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혁명
혁명, 정치변동, 신정체제 수립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9:02
- 1979년 이란에서 서구화 정책에 반대하며 팔라비 왕조를 전복시킨 대규모 혁명. - 세계 최초로 이슬람 종교 지도자가 최고 권력을 가진 신정 독재 국가를 탄생시킨 역사적 사건. - 민중의 참여로 왕정을 무너뜨렸지만 결과적으로 더 강력한 독재 체제가 들어선 아이러니. - 혁명 과정에 적극적이었던 여성들이 이후 인권 탄압의 대상이 된 비극을 낳음.
1977
팔라비 샤에 대한 불만이 커지던 이란에서 1977년 10월부터 세속적, 종교적 요소가 혼합된 시민 저항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이듬해 1월 더욱 격화되며 혁명의 전조를 알렸습니다.
1978
[이란 전국 마비시킨 대규모 시위]
1978년 8월부터 12월 사이에 이란 전역에서 대규모 파업과 시위가 이어지며 국가 기능이 마비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1978년 8월부터 12월까지 수개월에 걸쳐 이란 전역에서 팔라비 왕조에 반대하는 대규모 파업과 시위가 발생하여 국가 기능이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1979
[팔라비 샤, 이란 탈출 망명]
팔라비 샤가 시위의 압력에 못 이겨 마지막 페르시아 군주로서 이란을 떠나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그는 재위 의회와 야당 기반 수상에게 임무를 맡겼습니다.
거세지는 혁명 시위로 인해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샤는 1979년 1월 16일, 페르시아 군주의 자리에서 내려와 이란을 떠나 망명했습니다. 그는 국정을 재위 의회와 당시 야당 소속의 샤푸르 바크티아르 수상에게 위임했습니다.
[호메이니, 이란으로 금의환향]
정부 초청으로 망명 중이던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란으로 돌아왔고, 수백만 명의 이란인들이 그를 환영하기 위해 테헤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해외 망명 중이던 이슬람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는 이란 정부의 초청을 받아 1979년 2월 1일 이란으로 돌아왔습니다. 테헤란에는 그를 환영하기 위해 수백만 명의 이란인들이 모여들며 그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란 왕정 붕괴, 호메이니 권력 장악]
무장 거리 전투 끝에 게릴라와 반란군이 샤에 충성하는 군대를 격퇴하면서 왕권이 완전히 붕괴되었고, 루홀라 호메이니가 공식적으로 권좌에 앉았습니다.
1979년 2월 11일, 이란에서는 무장한 게릴라와 반란군이 샤에 충성하던 군대를 물리치는 거리 전투가 발생했습니다. 이 전투의 결과로 팔라비 왕조의 왕권이 완전히 무너졌으며,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란의 공식적인 권력자로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 수립]
왕정이 무너진 이란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이슬람 공화국을 선포했으며, 이는 새로운 신정주의 국가의 탄생을 알리는 중대한 전환점입니다.
1979년 4월 1일, 이란은 국민투표를 거쳐 이슬람 공화국을 공식적으로 선포했습니다. 이는 이란이 입헌 군주제에서 이슬람 종교 지도자가 최고 권력을 가진 신정 체제로 변화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호메이니, 이란 최고 지도자에 오르다]
국민투표를 통해 새로운 신정주의 공화국 헌법이 제정되고 승인되었으며, 루홀라 호메이니는 이란의 최고 지도자로 공식 등극하며 절대적 권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란은 1979년 12월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새로운 신정주의 공화국 헌법을 제정하고 승인했습니다. 이로써 루홀라 호메이니는 이란의 최고 지도자로 공식적으로 등극하게 되었으며, 이슬람 종교 지도자가 국가 최고 권력을 행사하는 신정 체제가 확립되었습니다.