배경이 되었다.
1947
[유엔 팔레스타인 분할안 제안 및 내전 발발]
1947년, 유엔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분할할 것을 제안했으나, 이에 동의하지 않은 아랍인들과 유대인 간의 내전으로 이어졌다.
1947년, 유엔 총회는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을 분할하여 유대인과 아랍인 국가를 수립하는 계획을 제안했다. 유대인들은 이를 수용했으나 아랍인들은 반대하여, 이 지역은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1948
[이스라엘 건국 선포]
1948년 5월 14일, 다비드 벤구리온이 '에레츠 이스라엘에서 유대 국가를 수립하고 이스라엘 국가로 한다'고 선언하며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다.
1948년 5월 14일,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가 종료되자마자 시오니즘 단체 경영이사 다비드 벤구리온이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국'의 건국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이는 현대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점이 되었다.
[제1차 중동 전쟁 발발]
이스라엘 건국 선포 이튿날인 1948년 5월 15일, 인접 아랍 국가들이 이 지역을 침공하면서 제1차 중동 전쟁이 발발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이 선포된 다음 날인 5월 15일,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등 아랍 국가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며 제1차 중동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영토를 확장했다.
1949
[제1차 중동 전쟁 휴전 및 영토 확장]
1949년, 제1차 중동 전쟁 휴전 협정으로 이스라엘은 이전 팔레스타인 위임통치 지역의 77%를 통제하게 되었다.
1949년, 제1차 중동 전쟁이 휴전으로 마무리되면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위임통치 지역 중 약 77%에 해당하는 영토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는 유엔 분할안보다 더 넓은 지역을 차지하게 된 결과였다.
1967
[6일 전쟁 발발 및 점령지 확대]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서안 지구, 가자 지구, 시나이 반도, 골란 고원을 점령하며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1967년, 이스라엘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연합군과의 6일 전쟁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요르단강 서안 지구, 가자 지구, 시나이 반도, 골란 고원을 점령하며 중동 지역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1973
[욤키푸르 전쟁 발발]
1973년 10월 6일 유대인들의 속죄일 욤키푸르 당일,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기습으로 제4차 중동 전쟁(욤키푸르 전쟁)이 발발했다.
1973년 10월 6일, 유대인들의 가장 신성한 날인 욤키푸르에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이 점령한 시나이 반도와 골란 고원을 기습 공격하며 제4차 중동 전쟁(욤키푸르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은 큰 피해를 입었으나 결국 승리했다.
1979
[이집트-이스라엘 평화 조약 체결]
1979년,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평화 조약을 체결하며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욤키푸르 전쟁 이후, 1979년에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 이는 아랍 국가 중 이집트가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인정한 것으로, 중동 평화에 큰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었다.
1993
[PLO와의 자치 합의 및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립]
1993년, 이스라엘은 PLO와 자치에 합의하여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세워졌다.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역사적인 오슬로 협정을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립에 합의했다. 이 협정으로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세워졌지만, 완전한 평화는 아직 요원하다.
1994
[요르단-이스라엘 평화 조약 체결]
1994년, 이스라엘은 요르단과 평화 조약을 체결하며 또 다른 인접 아랍 국가와 관계를 정상화했다.
이스라엘은 1994년에 요르단과 평화 조약을 체결하며, 이집트에 이어 두 번째로 아랍 국가와 국교를 수립했다. 이는 중동 지역의 평화 정착 노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10
이스라엘은 2010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며 선진 경제 대열에 합류했다. 이는 이스라엘 경제의 발전과 국제적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2018
[아랍어 공용어 지위 상실]
2018년 7월 19일, 유대민족법 제정으로 아랍어는 이스라엘의 공용어 지위를 잃고 특수 지위 언어로 격하되었다.
2018년 7월 19일,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는 '유대 민족 국가법'을 통과시키면서 히브리어를 유일한 국어로 명시하고 아랍어의 공용어 지위를 특수 지위 언어로 격하시켰다. 이는 이스라엘 내 아랍계 주민들의 권리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