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국가, 서아시아, 부분적 승인국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9:04
팔레스타인국은 서아시아 레반트에 위치한 주권국가입니다. 요르단강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는 부분적 승인 국가이며 수도는 예루살렘 행정중심지는 라말라입니다.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한 영토에 주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2024년 4월 현재 140개 유엔 회원국으로부터 독립 국가로 승인받았으며 2012년부터 유엔 총회 옵서버 국가로 활동 중입니다. 아랍 연맹 이슬람 협력 기구 등 다양한 국제기구의 회원국으로 국제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 기독교의 탄생
- 이슬람교의 성지 지정
- 이슬람 세력의 팔레스타인 지배 시작
- 십자군 국가 수립과 멸망
- 오스만 제국의 팔레스타인 지배
- 민족주의와 시온주의의 부상
- 영국의 팔레스타인 점령
- 영국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수립
- 팔레스타인 아랍인 대봉기
- 홀로코스트와 시온주의 운동 가속화
- 영국의 팔레스타인 철수 결정
- 유엔 팔레스타인 분할안 채택
- 이스라엘국 수립
- 제1차 중동 전쟁 발발
- 전팔레스타인 정부 창설
-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 설립
- 제3차 중동 전쟁 (6일 전쟁) 발발
- PLO, 팔레스타인 대표 기구로 인정
- 캠프 데이비드 협정 체결
- 제1차 인티파다 발발
- 팔레스타인 독립 선언
- 역사적인 오슬로 협정 체결
-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PNA) 출범
- 오슬로 협정 주역 암살
- 제2차 인티파다 발발
- 이스라엘 방패 작전 개시 및 장벽 건설
- 하마스 핵심 인물 아흐메드 야신 사망
- 야세르 아라파트 사망
-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완전 철수
- 하마스의 총선 승리
- 팔레스타인 내부 분열과 분리 통치
- 유네스코 정식 회원국 가입
- 유엔 옵서버 '국가' 지위 획득
-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1
[기독교의 탄생]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있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나사렛 예수를 통해 기독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지역은 유대교와 기독교 모두에게 핵심적인 성지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700
[이슬람교의 성지 지정]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승천하여 신을 만났다고 전해지는 알아크사 모스크가 팔레스타인에 자리하면서, 이 지역은 이슬람교의 중요한 성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슬람 세력의 팔레스타인 지배 시작]
7세기, 라시둔 칼리파국이 비잔틴과 페르시아 세력을 물리치고 팔레스타인을 장악하면서 이 지역은 이슬람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아랍인으로의 동화가 진행되었습니다.
1099
[십자군 국가 수립과 멸망]
유럽의 제1차 십자군이 팔레스타인에 십자군 국가를 세웠으나, 12세기 후반에는 위대한 지도자 살라딘이 이끄는 아이유브 술탄국에 의해 이 모든 국가들이 멸망했습니다.
이는 중동 역사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400
[오스만 제국의 팔레스타인 지배]
15세기부터 강력한 오스만 제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포함한 시리아 일대를 점령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특유의 밀레트 제도를 통해 종교의 자율성을 보장하며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시대를 열었습니다.
1800
[민족주의와 시온주의의 부상]
19세기 말 오스만 제국 내 민족주의가 고조되면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 사이에서 자율성 요구가 커졌습니다.
동시에 유럽 유대인 사회에서는 시온주의가 등장하여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조국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고, 유대인 이민이 증가하며 아랍인과의 긴장이 높아졌습니다.
1918
[영국의 팔레스타인 점령]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하면서, 1918년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은 대영제국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영국은 아랍 독립국과 유대인 국가 수립을 동시에 약속하며 복잡한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1920
[영국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수립]
국제 연맹은 유대인의 조국 건설과 아랍 인구의 권익 보장이라는 상반된 목적을 가지고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을 수립했습니다.
이는 영국이 이 지역을 통치하며 복잡한 관계를 조정하는 형태였습니다.
1936
[팔레스타인 아랍인 대봉기]
유대인 이민 증가에 반대하며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대규모 봉기가 1936년에 일어났습니다.
영국은 이 반란을 진압했지만, 아랍인의 입장을 수용하여 유대인 이민을 제한하기 시작하며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1939
[홀로코스트와 시온주의 운동 가속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가 발생하면서, 전 세계 유대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는 시온주의 운동에 엄청난 추진력을 불어넣으며 팔레스타인 내 유대인 정착촌이 확장되는 계기가 됩니다.
1947
[영국의 팔레스타인 철수 결정]
평화 유지를 위해 고군분투하던 영국은 결국 1947년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이 지역의 미래를 불확실하게 만들며 새로운 갈등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유엔 팔레스타인 분할안 채택]
1947년 11월 29일, 유엔은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인 국가와 아랍인 국가로 나누고 예루살렘은 국제 공동통치지역으로 설정하는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채택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건국의 직접적인 배경이 됩니다.
1948
[이스라엘국 수립]
1948년 5월 14일, 다비드 벤구리온이 이끄는 유대인 지도부는 유엔의 두 국가 정책에 따라 '이스라엘국'의 수립을 선포했습니다.
이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역사를 뒤흔들 대사건이었습니다.
[제1차 중동 전쟁 발발]
이스라엘 수립 다음 날인 1948년 5월 15일, 이웃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며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즉 제1차 중동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고, 이스라엘은 본래 아랍인 구역으로 설정된 영토 일부까지 점령했습니다.
[전팔레스타인 정부 창설]
아랍 연맹은 1948년 9월 22일,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을 위한 '전팔레스타인 정부'를 창설했습니다.
이 정부는 실질적으로 가자 지구에 영토가 한정되어 있었지만, 트란스요르단을 제외한 아랍 연맹 회원국들에게 인정받았습니다.
1964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 설립]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한 목적으로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가 설립되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구 위임통치령 전체를 팔레스타인국의 영토로 선포하며 독립 의지를 강력히 드러냈습니다.
1967
[제3차 중동 전쟁 (6일 전쟁) 발발]
1967년,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 국가들 사이에 '6일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 짧은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서안 지구, 가자 지구, 시나이반도, 골란고원을 모두 점령하며 중동 정세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1974
[PLO, 팔레스타인 대표 기구로 인정]
1974년 10월, PLO는 아랍 연맹 회의에서 '팔레스타인 국민의 대표부'로 공식 인정받았습니다.
이어서 11월에는 유엔 총회에서 옵서버 자격을 부여받으며 국제사회에서의 입지를 강화했습니다.
1978
[캠프 데이비드 협정 체결]
1978년, 미국의 중재로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에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이 협정으로 이집트는 가자 지구 영유권을 포기하게 됩니다.
이는 중동 평화에 있어 중요한 진전이었으나, 모든 분쟁을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1987
[제1차 인티파다 발발]
이스라엘이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에 정착촌을 건설하면서, 행정권을 둘러싼 분쟁이 격화되어 1987년 '제1차 인티파다(민중 봉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저항 의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1988
[팔레스타인 독립 선언]
1988년 11월 15일, 망명 중이던 PLO 수장 야세르 아라파트는 알제에서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립을 전 세계에 선언했습니다.
이는 많은 국가로부터 즉시 승인을 얻었으며, 국제사회에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강력히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3
[역사적인 오슬로 협정 체결]
1993년 미국이 중재하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오슬로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PLO를 팔레스타인 국민의 대표로 인정했고, PLO는 이스라엘국의 평화적 존재 권리를 인정하며 폭력 행위 중단을 수용하는 역사적인 합의를 이뤘습니다.
1994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PNA) 출범]
오슬로 협정의 결과로 1994년부터 PLO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PNA)'를 설립하여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 일부 지역에서 정부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야세르 아라파트가 초대 수장이 되어 평화적 해결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했습니다.
1995
[오슬로 협정 주역 암살]
평화의 상징이던 오슬로 협정은 강경파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결국 1995년, 이 협정을 이끈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시온주의 강경파 청년에게 암살당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평화 과정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2000
[제2차 인티파다 발발]
2000년, 항구적 평화를 위한 협의가 결렬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통치에 반발하는 '제2차 인티파다'가 일어났습니다.
양측의 폭력 사용이 잦아지며 갈등이 심화되었고, 국제사회의 우려를 낳았습니다.
2002
[이스라엘 방패 작전 개시 및 장벽 건설]
2002년, 이스라엘은 폭력 사태 대응을 명목으로 팔레스타인 도시에 대규모 군사 작전인 '방패 작전'을 감행했습니다.
이후 공격 억제를 위해 검문소와 장벽 건설을 시작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의 이동 제한과 인도주의적 상황 악화를 초래했습니다.
2004
[하마스 핵심 인물 아흐메드 야신 사망]
2004년 3월,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의 또 다른 핵심 인물이자 하마스의 지도자였던 아흐메드 야신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강경파인 하마스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야세르 아라파트 사망]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운동의 구심점이었던 야세르 아라파트가 2004년 11월 건강 악화로 사망했습니다.
이는 팔레스타인 정치 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2005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완전 철수]
2005년,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서 모든 정착촌을 해체하고 군대를 완전히 철수했습니다.
그러나 곧 가자 지구 전역은 무장 조직 하마스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행정력을 상실했습니다.
2006
[하마스의 총선 승리]
2006년 팔레스타인 입법부 선거에서 강경파인 하마스가 단독 과반수를 차지하며 승리했습니다.
이 결과는 팔레스타인의 두 주요 정치 세력인 파타와 하마스 간의 내부 분열을 심화시켰습니다.
2007
[팔레스타인 내부 분열과 분리 통치]
2006년 총선 이후 파타와 하마스 간의 분쟁이 무장 충돌로 번져, 결국 2007년부터 가자 지구는 하마스가, 서안 지구는 파타가 집권하며 팔레스타인이 사실상 두 개의 정부로 분리되어 통치되는 상황이 초래되었습니다.
2011
[유네스코 정식 회원국 가입]
2011년 10월 31일, 팔레스타인은 유엔 가입을 위한 발판으로 유네스코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했습니다.
유엔 193개 회원국 중 107개국의 찬성으로 통과되며 국제적 지위가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2012
[유엔 옵서버 '국가' 지위 획득]
2012년 11월 29일,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의 지위를 표결권 없는 옵서버 '단체'에서 옵서버 '국가'로 격상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는 팔레스타인이 국제사회에서 독립적인 '국가'로 인정받는 중요한 발걸음이었습니다.
2023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2023년 10월, 가자 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의 테러 공격을 이유로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로 대대적으로 침공하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는 심각한 국제 분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